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10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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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428g | 133*200*20mm |
ISBN13 | 9791191247138 |
ISBN10 | 1191247139 |
발행일 | 2021년 10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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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428g | 133*200*20mm |
ISBN13 | 9791191247138 |
ISBN10 | 1191247139 |
1996 1997 그 후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가끔 생각해보곤 했다. 가난한 재능러와 부자인데 재능없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나은 인생을 살까? 이 책을 봐도 명확한 답이 나오진 않는다. 근데 주인공의 열등감이 너무 안쓰러울 정도였음.. 그때부터 결말은 예정돼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계속 주인공의 시점에서 보다보니 연민이 느껴짐. 상대방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근데 반대 시점에서 보면 아마 주인공이 나쁜놈이지 않을까?) 우리는 다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친애하는 벗 고갱에게,
내가 얼마 전 아를에 방 네 개짜리 집을 빌렸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소. 남부에서 작업할 마음이 있고, 수도승처럼 살아갈 화가를 찾게 된다면... 아주 기쁠 겁니다. 내 동생이 한 달에 250프랑씩 보내 주는 돈을 우리는 나눠쓰게 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내 동생에게 한 달에 한 점씩 그림을 보내면 되오. (스티븐 네이페,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에서 재인용)
이 소설 <아파트먼트>를 읽으면서 고흐의 이 편지가 떠오른 것은 나뿐일까.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이어가던 두 사람이 같이 생활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고흐 역시도 무척이나 설레었던 것 같다. 그는 아를에서의 예술공동체를 꿈꿨더랬다. 어쩌면 영영 팔리지 않을 그림을 그리면서도 계속 그려야만 하는 명분은 필요했을 테고, 그런 그에게 동료는 분명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 ... 이 소설 <아파트먼트>의 주인공 '나'도 어쩌면 고흐와 같은 생각으로 '빌리'에게 같이 살자는 제안을 던졌을 테다. 읽고 쓰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그들은 웬만큼 성공하지 않고서는 글 쓰는 것으로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설 쓰기에 매달린다. 서로의 가장 첫 번째 독자이자 멘토이며 든든한 조력자이기를 자처한 두 사람은 정말이지 빠르게 친밀감을 형성해나간다.
두 명의 작가가 데이트를 하는 건 재앙을 초래하는 일일 거라고 언제나 생각해왔고(작가들은 연기를 하듯 자신을 과시하거나, 말이 없거나, 아니면 그 두 극단 사이를 미친 듯 왔다 갔다 했고, 우리가 할 얘기라고는 그날 뭘 썼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해서 얼마나 우울한지가 전부일 것이며, 그 모든 것이 고립된 섬 생활 같은 데다 근친상간적일 것이었다), 지리상으로 볼 때 장애물이 한둘이 아닐 것으로 예상되긴 했지만, 나는 클레어와 문학적인 삶을 함께하는 환상을 품기 시작했다. 그 환상이란 우디 앨런 영화들에서 도용해온 클리셰였는데, 우리가 서로의 작품을 고쳐주고, 낭독회와 작가 사인회에 함께 다니며, 그런 다음에는 내가 원 나이트 스탠드와 2주쯤 이어지는 가벼운 관계들의 역사에서 누구와도 해본 적 없는 그 모든 평범한 일들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102쪽)
그래, 이 소설은 예술가-버디 소설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봐오던 그것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그 '다름'은 '나'의 솔직한 욕망에 있었다. 아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의 지원하에 글을 쓸 수 있었고, 어쩌면 곧 뉴욕의 아파트먼트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나'는 시골 출신에다 바텐더로 일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빌리'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할 줄 알며, 진지하면서도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통찰을 해낼만한 지식을 갖춘 '나'는 정제되지 않은 빌리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가 진심으로 성공하기를 기도할 줄도 안다. 그런 '내'가 빌리에게 방을 하나 주기로 결정한 건 어쩌면 그의 도덕적/경제적 우월감에서 나온 결정일지도 모른다. 넌 언젠가 크게 성공하고 말 거니까, 난 그런 너를 알아봤으니까-하는.
그것은 분명 진심이었을 테다. 하지만 빌리가 쓴 소설이 인정받았을 때, '나'는 아무리 해봐도 잘 안되는 관계들에서 빌리가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둘 때, 그리하여 그 옆에 서 있는 '내'가 빌리보다 더 작아진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무너져내렸다.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며,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느꼈던 최초의 매력이 변질되고 차이점은 두드러질 것이라는 생각은 '나'도 했지만, 그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의 인정투쟁기임과 동시에 패배의 기록들. ... 아프게도 작가는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두었다. 부러진 팔, 다리를 억지로 이어붙여 어찌어찌 '나'도 조금은 성공을 거두고 그리하야 두 사람의 우정은 영원했다,라는 식의 버디소설이 아니라서- 좋았고, 슬펐다. 그 슬픔은 아마도 또 다른 나에게서 나온 것. 지금의 나든, 언젠가의 나든- 나는 항상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었으니까.
빌리가 나간 자리의 외로움은 이전의 쓸쓸함보다도 훨씬 컸다. 그제야 '나'는 돌아본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거지. 우리의 좋았던 시절은 '환상'이었을까. 나는, 계속 글을 써도 괜찮은 걸까. ... 아니, 내게 다시 '빌리'같은 사람이 생길 수 있을까.
"날 받아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그 방을 쓰지 않는다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었어."
"아파트 얘기만은 아니고. ... 난 뉴욕에서 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 알았거든. 그랬더라면 그냥 혼자서 군인처럼 헤쳐나가야 하는 좀 외로운 시간이었을 텐데. 특히 지하실에서 보낸 처음 그 몇 주는. 그래서, 고맙다고, 친구."
"나도 마찬가지야." (본문 중에서, 159쪽)
인간으로 하여금 타인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알아갈 수 있도록 만든 신의 재치는 생각할수록 기발하다.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했더라면 가뜩이나 자만심 강한 인간이 시간을 쪼개어 타인을 만나고,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쏟아내고, 억지웃음을 짓거나 상냥한 말로 타인을 즐겁게 하려는 생각은 숫제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은 타인과의 교제를 삼간 채 자신의 영역 안에서 평생을 홀로 지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나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게는 없는 타인의 능력을 칭찬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면 나의 능력을 기꺼이 제공할 수 있다는 헌신적인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다 신의 안배이자 재치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인간으로 하여금 남과 어울려 살도록 한 신의 의도를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을 때 그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우열이 가려지게 마련이고, 작은 질투가 유발되며, 질투심으로 시작된 마음이 종국에는 미움이나 증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테디 웨인의 소설 <아파트먼트>는 우리가 청춘의 시기에 빠져들 수도 있는 타인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 그로 인한 실수와 상실의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나는 흔치 않은 문학적 재능과 우연히 마주친 것이었고, 동료 수강생의 탁월함에 설령 내가 어떤 질투를 느꼈을지는 몰라도 그런 질투의 감정은 빌리의 겸손함과 관대함 때문에 누그러져 있었다. 빌리는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모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p.38)
1996년 컬럼비아대학 순수예술 석사과정의 문예창작 프로그램에 등록한 여러 학생들 중 가을학기 소설 워크숍을 듣는 십여 명의 학생들이 만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서로의 작품을 합평하는 과정에서 나는 소설가로서 빌리의 재능을 눈여겨보게 된다. 미국 중서부의 쇠락한 도시 출신인 그는 가난하고 보수적이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과는 거리가 먼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자신감 결핍으로 인해 사람들을 멀리하고 나만의 영역 안에서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이었던 '나'와는 다소 상반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에게는 늘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믿었던 '나'는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바텐더로 일하며 소설가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빌리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정성의 화신이었고, 같은 남자로서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불법 전대를 하고 있었지만 맨해튼의 제법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나'는 바텐더로 일하면서 자신이 일하는 바의 지하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빌리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나'에게는 학비와 생활비를 주는 화학공학 기술자 아버지가 있었지만, 빌리에겐 금전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게으름뱅이" 노동자 아버지가 있을 뿐이었다. 빌리는 놀다가도 "시계에서 삑 소리"가 나면 일하거 가야만 했다. 빌리의 문학적 재능에 매료되어 '나'의 선의에서 비롯된 동거 제의에 대해 빌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파트 청소를 하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학기 도중 그만두었을지도 모르는 빌리의 학업은 '나'와의 동거로 인해 계속 이어질 수 있었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나'와 빌리 사이의 심리적 균열은 점차 짙어만 갔다.
"우리가 과거에 대한 기억 중 중요한 뭉텅이들을 무의식 속으로 억압하거나 삭제한다는 개념은 내게 실제적인 심리현상이라기보다는 작가들을 위한 극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저기 남아 있는 불쾌한 얼룩들을 지우기 위해 추억을 아주 미묘하게 변형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현재의 의식 속에 있는 쓰레기들을 카펫 아래로 숨기는 것만큼이나 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p.240)
내성적이면서 소심한 성격으로 인해 마음만 있지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탄탄한 육체와 잘생긴 외모를 통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여자들을 쉽게 매료시키는 빌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나'와 상층부를 비난하면서도 약자를 조롱하는 빌리. 진보적인 성향의 '나'와 가난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빌리. 누군가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고난을 극복해가는 빌리와 모든 것을 남에게 의지하고 있는 '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적 동지이자 모든 제약을 뛰어넘는 우정의 관계라고 믿었던 '나'와 빌리와의 관계는 서서히 파국을 향하게 되고...
우리는 종종 현재 맺고 있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가 더없이 두텁고 단단하여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믿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단단했던 관계도 한순간의 실수로 아주 쉽게 깨어지곤 한다. 한때는 소설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로까지 여겼던 빌리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내 소설에 대한 코멘트가 줄고, 아파트 청소를 거르는 날이 늘었으며, 자신에게 쓰는 돈을 "내 아버지 수입의 트리클다운(낙수효과)"으로 여기게 되지 않던가. 그럼에도 그는 내 손을 두고 "일해본 적 없는 아기 손"이라며 놀려대곤 했었다. 한 인간에 대한 선망과 증오의 양가감정이 '나'의 행동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며 소설은 끝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과 그러면 그럴수록 나로부터 멀어지려는 상대방. 우리는 사람 심리의 원심력과 구심력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청춘이라는 짧은 관문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웠던 시절을 미처 되새김질할 시간도 없이 시나브로 늙어가는 것이다. 노년의 회상이 쓸쓸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은 시절에 아름다운 시간을 아름다움으로 인식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노년의 회상 속에 서글픔처럼 스며들기 때문이다. 무모하지만 그렇게 진실했던 청춘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재능을 염탐하고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삶을 가늠하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청춘의 시간을 무작정 그리워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어쩌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