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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의 수줍음

: 유계영 에세이

[ 양장 ] 매일과 영원-03이동
리뷰 총점9.7 리뷰 3건 | 판매지수 2,880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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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시인들의 에세이
더뮤지컬 미니 에디션 1월호
문학론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 : 생활론 노트 증정
작은 출판사 응원 프로젝트 <중쇄를 찍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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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20g | 134*195*16mm
ISBN13 9788937419454
ISBN10 8937419459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동물과 인간, 인간과 세계의 틈을 벌리는 시인의 시선
그 사이로 비로소 보이는 깊은 마음들, 시가 될 장면들
유계영 시인의 첫 번째 에세이집


유계영 시인의 첫 번째 에세이집 『꼭대기의 수줍음』이 민음사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출간되었다. 2010년 데뷔한 유계영 시인은 이후 『온갖 것들의 낮』,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등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슬픔 이후까지 시선을 뻗는 섬세한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유계영 시인은 왜 자신은 큰일에는 무감한데 작고 사소한 일에는 항상 가슴이 요동치는 것인지 반복해서 되묻는 사람이다.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책 『꼭대기의 수줍음』에는 시인의 마음을 흔드는 마주침들이 가득하다. 이 만남들은 깊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쉽다는 점에서는 작고 사소하지만, 한 사람 혹은 한 생명체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한 편의 시가 될지도 모를 장면들이라는 점에서는 결정적이고 특별하다. 책 제목 ‘꼭대기의 수줍음’은 높이 자란 나무들이 맨 아래의 식물들까지 빛을 볼 수 있도록 가지와 가지 사이에 틈을 벌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나무들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유계영 시인의 시선을 닮았다. 큰 나무 사이로 스민 빛 덕분에 작은 풀들이 자라날 수 있듯, 시인의 시선은 삶의 작은 기척들이 한 편의 글로 쓰일 때까지 오래 살핀다. 『꼭대기의 수줍음』은 그렇게 완성된 글들의 첫 번째 화원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서문 9

1부 밤마다 밤이 이어진다
검은 차창을 바라보는 중국인 꼬마 15
너 자신을 잡아당겨 보라, 끊어지기 직전의 고무줄처럼 21
밀어 올려도 굴러 떨어지는 거대한 돌 30
만일 바다도 산도 대도시도 싫어한다면 36
지난여름의 일기 40

2부 나는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지 않지
안개 속에서 선명해지는 것 65
여행식물 72
얼마간은 이웃 79
백 년 후의 서점 86
노동 없이 노동하며 사랑 없이 사랑하는 93

3부 물결치는 너의 얼굴 보고 싶다
흰 종이, 거의 검은 종이에 가까운 흰 종이 105
뿔과 뿌리 111
특별한 등 116
점과 백 122
보고 싶어, 너의 파안 128
듣고 싶어, 속살거림 속살거림 132
닿고 싶어, 물처럼 넘쳐서 물처럼 흘러서 137

4부 나무의 잠이 궁금하다
이불을 털다가 주저앉아 꼼짝없이 143
봄에 꾼 꿈이 이듬해 다시 떠오르는 것 148
물그림이 마르는 동안 158
새벽 5시의 단편들 165
누구의 손입니까? 168

5부 천진난만하게 투명을 떠다니는 빛
사랑스러운 빛 177
새가 말을 건다면 대답할 수 있겠니? 185
백 년을 기다렸고 오늘 나는 죽는다 193
아침 인사 199

부록: 완벽하게 너그러운 나의 친구 203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오늘 오전, 비둘기 세 마리가 맞은편 지붕 위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충격에 휩싸인 채 10분 정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살아 있는 무엇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기와를 장식하기 위한 조형물인 줄 알았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올 땐 이 많은 새들이 다 어디로 가지?
콧속이 얼어붙는 겨울밤에는 그 많은 고양이가 다 어디에 숨지?
늘 그런 게 궁금했다. 늘 그런 것만 궁금했다.
--- p.9, 「서문」 중에서

노인의 피부를 나무껍질 따위로 처음 비유한 사람은 틀림없이 제 할머니의 팔을 만져 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무심한 표현이 노인에 대한 관습적 인식을 낳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오늘의 충격은 그 자의 탓 때문이라기보다는 할머니의 팔을 만지자마자 즉시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 나는 할머니를 사랑한다. 살의 촉감이 촉촉하고 흐물거린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아, 촉촉해! 아, 부드러워! 하고 마음속에서 곧바로 언어화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검진 결과가 좋아야만 한다. 작은 발을 쭉 뻗어 내게 내밀고는,
손녀 집에 놀러가려고 양말 신었지.
수줍게 웃는 나의 할머니.
--- p.42~43, 「지난여름의 일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남아 있는 시간의 표면 위를 둥둥 떠가는 거야. 해초처럼 부드럽게. 내가 너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고 네가 나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서. 일하지 않고 일하며.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며.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삶의 형식을 우리가 발명할 수 있을까?
--- p.102, 「노동 없이 노동하며 사랑 없이 사랑하는」 중에서

한동안은 실종 사건 플롯에 사로잡혀 지냈다. 늘 여기 있던 사람이 여기 없게 되는 과정만큼 신비로운 드라마가 없었으니까.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생사를 확인할 수 없게 된 자의 삶이 울타리 너머에서 천연덕스럽게 이어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묘한 공포심에 마음이 떨렸다. 실종을 다룬 영화와 소설을 열심히 찾아 읽었다. 전봇대에 붙여 둔 전단지들도 빠짐없이 읽었다. 갈색 푸들, 하얀 말티즈, 치매 노인,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의 보청기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보았다.
--- p.108~109, 「흰 종이, 거의 검은 종이에 가까운 흰 종이」 중에서

반드시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말할 수 있는 데까지 말해 보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거창하고 쑥스러운지 모르겠다. 평상시 떠들고 다니는 나의 말들이 대개 이렇게 무모하다 느낀다. 뻔뻔해지거나 용감해지는 것 말고는 이 문제를 돌파할 지혜가 없다. 그럼에도 앞선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적어 보려 했던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뻔뻔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한 내가 무모함을 무릅쓸 만큼 잊히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빛이었다.
--- p.184, 「사랑스러운 빛」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유계영 시인의 첫 번째 에세이집

“우리는 나무들에게 배운 대로 주춤주춤 서로에게서 물러난다. 꼭대기의 수줍음처럼. 만지는 것 말고 다가가기. 마음에 마음 닿아 보기. 이것이 내가 두 팔을 활짝 벌려 포옹하는 방식.”

● 영원을 담은 매일의 쓰기, 문학론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

하루하루 지나가는 일상과, 시간을 넘어 오래 기록될 문학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매일 묵묵히 쓰는 어떤 것, 그것은 시이고 소설이고 일기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무심히 지나가지만 그 속에서 집요하게 문학을 발견해 내는 작가들에 의해 우리 시대의 문학은 쓰이고 있으며, 그것들은 시간을 이기고 영원에 가깝게 살 것입니다. ‘매일과 영원’에 담기는 글들은 하루를 붙잡아 두는 일기이자 작가가 쓰는 그들 자신의 문학론입니다. 내밀하고 친밀한 방식으로 쓰인 이 에세이가, 일기장을 닮은 책이, 독자의 일상에 스미기를 바랍니다.

유계영 시인의 첫 번째 에세이집 『꼭대기의 수줍음』이 민음사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출간되었다. 2010년 데뷔한 유계영 시인은 이후 『온갖 것들의 낮』,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등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슬픔 이후까지 시선을 뻗는 섬세한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유계영 시인은 왜 자신은 큰일에는 무감한데 작고 사소한 일에는 항상 가슴이 요동치는 것인지 반복해서 되묻는 사람이다.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책 『꼭대기의 수줍음』에는 시인의 마음을 흔드는 마주침들이 가득하다. 이 만남들은 깊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쉽다는 점에서는 작고 사소하지만, 한 사람 혹은 한 생명체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한 편의 시가 될지도 모를 장면들이라는 점에서는 결정적이고 특별하다. 책 제목 ‘꼭대기의 수줍음’은 높이 자란 나무들이 맨 아래의 식물들까지 빛을 볼 수 있도록 가지와 가지 사이에 틈을 벌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나무들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유계영 시인의 시선을 닮았다. 큰 나무 사이로 스민 빛 덕분에 작은 풀들이 자라날 수 있듯, 시인의 시선은 삶의 작은 기척들이 한 편의 글로 쓰일 때까지 오래 살핀다. 『꼭대기의 수줍음』은 그렇게 완성된 글들의 첫 번째 화원이다.


■ 너무 가까워지면 납작해질 수 있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과 더욱 긴밀히 연결되고 싶은가?
아니오.
-53쪽

『꼭대기의 수줍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유계영 시인은 항상 그들로부터 얼마간 떨어져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자신이 “납작해진다”고 느껴서다. 시인은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작별의 말들이 부담스러워 북적이는 술자리에서 말없이 빠져나와 집으로 간다. 시를 가르치는 학생들의 마음이 궁금할 때는 불쑥 질문을 건네는 대신 학생들의 물건들을 바라보며 왜 이 물건이 예쁘다고 생각했을지 그 고민을 짐작해 보는 쪽을 택한다. 카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가 테이블 밑의 강아지에게 손부터 뻗을 때에는 왜 만지고 싶으냐고 질문을 건넨다. 직접 만지지 않는 방식으로 당신에게 완전히 다가갈 수 있을까. 역설적인 말인 것도 같지만 대상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관계가 있다. 멀어진 거리만큼 촘촘해진 헤아림이 나와 당신 사이를 보다 견고히 잇는다.


■무능, 쩔쩔맴, 쑥스러움의 가능성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을 때에나 나는 잠깐 희망적이다. 인간의 무능만이 좋다. 인간의 불가능성만이 세계의 가능성.
-41쪽

‘거리두기’의 미학을 잘 아는 시인이지만 그럼에도 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다. 시인은 “좋아하는 것이라곤 이제 거의 사람밖에 남지 않은” 듯 사람을 좋아한다. 대체 삶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하는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인은 내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다며 단언하는 사람보다는 도무지 모르겠다며 오답만 내놓는 사람 쪽을 사랑한다. 자신의 무능을 마주하고 좌절하는 사람, 예상 밖의 일에 쩔쩔매는 사람,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탓에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뺀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오래 바라보고 그와 대화 나누는 법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시인 역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에 정답 따위 있을 리가 없으므로 이들이 나누는 오답만이 삶의 무한한 방식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이다.


■시는 나의 완벽하게 너그러운 친구

시는 사람이 무한히 담기는, 주둥이가 한없이 넓은 사발. 언어를 질료로 삼음에도 언어라면 기필코 다 쏟아 버리고 사람만 남기는 희한한 골동 사발. 가끔은 사람 자체인 것처럼도 보이는.
-90쪽

시인이 ‘완벽하다’라는, 단언적인 표현을 쓰는 유일한 대상이 있다면 바로 ‘시’에 대해서다. 시는 시를 열렬히 사랑하는 이를 소외시키는 법이 없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너그럽다. 사랑했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한다. 시인이 내심 좋아하고 귀여워하던 이마의 혹이 불편했던 친구가 어느 날 혹 제거 수술을 받은 일이나 오늘 시인의 방 창가에 찾아와 한참 동안 노래를 부르던 새가 내일은 찾아오지 않는 일처럼 한때 사랑을 쏟았던 일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때마다 섭섭해지는 마음을 아닌 척 감추는 일도 점점 익숙해진다. 하지만 시는 처음부터 “임시적”이다. 오늘 시였던 것이 내일은 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오늘은 시가 아니었던 것이 내일은 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시는 “주둥이가 한없이 넓은 사발”을 벌리며 무한한 사람을 품는다. 유계영 시인은 매일 새로운 눈과 귀를 열고 오늘의 시가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시인의 일상과 시인이 쓰는 시가 계속되는 방식이다.

회원리뷰 (3건) 리뷰 총점9.7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둔 틈 같은... 유계영, 꼭대기의 수줍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i | 2021.11.07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자정.   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다. 집 안의 불을 다 꺼도 빛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 빛은 어디에서 새어나오는 걸까. 눈을 감아도 그렇다. 눈꺼풀을 꽉 닫아도 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 막무가내의 빛은, 누구의 것이지? 어둠 속에서도 눈이 부셔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있는데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잠자리의 잠에;
리뷰제목

  “자정.
  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다. 집 안의 불을 다 꺼도 빛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 빛은 어디에서 새어나오는 걸까. 눈을 감아도 그렇다. 눈꺼풀을 꽉 닫아도 빛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 막무가내의 빛은, 누구의 것이지? 어둠 속에서도 눈이 부셔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있는데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잠자리의 잠에 대해 들었지. 수만 개의 눈동자가 번갈아서 짧은 잠을 나누어 잔다고 했다. 빛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열려 있는 눈꺼풀이 있는 것처럼. 창문이 너무 많아 일일이 닫을 수 없는 집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p.15)


  시인의 산문집 《꼭대기의 수줍음》의 첫 번째 문장이다. 우리집에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있었다. 중력을 무시한 채 매달려 있던 거대한 시계는 때맞춰 어김없이 타종 소리를 냈다. 어떤 날, 밤부터 아침까지 하나씩 늘어나는 타종 소리를 모두 들었다. 바로 그날 직각으로 아래를 향해 만들어진, 십이층이던 우리집 복도의 쓰레기 배출구에 괘종시계를 거꾸로 처박았다. 나는 크게 부서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스무 살이었다. 


  “우리는 나무들에게서 배운 대로 주춤주춤 서로에게서 물러난다. 꼭대기의 수줍음(Crown Shyness. 나무의 꼭대기 가지들이 서로 닿지 않게 간격을 유지하며 자라는 것. 이 틈을 통해 나뭇잎이 가려지는 작은 풀들도 햇빛을 볼 수 있다. 수관기피현상이라 부른다)처럼.” (p.29)


  산문집의 제목인 ‘꼭대기의 수줍음’은 ‘수관기피현상’을 의미한다. 숲에 완전한 어둠에 갇히지 않는 것, 숲에 드러누우면 나무 꼭대기의 이파리들 사이로 빛의 수로가 만들어지는 것, 커다란 나무 아래의 작은 씨앗이 어떻게든 햇빛을 받아 자라나는 것,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만드는 척력과도 같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둔 틈 같은 것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을 쓰려던 건 아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제주 해안 도로의 안개를 쓰고 싶었다. 그날의 안개는 나를 가두었다. 아무리 전진해도 벗어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나는, 죄수복을 입고 좁은 운동장의 테두리를 맴도는 수인이었다. 팔을 뻗으면 내 손등조차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차렷 반경 정도였다.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를 맴돌았다.” (p.70)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밤에 달린 적이 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사용할 일이 없는 상향등을 달리는 내내 켜야 했다. 안개가 짙었고 익숙하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갑작스러웠다. 갑작스레 야생 동물이 출현하여도 이상하지 않을 어둠이 가득했다. 저 멀리 시선을 두었다가 그 시선을 아주 가깝게 가져왔다가 하며 조마조마 하였다. 옆자리의 아내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어젯밤은 한 문장이다. / 더러는 하루가. 이따금 일주일. / 종종 한 달도. 한 계절마저. / 냉담하게도 한 사람이.” (p.105)


  ‘한 문장’에 집착해본 사람은, ‘한 문장’에 집착해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던가,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가져온 작문 숙제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명한다, 당장 놀러 나가야 하는 아들은 얼른 절반으로 줄여오는데,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그것을 절반으로 줄여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번 더 줄여 왔던가, 그리고 아들은 밖으로 나가 원하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가. 기억에서 사라졌다.


  “나는 사람이 언어의 빙판 위를 조심조심 걸어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언어의 빙판을 조금씩 두텁게 얼리는 일이라는 과거의 생각을 향해 돌을 던진다. 언어는 삶을 반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나는 언제부턴가 빙점에 도달하는 속도를 올리기 위해 오직 언어만을 시의 질료라 생각했던 것이 아닌지. 시를 습관적으로 쓰게 되는 것, 허영으로 쓰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으면서도 인간의 삶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다는 것. 그것은 깊게 잠든 이에게 늘어놓는 공허한 귓속말에 지나지 않는다.” (p.171)


  시인인 저자의 글에서 시인의 흔적을 발견하곤 하였는데, 오히려 시인은 우리가 진부하게 고정시키려 하였던, 시인들 또한 스스로에게 굴레를 씌우곤 하였던 어떤 클리셰에서 벗어나려 애썼노라, 고백하고 있다. 타종 소리를 직각으로 부순 다음 거두어들여야 했던 빛과 어둠이 자신만만하게 야생이었던 나의 시간은 이제, 한 문장으로 축소되어도 좋을 거듭되는 노화 안에서 자꾸 잊혀져가고만 있는데...

 

유계영 / 꼭대기의 수줍음 / 민음사 / 234쪽 / 20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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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꼭대기의 수줍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피* | 2021.10.2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기본적으로 책을 읽을 때 출판사를 유심이 보는 편이다. 우연히 읽었는데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다른 책들도 한권, 두권 읽어보다가 어느새 내 책장의 한켠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반대로 정말 마음에 안드는 책이라면(특히 역사왜곡이 들어간) 그 출판사의 다른 책들에 눈길한번 주지않는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의;
리뷰제목

기본적으로 책을 읽을 때 출판사를 유심이 보는 편이다. 우연히 읽었는데 마음에 드는 책이라면, 그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다른 책들도 한권, 두권 읽어보다가 어느새 내 책장의 한켠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반대로 정말 마음에 안드는 책이라면(특히 역사왜곡이 들어간) 그 출판사의 다른 책들에 눈길한번 주지않는다. 베스트셀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의미에서 민음사는 전자에 속한다. 민음사 책을 몇권 읽어보진 않았으나, 이런 책을 출판했다면 믿고볼수 있는 출판사라 생각했다. 다만, 민음사는 내가 즐겨있는 장르와는 조금 다른 문학쪽 출판사다보니, 민음사 책을 읽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을뿐^_T 그래도 민음사에서 나오는 에세이(또는 수필) 류는 내가 즐겨 읽는 장르 중 하나다보니, 이렇게 또 한번 민음사의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이 에세이의 저자는 시인 유계영 이라고 한다. 현대 시인이라고는 나태주 시인님밖에 모르는 나로써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뭐 어떠한가. 나는 시를 읽으려고 이 책을 읽은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녹아든 에세이를 읽으려했던 거니까.

 

 

여러사람들 틈에 있을 수록 나는 납작해진다. 변기의 용도는 유일할 것 같지만 의외로 쓰임이 다양하지.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으로 혼자가 된 사람들이 변기 뚜껑 위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한다던데. 나는 가끔씩 변기에 앉아 우는 사람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시간이다. p 017

 

 

맞다. 우리집 화장실에 있는 변기는 그저 변기일 뿐이지만, 사회에 나가서, 회사 화장실에 있는 변기는 그저 변기가 아니게된다. 저자가 말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시간’이 바로 변기위에서 시작되니 말이다. 사회초년생들이 한번씩은 거쳐갔던 변기위의 그 시간이, 아주 당연하듯 나에게도 있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서럽던지. 회사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기위에 앉아서 울었던 적이 있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어른처럼 보이던 회사 언니들이 서럽게 우는 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었다. 

 

 

저자가 그랬다. 되도록 소리내어 울음으로써, 누군가가 이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을 연민의 눈초리로 봐주었으면 한다고. 나역시도 그랬고, 회사언니들도 그랬듯이 그때는 정말 서럽게 울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하는지, 내 우는 소리를 듣는 누군가가 알아주었으면 했던 그 마음. 물론 지금이야 눈물이 메말라서, 누가 뭐라그러면 기계적으로 웃으며 ‘네네~’ 하고 뒤돌아버리거나, 그건 내가 한게 아니라고 되받아치는게 아주 당연한 일상이 되었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들은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생각하다가, 그래서 나는누굴까 생각하다가,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남이 나를 알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나 싶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한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나인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나는 내가 얼마나 소중하기에 아무것도 참을수가 없을까. 나를 가리려고 직접 골라 쓴 가면을 물끄러미 본다. 자기 자신의드라마를 위해 조금도 화를 참지 않는 낭만주의자가 겸연쩍은 얼굴로 거울을 보고 있다. p 018

 

 

책을 읽다보면, 그런생각을 자주 한다. ‘저자는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무슨 의도일까?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길 원하는걸까?’ 이런 류의 생각말이다. 어렸을땐 안그랬던 것 같은데, 역사책을 자주 읽게되면서(특히 역사왜곡하는 사람들의 책 포함해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점점 관심을 갖게되었달까? 문제는 굳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 없는 가벼운 글들이나, 힐링을 위해 읽는 에세이나 수필집을 읽을때도,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아! 이런 의도인걸까?’하는 나만의 답을 내리고는 하는데, 이 에세이는 도무지 모르겠다. 근데 막 의도는 모르겠는데, 묘하게 글의 흐름이 친숙하다. 뭐랄까. 생각에 꼬리를 물고 물어 흘러가는, 이른바 의식의 흐름..? 내가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하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저자는 그 의식의 흐름을 말이 아닌 글로 옮긴 느낌이랄까. 아, 어쩐지 뭔가 친숙했어. 이런 글.....!!

 

 

처음에는 달리는 말을 보고 싶었던 거다. 거르나 이 땅에서 질주하는 자유를 누리는 말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경주마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지옥에서 쉴새없이 달려야 하는 말 또한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경주에서 꽃마차 끄는 말이 쓰러졌던 사실이 떠올랐다. 학대로 쓰러진 검은 말이 재작년에 죽었다. 죽은 말과 두 마리의 말들이 더 구조되었다. 구조 이후 다른 삶을 살게 된 말들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 또한 말들에게 고통이라면, 꽃마차가 사라진 거리라도 직접 보고 싶었다. 아무리 포개도 자양이 되지 않는 슬픔을 좀 덜기 위해서. p 034

 

 

뭐라고해야하나,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저자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무언가 눈에 딱 틀어왔을때, 그 무언가에 대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질것 같은, 꼭 나와 같은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과거에 해미읍성에 놀러갔다가, 한켠에 주차(?)되어 있던 꽃마차가 있었다. 꽃마차. 꽃으로 장식된, 말이 이끄는 수레다. 한마디로 그 꽃마차 앞에는 끈으로 고정되어있던 살아있는 말 한마리가 있었다. 그 말의 눈을 들여다보았는데, 어찌나 슬퍼보이던지. 심지어 간신히 서 있는 듯한 모습의 말이 그렇게 불쌍해보일 수가 없었다. 더 슬픈건, 그 때 그곳은 비가 오고 있었다.

 

 

꽃마차와 말. 누군가의 눈에는 해미읍성을 방문한 관광객을 위해 비치된 일종의 관광상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말이 비를 맞고 있던 말던, 건강하던 말던 아랑곳하지않고, 오로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역할만을 시켰을 것이다. 간혹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나 처럼 말이 가엾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우리는 그 말을 구할 수 없고 구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 말은 누군가의 사유재산일 것이고, 누군가의 사유재산에  관여한다는 것은 내가 그 사유재산을 다시 웃돈주고 사오거나, 아니면 그저 옆에서 말만하는 오지랖일테니.

 

 

결국 나는 해미읍성 한켠에, 꽃마차와 함께 묶여있던 그말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딱 거기까지었다. 그 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인간의 욕심에 희생되는 가엾은 동물들이라는 생각만, 말만 한 또 다른 이기적인 인간이었을뿐이다. 

 

 

단지 앞에 회오리감자 푸드트럭이 와서 사 먹으러 갔다. 트럭 앞에 서 있던 여자가 강아지 호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이럴 때 좀 화가난다. 사람은 사람만 보려고 한다. 이 세상에 사람만 정당하게 존재하는 줄 안다. 눈 앞에 확보된 세계가 세계의 전부인 줄 안다. 동물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달라! p 050

 

 

에세이를 읽는 내내 저자는 동물에 우호적인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물론 저자의 말처럼 동물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하는 건 당연하다고 본다. 해미읍성 한켠에 묶여서 오도가도 못하는 그 말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런데, 위의 저자의 에피소드를 무작정 편들수만은 없다.

 

 

푸드트럭앞에서 저자의 강아지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란 여자를 비판하는듯 써내린 저 글, 저 글은 오롯이 애견인의 입장만 생각하고 쓴게 아닐까? 누구나가 애견인들처럼 강아지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어렸을때 커다란 진돗개에 물린 경험이 있기에, 내 앞에 어린 강아지가 있다면, 일단 멀찌감찌 떨어진다. 저자의 강아지를 보고 놀란 그 여자는, 나처럼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아닐지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어땠을까.

 

 

당장 내가 사는 단지를 보면, 세상에세상에 개반 사람반이다. 산책을 하러 나가면 정말 여기는 큰개, 저기는 작은 강아지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다. 물론 그 개들을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들이, 개티켓을 잘 지켜준다면 나도 할말은 없다. 그런데 왜때문에, 목줄(또는 몸줄)이 없이 개 혼자 저 앞에 걸어가고 개주인은 뒷짐지고 슬렁슬렁 걸어가는걸까. 자기 개가 화단에 큰일을 치루면, 그걸 처리하지않고 그냥 무시하고 가는걸까. 심지에 엘레베이터 안에서 개를 바닥에 두고, 사람을 보고 짓든 말든 신경쓰지않는 견주들을 보면 나는 이런사람들을 보면서 ‘개가 개를 키운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일반화를 하진 않는다. 개통령처럼 개와 사람이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가는지, 개에 진심인 사람이 있는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개통령의  바이블을 따라, 사람과 공존할 수 있게 개를 키우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물론 개의 입장에서 보면 수많은 통제로 인해 힘들겠으나, 사람과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으니.

 

 

하지만, 저자의 저 글은 묘하게... 저자의 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물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는 일반화를 하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강아지를 무서워해도, 내 뒤에 누군가의 강아지가 있다면 놀라지말고 꾹 참으라고 하는 듯한 뉘앙스. 내가 좀 과하게 생각한걸지도 모르지만, 그냥 좀 그렇게 느껴진다. 내가 개를 안키워서 그런가....^_T..

 

 

 

 

이 에세이는 나에게는 묘하게 친숙하면서, 묘하게 달랐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어떤 생각은 저자와 비슷했지만, 또 어떤 생각은 저자와 대척점에 있기도 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분명 저자는 시인이랬는데, 나와 닮으면서도 닮지않은 이 사람의 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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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꼭대기의 수줍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g****y | 2021.10.1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꼭대기의 수줍음 - 유계영 에세이   요즘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챙겨보는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의 세번째 책이다. 이번엔 유계영 시인의 글이었고 시중에 넘쳐나는 에세이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일기 같으면서도 시적 표현들이 매력적인 책이었다.    한참을 읽다보면 작가 개인의 에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멋진 문장들과 별난 생각들과 표;
리뷰제목

 

꼭대기의 수줍음 - 유계영 에세이

 

요즘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챙겨보는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의 세번째 책이다. 이번엔 유계영 시인의 글이었고 시중에 넘쳐나는 에세이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일기 같으면서도 시적 표현들이 매력적인 책이었다. 


 

한참을 읽다보면 작가 개인의 에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멋진 문장들과 별난 생각들과 표현들에 몰입하게 된다. 책의 제목이 꼭대기의 수줍음은 책의 초반부에서 그 의미를 알게 되는데 crown shyness라는 나무의 꼭대기 가지들이 서로 닿지 않게 간격을 유지하며 자라는 것을 의미했다. 

 

주로 저자의 다양한 일상과 인생에 대한 경험과 생각 느낌들을 개성있는 표현들과 남다른 시각으로 그려내는데 공감되는 대목들에서는 희열을 느끼고 나와 전혀 다른 작가의 성격들과 생각들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자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저자는 싫어한다고 얘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싫어한다기보다 힘들어하는 쪽이며 도대체 어떤 믿음이 우리 바깥의 낯선 세계로 스스로를 내던지게 하는 것인지, 스스로를 이방인의 자리에 주저 없이 가져다 둘 수 있는 용기 그것의 정체에 의문을 가진다고까지 말한다. 

 

또한 저자는 시를 가르치는 학생들의 마음이 궁금할 때는 불쑥 질문을 건네는 대신 학생들의 물건들을 바라보며 왜 이 물건이 예쁘다고 생각했을지 그 고민을 짐작해 보는 쪽을 택한다. 카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가 테이블 밑의 강아지에게 손부터 뻗을 때에는 왜 만지고 싶으냐고 질문을 건넨다. 직접 만지지 않는 방식으로 당신에게 완전히 다가갈 수 있을까. 역설적인 말인 것도 같지만 대상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관계가 있다. 멀어진 거리만큼 촘촘해진 헤아림이 나와 당신 사이를 보다 견고히 잇는다.

 

‘거리두기’의 미학을 잘 아는 시인이지만 그럼에도 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다. 시인은 “좋아하는 것이라곤 이제 거의 사람밖에 남지 않은” 듯 사람을 좋아한다. 대체 삶을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하는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인은 내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다며 단언하는 사람보다는 도무지 모르겠다며 오답만 내놓는 사람 쪽을 사랑한다. 

 

사랑스러운 빛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는 반드시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말할 수 있는 데까지 말해 보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거창하고 쑥스러운지 모르겠으며 평상시 떠들고 다니는 나의 말들이 대개 이렇게 무모하다 느낀다고 고백한다.

 

뻔뻔해지거나 용감해지는 것 말고는 이 문제를 돌파할 지혜가 없다. 그럼에도 앞선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적어 보려 했던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뻔뻔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한 내가 무모함을 무릅쓸 만큼 잊히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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