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사가 이야기를 할 때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격지심인지 몰라도, 그녀의 태도에는 묘한 질책이 담겨 있었다. 어린 동생이 살인사건에 휘말려 사라질 동안 너는 연락도 뭣도 없이 대체 뭘 하고 있었냐, 하고 말이다. 나는 그런 시선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무심했던 건 사실이다. 아니 의도적으로 관심을 끊고 살았다. 그러나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은 건 아버지나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 p.26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있었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어떻게 혼자 살 수 있었을까? 해마다 내야 하는 재산세와 소소한 공과금들, 생활비, 청소, 빨래, 밥, 분리수거, 쇼핑과 반상회 모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요구되는 집안일들, 새 학기마다 되풀이되었을 여러 가지 과정들을 동생은 대체 어떻게 거쳐온 걸까?
그 중에서도 도돌이표처럼 돌아가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대체 어디에서 돈을 구한 걸까? 은행 거래 내역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랍게도 동생의 통장에 일정 금액이 꼬박꼬박 입금되고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아버지가 보낸 돈이 아니었다. 이미 요양사에게도 확인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돈을 보낸 사람은 누구인가? 왜 그 사람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돈을 보낸 걸까? 아니, 대체 왜 보낸 건가? --- p.70
거리는 조용했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당분간 그런 주택가가 계속될 터였다. 소년은 걸음을 늦췄다. 남자를 앞질러 보내버릴 생각이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다시 힐끔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남자와 소년의 눈이 다시 마주쳤다. 이번에는 남자가 소년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엉겁결에 뒷걸음질을 쳤다. 남자가 소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소년을 지나치는가 싶더니 그가 갑자기 팔을 뻗었다. 남자의 손이 소년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것은 조용하게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숨이 막힌 소년은 가는 팔다리를 퍼덕이며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주머니에 들어 있던 건전지를 냅다 남자의 얼굴에 던졌다. 남자는 비명도 없이 코를 잡은 채 몸을 굽혔다. 소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껑충껑충 달아나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는 비명이 소년의 목에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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