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의 사진 작업을 ‘딴일’로 분류하기는 망설여진다. 많은 필름메이커들이 사진을 지척에 두고 부전공 내지 진지한 취미로 삼는다. 아예 사진에서 출발한 래리 클라크 같은 감독도 있고 본인의 영화를 농축한 폴라로이드를 남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도 있다. 명실상부 사진가를 겸하며 일찍이 〈도시의 앨리스〉처럼 사진이 서사와 주제의 모티브인 작품을 연출한 빔 벤더스가 있는가 하면, 영화에 비하면 조금 평범한 흑백사진을 남긴 스탠리 큐브릭도 있다. 해리스 사비데스, 로저 디킨스 같은 촬영 감독들 역시 여가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영화인의 사진은,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보는 눈의 훈련인 동시에 셔터를 누른 순간 그가 지녔던 비전vision의 단면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가 우리를 보듯, 사진은 찍은 사람의 정체도 찍는다.
--- p.145, 「세계, 표정들 -박찬욱의 사진」(글 김혜리)에서
박찬욱의 이름을 딴 CGV 예술전용관에서 상시 진행 중인 작은 사진전의 제목은 〈범신론〉이다. 만물은 신의 일부이며 모든 사물과 현상은 신의 한 존재 방식이라는 세계관을 장기 전시를 포괄하는 테마로 정한 까닭은, 박찬욱이 사진 작업을 하면서 일상적 사물과 자연에서 성정性情을 포착하는 경험을 중요한 행복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알듯이 같은 자리에 오랜 시간 놓여 있던 사물이라고 해서 늘 고정된 감정과 심상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다. 성정의 현현顯現은 작가가 투사하는 주관, 대상으로부터의 물리적 거리, 빛과 프레임 안의 모든 것이 맺는 관계를 순간적으로 종합한 결과다. 사진은 영화에서 인간을 투사하는 오브제나 그의 환경으로 쓰였던 존재들에게 표정을 돌려준다. 버려진 마네킹의 얼굴에도, 활엽수의 잎맥에도 표정은 있다. 귀여움, 쓸쓸함, 우스움, 그로테스크 등이 박찬욱이 자주 언급하는 사물의 표정이다. 표정과 제스처는 무생물에서 이목구비에 해당하는 형상을 무의식적으로 찾아내는 우리의 본능 또는 게슈탈트 전환을 통해 발생한다.
--- p.147, 「세계, 표정들 ?박찬욱의 사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