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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두인의 물방울

베두인의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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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98g | 124*198*9mm
ISBN13 9791197357787
ISBN10 1197357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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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도 삼동三冬이 있어 펑펑 눈이 쏟아지는 진부 골짜기에서 다시 나를 만났을 때 붉게 언 손도 못 내민 채 쓸쓸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겨울을 찾아 헤매던 어느 여름날 나는 임계 장터의 각다귀이거나 봉평 냇가 여울목 쏘가리이기도 하였다. 차디찬 겨울은 눈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고 아무르 강까지 찾아간 발걸음은 허탕이었다. 하루 종일 멱에 지친 등짝 까만 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무지는 병이 되었다.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즈음 허파 속에서 강력한 눈보라가 일어나 허름한 방에 나를 눕혔다. 가물거리는 백열등 아래 차디찬 방바닥에 몸을 묻으면 하나의 환영幻影이 다가오다 사라지곤 하였다. 내 안의 겨울, 삼동三冬은 반갑지도 슬프지도 않은 사내의 형상으로 진부 골짜기 허름한 방에 불쑥 들어와 한참을 바라보다 눈보라와 함께 사라졌다. 이미 멀리 겨울까지 도달한 내 몸을 느낄 수 있었다. 봄으로 가는 모든 회로를 끊은 채 하늘 높이 눈이 쌓여가는 삼동三冬 아래 잠들 것이다.
--- 「내 안의 겨울 삼동(三冬)을 찾아서」 증에서


개구리도 겨울잠에 들고
싸락눈이 내리는 밤
마쓰오 바쇼,
이런 날은 늘 바람이 창호 문을 두드렸지
화로에 술을 데우도록 하지
낡은 신발은 방안 머리맡에 놓아두도록 하지
왜 마음이란
천리만리 달아나는 것인지
조금은 뜨거운 술을 천천히 내장에 붓고
매화나 동백 같은 꽃을 기다리기로 하지
아니면
꽃의 북쪽으로 달아날까
신음처럼 그대가 내게 물을 때
절망의 심줄을 활시위처럼 당겨
심장 가장 먼 뒤쪽으로 모든 생각을 모으곤 하지
마쓰오 바쇼,
조금 추워도 되겠지
유여한 봄빛이 마루 구석 쌀통에 넘칠 즈음이면
안개와 연기는 강줄기를 따라 무진무진 흐르겠지
그대와 나도
이쯤에서 안녕이지
연기를 좋아하는 나와 안개를 좋아하는 당신
바람이 올 때까지만 지상에 기대기로 하지
이쯤에서 안녕이지
--- 「꽃의 북쪽」 증에서


오늘날에도 유배라는 것이 있어
어느 먼 섬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형벌을 받았으면 좋겠네
컴퓨터도 없고 핸드폰도 빼앗겨
누구에겐가 온 편지를 읽고 또 읽고
지난 신문 한 쪼가리도 아껴 읽으며
탱자나무 울타리 속에 웅크리고 앉아 먼바다의 불빛을 오래 바라보고 싶네
마른반찬을 보내 달라고 집에 편지를 쓰고
살뜰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걱정하며
기약 없는 사랑에 대해 논論을 쓰겠네
서슬 위에 발을 대고 살면서
이 먼 위리와 안치에 대해 슬픈 변명을 쓰겠네
마음을 주저앉히고
서로 다른 신념을 지켜보는 갸륵함을 염원하다 보면
염전의 새벽에 어둑한 불이 들어오겠네
바닷가의 수척한 노동과 버려진 자의 곤고함을 배우다
문득 얼굴에 새겨진 주홍글씨를 물속에서 발견하면
삼박 사일을 목 놓아 울겠네
며칠 말미를 낸 그대가 온다면
밥을 끓이고 대나무 낚시를 하며 서로의 글을 핥고 빨겠네
글이란 무섭고도 간절하여 가시나무를 뚫고
천둥처럼 울릴 것이라 믿고
그대의 글을 읽다가
온통 피로 멍울진 내 혓바닥을 보겠네
유배의 길에 떨어져 흩어진 몸을 살뜰히 아껴보겠네
--- 「유배流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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