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으로 출동하는 구급대원들은 정확한 위치와 구체적인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다시 신고자에게 전화를 한다. 생초보 소방관 시절에는 이 통화의 시작을 “119구급대원입니다”라고만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가뜩이나 흥분 상태인 신고자 입장에서는 ‘아직 출발도 안 하고 전화만 하는구나!’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씩 이 생활에 적응하고부터는 꼭 “출동 중인”이라는 말을 붙이게 되었다.
--- 「출동 중인 119구급대원입니다」 중에서
술에 취해 구급차를 탄 사람들은 난폭하거나 잠에 취해 있거나 대부분 둘 중에 하나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 이 환자는 내내 물을 요구했다. “물 좀 줘~! 물 좀 달라고! 물! 물! 물!” 구급차에는 물이 없다는 내 말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말라, 물 없어? 물! 물 달라고!” 하며 언성을 높였다.
“구급차에는 물을 싣고 다니지 않아요. 병원에 거의 다 와 가니까 진료 끝나고 드세요.”
비슷한 대화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나는 병원 경력 없이 소방서에 들어온 터라 환자를 대면한 경험이 많지 않았고, 하필 겁도 많은 성격이었다. 점점 흥분되고 격양되는 그의 목소리에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빠르고 강하게 요동쳤다. 갑자기 그가 한 대 치려는 듯 나를 향해 손을 올렸다. 술에 취해 붉게 충혈된 그의 눈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 「취해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중에서
현장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보아도 인기척이 없었다. 구조대원들이 시건 개방을 위해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내 머릿속은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집 안에 그가 있을까. 있다면 자고 있을까, 자살을 선택했을까. 그는 어느 방에 있을까. 거실? 안방? 화장실? 베란다? 만약 자살을 시도했다면, 어떤 방법으로 시도했을까. 연탄을 피웠을까, 목을 맸을까. 시간은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문을 강제로 개방하고 들어가자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내리며 역정을 냈다. 정말 다행히도 남자는 술에 취해 자고 있었던 것(!)이다.
--- 「이제는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할 시간」 중에서
빗길에서의 교통사고는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고, 제발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사고 중 하나다. 특히나 비 오는 새벽녘에 발생하는 차 대 오토바이 사고는 규모가 꽤 클 뿐만 아니라, 오토바이 운전자가 크게 다칠 확률이 매우 높다.
한번은 차와 오토바이 교통사고 출동 지령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는데, 참담한 현장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함몰되어 뭉개진 오토바이 운전자의 얼굴… 피로 흥건한 몸… 무릎은 아예 밖으로 돌아가 있었고, 간신히 숨만 붙은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응급구조사는 사망 판정을 내릴 수 없다. 아주 명백하게 몸이 절단되거나, 장기들이 밖으로 다 나와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처럼 누가 봐도 사망일 경우에는 의료지도 의사와 연결해 현장 상황을 전달하고, 심폐소생술 유보와 같은 지시 사항을 받아 이행한다. 이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모든 처치를 하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 「구급 출동! 교통사고 현장입니다」 중에서
나에게도 지우고 싶은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다. 갓 태어난 신생아와 산모를 함께 이송하는 중이었는데, 이런 경험이 흔치 않아서 몹시 당황한 상태였다. 함께한 구급대원도 나보다 늦게 들어온 후배라 의료지도 의사와 통화하며 상황에 대처해 가고 있었다. 다행히 산모와 신생아의 상태는 모두 괜찮았다. 구급차 안에서 119상황실과 무전을 하면서 병원으로 향하는데, 상황실 직원이 물었다. “아프가 점수가 몇 점이죠?”
순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프가 점수가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점수와 항목이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아프가 점수는 신생아의 피부색, 맥박, 우는 정도, 팔다리의 움직임 정도, 호흡 양상에 따라서 점수를 매기는 것으로, 10점 만점에 10점이 가장 좋은 상태, 7~10점은 양호한 상태, 4~6점은 중증도의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의학적 노력이 필요한 상태, 3점 이하는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 상태를 말한다.
“15점이요! 15점!!!!!!”
건강한 아이를 보며, 흡족했던 나는 힘차게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10점 만점의 아프가 점수인데, 15점이라니!
--- 「따뜻한 마음만으론 환자 못 살립니다」 중에서
꽃들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고 그 모양도 각양각색인 것처럼, 나는 모든 사람이 피어나는 저마다의 시기와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만의 빛과 가능성을 내재한 사람들인데, 잠깐 몸과 마음에 고통이 찾아와 구급대원인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 여긴다. (…)
나 또한 아직 내 꽃을 피우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자라나는 중이며, 꽃을 피워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꽃은 한 번만 피지 않는다. 지고 피어나고 또 지고 또 피어난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각자의 꽃을 피우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다 보면,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더 웃음 짓는 날이 많아질 거다.
--- 「이제 곧 당신이 피어날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