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에 처음 들어왔을 때 깊은 숲속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자연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거친 정글의 모습이었지요. 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 살지만 각자 영역을 지키면서 높이 뻗어나가야 생존할 수 있는 야생의 모습 말입니다.
닿을 듯 닿지 않으며 서로 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합의, 스스로를 지키는 것 외에 타인의 영역에는 무관심해야 살아남는 자연의 전략적 선택은 이곳에서도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나 영역을 인정하지 않고 제멋대로 넘나드는 개체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가볍게는 침해, 조금 더 넘어가면 침범이나 침입, 많은 개체가 한 번에 넘어가면 국경을 넘어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어디에든 법칙을 깨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연에는 포식자도 피식자도 있는 법입니다. 생존이라는 말로 살인을 저지르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 p.13~14, 「301호 참고인 진술서」 중에서
전에 살던 집에선 너무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어서 불편했거든요. 불쑥 문을 두드리거나 드라이기를 빌려 달라는 둥, 그게 싫었던 저는 인사만 하는 사이가 편했어요. 어차피 이 동네에서 계속 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다른 동네의 이웃이었다면 서로 반갑게 인사했을 테지만 이 동네에서는 그런 인사를 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어요. 다들 어딘가 예민하고 화난 표정,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이었죠. 젊음이 그늘진 그 서늘함은 말로 다 설명 못 해요. 젊은이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고 노인의 얼굴에서는 여유가 보이지 않았죠.
서로의 사생활을 대강 알지만 절대로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룰. 예의라고 해야 할지, 무관심이나 냉혹이라고 해야 할지. 빨리 이 동네를 벗어나 사람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 나름의 룰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 그 룰에 동의하고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려고 애썼던 거 같아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잠시 삶을 재정비하는 공간쯤으로만 여겼어요.
중년이 넘어서까지 이 동네에 살면 루저 아닌가요? 저는 루저가 되기 싫었어요. 그 모습이 비참해 보이기까지 했거든요.
--- p.22~23, 「302호 참고인 진술서」 중에서
여기로 이사 온 건 5년쯤 됐나?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어쩌다 보니 이 동네로 온 거죠. 회사 근처고, 가장 저렴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서툰 초보 운전자의 지나친 신중함과 무모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었어요. 인생 초보자, 실패자들이 모인 동네라서 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질 않았죠.
한마디로 끈적이는 동네예요. 장사 안 되는 식당 주방처럼 찌든 때가 여기저기 붙은 곳이죠. 바퀴벌레나 쥐도 많아요. 사람들이 뿜어내는 우울한 기운이 끈적이는 형태로 변한 것처럼 우울, 슬픔, 비루함, 분노, 모든 것이 뒤섞여 끈적거려요.
아, 직업은 사회복지사예요. 풍족한 집안도 아니었고 가장 안정적인 직업을 찾다가 성적에 맞춰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어요. 성적이 더 좋았다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을 거예요. 그보다 더 높았다면 의대에 들어가 소아과 의사가 됐을 거고요. 그만큼 아이들을 좋아해요. 뭐, 아이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요. 안 그래요?
--- p.50~51, 「303호 참고인 진술서」 중에서
새끼 고양이를 수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 근처에 누가 죽었는지 다쳤는지 구급차가 멈춰 서 있었어요. 사람들은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몰려가서 빙 둘러 구경을 했어요.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타기 직전의 긴장감을 즐기는 것처럼요.
불행이 마치 쇼처럼 비춰지는 게 섬뜩했어요. 이건 쇼가 아니라 현실인데 말이죠. 아주 가까이서 벌어지는 비극이지만 마치 다른 대륙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흥미롭게 받아들여요. 벽을 대고 붙어 살지만 실제로는 다른 행성간 거리처럼 멀고 멀어요. 조금만 가까워지면 외계인을 보는 것처럼 두렵고 낯설어하는 사람들이죠. 실제로 이웃을 대할 때도 외계인처럼 대해요.
그저 제가 그렇게 느껴서일지도 몰라요. 침몰하는 배가 다른 배를 구해줄 여유가 없어서일까요. 다 같이 침몰해가는 상황인데 자신은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 때문일까요. 무엇이든 간에 차가운 동네인 건 분명해요. 서늘하고 소름 끼치는 동네죠.
--- p.102~103, 「305호 참고인 진술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