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1년 10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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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0쪽 | 366g | 130*205*17mm |
ISBN13 | 9788954682527 |
ISBN10 | 8954682529 |
출간일 | 2021년 10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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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0쪽 | 366g | 130*205*17mm |
ISBN13 | 9788954682527 |
ISBN10 | 8954682529 |
MD 한마디
[오늘의 한국 사회를 그리는 단편들] 등단 10년이 넘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김승옥문학상. 올해 작품집에는 대상을 수상한 문진영 작가의 「두 개의 방」을 포함,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소설들 속에 각양각색의 삶이 생생하게 녹아든다. -소설MD 박형욱
“이 결과가 심사위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블라인드 심사가 발견해낸 문진영이라는 낯설고도 준비된 이름 김승옥문학상은 등단 후 10년이 넘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7편을 뽑아 독자에게 선보인다. 올해는 2020년 7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주요 문예지와 웹진, 독립문예지까지 포괄한 총 28개 문예지에서 100명의 작가가 발표한 184편이 심사 대상이 되었다. 작가의 정보를 지운 블라인드 심사는 언제나 김승옥문학상의 문학성을 보증하는 담보였지만, 올해 특히 블라인드 심사의 결과가 두드러졌다. 대상으로 선정된 문진영 작가를 포함해 윤대녕, 손홍규, 안보윤, 진연주, 정용준, 황현진 작가가 2021 김승옥문학상에 새로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이번 2021년 수상작품집은 세대를 아울러 한국문학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그려 보인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심사장의 열렬한 분위기를 그대로 증언한 심사평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다종다양한 삶과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수록되었다. 세대와 정체성으로 나뉘어 균열을 이룬 색색깔의 단면을 보이면서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이기에 어떤 목소리도 지우지 않고 긍정하고자 한 결과다. 2020년대를 비추는 프리즘으로서 김승옥문학상은 스펙트럼으로 펼쳐진 한국 사회와 사람들을 독자가 세세히 살펴볼 수 있게 할 것이다. |
대상 문진영 두 개의 방 작가노트 | 마음의 단층 리뷰 | 방(房), 그 원초적 중심으로 인도하는 몽상의 길(김화영) 윤대녕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 작가노트 | 누군가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지점 리뷰 | 때와 장소(권희철) 손홍규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 작가노트 | 기뻐서 눈물난다는 당신께 리뷰 | 지루한 소설의 전략과 반전하는 힘(전경린) 안보윤 완전한 사과 작가노트 | 어떤 진심 리뷰 | ‘완전한 사과’는 불가능하지만, ‘생존’하는 인간으로 이어져 있으므로 우리는(서영인) 진연주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작가노트 | 씻김굿 리뷰 | 길을 간다는 것―예정된 상실과 그럼에도 예상 밖의 삶에 대하여(차미령) 정용준 미스터 심플 작가노트 | 심플한 슬픔 리뷰 | 그 슬픔에 오래오래 박수를 보낼 것이다(김금희) 황현진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 작가노트 | 벤자민은 죽었지만 올리브는 살렸으므로 리뷰 | 패턴의 출현, 위트의 승리(황종연) 2021 김승옥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취지 -심사 경위 및 심사평 |
문진영의 소설에 대한 김화영 평론가의 다소 어려운 글은 영화관, 술집, 산책, 방, 폐허 등이 갖는 공통적인 상징성을 상기시킨다. 이들은 밀실이거나 어둠과 물기가 감도는 곳 또는 자기 안으로 숨어드는 최적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외부적인 정확하게 정렬된 칼 같은 (상징계적) 시간이 멈추고, 그것을 거스르는 나의 템포와 속도를 되찾는 (상상계적) 시간인 것이다. 산책도 자유로이 트인 걸음이라는 점에서 같이 묶기가 가능하다.
그 공간은 직립한 인간의 시각적, 의식적 공간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비물질적이고 원초적인 “냄새”와 정답게 부르는 “목소리”가 지배하는 몽상과 보호와 안식, 그리고 진정한 만남과 통일의 공간이다. (42-43)
우연한 재회보다 ‘해후’라는 단어에는 남다른 무게가 실린다. 최근 ‘앙상’이라는 단어를 유심히 살폈던 터라 시선을 끈다. 윤대녕의 소설을 읽지 않은 나는 ‘엇갈림’이라는 단어를 보고 소설이 時計를 말하는 줄 알았다. 한편 욕망은 그 안에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런 점에서 권희철 평론가의 성적 판타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문제 제기는 우리가 시간을 두고 풀어갈 공동의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과 망각의 경계. 사라진 것들과 사라질 것들의 경계를 표시한다는 듯이. 그 한가운데서 양쪽을 뒤섞고 서로에게 유입시키는 어떤 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해 들어올 때를 기다리면서 항상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는 듯이... 하지만 이제 와서는 불필요해진 그 사라진 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이뤄온 거의 전부이고, 우리의 미래라는 것도 사라질 것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89-91)
손홍규의 소설에 대한 전경린 소설가의 리뷰는 ‘대문 밖 삼촌’을 향한 곰삭은 오마주를 당장 읽고 싶게 자극한다. 소설가의 글은 순대국 속 순대 한 개로도 유혹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입체적인 인물 평가와 “사랑이라니?”라는 되물음(할큄)이 소설을 들이키고 싶게 한다. 그리고 시멘트블록이 굳는 5일(90%)과 그 후 삼십년은 근래 일어난 아파트붕괴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안보윤의 소설에 관한 서영인 평론가의 글은 의미심장하다. 곳곳에 도사리는 폭력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비롯하여, 나를 경유하는 가까운 폭력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살아서 존재하는 生存이 나 이외의 존재들로 인해 널뛰는 처지를 인간의 숙명으로 단정 짓고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적어도 폭력에 분노하고 정의를 주장할 수 있는 마음(172)”을 지킬 수 있는지 숙고한다. 폭력을 마주하는 데에 남다른 안 소설가가 ‘방조한 폭력’을 향해 어떤 ‘정의로운 분노’를 그릴지 궁금해진다.
진연주의 소설에 관한 차미령의 리뷰는 소설가 특유의 부조리성을 피력한다. 개인적으로 노견을 떠나보냈고 이른 노화를 겪는 내게 ‘걷기’와 ‘굳기’로 풀어내는 삶의 경로는 암시적이면서도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좋은 리뷰에 감화되어 언젠가 끝이 있음을 복기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걷는 ‘운동성’(“과정 그 자체의 소중함”)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늙어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더’와 ‘덜’이라는 수식어의 차이가 있을 뿐, 존재는 단지 내일보다 덜, 어제보다 더 늙을 수만 있다. 결국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이 죽음을 기다리며. (203)
정용준의 소설에 대한 김금희의 리뷰는 읽기도 전에 소설에 반하게 이끈다. 나의 슬픔(일례로 한때 뭐였으나 이제는 아닌 ‘상실’)은 이미 있었던 헌 슬픔의 유형이나 나는 “초행자”인 것이다.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는 데 익숙한(슬픔에 갇히는) 나는 최근 슬픔도 조각케이크처럼 나누어 먹기가 가능함을 경험했다. “대화가 시작되면서 둘은 서로의 슬픔에 대한 질문자인 동시에 답변자가 된다(247).” 기적과도 같은 “낮고 부드러운 이해”는 살아갈 격려가 된다. 비록 악기 연주는 짧더라도 허밍으로 남아 언제든 다시 부를 수 있다. 이때가 바로 슬픔이 심플해지는 ㅅㅍ의 순간이다.
황현진의 소설에 대한 황 평론가의 글은 권희철의 은근하고 단출한 돌려까기와는 다르게 정면 충격을 가한다. 이전의 유사 다른 소설들과 우위를 두고 비교한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주거 불안이 갖는 특수성과 함께, 동거로도 구제되지 못하는 공포를 충분히 담았다고 보이는데도 그것을 강조하기보다는 “일기의 산발적인 비명”으로 적시한다. 집다운 집을 갖지 못함은 나다운 나, 삶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함과 직결되는 현시적 위태로움인데 그는 왜 “하류계급” 혹은 “위트”를 운운하는가.
문진영 「두 개의 방」
“나는 생각했다. 지금 있는 것들은 모두 무언가의 잔해 위에 있다는 생각. 어쩌면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마음의 단면을 잘라 보면 나를 통과해간 기억과 감정의 잔해들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그 단층을 관찰하고 소환하는 과정에서, 이미 사라진 것들은 다시 ‘지금, 여기’의 일부로 새롭게 모양을 만들지 않을까.” (p.33) 소설 내부가 아니라 소설의 외부, 그러니까 작가노트에 있는 작가의 말을 발췌하였다. 근래에 발간된 이런저런 문학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이제 읽은 이 작품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문득 소환된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개의 방>을 읽으면서는 지금은 필리핀으로 간 고등학교 동창을 떠올렸다.
윤대녕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
“사랑이란 말은 흔히 과도한 자기 집착의 맹목적 상태를 상대에게 공격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요? 그때 상대는 자아를 보증하는 도구에 불과한 거고요. 그러다 감정이 식으면 곧 냉정한 주체로 돌아서곤 하죠. 감정은 공기처럼 형체가 없고 자주 변하게 마련이니까요.” (p.64)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라는 제목을 읽자마자 ‘수풀떠들썩팔랑나비’를 떠올렸다. 팔랑나비과 떠들썩팔랑나비속에는 ‘수풀떠들썩팔랑나비’말고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도 있다. 나는 윤대녕의 소설을 읽을 때 윤대녕을 떠올리곤 한다.
손홍규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울음이 잦아들었는지 삼촌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하더구나. 그때 알았던 것 같아요. 둔한 사람이란 정말 둔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일부러 무시하고 지나치는 사람을 뜻할 수도 있다는 걸요. 형수님, 형님은 아마 먹고사는 일, 자기 가족을 지키고 건사하는 일이 아니라면 다 무시할 거예요.” (p.109) 그러니까 이 소설을 읽던 날 낮에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다.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한참 고민을 하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낮의 일은 어디에든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일이었잖아, 하며 마음이 가벼워져버렸다. 많은 것이 저절로 해결되는 느낌을 주는 좋은 소설이었다.
안보윤 「완전한 사과」
“주말은 대개 쓸모없는 일을 하며 보낸다. 평일엔 생존한다. 최선을 다해 생존하고 최선을 다해 쓸모없어지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주말의 나는 고양이 사진을 찾아보거나 한 가지 색깔로만 칠한 만다라를 창문 가득 붙였다 뗀다.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히 식은 옛날 사건 기사에 새로 달린 댓글 수를 세어보기도 한다. 가능한 한 무해하고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말 내내 노력한다. 나를 방해하는 건 가족뿐이다. 가족과 함께 살던 시절 나는 매일매일 쓸모 있는 인간으로 살아야 했다. 한시도 가만할 수 없었다.” (p.139) 삼십대 초반 나는 매일 아침 배달된 신문을 들고 탄천을 따라 걸어서 한강으로 나아가곤 했다. 거기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내들 틈에서 신문을 읽고 아직 모양을 다 갖추지 않은 한강 공원의 공터들을 넓게넓게 걸었다. 다행스럽게 나를 방해하는 가족 같은 것은 없었다. 어제 조카가 한 종편 방송사에서 준비중인 오디션 프로그램 참여를 위한 인터뷰를 하고 왔다. 하아...
진연주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 이상한 일이지. 이상한 일이다. 더 늙은 개가 엄마를 찾다가 병들어버린 것도 이상했다. 엄마는 나의 개를 사랑한 적이 없는데. 나의 더 늙은 개는 엄마가 사라진 후 엄마를 찾는 일에 맹목적으로 몰두했다. 집안 곳곳을 기웃거리고, 최선을 다해 고개를 뺀 채 소파나 식탁의자 위를 살피고, 엄마 방에 잠자리를 펴고, 엄마 옷 위에 울었다. 뀨우 뀨우 울었다. 저리 비키시지. 다 태울 거니까 저기 비키셔. 말해도. 어르고 달래도 내려오지 않고 한사코 엄마 옷 위에 앉아 뀨우 뀨우 울었다. 그렇게 한 달을 살다가 나의 더 늙은 개는 밥을 끊었어. 밥을 끊었다.” (p.194) 나의 첫 번째 고양이 용이가 죽기 한 달 전에 나의 두 번째 고양이 들녘이가 곡기를 끊은 적이 있다. 십칠 개월째 병을 앓고 있는 용이는 밥을 먹는데 갑자기 들녘이가 밥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억지로 억지로 어르고 달래 조금씩 먹일 수 있을 뿐이었다. 용이를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들녘이의 상황을 걱정하며 물었더니 그럴 수 있다고, 한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 다른 고양이가 먹기 않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런 시간이 보름쯤 지나 들녘은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평상시처럼 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보름쯤 지나 용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
정용준 「미스터 심플」
“퇴고의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완성한 이 글이 엉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둘째는 이걸 다시 쓰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실제로 다시 쓰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고치고 다른 단어로 바꾸는 것이죠.” (p.239)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미스터 심플’이 아니다. ‘미스터 심플’은 이 말을 들었지만, 나는 그가 이 말을 이해를 한 것 같진 않다고 여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황현진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
“두 사람은 말없이 잔을 부딪치며 술잔을 비웠다. 식은 음식을 여러 번 데워가며 남김없이 먹었다. 팔 인분의 음식을 전부 먹고 나서야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술에 취한 두 사람이 서로를 침대에서 밀어내며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첫서리가 내렸다... 마침내 동이 틀 무렵 유정과 재호는 추위에 못 이겨 서로를 끌어안았다... 처음으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그 밤을 유정은 오래도록 이렇게 기억했다... 바로 그날이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두려움을 두 사람이 함께 쓰기 시작한 날이었다고······” (p.277) 아내의 잠버릇은 시계 바늘처럼 뱅글뱅글 도는 것이었다. 아내보다 늦게 잠자리에 드는 나는 시계 바늘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책을 읽고는 했다. 추위를 타는 아내가 이불을 몸에 감고 돌아가고 있어서 나는 그 이불 끝자락에 발을 넣고 추워하며 뱅글뱅글 돌았다. 오늘 아침 창문이 살짝 열려 있어 추웠다. 갱년기의 아내는 이제 더위를 탄다. 이불은 내 차지이고, 아내는 더이상 뱅글뱅글 돌아가지 않는다.
문진영, 윤대녕, 손홍규, 안보윤, 진연주, 정용준, 황현진 / 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299쪽 / 2021 (2021)
우리의 소설가들을 위한 문학상이 여럿 있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 중에 김승옥문학상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이 문학상에 순천시의 지원이 있다는 건 이 책 끝부분에 나와 있는 취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치 단체와 작가의 바람직한 연결 모습을 확인하는 마음이 퍽 흐뭇하다. 이런 좋은 현상은 널리널리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수상작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내가 이 책을 구한 것은 순전히 윤대녕의 작품을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은 한 편의 글 때문에 한 페이지의 시 때문에 구하기도 한다. 딱 하나에만 마음이 쏠려 있어도 갖고 싶은 건 갖고 싶은 것이니까. 그러다가 의외의 만남으로 좋은 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 더 좋고. 손홍규의 글은 기대한 만큼 좋았고, 문진영의 글은 기대 없이 보았는데 좋았다.
같은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들이 모여서 다른 작가의 글을 읽고 수상작을 정하는 일이란 게 어떤 일인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전혀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꾸준히 곳곳에서 해 주고 있다는 데에 고마움을 느낀다. 독자로서는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작가를 쉽게 만날 수 있어서 큰 도움을 받는 셈이니까.
김승옥 작가를 생각해 본다. 읽어서 알고 있는 작품들도 떠올려본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다루는 작품들만 해도 꽤나 되었다. 하지만 쉽게 읽어낼 수 있는 글들이 아니었다. 봐야 할 글이라서 보았고 보는 마음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한 편 한 편 읽고 나면 현실 너머를 다녀온 듯한 뿌듯함마저 얻곤 했으니, 시공간을 다르게 살아도 사는 게 어찌 이리 비슷한가 절망도 안도도 같은 무게로 남았다.
수상 후보작 일곱 편과 김승옥 작가의 작품에 어떤 공통점이 흐르는가 찾아보려고 했지만 내 힘으로는 무리였다. 이들 사이에 같은 무늬로 반짝이는 글빛을 받아볼 수 있다면, 그 빛 아래에서 읽는 독서가 한결 행복할 텐데. 작년 작품집을 한번 더 봐야겠다.
책은 심사를 맡았던 일곱 명의 작가가 작품 하나씩 맡아 리뷰를 실어 놓은 구성을 취했다. 이 리뷰들이 소설을 읽는 데에 도움보다 방해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유가 딱하다. 소설가들의 작품보다 더 큰 목소리로 들린다고 해야 할까, 원하지 않는데도 굳이 설명해 주겠다는 듯이. 작가 노트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