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말도 하지 마라, 블리문다야. 그저 너의 그 아름다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하렴. 그 눈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졌단다. 그런데 이상하구나. 블리문다의 옆에 서 있는 저 키가 크고 낯선 남자는 누구일까? 저 아이도 모르는 사람 같은데……. 이런! 저 남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왔는지 저 아이는 전혀 모르고 있어. 왜 내 힘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낡아빠진 옷과 피곤에 지친 표정, 한쪽 손이 없는 것으로 보건대, 저 남자는 분명히 군인이야. 잘 있거라, 블리문다. 난 두 번 다시 널 보지 못할 거다. 그때 블리문다가 바르톨로메우 로렌수 신부에게 말했다. 저기 우리 엄마가 있어요. 그리고 자기 옆에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향해 얼굴을 돌리면서 물었다.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블리문다에게 대답했다. 발타자르 마테우스요. 혹은 세트 소이스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그리고 발타자르는 이 여자야말로 그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85
나는 지금 성스러운 어머니 교회의 가르침을 말하고 있네. 이탈리아 음악가가 말한 것을 언급하는 것이 아닐세. 예, 그렇군요. 저도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있어 하느님은 인격적으로 세 분이로군. 그런데 이제 내가 자네에게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며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셨을 때 혼자였다고 말한다면, 자네는 내 말을 믿나? 신부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당신 말을 믿습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도 모르는 것을 자네더러 믿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세. 그러니 어느 누구에게도 내 말을 옮기지 말도록 하게나. 발타자르,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는 이 기계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로 이런 일들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지냈었네. 어쩌면 하느님은 하나일 수도 있고 셋일 수도 있고 심지어 넷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인간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하지. 또 어쩌면 하느님은 수십만 명의 병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단 한 명의 병사일 수도 있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한 분인 동시에, 병사이자 장교이고 장군이며 외팔이인 것이지. --- pp.300~301
만약 바르톨로메우 로렌수 신부가 파사롤라를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마프라에 수도원을 세우는 계획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도록 받쳐 주는 것은 바로 블리문다가 금속 구체 속에 모아 놓은 의지들이었다. 저 밑에서는 또 다른 의지들이 중력의 법칙과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서 지구에 달라붙은 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가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수레들을 가까이서부터 저 멀리까지 셀 수 있다면, 2,500대까지 셀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 위에서 내려다보면 수레들은 좀처럼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다. 수레에 실린 짐마저도 별것 아니게 보였다. 그러나 인부들의 모습을 보려면 훨씬 더 가까이 내려가야만 한다. --- p.414
보기 흉할 만큼 금간 곳이 눈에 띄었지만, 밀짚과 낡은 담요를 두 장만 깔면 왕실의 침대만큼이나 안락하게 변했다. 그들은 성적 욕구를 억눌렀던 조용한 피조물이었기 때문에 그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지 않았다. 오직 가브리엘만이 뭇사람의 상상보다 훨씬 빨리 닥쳐온 그들의 운명이 변한 후, 사랑의 만남을 위해 그곳을 찾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블리문다와 같은 여자는 결코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항상 먼저 움직이고, 먼저 말을 하고, 먼저 행동을 하는, 그리고 앞장서서 남자를 오두막으로 밀어 넣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목으로 치솟는 갑작스러운 불안감 때문에, 발타자르를 껴안는 불같은 힘 때문에, 그에게 입 맞추는 그녀의 열정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불쌍한 두 입. 그들에게 젊음은 이미 없었다. 빠진 이와 부러진 이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러나 사랑은 온전하게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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