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그 순간, 내 목숨이 끊기려 하는 그 순간, 태어나서 지금까지 끝내 알 수 없었던 생의 절대적 순간, 그 순수한 한 점의 순간을 사는 거다. 행위가 온전히 봉헌되는 그 순간, 다가올 미래에 침식당하지 않는 그 순간.... 그것을 내게 줄 이는 다카노, 그 여인을 나는 사랑한다. 더할 수 없이 사랑한다. 세계에는 사랑하고자 하는 정열만 있을 뿐이다. 사랑받고 싶다는 바람은 결코 정열이 아닐터! 나는 그 정열을 모조리 쏟아부어 지금 여인 곁으로 가려 한다. 그 눈동자를 보려 한다....
--- p.147
수많은 불가사의를 긍정하기 위해, 그저 하나의 불가사의를 믿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양자택일일 뿐이었다.마사키는 믿은 쪽을 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커다란 불가사의에 의해 일어났을 한 개의 불가사의가, 지금 그곳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곳에 있는 마사키를 엄습해 왔다. 그것은 모든 불가사의가 산의 주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엄청난 일이었다. 마사키는 전율했다.
--- p.
밤이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산 속에서는, 어둠은 바닥으로 바닥으로 첩첩이 쌓여 올라온다. 어느 틈엔가 복사뼈를 덮고 무릎을 덥고문득 가슴팍까지 차오른 것을 깨닫는다. 어둠의 물결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얼굴을 삼키고, 머리 위로 아득하게 이윽고 하늘까지 마신다. 죽은 물고기가 깊은 바다 밑에서 수면을 아득히 올려다보듯이, 그 작은 비늘들이 이제 달빛을 받아 빛나지 못하듯이, 그렇게 이 세계도 어둠과 함께 깊은 나락으로 나락으로...
--- p.30
그런데 그런 그의 용모에, 왜 악마나 아수라에게나 비할 만한 묘한 느낌이 담기는가. 그것은 그의 뇌리에 항상 이글거리는 '정열'이 있었기 때문일 터였다.
이 정열이라는 말은, 그가 이백(李白)의 시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마사키는 시를 공부하며 몇몇 잡지에 시와 시론을 기고해왔다. 그의 시는 대단히 참신했다. 세상에 넘치는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마사키는 그들의 선두를 달리는 이로서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었다. 특히 바이런 경에 대해 논하면서 그가 사용한 이 '정열'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몸이 떨리는 듯한 신선한 공감을 느꼈다고 토로했고, 이후 마사키를 평할 때면 반드시 이 말이 따라다니곤 했다.
마사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정열'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숙명적인 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병은, '참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지니기 위해서는, 천천히 나날을 쌓아가며 그 끝에 무언가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순간적 초월, 지속적이지 않은 단 하나의 순수한 앙양(昻揚), 일격에 생의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뒤 한번 안 돌아볼 치열한 충동의 체험을 갈구했다. 피는,끓는 물처럼 소용돌이치지 않으면 금세 괴어 색이 변하고 응고하고 만다. 육신은, 고통스럽도록 거세게 움직이지 않으면 곧 뜨뜻미지근한 권태의 나락에 가라앉는다.
'정열'은 뜨겁게 녹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한 덩이 유리이다. 그것을 생활에 쓰고자 한다면, 거기에 세상의 범용한 형태를 부여하고, 만만하게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식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식어버린 유리에 남겨진 빛은 가냘프기 짝이 없다. 이윽고 그 빛마저도 잃고 손때에 흐릿해져가서 마침내는 일상의 너무도 무의미한 순간에 뜻하지 않게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것이다.
마사키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떤 형태로 자신의 정열을 성취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각오는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열정을 따르기에는, 마사키는 지나치게 지적이었다.
'정열'이 행동에 연결되려는 순간, 마사키는 그때마다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두어들이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로 지금 자신이 만지려 한 곳을 바라보고 만다. 그리고 궁리하는 것이다. 참으로 만져볼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만진 뒤의 일은 어떨지, 만지지 않았을 경우엔 어떨지. 그러는 동안에 '정열'은 시시각각 식어간다. 형태를 이루지 못한 채 식어가는 것이다. 차라리 사라져버린다면 좋았으리라. 그러나 허망하게도 '정열'이 있던 그 자리에는 반드시 둔중하기 짝이 없는 추괴한 덩어리가 남고 마는 것이었다. 마사키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둔중한 무게를 견딜 수 없었다.
--- p.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