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10월 27일 |
---|---|
쪽수, 무게, 크기 | 624쪽 | 676g | 140*215*32mm |
ISBN13 | 9791156759195 |
ISBN10 | 1156759196 |
발행일 | 2021년 10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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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624쪽 | 676g | 140*215*32mm |
ISBN13 | 9791156759195 |
ISBN10 | 1156759196 |
MD 한마디
엘리자베스 문의 네뷸러상 수상작 『어둠의 속도』가 12년 만에 복간되었다. 자폐를 치료할 수 있게 된 근미래, 자폐인 루 애런데일은 정상화 수술을 강요 받는다. 과연 기술은 질병과 장애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할까? 시대의 편견을 고발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 -소설MD 김소정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에필로그 정소연_옮긴이의 말 폴 위트커버_엘리자베스 문과의 인터뷰 |
가끔 SF소설을 읽는다. 좋은 소설만 읽어서 그런 지 실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40년 가까이 자폐아로 살았다. 그 삶에 나름 만족하며 살았다. 일상에서의 불편함은 있다. 특히 사람들의 편견. 하지만,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 어느날 회사에서 불법적으로 자폐증을 치료하라고 한다. 자폐 자체가 생산성이 낮다고. 회사 사장도 모르게 진행되던 이 일은 나중에 회사 사장이 알고 폐기하지만, 주인공과 친구들은 그 회사의 불법적 치료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작품의 후반부에 주인공이 치료에 참여한다는 결정을 읽었을 때 깜짝 놀랐다. 나는 당연히 주인공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라고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치료 받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자폐라는 지금의 상태가 싫어서가 아니다. 이런 표현이 적당한 지 모르겠다.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의 이유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장애'를 바라보는 편견을 없애고 새로운 시각을 전달해 주는 소설을 넘어선다. 인간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지 얘기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자폐와 그로 인한 고뇌들을 배경을 이룰 뿐이다. 누구에 의한 선택이든 선택은 어렵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선택의 고뇌가 자신의 삶을 지탱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기꺼이 그 선택에 뛰어든다.
차분하게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가 마지막 장까지 읽는 재미를 유지시킨다. 좋은 소설이다. 재미있기도 하다.
어둠의 속도 / 엘리자베스 문 지음 / 정소연 옮김 / 푸른숲
저자 엘리자베스 문은 카리스마적인 주인공을 내세운 속도감 있는 판타지와 SF 활극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이다. 이전의 저서와 달리 ‘어둠의 속도’는 자폐인을 주인공으로 과학소설이지만 한 인간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로 새로운 평가를 받게 한 책이다.
자폐아를 입양해 스무 해를 키워온 어머니의 경험은 ‘어둠의 속도’의 주인공 루의 심리를 깊이 있게 다루어 준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주인공 루를 동정보다는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고 공감할 수 있게 이끌어 준다.
주인공 루는 자폐인으로 일반적인 정상인과 다르다는 시선을 받으며 40년 가까이 생활해왔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루 나이 또래의 자폐인을 끝으로 생후 2년 안에 유전자 치료를 통해 완치될 수 있어 더 이상 어린 자폐인이 없게 되었다. 루가 유전자 치료 이전에 태어났기에 자폐를 치료하지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초기 개입, 교육 방법, 컴퓨터를 이용한 통합 훈련 분야의 발전으로 세상에서 살아갈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도 자폐인으로 정상인과는 다른 사회적 인지의 부족이나 정상인과 다른 패턴화된 행동이나 자폐인들의 강박적인 행동은 다른 정상인들에게 여전히 낯설게 여겨지고 있다. 그런 시선에 불편하지만, 그 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펜싱도 배우고, 사랑도 느끼며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루와 함께 일하는 동료 자폐인들에게 상사 크렌쇼씨는 자폐인의 뇌를 정상화하는 수술을 강요한다.
뇌 치료를 결정하지 않으면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협박을 받는다. 이에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루는 뇌에 대한 전문지식을 순식간에 공부하고 뇌수술에 대한 문제점을 찾아내려고 한다. 여기에서 그의 보이지 않았던 천재성이 발휘된다. 크렌쇼씨의 뇌수술의 강요는 고위 관리자에게 발각되어 자리를 물러나게 되고 루와 자폐인 동료들은 자유 의지로 뇌 치료를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자폐인에 대해 이해하고 루의 순수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면서 공감할 수 있게 했다.
“나 자신 누구인가는 저에게 중요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394쪽
뇌수술에 대한 루의 처음의 생각이었다.
자폐를 병으로, 장애로 생각하는 일반적인 사고에 자폐인 그 모습 자체가 자신의 부분임을 말하는 것에서 부족한 부분도 나이므로 있는 그대로 나를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자기 모습을 그대로 사랑할 줄 아는 그 모습은 루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펜싱을 함께하는 모임에서 돈은 정상인이다.
하지만 돈은 루를 자폐인이라는 것에 대해 폄하하고, 다른 사람들이 루를 챙겨주는 것에 질투와 불만을 느낀다. 결국 루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행동을 한다.
정상인이라 부르는 돈이지만 절대 정상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다.
또, 함께 펜싱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돈의 버릇없는 행동에 심술궂은 말로 대하고 ‘밥맛’이라며 돈을 대척하는 행동을 하는데 루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루는 정상적인 행동을 교육받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 배웠다. 하지만 정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교육받은 것도 다른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한다.
정말 정상적인 것이 무엇일까? 루에게는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정상처럼 보이게끔 모범적으로 교육한 행동들이 정작 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예외가 되는 경우는 무엇일까?
정상이란 단순히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은 아닐까 싶다. 많은 수가 차지한다는 것으로 평균, 기준으로 불릴 수는 있어도 올바른 것, 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말한 자폐인 자기 모습을 좋아하고 사랑할 줄 아는 모습이 더 인간적이고 더 정상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비인간적인 모습의 정상인들이 그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에 가서 루가 뇌 치료를 선택한 장면은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루의 노력하는 모습과 자폐인이지만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태도를 보았을 때 루의 뇌수술 선택을 상상하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사랑했던 자폐인의 모습에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는 내가 치료를 받고 싶어 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변한다면, 그리고 그 변화가 그들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라면, 어쩌면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444쪽
루가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이 자폐인이기에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없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전히 자폐와 같은 장애는 정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받는 것이 현실이 느껴져 안타깝다. 장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현실이 정상이라는 것이 참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500페이지가 넘은 분량의 책이지만 한 번씩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정말 많은 질문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우리의 삶에서 ‘정상’과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