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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28g | 133*200*20mm
ISBN13 9791191247138
ISBN10 1191247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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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실험하고, 실수하고, 잔인할 정도로 정직한 피드백을 향해 자신을 열어야 할 때예요. 그게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시 실패하세요, 더 잘 실패하세요.” --- p.17

나는 그때 이미 알 수 있었는데, 그 미소는 좀 더 미묘한 무언가를 전해주었다. 그건 그와 미소의 수신자, 그렇게 오직 두 사람만이 이 세상을 희비극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 p.27

그 초고에 그가 어떤 문장들을 썼었는지, 지금은 바다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내 기억 속에는 없다. 다만 기억나는 건, 내가 십 대 초반에 문학을 발견하며 느꼈던,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전문 교육을 받으며 서서히 허물어져버린 열정을 다시 느끼면서 내가 그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 p.38

빌리가 그려낸 이름 없는 중서부의 도시, 그 생기 없고 황량한 풍경과 다 허물어져가는 집들, 앞면이 널빤지로 막힌 가게들이 있는 그곳이야말로 그 모든 겉모습이 반대를 가리킴에도, 진짜 삶이 맥박치고 진동하는 곳이었다. 그곳이 진정으로 미국의 심장부, 하틀랜드였다. 뉴욕은 현란하지만 그냥 쓰고 버려도 되는 말단 도시였다. --- p.42

하지만 아마도 나는 진정한 외로움이란 그런 것이고, 거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정의해 보이고 그런 다음에도 그들이 받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또한 거절당하는 것보다 유일하게 외로운 운명은 거절당할 가능성에 자신을 절대 노출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 p.104

“우리 두 사람만의 작은 클럽 탄생.” --- p.122

그가 자기 책상에서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마치 설거지를 하면서 불 켜진 레인지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있을 때처럼, 내 도움 없이도 또 다른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 역시 결국에는 나로 인한 것일 때 느끼곤 했던 종류의 만족감을 느꼈다. --- p.123

그가 나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인정하면서도 나는 질투나 열등감 같은 통상적인 감정에 빠져드는 대신 그가 프로그램의 모든 학생 가운데 도와주기로 선택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우쭐함을 느꼈고, 그건 이상한 경험이었다. --- p.144

“누구도 내 무언가에 대해 이렇게 많은 관심을 쏟아준 적은 없었어.” --- p.144

“근데 영원히, 라는 건 잘 모르겠어.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잖아. 나이가 들어서도. 구제할 길이 없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안 그래?” --- p.157

빌리는 평생 동안 거리를 두고 사람들을 대해온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진정한 친구라는 느낌이었다. --- p.157

나는 언제나 내 과거가 아닌 과거에, 다른 사람들의 성장기에 배경음악으로 깔렸을 음반들에, 마치 그 경험들이 나 자신의 경험보다 더 진실하다는 듯 가장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그리움을 느꼈다. --- p.186

성숙하지 못한 성인이 도시에서 도시로 움직일 때 느끼도록 특화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그 멜로드라마 같고 낭만적인 정서가, 바깥세상으로부터 차단된 채 지리상의 지점들 사이를 떠도는 유예된 육체의 감각이 내게 돌아왔다. 다만 이번에는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 p.187

타인의 경계가 그려내는 특별한 윤곽선은 우리 자신의 그것과 충돌하고, 남은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을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 --- p.286

사람의 마음이라는 저수지가 끝없이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빌리는 내가 그 안으로 들어오게 허락하는 일에 가까이 갔던 마지막 사람이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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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평범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불멸의 작가를 꿈꾸며 예술대학에 진학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막상 그들에게는 그 종이 한 장이 얼마나 두껍고 또 무거운 것인지. 사회에 처음 발을 내디딘 젊은 예술가가 고군분투하며, 사실은 터무니없는 자만과 구제불능의 자학, 맹목적인 숭배와 무분별한 시기 사이를 오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한두 편이 아니었다. 이 리스트의 대부분은 젊은 예술가의 상실과 좌절의 회상록에 가까울 텐데, 20세기 후반 미국 뉴욕의 대학가를 배경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두 문학 지망생을 다룬 테디 웨인의 『아파트먼트』는 조금 다르다.

그건 끝까지 읽어봐야 알 수 있는데, 책을 펼치면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된다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테디 웨인은 종이 한 장이 왜 그토록 두껍고 또 무거운 것인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이 왜 그런 시각을 가지게 됐는지를 일련의 스토리로 보여준다. 뭔가 일이 벌어질 듯한 플롯, 생생한 캐릭터, 눈에 보이는 묘사, 팽팽하게 이어지는 대화 등 소설 문장의 모범 답안이랄 수 있는 문장들로 이해하게 되는 평범한 소설가 지망생의 고통이라니… 그러나 이 고통도 곧 잃고 만다는 것이 이 소설이 도착하는 마지막 지점이다. 그렇게 청춘은 끝난다. 어떻게 하든 청춘은 상실의 과정이고, 그 상실을 통해 우리는 한때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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