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일단 시작했다 하면 그지(왠지 너무 분명해서 ‘거지’라고 적고 싶지가 않다)가 될 확률이 높은 대표적 사양산업에 뛰어들어 1년을 버텨낸 기록이다. 힘들었고, 힘들었고, 음…… 힘들었다. 얼핏 봐도 힘들겠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왜 이렇게 힘든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찬 족쇄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낀 것도 분명하다. 살면서 이 이상의 의미를 구현해낸 적이 있었던가. 남편 만나고 아이들 낳은 것을 제외하면 이토록 행복감 넘치는 일을 해본 기억이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돈 말고 다른 가치, 대학 말고 다른 방법, 공무원이 아닌 다른 꿈, 인간이 스트레스가 아닌 위로가 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문제 제기, 외로움이라는 허기를 달랠 다른 인생의 가치를 제시해줄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이 욕망에 대한 대안이 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하나하나의 가슴에 이 길 말고 다른 길도 있으리라는 소박한 제안. 그 제안에 수긍하는 독자 1만. 그 1만이 책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이다. 그것보다 잘된다면 진짜 땡큐인 거고, 안 된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다. 다만 계속 그 제안과 대안에 골몰하는 과정이 출판의 시작과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내가 출판사를 차린 이유다.
--- 「왜 굳이 출판사를 차렸나?」 중에서
“그게 자영업자가 짊어지는 고통의 무게예요. 직장인은 똥을 싸도 월급을 받지만, 자영업자는 잠자는 시간에도 임대료가 나가잖아요.” 그렇다고 어쩔 것이냐. 사무실에 대자로 누워서 누가 “이 돈 좀 써볼래?” 하고 가져다주길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은 돈도 얼른 써서 그걸로 책을 만들어 매출을 내야 했다.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창업하고 나서야 깨닫고 말았다. 어쩔 것인가. 나는 부지런히 저자를 만나고, 에이전시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 「초기에 어떤 비용이 들어가는가?」 중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저자를 물색해, 그를 잘 연구하고 관찰해서 그의 인생 현재 지점에 꼭 필요한 책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책이 완성되는 전 과정에서 그의 가장 열렬한 독자가 되어 진심으로 원고에 대한 의견을 전하고 보완해나간다면, 그 책이 나왔을 때 의미가 없을 수 있을까?
--- 「저자에게도 유용한 기획인가」 중에서
나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디자인 툴을 찾아서 해당 기획안에 가장 잘 맞는 디자인 포맷을 찾았다. 프레젠테이션의 표지를 꾸미고 차례를 구성하고, 그것에 맞게 저자의 약력과 책의 목표와 우리 목표에 맞는 본문 구성 요소를 정리했다. 또한 이 책을 볼 독자들의 면면과 경쟁서의 분포 형태, 그 안에서 위치할 이 책의 좌표를 이미지로 나타냈다. 포맷이 새로워지니, 전에는 굳이 하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고, 프레젠테이션을 시뮬레이션하는 동안에 책이 좀더 생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라운 건 정말로 이 책을 만들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진짜 이 기획안을 오케이 하시면,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만들어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 진짜 멋진 책이 될 것 같아!’ 하고 흥분되기 시작했다.
--- 「잘 쓴 기획안, 몇백 선인세 안 부럽다」 중에서
혼자 일하는 회사에서 우울감에 빠지게 되면, 회사의 모든 업무가 정지된다.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대신 집에서 웅크려 맥주나 홀짝이면서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 돈을 못 벌어서 우울해지는 바람에 더 돈을 벌기 어려운 상황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동시에 거래처 대금을 지급하기로 한 날짜에 이를 지급하지 못하게 되면, 안정적인 동반자 관계도 훼손된다. 일한 값을 약속한 날짜에 주지 않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믿을 수 있는 협력사 명단에서 제외되는 일도 장기적으로 좋을 리가 없다. 또한 이제껏 준비하던 아이템 대신, 팔리는 다른 책들은 뭐가 있나 기웃거리면서 나도 저런 책을 한번 내볼까 남의 아류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단기에 빨리 만들 수 있는 걸 찾으려고 혈안이 된다. 이런 책을 내게 되면 가장 먼저 훼손되는 것이 관계성이다. 독자가 생각하는 멀리깊이, 저자가 믿어도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고 원고를 준 멀리깊이, 실제 시장에서 책을 팔아야 하는 마케터가 지향하는 멀리깊이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 「잔고를 수시로 확인하자」 중에서
“출판업은 진입장벽이 낮다. 초기 비용도 많이 들어가지 않고, 처음에는 사무실도 구하지 않고 집에서 해도 된다. 하지만 출판사 경영은 생각보다 힘들다. 책을 낸다고 바로 수익이 나지도 않고, 수익이 나지 않은 책들이 쌓이게 되면 어느새 1~2억 적자를 보기도 한다. 다른 업종의 창업이라고 해서 쉬운 건 아니겠지만, 출판사 창업은 생각보다 알고 있어야 할 것이 많다. 글만 잘 다룬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기획과 마케팅, 그리고 돈의 흐름에 대한 감각도 있어야 한다. 시장이 흘러가는 방향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 「창업 선배와의 대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