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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없는 일

대가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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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284g | 115*205*16mm
ISBN13 9788937442308
ISBN10 893744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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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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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모찌하은맘! 잘 왔어요.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다들 언니 주위로 몰려들어 한마디씩 떠들기 시작했어요. 완전 팬이에요, 인스타 잘 보고 있어요, 실물이 더 예뻐요,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돼요? 언니는 ‘모찌하은맘’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육아 인플루언서였어요. (……)
분당맘인 언니가 왼편 테이블에 앉자 모임의 공기가 달라졌어요. 분당맘들이 갑자기 주눅 든 모습은 좀 고소하기까지 했고요. 언니는 저희 테이블 사람들과 두루 이야기를 나눴어요. 심지어 제일 구석에서 겉돌던 제게도 말을 걸어 줬죠. (……)
언니가 가만히 절 보다가 물었어요.
돌 지났으면 유아차 절충형으로 갈아탈 때 되지 않았어요? 이번에 휴대용 유아차 사서 남는 게 있는데, 혹시 필요하면 드릴까요?
--- p.11, 「언니」 중에서

나만 빼고 모두가 반짝반짝 빛난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나는 언니들 세계의 가장자리에라도 초대받길 바라고 또 바라면서 한편으론 언니들이 나를 귀찮아하거나 마냥 어린애 취급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런 내게 그 시절 은주 언니는 내게 없는 걸 모조리 가진 사람, 너무나 까마득한 사람, 차마 질투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 p.61, 「그녀가 「오, 사랑을 부를 때」 중에서

담임선생님도 상담센터 선생님도 똑같은 걸 계속 물어. 외국 키즈 유튜브 영상 보여 주면서 그대로 따라 하라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니? 친구 필통 훔치는 장면 찍을 땐 무슨 생각이 들었어? 10분 안에 치킨 버거 네 개 먹기 먹방은 누가 찍자고 했어? 그럼 난 대답해. 그냥 논 거예요, 카메라 앞에서. 그럼 어른들은 또 물어. 정말 논 거 맞아? 시켜서 한 거 아니고? 그쯤 되면 좀 화가 나. 역시 아빠 말이 맞구나 싶어서. 사람들은 아빠랑 지아가 놀면서 논 버는 게 배 아픈 거야.
--- pp.107~108, 「지아튜브」 중에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의 어려움에 비해 멀어지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를 생각하면 종종 아득해진다. 또 이미 멀어져 버린 관계라 할지라도 기어이 기억의 조각들을 남기고야 만다는 것도. 의외로 기억의 밑바닥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건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다. 신문지를 깔고 앉아 언니가 내 앞머리를 잘라 주던 밤에 부엌 가위에서 나던 사각 소리, 굴소스를 듬뿍 넣고 언니가 해 준 볶음밥을 먹던 오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노래, 내가 심한 몸살을 앓던 새벽에 물수건을 갈아 주며 이마를 짚어 보던 언니의 손길 같은 것들.
--- p.245, 「제주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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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김혜지 소설에는 내가 아는 것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 전화번호는 가지고 있지만 연락한 적 없는 오래 전 동창, 거리에서 우연히 스치면 잘 지내지? 응, 너도? 인사를 나누며 어색하게 뒤돌아설 친구의 친구, 한 아이를 아기 띠로 동여매고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이웃집 여자. 알지만, 분명히 알지만, 정말 그를 아느냐고 질문 받으면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힐 듯한, 그 얼굴들을 여기서 본다.
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망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살아야 망하지 않는지 몰라서 그저 남들을 따라 살고자 했던 그들에 대하여 작가는 쓴다. ‘남들처럼’ 살겠다는 그 모방의 의지가 어디서 온 것인지 헤아릴 여력도 없이, 자기 안의 여러 마음들이 왈각대며 부딪히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하여. 위선에도 위악에도 영 재능이 없는, 누구를 미워해야 할지 몰라 스스로를 미워하다 영혼이 부서진 사람들에 대하여.
- 정이현 (소설가)
대가 없는 일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삶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들의 최선은 그들이 바라던 대가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곧잘 그들의 삶을 해치고 만다. (……)
아마 소설의 인물들이 분투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어느 지점에 우리의 삶도 겹쳐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은 삶에 대한 우리의 노력과 애착이 어디로 향하는지 비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삶에 함몰되어 가늠할 수 없었던 각자의 ‘최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소설 속 이웃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최선’이 할 수 없는 일에 악다구니를 쓰며 매달리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그렇다고 체념의 테두리 속에서 삶을 소진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길. 우리의 최선이 우리를 해치지 않길. 과오를 인정하되 반복하지 않길. 그리하여 남아 있는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길. 이 책의 마지막 장 너머로 펼쳐질 시간은 ‘최선’이라는 말에 담긴 본래의 밝음을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 이지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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