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시니컬한 유머 작가” 커트 보네거트
보네거트 특유의 풍자와 블랙유머 폭탄이 터진다!
‘우리 시대 최고의 블랙유머리스트’ ‘진정한 의미의 휴머니스트’ ‘미국 최고의 반전 작가’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는 작가 커트 보네거트. 많은 유명 작가와 영화감독, 뮤지션 등에게 영향을 주고 사랑을 받았던 보네거트이지만, 미국에서와는 다르게 국내에서는 그의 작품이 소개된 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일종의 장르문학 작가로 분류되었기 때문일 텐데, 작가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오히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글쓰기를 지향했고, 그가 다루는 주제 또한 인류가 지닌 보편적인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기는 누리지 못했지만, 보네거트는 그럼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를 ‘아이돌 스타’처럼 좋아했던 무라카미 하루키나 보네거트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은 박찬욱 감독 등 여러 작가와 유명인들에 의해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그의 이름과 작품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단 한 편이라도 읽고 나면 그에게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소설로 순문학 팬들과 장르문학 팬들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고, 1960년대 반전운동과 히피의 카운터컬처를 대표했으며, 파편적인 구성과 메타픽션적 글쓰기로 토머스 핀천, 저지 코진스키, 존 바스 등과 함께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흐름을 만들어낸 작가 커트 보네거트. 전쟁과 학살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갈수록 환경 파괴가 심각해지는 현실 속에서, 인간을 불신하면서도 끝까지 인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던 그가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택한 방법은 바로 ‘유머’였다. 그는 유머야말로 공포에 대한 반응이자 신을 찾아서 안도하고 싶은 몸짓이라고, 그리고 모든 훌륭한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위대한 농담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보네거트는 “아우슈비츠의 희생자들에게도 무시무시한 종류의 웃음이 있을 겁니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아무리 비극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본질적으로 웃음을 잃지 않았다.
1922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의 독일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시끌벅적한 집안 분위기 아래서 유머를 체득하고, 고등학교 시절 글쓰기와 과학 전공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유럽으로 간 뒤 독일군 포로가 되어 13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쓸어버린 드레스덴 대공습을 경험한 커트 보네거트. 그는 이 가공할 만한 인류 대학살극에 큰 충격을 받고 훗날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 작가로 거듭났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교묘한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이 인간을 그리고 이 지구를 위협할 수 있는 광기와 무분별한 오만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다. 『마더 나이트』 또한 보네거트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핵심에 놓인 소설이다.
‘저 위의 누군가’가 가장 사랑한 작가, 커트 보네거트
보네거트는 1966년 재출간된 『마더 나이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내 이야기들 가운데 내가 그 교훈을 아는 유일한 이야기이다. 뭐랄까, 대단한 교훈은 아니고, 그저 우연히 알게 된 교훈이다. 그것은, 즉 우리는 가면을 쓴 존재라는 것, 그래서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종류든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것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든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것이든. 그러나 그 가면에 대한 책임은 분명 자신에게 있다. 그러므로 인류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저지른 온갖 범죄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 누구의 탓으로 돌려서도 안 되고 돌릴 수도 없다. 하워드 W. 캠벨처럼 말이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테러가 자행되고, 분쟁과 내전이 끊이지 않고, 온갖 비도덕적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무차별 가자지구 공습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사태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가가 바로 커트 보네거트이다. ‘살아생전에 인간의 양심과 선량한 휴머니즘을 열렬히 옹호했고, 히틀러와 조지 부시와 미국 사회를 맹비난했던’,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했던 작가였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보네거트가 사망했을 때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비록 그가 1997년 발표한 『타임 퀘이크』를 끝으로 더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팬들은 꾸준히 그가 다시 펜을 들기를 기다렸고 새로운 작품을 읽게 되리라 생각했기에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풍자와 블랙유머 가득한,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드는 작품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우리 시대에도 ?전히 커다란 울림을 만들 수 있기에 그 안타까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