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밀리지 말고,
세월에 밀리지 말고,
나이에 밀리지 말고,
나의 길을 가라. --pp.64-65 중에서
철없는 어린 아들과 고기를 먹는다. 아니, 고기를 굽고 자르기를 한다. 나는 고기를 굽는 사람. 나는 고기를 자르는 사람. 아들이 고기를 먹는 내내 나는 고기를 굽고 자르기에 여념이 없다.
아들이 고기를 먹어보라고 재촉하면 잠시 굽고 자르기를 멈추고, 가끔 아주 가끔 기름이 대부분이거나 타버린 고기를 먹는다. 갑자기 울컥하는 이유는 내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내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고기를 굽는 사람. 나는 고기를 자르는 사람.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온 직업.--pp.66~67 중에서
누군가 내게 트위터를 통해 이런 질문을 했다.
-아저씨, 참견과 충고의 차이점이 뭔가요?
잠시 고민 후 나는 이렇게 답했다.
-기분이 나쁘면 참견, 가슴이 아프면 충고. --pp.114 중에서
엄니의 사회학적 병명은 치매이다. 울 엄니가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이유는, 그 옛날이 너무 불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불행했던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소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가의 어떠한 예술품보다 더욱 더 예술스러웠던 당신의 김치찌개가 당신의 기억에서 소거되어 소금국이 되고, 학교에서, 일터에서, 지친 몸으로 돌아오던 나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서 서성이던 집앞의 기억이 소거되어 바깥세상과 격리되어지고, 그렇게 하나둘 뜰채로 건진 세상의 모든 기억들을 걸러내어 하나씩 지워 나간다.
엄니 다행이에요. 떠올리면 힘들고 슬픈 기억들 차라리 다 잊고 떠나가세요. 세상의 모든 기억 다 지워 버리고 단 하나만, 단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떠나가세요.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기억 하나. ---p.118 중에서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다 재능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지. 오랜 시간이 걸려 지치고 초라해진 날개를 바라보며, 나는 날 수 없는 새라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아 버렸지. 하지만 정상에 서야만 멋진 풍경이 보인다고 생각은 마. 세상 모든 것들이 그대로가 다 풍경일 테니까. 누군가가 그랬지. 나이가 드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단풍이 잘 물들면 꽃보다도 아름답다고. ---p.164 중에서
동대문에서 이쁜 옷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입어본다.
옷이 너무 작아 우스꽝스러워진 내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며 점원에게 더 큰 옷은 없냐고 물어보자, 그는 ‘프리 사이즈’라고 심드렁하게 답한다. 내게는 이토록 작은데 프리 사이즈라니?
그의 지나치는 말 한마디로 그동안 내게 부모님이, 형들이, 친구들이, 동생들이 “넌 참 이상한 놈이야”라고 말했던 것에 처음으로 심각한 심증을 품게 된다. 난 인간 표본과 거리가 먼 이상한 사람.---p.184 중에서
아파트에 살면서 윗집 아이가 뛰어다녀서 시끄러우면 올라가 멱살을 잡고 싸우기보다는,
아이스크림이나 통닭을 사들고 가라. 그럼 몇 시간은 조용해질 터이니.
---p.204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