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님이 무민의 집에 찾아왔어요 이 특별한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 주면 좋을까요? 투티키가 무민의 집에 이상한 친구를 데려왔어요. 말 한마디 하지도 않고, 기척 없이 돌아다니고, 심지어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손님을 말이에요. 무민 가족이라면 이 친구를 고쳐 줄 수 있을 거라나요? 하지만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도, 사랑과 관심을 쏟아도 친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떡하죠?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의 일곱 번째 이야기인 『무민 가족과 보이지 않는 손님』은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 가운데 단편 일곱 편을 엮은 『보이지 않는 아이』의 표제작을 바탕으로 새롭게 꾸민 그림책입니다. 냉대와 무관심에 움츠러든 나머지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친구, 닌니가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줘요. ‘보이지 않는 손님’으로 무민의 집에 온 닌니는 어떻게 진짜 내 모습을 되찾을까요? 마침내 되찾은 닌니의 진짜 모습은 어떨까요? |
“아름답고 잘 만들어진 그림책. 책 속 이야기는 견고하고 명확한 대화로 아주 잘 쓰여 있으며 원작 단편소설에 가깝다. 이 그림책은 토베 얀손의 원작 그림책들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는 무민 세계의 지속을 위한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어린이들이 무민을 경험하게 만들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다.” 「헬렌 에리안데르(스웨덴 아동ㆍ청소년 문학 대학교수)」 세계 최고의 문화 선진국을 뽑으라면 북유럽 4개국을 뽑을 것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바이킹 시절 덴마크의 식민지였지만, 지금은 노르딕 국가로 가장 이상적인 선진국들로 불리고 있다.
토베 얀손(Tove Marika Jansson, 1914년~2001년)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 작가이자, 소설가, 화가, 만화가이다. 스톡홀롬, 헬싱키, 파리 등에서 전통미술을 공부하였고, 1943년에는 단독 전시회도 가진 화가이다. 출판을 위한 소설과 표지를 디자인하였고, 그러던 중 1945년 『무민』이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써냈다. 1966년에는 아동작가로서 최고의 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금메달’을 받게 된다. 성인을 위한 단편과 소설도 썼으며, 여러 공로에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국가 훈장과 문화상, 미술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무민」 Muumi, moomin, 무민의 정확한 명칭은 무민트롤(Moomintroll)이라고 한다. 이때까지 하마로 알고 있었는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돼버렸다.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트롤이 원형인데, 대부분 사람이 하마로 혼동한다고 한다. 무민 시리즈가 출간을 진행되면서 점차 현재의 귀여운 모습으로 동글동글해졌다고 한다. 초기의 무민 모습은 코가 굉장히 긴 정말 트롤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민 시리즈는 단편집까지 포함해 총 9권이라고 하며, 가장 첫 번째의 책이 『무민 가족과 대홍수』라고 한다. 『무민 가족과 보이지 않는 손님』은 1962년 7번째 출간된 단편집이라고 한다. 1945년~1970년까지 25년 동안 3년 주기로 꾸준히 인기 있게 출간된 것이다.
애니메이션 선진국 일본에서는 1969년과 1972년에 후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였다고 한다. 1977년에는 폴란드에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였고 총 100화에 이른다고 하다. 1990년 TV 도쿄에서 애니로 방영하였다. ‘즐거운 무민 일가’라는 이 애니는 1기 총 78화, 2기는 총 26화로 역시 100화가 넘는다. 원작자 토베 얀손이 가장 좋아한 애니이며, 최초로 인정한 애니라고 전해진다. 무민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어린이 문학에서는 그냥 전설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무민 가족과 보이지 않는 손님』 7번째 이야기의 핵심은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살던 무민 골짜기의 주민들이 어떤 경험을 통하여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 속담으로 비유하자면, 우물 속 개구리가 우물 모양의 하늘만 보다가, 우물 밖으로 나와 진짜 세상을 알게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가장 중요한 건, 화를 내야 할 때는 정말 불같이 화내야 한다는 거죠!” 동양을 지배하는 사상은 유교인데, 군주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복종하고, 예에서 벗어나는 솔직함을 죄로 몰아가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사람의 진정한 대화는 서로의 솔직함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배려와 인내가 가식이 된다면 그것만큼 부도덕한 것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