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은 우는 사람들이다. 에드워드는 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들의 흐느낌은 오르간 곡조처럼 크게 울리면서 공기를 죄다 빨아들인다. 자신의 슬픔과 두려움을 감당하기도 힘든 소년에게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감정을 들이미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면부지 타인들의 눈물이 그의 생살을 찌른다. 에드워드는 귀가 딸각대고, 사람들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는다. 그러다 간호사가 휠체어를 복도 끝으로 밀고 가면 자동문이 열리고 그들은 밖으로 나간다. 에드워드는 죽음 같은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다친 양다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 pp.48~49 「2977편 항공기에 탑승한 사람들」중에서
“용기를 내야 해서 네 엄마의 블라우스를 입었지. 난 더 강해지고 싶어, 에드워드. 나를 위해서, 그리고 너를 위해서.”
에드워드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제 레이시가 입은, 작은 장미가 그려진 셔츠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가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씩은 입던 옷이다. 익숙한 옷을 보니 침을 삼키기가 힘들었고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민다. ‘그건 이모 옷이 아니라 엄마 옷이에요!’ 하지만 거의 동시에 분노가 수그러든다. 자신도 형의 옷을 입은 마당에 레이시가 언니 옷을 입은 걸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 그 셔츠가 이모에게 엄마의 용기를 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형의 옷을 입으면 어떤 힘이 생기는지 궁금해진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빨간 운동화, 오렌지색 파카, 파자마는 형을 가까이 두는 수단일 뿐이었다. 이제 에드워드는 조던의 파란 줄무늬 스웨터를, 이모는 엄마의 블라우스를 입었다. 레이시가 그를 끌어당겨 마지막으로 포옹할 때, 에드워드는 ‘우린 누굴까?’라는 생각을 했다.
--- p.191 「2977편 항공기에 탑승한 사람들」중에서
초록색 안락의자에 털썩 앉아, 존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들어오길 잘했다 싶다, 지하실에 돌아가는 것을 미룰 작은 핑곗거리를 찾아서 다행이다. 오늘 밤 취침 시간을 미뤄서 열다섯 살로 깨어나는 걸 늦추고 싶다. 안락의자 옆에는 둥근 테이블이 있고, 여러 가지 색의 서류철들이 쌓여 있다. 발 주위에 커다란 군용 더플 백 같은 가방이 두 개 있었는데 가방 하나를 발로 건드리니 쉽게 움직인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가뿐하다. 손전등 불빛을 비춰보니, 두 가방 모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맨 위 서류철을 무릎에 올려놓고 펼쳐본다. 존의 단정한 필체로 작성된 서류가 있고, 주방 조리대에 있는 장보기 목록과 비슷하다. 싱싱한 사과, 칠면조 가슴살, 두유, 초콜릿을 씌운 아몬드…. 하지만 이 서류는 장보기 목록이 아니었고, 각각의 이름 옆에 숫자와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 34B, 12A, 27C. 이름 다섯 개에만 옆에 숫자가 없었다.
서류를 짚은 손끝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름이 191개라는 건 세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탑승자 명단이다.
--- pp.279~280 「더플 백과 숨겨진 이야기」중에서
“그럼, 자, 잘 자.”
“잘 자. 아침에 보자.”
두 사람은 좀 큰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에드워드는 가방을 들고 비척비척 방에서 나온다. 베사가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현관문으로 나와서 이모네로 가다가 그늘 속에서-쉐이의 방에서 보이지 않는 자리다-털썩 주저앉는다. 의도한 게 아니라 몸에 힘이 풀려서 그랬다. 속으로 중얼댄다. ‘이제 집이 없네.’ (…)
땅바닥에 모로 누워 웅크린다. 9월 밤이 놀라울 만치 춥다. 검은 물과 검은 하늘에 빠져가며 눈을 감는다. 사고 후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뺨이 젖고 어깨가 들먹인다. 눈물이 주변의 바다 수위를 높인다. 파도가 솟구쳤다가 흰 포말로 부서지고, 게리나 고래를 만나게 될지가 궁금했다.
--- pp.253~254 「더플 백과 숨겨진 이야기」중에서
“에디 애들러?”
그녀가 묻는다.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꼭 닮았네.”
“유감이죠.”
하지만 이 말을 들으니 기쁘다. 형과 비교하는 말을 오랜만에 듣는다. 마히라를 찬찬히 본다. 어깨 길이의 검은 머리, 하트형 얼굴, 쉐이보다 몇 단계는 짙은 피부. ‘형이 누나를 사랑했군요’라고 속으로 중얼댄다.
에드워드가 말한다.
“편지를 받았어요. 난 몰랐어요. 형과의 사이를.”
--- p.385 「에드워드에게」중에서
마담 빅토리가 팔을 잡아 문으로 데려간다. 문을 열기 전 그녀는 허리를 굽히고 귀에 속삭인다.
“네게 벌어진 일에는 이유가 따로 없어, 에디. 넌 죽을 수도 있었지만 죽지 않았을 뿐이야. 복불복이었지. 네가 어떻게 되도록 누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그건 네가 아무 일이나 해도 된다는 뜻이지.”
그러고 나서 문이 열렸고, 에드워드는 문 사이로 나가 로비 가운데 선다. 이제 보니 로비는 숲처럼 꾸며져 있었다.
--- p.414 「에드워드에게」중에서
닥터 마이크가 말한다.
“이미 일어난 일은 뼛속에 새겨지거든, 에드워드. 피부 속에 계속 남지. 없어지지 않아. 자신의 일부가 되어, 죽을 때까지 매 순간 일부로 남아 있을 거야. 처음 나를 만난 순간부터 넌 그걸 안고 사는 법을 배우고 있지.”
--- pp.443~444 「에드워드에게」중에서
처음에는 네 목소리를 들었다고 믿지 못했단다, 에드워드. 환청인 줄 알았지. 그런데 같은 말이 반복해서 울리고 자석처럼 당기자 난 그쪽으로 움직였어.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난 철판을 밀어냈어. 문을 여는 느낌이었고, 거기 기다리다 화난 것처럼 성난 네가 있었어. 너는 나랑 눈을 맞추면서 악을 썼어.
“나 여기 있어요!”
너를 물끄러미 쳐다봤지. 어린 소년은 아직 허리에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어. 결국 네가 다시 소리쳤지. 난 앞으로 걸어가 너를 안았고, 넌 내 목에 팔을 둘렀지. 내가 널 구하는 동시에 너에게 구원받은 느낌이었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갈 때, 넌 조금 더 나직하지만 똑같이 강렬하게 되뇌었어.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 pp.453~454 「에드워드에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