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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220g | 140*210*8mm
ISBN13 9788954682756
ISBN10 8954682758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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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카리브해 문학의 강렬한 목소리 저메이카 킨케이드가 그린
차가운 분노와 맹렬한 갈망으로 내디딘 홀로서기의 첫걸음


피식민자, 여성, 흑인, 이주민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반영해 소설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수의 작품에서 식민주의, 탈식민주의, 흑인 페미니즘, 계급과 인종, 젠더와 섹슈얼리티,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다루어온 작가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대표작 『루시』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3번으로 출간된다. 서인도제도의 앤티가섬에서 태어나 자란 뒤 열일곱 살에 외국인 입주 보모로 미국 뉴욕에 가 생활한 자전적 경험을 담은 성장소설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이 작품은 서인도제도 출신 소녀 루시가 영국 지배하에 있는 고향을 떠나 뉴욕으로 추정되는 대도시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후 일 년간의 삶을 그린다.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내가 곧잘 빠져들던 백일몽에서 그 모든 장소는 행복을 의미했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내 어린 영혼의 구명보트였다.
--- p.9

나는 이제 열대지방에 있지 않았고, 그 깨달음이 바짝 말라붙은 땅 위로 물줄기가 흐르듯 내 삶으로 흘러들어와 두 개의 강둑을 만들었다. 한쪽 강둑은 나의 과거였다. 워낙 빤하고 익숙해서, 당시의 불행조차 지금 떠올리니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나의 미래였다. 텅 빈 잿빛 공간. 비가 내리고 배 한 척 눈에 띄지 않는, 구름이 잔뜩 낀 바다 풍경이었다. 이제 내가 있는 곳은 열대지방이 아니었고, 몸의 거죽도 속도 다 추웠다. 그런 감각에 휩싸인 것은 처음이었다.
--- p.11

가족이란 결국 내 삶의 목덜미에 맷돌처럼 매달린 사람들 아니던가?
--- p.12

내가 사는 세상이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게 보듬어준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난 길에 서서 울었다. 앞으로 살면서 무엇 하나 더 사랑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고, 내 마음이 수천수만 갈래로 찢겨 발밑에 널브러지는 일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 p.23

이미 오래전에 그 무엇도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결심했기에 아무것도 그립지 않을 것이다.
--- p.67

태어나 자란 곳이 더는 견딜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져, 익숙한 것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갈망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안식처가 되어주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 p.77

난 사회적 지위도 없고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없었다. 내겐 기억이 있고, 분노가 있고, 절망이 있었다.
--- p.108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되었다. 그것만 해도 상당한 성취였다. 그걸 이루려 애만 쓰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 p.129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명되는
현대 카리브해 문학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 저메이카 킨케이드


자신과 세계에 대해 냉철하게 인식하며 억압에 대항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솔직한 필치로 써내려가는 작가 저메이카 킨케이드.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들로 현대 카리브해 문학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로 꼽히며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는 그는 1949년 5월 25일 카리브해 동쪽에 있는 영국 연방 내 독립국인 앤티가섬의 수도 세인트존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일레인 포터 리처드슨으로, 식민 지배하인 고향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아홉 살 되던 해부터 오 년간 남동생 셋이 연이어 태어나면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남동생들에게로 기울자 배신감과 더불어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한다. 엄마와의 이러한 관계는 이후 킨케이드의 소설에서 피식민지와 지배국의 관계로 확장되어 다루어지며 빼놓을 수 없는 소설적 근간이자 주제가 된다.

독서를 즐기고 학업 능력이 뛰어났으나 학교에서는 곤욕스러운 학생으로 통했고(“나는 뚱한 아이였다. 말대꾸를 하고 예의 없이 군다고 혼나기 일쑤였다. 느려터진데다 가지 말라는 데에 가 있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가 나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못 견디게 불행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보내진다. 뉴욕주의 스카스데일에서 열일곱 살부터 오페어(au pair. 숙식을 제공받는 외국인 입주 보모)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후 가족들에게서 오는 편지를 읽지 않고 버는 돈도 집으로 부치지 않으면서 의식적으로 가족과 고향으로부터 스스로를 멀찍이 떼어놓으려 애쓰며 이십여 년 뒤 앤티가섬을 다시 방문할 때까지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산다.

오페어로 일하며 야간학교에 등록해 학업을 잇다가 뉴햄프셔의 프랭코니아대학에 입학해 사진을 공부한다. 이듬해 자퇴하고 뉴욕으로 돌아와서는 여러 단기 직업을 전전하다 1973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작업에 몰두한다. 이때부터 자신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고자 ‘저메이카 킨케이드’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저메이카’는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발견했을 당시 ‘Xaymaca’라는 섬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에서 가져온 식민지성을 나타내는 이름이며, ‘킨케이드’는 저메이카와 잘 어울리는 것으로 직접 고른 이름이다. 이 필명으로 『파리 리뷰』 『뉴요커』 등 여러 매체에 단편소설과 글을 기고하고, 뉴욕의 문학계 인사들과 교유했다. 그러던 중 『뉴요커』의 편집장 윌리엄 숀을 소개받아, 이후 이십 년 동안 『뉴요커』의 전속 작가로 글을 썼다. 숀은 킨케이드의 글쓰기를 독려하고, 그의 글이 보다 많은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1983년 앤티가섬에서의 어린 시절을 담은 단편소설을 엮어 『강바닥에서』를 출간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 년 뒤에는 앤티가섬을 배경으로 한 애니의 성장담을 그린 첫 장편소설 『애니 존』을 출간했고, 뒤이어 『루시』를 발표했다. 그 외에도 백인 관광객과 타락한 앤티가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산문 『카리브해의 어느 작은 섬』, 정원을 가꾸는 일을 정복과 지배의 관점에서 살펴본 에세이 『내 정원』을 비롯해 소설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모녀관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인종과 계급, 섹슈얼리티,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톺아보는 작품들로 이산문학의 새로운 목소리로 평가받으며 모턴다우언제이블상, 구겐하임 펠로십, 미국도서상 등을 수상했고 2004년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홀로서기를 향한 당찬 발걸음을 내디디며
날카로운 눈으로 감각한 새로운 세계와 성난 얼굴로 되돌아본 상실의 기억들


주로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써온 킨케이드는 1990년 발표한 『루시』에서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의 기억을 불러낸다. 가족과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미국에서 홀로 생활해야 했던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 ‘루시’라는 인물을 빚어내고, 그의 눈에 비친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소설은 서인도제도를 떠나 미국 뉴욕으로 추정되는 대도시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1월의 추운 날씨와 엘리베이터, 냉장고에서 막 꺼낸 묵은 음식 모두 이제 막 그곳에 발을 디딘 루시로서는 생전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다. 백인 상류층 가정에서 입주 보모로 네 아이를 돌보면서 차츰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해가지만, 한편으로는 마주하는 모든 풍경에서 고향과 엄마를 떠올린다. 떠나온 곳과 남겨두고 온 사람들이 설핏 스치며 그리워지려 할 때마다 루시는 그로부터 간절히 벗어나고 싶어했던 당시의 마음을 상기한다.

다정하고 사려 깊은 네 아이의 엄마 머라이어는 루시가 살면서 누려보지 못했을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루시는 결코 같아질 수 없는 머라이어와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나아가 자신의 출신과 인종, 그리고 계급을 의식하게 된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흙을 막 갈아엎은 너른 밭 풍경에 머라이어가 감탄할 때, 루시는 흑인 노예들의 고된 노동만을 떠올린다. 활짝 핀 수선화를 보고 기뻐하는 머라이어 곁에서도, 영국식 교육을 받던 학창시절을 떠올릴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실제로 그 노란 꽃을 보게 되자, 무슨 꽃인지 알기도 전에 거대한 낫으로 땅속 뿌리까지 모조리 파내버리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녀가 아름다운 꽃을 보는 그곳에서 나는 비통함과 원한만을 본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도 달라질 수 없었다. 우리가 그 장면을 똑같이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릴 수도 있겠지만 그 눈물의 맛은 다를 것이었다.” _29쪽

루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 아래의 본질을 꿰뚫는다. 매 순간 희망과 절망, 사랑과 증오 사이를 오가며 그 내면의 역동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성난 얼굴로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본다. 빼앗긴 것들과 기꺼이 상실한 것들의 긴 목록,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루시는 남동생들과 달리 자신에게는 거창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지 않는 엄마에게 격분한다. 같은 여자인데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나’와 똑 닮은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아연해한다. 자신을 향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남동생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견딜 수 없는 배신감과 상실감을 겪고, 그로부터 피어오른 분노를 동력으로 멀리 떠나 “내 삶의 목덜미에 맷돌처럼 매달린” 가족이라는 존재를 영영 잊고 살아가리라 결심한다. 하지만 먼 곳으로 떠나온 뒤에도 고향과 엄마의 잔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루시는 엄마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고 독립에 이르는 길이라 여긴다. 그러나 엄마와의 관계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여러 맥락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식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을 뿐 아니라 태어난 후에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먹이고 입히며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자식을 키우고자 하는 엄마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막강한 존재처럼 보인다. 루시는 이러한 ‘나’와 엄마와의 관계를 피식민지와 지배국의 관계로 확장해 바라본다. 엄마는 ‘나’의 기원이면서, 때로 불가항력적인 권력을 행사해 ‘나’의 권리를 박탈하고 억압하기 때문이다. 루시는 엄마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갈구하지만, 이는 또다른 배제와 굴종의 기억을 불러올 뿐이다. 딸을 자신의 반영처럼 키우려는 엄마로부터 떨어져나와 진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그리하여 독립적인 한 개인으로 자신의 삶을 재정의하기 위해서, 루시는 비로소 차가운 분노와 맹렬한 갈망으로 홀로서기의 첫걸음을 내디딘다.

킨케이드는 자신의 삶에서 실제 일어난 굵직하고 소소한 사건들을 다듬어 소설에 녹여냈다. 곧장 가슴에 박히는 분명하고도 아름다운 문장들로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기는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사랑을 잃어버리거나 거부당한 경험, 개인의 독립과 정체성 확립을 다룬다. 『루시』는 맹랑하고도 통찰력 있으며 “정말 화가 많은” 독보적 캐릭터 ‘루시’를 통해 킨케이드가 보여주는 또하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루시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이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책을 읽기 전보다 조금은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을 조금 덜 행복하게 만드는 게 내 임무 같아요..” _저메이카 킨케이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아름답고 정교한 소설. 『루시』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사나울 만큼 정직한 여성과 마주하는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 [뉴욕 타임스]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소설의 풍요로움은 루시가 분투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너무 많이 가진 자와 결코 충분히 가질 수 없는 자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주어진 삶과 애쓰다보면 적어도 이해에 가닿게 되는 삶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데 있다.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루시』는 킨케이드가 브론테와 울프의 후손이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 존재임을 증명한다.
- [월스트리트 저널]

냉담하고 맹렬하다. 킨케이드의 글에서 느껴지는 강인함과 우아함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전부다.
- [워싱턴 포스트 북 월드]

저메이카 킨케이드는 내가 언제고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 수전 손택

회원리뷰 (9건) 리뷰 총점9.0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식민지 출신 소녀의 성장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a***s | 2022.06.1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 책은 한 소녀의 성장기이며, 아웃사이더 미국인 이야기이다.   미국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역사를 알고 있음에도 일단 백인이 떠오르고, 흑인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흑인은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의 후예들이다. 대단히 섭섭한 이야기지만 아시아계나 아메리카 원주민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루시는 서인도 제도 출신 흑인으로;
리뷰제목

이 책은 한 소녀의 성장기이며, 아웃사이더 미국인 이야기이다.

 

미국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역사를 알고 있음에도 일단 백인이 떠오르고, 흑인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흑인은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의 후예들이다.

대단히 섭섭한 이야기지만 아시아계나 아메리카 원주민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루시는 서인도 제도 출신 흑인으로 미국에 와있다.

세상의 많은 딸들이 그렇듯 엄마와는 애증관계를 가지고 있고, 아빠를 혐오하는 편이다.

그녀의 아빠도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처럼 책임감 없고 무능력한 존재이다.

화가 많은 소녀 루시

함께 살고 있는 백인은 너무나 선량하지만 무지하고

엄마는 사랑보다는 억압의 존재이며, 아들과는 차별적인 기대로 딸을 키워왔다.

가부장적 억압과 여성차별, 그리고 계급, 인종, 제국주의까지

이 모든 것에 둘러싸여 있기에 그녀는 화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성장은 막을 수 없다.

마이너의 자리에서도 꿋꿋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고 꿈을 키워가고 있다.

루시는 저자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분신이다.

루시의 이야기가 미국으로 와서 1년 동안의 이야기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녀가 성공하고 인정받는 내용까지 더해졌다면

아마도 흔한 성공 스토리가 되어 또 다른 소녀들의 화를 돋우며 억압했을 것이다.

 

한 아이가 질문했었다. 세상은 공정하냐고

아마 그런 세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가까워지기 위하여 인간은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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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루시 후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n*****4 | 2022.04.0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제 친구 중에 문학에 조예가 정말 깊은 친구가 있어요! 이 책은 그 친구가 인스타 스토리에 강추해둔 걸 보고 혹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친구가 이야기한 대로, 문장력이 정말.. 압도적입니다. 어떻게 번역을 했는데도 그 우수함이 느껴지지? 이렇게 느끼는 책이 정말 많지 않은데.. 보물 같은 책을 만나 기쁘네요 ㅠㅠ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고, 작가의 다른 책도 읽;
리뷰제목

제 친구 중에 문학에 조예가 정말 깊은 친구가 있어요! 이 책은 그 친구가 인스타 스토리에 강추해둔 걸 보고 혹해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친구가 이야기한 대로, 문장력이 정말.. 압도적입니다. 어떻게 번역을 했는데도 그 우수함이 느껴지지? 이렇게 느끼는 책이 정말 많지 않은데.. 보물 같은 책을 만나 기쁘네요 ㅠㅠ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고,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또 문학동네 말고 다른 출판사에서도 출간되면 번역 비교도 해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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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루시 Lucy》 - 피식민지 출신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가는 과정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초*공 | 2022.02.17 | 추천23 | 댓글30 리뷰제목
  《루시 Lucy》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       ‘피식민지 출신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가는 과정’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보고 대개 감탄하곤 한다. 혹은 풍경 속의 현장에 직접 가보고 싶다거나 그 장소의 이력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런 것 은 아니었다. 저메이카 킨케이드;
리뷰제목

 

《루시 Lucy》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음 |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

 

 

 

‘피식민지 출신 소녀가 자신에게 다가가는 과정’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보고 대개 감탄하곤 한다. 혹은 풍경 속의 현장에 직접 가보고 싶다거나 그 장소의 이력을 궁금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이가 그런 것 은 아니었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소설 《루시 Lucy》는 이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도시에서 사는 백인 중산층 부부와 이들의 아이를 돌보는 흑인 소녀가 기차를 타고 도시를 벗어나는 길이었다. 창밖에 갈아엎은 밭이 펼쳐진 풍경을 보고 백인 여성은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풍경’이라고 말한다. 반면 흑인 소녀는 ‘저 일을 내가 안 해도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소설 전반부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처럼 동일한 풍경, 혹은 이를 담은 사진을 보고 사람마다 크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풍경을 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설 《루시 Lucy》는 저자 킨케이드의 자전적 이야기다. 저자는 서인도 제도의 영국 식민지였던 앤티가섬에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17살 때 학업을 중단하고 미국 뉴욕 주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 입주 보모(오페어)로 일을 시작했다. 화자는 저자의 분신이었다. 화자의 생년월일이 저자와 동일하게 설정되기도 했다. 킨케이드가 대학에서 잠시 사진을 공부했던 것처럼 화자 루시도 사진을 찍는 것으로 나온다. 이 소설은 ‘길지 않은’ 장편소설이지만 꽤나 다양하고 복잡한 층위가 뒤섞여 있다. 식민주의, 여성으로서의 삶과 페미니즘, 가부장제도, 인종주의와 같이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틀과 맥락이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인종주의적인 측면은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지 않지만, 인종 문제는 소설 속 인물의 배경이 되는 전제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이 모든 문제는 사실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식민주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과 고통

 

 

앞서 언급한 흑인 소녀의 이름은 루시 조지핀 포터다. 루시는 자신의 이름을 무척 싫어했다. 식민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녀가 태어나 자란 앤티가섬은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68년 즈음에도 여전히 영국에 속해 있었다. 1981년에서야 독립했던 이 섬은 공식적으로 무려 349년 동안 식민지였다. 루시의 성 ‘포터’는 예외 없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왔던 조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식민지 현실에서 노예들이 주인의 성을 따랐던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루시의 할머니는 사라져버린 원주민의 후손이었다. 3대에 걸친 여성의 피 속에 식민주의의 잔재가 여전히 흘렀다. 실제로 킨케이드는 《루시 Lucy》의 전편 격인 자전적 소설 《애니 Annie John》를 출간한 해에 딸을 낳았는데, 딸의 이름 역시 애니로 지은 바 있다. 현실의 삶에서도 여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식민주의의 역사가 세대를 건너 이어지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과 실제 작가의 삶이 맺는 관계는 마치 거울에 비친 대칭 이미지처럼 여겨진다. 작가는 피식민지 여성의 목소리를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잊지 않기를 무엇보다 바랐던 것 같다.

 

 

식민지 모국에서 살아가는 피식민지 여성의 삶은 내게 익숙한 삶을 너머 훨씬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오랜 시간 피지배자로 살았던 환경에서 개개인이 그 영향력을 떨쳐내기란 역부족이다. 루시와 엄마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줄곧 ‘나는 엄마와 닮지 않았고,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해도 이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루시는 언젠가부터 엄마가 겪던 두통을 마찬가지로 앓는다. 백인 주인 머라이어의 손을 보고도 엄마를 떠올리는 루시는 ‘자신이 곧 엄마’임을 깨닫는다. “멀리 도망갈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내가 네 엄마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내 피가 네 속에 흐르고 있고, 넌 아홉 달 동안 내 뱃속에 있었으니까.”(74)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다. 엄마가 자신과 다르게 세 남동생을 대했을 때, 엄마에 대한 증오가 두드러졌다. 점령국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간 피식민지 여성이 가부장제도를 내면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루시의 가슴에 칼이 꽂히는 순간이었다.

 

 

난 사회적 지위도 없고,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없었다. 내겐 기억이 있고, 분노가 있고, 절망이 있었다.”(108) 소설 전반에서 루시가 줄곧 보여주었던 정서가 아닐까한다. 루시에게는 엄마처럼 미운 사람이 없었고, 또 엄마처럼 그녀에게 중요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딸 사이의 애증관계다. 루시는 언제나 자신을 친절하게 돌봐주는 백인 여성 머라이어의 모습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머라이어의 손이 엄마와 닮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도 엄마가 보낸 편지는 읽지도 않고 치워버렸다. 하지만 갑자기 아빠가 돈 한 푼 남겨 놓지 않고 세상을 뜬 다음 큰 빚까지 남겨둔 것을 알게 되자, 루시는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엄마한테 보냈다. 아들이 할 법한 행동과는 사뭇 다른 엄마-딸 사이의 모습이다.

 

 

피식민지인에게 가해진 억압과 왜곡된 가부장제 질서의 모순 때문이었을까. 루시의 대인관계, 특히 남녀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육체적 관계에는 탐닉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기대되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란 없었다. 자신이 가진 돈을 전부 준 다음 엄마와 손절했던 루시는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살아가고 싶어 했다. 이게 자신이 늘 원했던 삶이라고 생각했다. 겉보기에 루시는 자유를 얻었지만 사랑이 빠진 대인관계에서 행복감과 희열, 소망이 성취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삐걱거리는 그녀의 대인관계는 식민주의와 가부장제가 남긴 상처의 결과였다. 루시에게는 곁에서 자신의 상처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었고, 스스로도 상처를 돌볼 기회도 놓쳤다. 사랑 없는 공허한 관계에 탐닉했던 것은 더 이상의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던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기만의 키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루시만 고통 받았던 건 아니었다. 자신이 돌보던 아이들의 부모, 머라이어와 루이스의 결혼 생활 역시 파탄을 향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었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애정 표현을 과시했다. 루시는 루이스의 행동이 그저 ‘쇼’임을 곧바로 알아챘다. 게다가 루이스는 가족이 별장에 머물 때, 텃밭을 망친다는 이유로 토끼를 쏘아 죽였다. 이 모습은 피식민지인들에게 가했던 식민지 모국의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백인 가족이 토끼를 위해 치러주는 장례 의식을 보면서 루시는 이것이 이들의 삶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허위’라고 여겼다. 이처럼 소설은 백인 중산층 가정의 기만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을 화자의 눈으로 고발하기도 한다. 그녀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폐허라는 사실”(72)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 - 분노와 절망, 거짓을 걷어내는 의식

 

 

대인 관계는 언제나 삐걱거리고, 매사에 불만과 분노를 드러내던 루시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박물관 가기와 책읽기였다. 머라이어는 박물관에서 본 어떤 사진을 좋아했던 루시에게 사진집 한 권을 선물했다. 사진집을 보면서 루시는 지인들을 떠올렸는데, 특히 한 소년에 대해 말했다. ‘두 팔에 커다란 병 두 개를 안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반바지를 입은 아이 모습’(93)을 담은 사진이었다. 틈나는 대로 사진집을 보던 루시는 자신도 사진기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킨케이드가 사진학과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했던 이력이 있었던 것처럼, 루시도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인화하여 들여다보곤 했다. 여러 면에서 루시는 작가의 분신이었다.

 

 

소설 속의 화자가 사진을 찍고 결과를 들여다보는 과정은 상징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사진 활동’은 앞서 언급했던 식민주의적 질서에 영향을 받은 인간들의 모습을 비추어 주었다. 다시 말해 허위와 허영, 기만적인 삶에 얽힌 대인 관계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를 관찰할 기회를 준 것이다. 또 그녀가 회피하고 가슴 깊이 묻어 둔 상처들을 돌아보게 했다. 사진 찍는 이유를 알지는 못해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 그녀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루시는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 익명성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자유로움과 더불어 행복감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를 기다린 건 공허함뿐이었다. 반면 사진 속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흔들림 없이 응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고통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더라도 말이다. 이 과정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애도하는 과정과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 타인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는 사진의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머라이어의 집에서 나와 독립한 루시는 이제 ‘자신만의 방’에서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사진기는 렌즈 앞에 있는 대상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결과물은 사진가와 피사체를 기록하며 이들의 현존을 증명했다. 반면 루시는 사진 자체가 모든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음을 간파했다. 자신이 인화한 사진을 보면서, “어떤 실재를 찍은 사진이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건 왜일까?”(97)라고 묻기 때문이다. 루시의 궁금증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사진을 보는 감상자의 경험이나 기억에 따라 사진의 진실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실과 사진에 보이는 진실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할 수 있음을 직관했던 것. 그녀는 바로 이 점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사진은 이를 읽고 말하는 자에 따라서 언제든 우리를 기만할 수도, 혹은 진실을 말해줄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이점을 이해한 루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통로로 사진을 활용한다. 촬영자와 감상자가 동일하기에 오히려 현실에 덧씌워진 기만과 허영의 장막을 걷어낼 수 있었고, 거짓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지나가버리는 현실과 달리 사진 속의 현실은 자신의 기억,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마주하며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루시의 사진 활동은 상처를 숨긴 채, 사람들 앞에서 삐뚤어지고 모순된 행동을 보였던 자신과 마주하게 해주었고, 자신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었다.

 

 

루시의 사진 활동이 소설에서 중요하다고 여긴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자기를 발견하는 글쓰기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머라이어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샀던 가죽 장정 공책을 루시에게 선물한다. 침대에 누워 있던 루시는 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신의 이름을 공책에 쓴 다음 이 문장을 썼다. “사랑해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130) 이어서 루시는 수치스러움이 몰려와 오열한다. 사랑과 신뢰가 깃든 대인관계에 실패했던 것은 또 다시 상처입기 싫었기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루시가 사진을 찍고 이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식민주의의 영향과 여성의 굴레 속에서 지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또 자신을 가리고 있던 기만적이고 두터운 장막을 걷어내게 해주었다. 이 과정은 자신과 만나는 글쓰기의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루시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가능성과 사랑이 깃든 인간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덧붙임]

루시는 머라이어가 선물해준 사진집 한 권을 보고 사진기를 사겠다고 결심했다. 이 사진집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으로 생각된다. “한 소년의 사진이 특히 그랬다. 두 팔에 커다란 병 두 개를 안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반바지를 입은 아이였다.”(93)라는 대목을 근거로 한다면 말이다. 이 사진은 브레송이 1952년에 파리에서 찍은 흑백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의 배경인 1968년과도 시간적으로 모순되지 않는다.

(아래 사진 참조)


(c) Henri Cartier-Bresson, Paris, 1952

 

 

[책 속으로]

[1] "한 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 매맞는 여자아이가 있고, 다른 한 곳에는 눈에 보이는 남자에게 목이 베이는 여자 아이가 있구나. 이렇게 넓고 넓은 세상인데 어째서 내 인생에는 선택지가 고작 그 둘뿐이지?" (22)

 

[2] "우리가 그 장면을 똑같이 보고 함께 눈문을 흘릴 수도 있겠지만, 그 눈물의 맛은 다를 것이었다." (29)

- 활짝 핀 수선화가 무리지어 넘실대는 수풀을 보고 한 사람은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은 비통함과 원한만을 느끼는 모습.

 

[3] "내가 머라이어를 사랑했던 때는, 그녀를 보면 엄마가 떠올랐을 때다. 내가 머라이어를 사랑하지 않았던 때는, 그녀를 보면 엄마가 떠올랐을 때다." (49)

 

"머라이어를 보면 볼수록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면모가 점점 더 많이 떠올랐다. 손이 엄마 손과 똑 닮았다." (50)

 

[4] "꽤 어렸을 때였는데도 난 잘사는(그러니까 분명 행복한) 사람들은 다들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뚜렷한 네 계절로 나뉘는 지역에 산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기울어진 자전축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곳이었다. 해가 쨍쨍하고 가뭄에 시달리는 단 하나의 계절만 있는 곳." (70)

 

[5] "그리고 틀림없이 난 여자였다. (...) 엄마처럼 되기 싫다는 말을 얼마나 오랫동안 되뇌며 살았던지 그러다가 사정의 전말을 놓치고 말았다. 난 엄마처럼 되지 않았다. - 난 그냥 엄마였다." (74)

 

[6] "남자의 생애는 언제나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막 알게 된 참이었으니까." (78)

 

"요즘 깨닫기 시작했는데, 무슨 일을 하든 정확한 방식을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찻잔을 쥐는 법이나 포크로 찍은 음식을 옷 앞자락에 흘리지 않고 입으로 가져가는 법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 대부분의 불행에 책임이 있고, 미칠 일도 빈털터리로 생을 마감할 일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80)

 

[7] "어떤 실재를 찍은 사진이 종국에는 그 실재 자체보다 더 흥미로운 건 왜일까? 아직 그 대답은 알 수 없었다." (97)

[8] "자유를 향해 가는 길에서 누구든 재물을 얻고 누구는 죽음을 얻지." (103)

- 폴이 차를 몰면서 대양을 건넜던 위대한 탐험가 이야기를 하면서 ‘자유를 찾아 나서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하자 로드킬당한 동물을 보면서 루시가 대꾸한 말.

 

[9] "난 내가 그 섬에 존재하게 된 기원이, 내 조상의 역사가 사악한 행위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9)

-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와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일을 시킨 역사를 가리킨다.

 

[10] "포터라는 성은 틀림없이 우리 조상이 노예였을 때 그 주인이었던 영국인의 성일 것이다." (120)

- 실제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어머니 이름도 로더릭 포터다.

 

[11] "악마 이름을 붙인거야. 루시는 루시퍼를 줄인거지. 하여튼 내 뱃속에 들어선 그 순간부터 얼마나 성가셨던지." (121)

- 자신의 이름이 지닌 의미를 알게 되어 오히려 실패자라는 기분에서 벗어나 의기양양한 기분을 느끼는 루시.

 

[12] "사랑해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130)

- 루시가 선물로 받은 공책에 썼던 첫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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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5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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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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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0 | 2022.08.26
구매 평점5점
진짜 좋음.. 저메이카 킨케이드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만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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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l*******0 | 2022.08.22
구매 평점5점
좋은 작품입니다. 자메이카 킨케이드의 다른 작품들도 번역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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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 | 2022.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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