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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모든 것

남아 있는 모든 것

: 죽음이 삶에게 남긴 이야기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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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0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852g | 142*208*35mm
ISBN13 9791189346263
ISBN10 1189346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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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교양으로도 우리는 왜 죽음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악마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순응과 부정이라는 익숙하고도 안전한 벽 뒤에 숨는 쪽을 택하는 걸까? 죽음은 끔찍할 이유도, 잔혹하거나 저속할 필요도 없다. 죽음도 조용하고 평온하며 자비로울 수 있다. 우리가 죽음을 어둡게만 보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을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죽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면 겪어야 하는 곤란을 피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신뢰를 쌓을 기회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정말로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인생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 p.14, 「들어가는 말」 중에서

정육점은 미래의 해부학자이자 법의인류학자의 훈련 장소로 매우 유용한 곳이었고, 정말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매혹적인 장소였다. 나는 정육점 주인이 보여주는 정밀한 임상 기술을 사랑했다. 정육점 주인에게서 나는 많은 기술을 배웠다. 고기를 가는 기술, 소시지 소를 채우는 기술을 배웠고 무엇보다도 정육점 직원들을 위해 제 시간에 맞춰 차를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 울퉁불퉁한 뼈 사이를 누비며 재빨리 기술적으로 뼈를 발라 진한 붉은색 근육을 하얀 뼈와 분리해내는 정육 기술자들의 솜씨를 보면서 날카롭게 다듬은 칼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웠다. 정육업자들은 어디를 잘라야 차돌박이용 고기를 얻고 또 어디를 잘라야 국거리용 고기를 얻을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았다. 정육점에서 접해야 하는 해부학은 언제나 같으리라는 확실함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안심되는 부분도 있었다. 아니, 완벽하게 언제나는 아니었다. 가끔은 작업을 하던 정육업자가 무언가 “아주 잘못됐다”며 낮은 소리로 욕을 할 때도 있었으니까. 사람처럼 소와 양도 개체마다 몸의 구조가 다른 것 같았다.
--- p.27~28, 「1장. 침묵의 스승들」 중에서

우리도 윌리 할아버지처럼 오랫동안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고통도 없이 가족에게 둘러싸여 따뜻한 토마토 수프에 얼굴을 묻고 죽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나에게는 할아버지의 죽음이야말로 완벽한 죽음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했으면 한다. 물론 단기적으로 그런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남긴다. 우리 어머니는 실질적으로 아버지였던 남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비통한 순간을 맞이할 각오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떠날 때 생길 거라고 믿었던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어떠한 경고도 없이 죽어버린 할아버지를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런 죽음을 맞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거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남은 사람들은 결국 위로를 받는다.
--- p.113, 「3장. 가족의 죽음」 중에서

신원을 밝히기 가장 힘든 시신은 고립된 장소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태로 발견된 경우로, 이때는 시신이 부패해 있고 신원을 확인해줄 만한 정황 증거가 전혀 없을 때가 많다. 그런 시신은 DNA 자료도 지문 기록도 없을 수 있다. 바로 이때 법의인류학은 진가를 발휘해 고인의 살아생전 정체성을 다시 찾아줄 가장 좋은 기회이자, 가끔은 유일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 p.266, 「8장. Invenerunt corpus- 몸을 찾다!」 중에서

발칸 전쟁처럼 세계를 바꾼 사건이 자기 자신의 경험이 되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 남는다. 자신이 받은 축복에 더욱 감사하게 될 수도 있고 대의명분을 받아들여 정치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새로운 문화에 완전히 몰입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되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절대로 그전과는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 그 시간을 생각하면 바꾸고 싶은 일들이 아주 많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없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인생에 대해, 죽음에 대해, 내 직업과 한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언제나 나를 지켜줄 아주 중요한 교훈도 하나 얻었다.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파란 전선은 자르면 안 된다는 것 말이다.
--- p.392, 「10장. 코소보」 중에서

나는 죽음을 나의 마지막 모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어쨌거나 내 인생에서 죽음은 단 한 번밖에 경험하지 못할 사건이니까. 나는 죽음을 알아보고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보고 만지고 냄새도 맡고 맛도 보고 싶다. 내 모든 감각으로 죽음을 느끼고, 마지막 순간이 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 죽음은 언제나 내 삶을 이끌어온 가장 큰 사건이었으니 내가 죽을 때는 앞자리에 앉지 못해 단 하나라도 놓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 p.518, 「나오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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