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11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380쪽 | 578g | 135*210*25mm |
ISBN13 | 9788960907034 |
ISBN10 | 8960907030 |
발행일 | 2021년 11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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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0쪽 | 578g | 135*210*25mm |
ISBN13 | 9788960907034 |
ISBN10 | 8960907030 |
MD 한마디
[메리 올리버의 전미도서상 수상 시선집] 메리 올리버의 초기 시부터 대표작까지, 엄선한 142편의 시를 엮은 시선집. 번역가 민승남의 유려한 번역과 사진가 이한구의 아름다운 작품이 감동을 더한다. 그의 시를 통해 죽음을 껴안은 삶, 생명의 찬란함을 목격하며 되뇐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다. -시MD 박형욱
1 비 푸른부전나비 죽음이 찾아오면 블루베리를 따다가, 뉴욕 오스터리츠, 1957년 개의 무덤 골든로드 폭포(메이 스웬슨을 위하여) 작약 오늘 아침 또다시 소나무 숲에서 마렝고 늪 앨라배마 린든 근처 들판 북양가마우지 쇠고둥 악어 시 매 황금방울새 쌀 양귀비 아침 공기에 스민 독기 비통 아침 물뱀 왜가리 눈덧신토끼 해 겨울 쓸쓸한, 흰 들판 능소화에 잠시 멈춘 벌새 흰 꽃 시월 2 당신이 할 수도 있는 몇 가지 질문들 모카신 꽃 부처의 마지막 가르침 봄 싱가포르 소라게 백합 백조 인도네시아 왜가리 몇 마리 새벽 다섯 시 소나무 숲에서 과수원에 사는 작은 올빼미 웃는물총새 검은 물 위로 피어난 수련 자연 연못 여름날 장미, 늦여름 어쩌면 들판을 드나드는 흰올빼미 3 돔발상어 아침의 시 분노 기러기 로베르트 슈만 불가사리 여행 방문객 스탠리 쿠니츠 한두 가지만 거북 해돋이 두 종류의 해방 풍경 산酸 나방 1945?1985, 추모일을 위한 시 해바라기 4 팔월 버섯 번개 왜가리 첫눈 유령 독수리 오하이오에 내리는 비 보스턴 대학병원 앉은부채 개화 하얀 밤 물고기 늪을 건너며 혹등고래 만남 바다 행복 테쿰세 블랙워터 숲에서 5 숲에서 잠이 들어 홍합 검정뱀 봄 딸기 달 트루로 곰 왕국에 들어가니 수사슴 달─ 곤충 도감을 보면 꿈 등불 뼈의 시 잎사귀 이모 사냥꾼의 달─ 곰을 먹으며 마지막 날들 검은호두나무 늑대 달 밤의 여행자 6 엘지 이모의 밤의 음악 농촌 개울 장미 시골의 겨울 가족 얼음 조개 장수 배에서 물을 퍼내며 까마귀 토끼 제임스 라이트를 위한 세 편의 시 블랙워터 연못에서 7 해티 블룸 교실의 봄 알렉스 인디언에 대해 배우기 야간비행 앤 해답 에스키모에겐 ‘전쟁’이라는 말이 없지 마주침 마젤란 월든에 가기 리버 스틱스, 오하이오 8 여행하지 않고 집 스노벨트 너머 고향에서 온 편지 나무들 꿈 살인자의 집 시골에서 자라 수영 가르치기 새로운 땅에서의 아침 에어 강의 백조들 돌아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만 하지.
유한한 생명을 사랑하기.
자신의 삶이 그것에 달려 있음을
알고 그걸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
놓아주기.
유학생일 땐 도서관에 가길 좋아했다. 방학 땐 거의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는데 개가식 도서관은 일종의 보물섬 같았기 때문이다. 여름의 도서관만큼 쾌적한 곳도 없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만해도 한국문학 섹션은 따로 없었지만, 일본어 원서나 영어 번역서로 된 일본 작가들의 책들은 많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만으로도 서가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해 맨 처음엔 무라카미 하루키로 시작을 했다. 작가 자신이 번역가이기도 했으니 두 언어의 가교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 다음으로 읽기 시작한 건 미국의 작가들이었다. 처음엔 잘 아는 작가들로 시작해 점점 모르는 작가들, 낯선 작가들로 옮겨 갔는데 그러다 발견한 시인이 메리 올리버다.
아마도 메리 올리버가 낯설지 않았던 건 그 즈음에 출간된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1935년생에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시인답게 시집들도, 산문집도 많아서 꽤 오랫동안 흡족하게 읽을 수 있을만큼 책들이 충분했다. 여담이지만, 메리 올리버의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책 날개나 책 뒷표지에 실린 사진. 평생을 반려견과 함께 한 메리 올리버는 얼굴만 담은 프로필 사진 대신 집안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편안하게 찍은 사진을 함께 싣곤 했는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고 평온해서 좋았다.
(여담이지만, 그와 평생을 함께 산 M.은 사진작가였다.)
사실 기존에 내가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이 가볍고 시끄럽고 통속적인 것이었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나 메리 올리버 덕에 미국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그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가 전인적 존재라는 자각과 함께 꽉찬 충일감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기러기』는 '선집'이기 때문에 메리 올리버가 평생에 걸쳐 써온 시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수많은 메리 올리버의 책 중 단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표제작인 「기러기」를 비롯해 메리 올리버의 시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시들이 선별되어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학생 시절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던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집이기도 하다. 그때의 햇살과 공기... 이미 늙었다고 생각했던,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하는 조바심과 두려움이 종종 엄습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겨우 서른을 갓 넘겼던 풋풋했던 때의 나.
대체로 시인은 일상의 경험을 통해서 자연이 어떻게 상처받고 나약한 인간을 치유하고 어루만져 주었는지, 그 과정에서 인간은 얼마나 인간다워질 수 있는지를 고백한다. 메리 올리버의 시를 읽다 보면 걷고 싶다는, 자연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그 과정 자체가 인간 혹은 인간 사회에서 보호받고, 그곳에서 받은 상처들을 치유하는 행위이다), 그런 감정들과 더불어 내가 좀더 좋은 사람,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감정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내가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사람인가 하는 자각(우리는 왜 이 사실을 자주 잊고 살까?)에 목끝까지 행복감이 꽉 차는데, 그 감정이 너무 생경하고 벅차서 오래도록 품고 싶어진다.
그리고 종국엔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질문은 하나뿐.
어떻게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다. 시를 만날 때마다 긴호흡으로 시를 떠올리면서 작가의 공간, 시간, 사유, 시선의 끝, 촉감과 자연들을 떠올리는 날들의 연속이 된다. 어떠한 마음으로 그녀가 머무른 공간에서 삶을 엮어왔는지 촘촘하게 떠올려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인디언들이 작품에서도 언급된다. 그들을 떠올렸고 그 인물들을 글로 남겼다는 것. 할머니의 발길과 손길, 자신에게 건네는 대화들도 떠오른다. 가족들에 대한 시, 그녀의 주변을 채웠던 인물들을 떠올리면서 남긴 시들도 만날 수 있었다.
사랑하기... 끌어안기... 놓아주기 252
난 당신이 진흙을 축복처럼 두 손 가득 쥐었으면 좋겠어. 67
빛으로 목욕하기. 하나의 응답. 288
해바라기에게 질문하는 걸
두려워 마!
태양을 따라가는
...
씨들... 따로 떨어진 우주처럼
고독하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찬양으로 만들어가는
긴 여정은 녹록지 않지...
수수한 얼굴들, 소박한 이파리 옷,
꼿꼿이 서서 불타오르는 땅속 거친 뿌리들과 이야기 나눠. 200
어린 날 마당을 가득히 채워준 꽃밭에는 해바라기가 있었다. 그 해바라기를 바라보면서 작가가 사유한 시선은 기민하며 태양과 질문을 연관 지으면서 뿌리와 잎, 씨까지 그녀가 작품으로 그려 넣는 깊은 깨달음에 감동하게 된다. 삶과 찬양, 긴 여정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외에도 자연을 깊게 호흡하는 작가의 시선은 매우 놀랍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다. 세상을 함께 공존하는 생명체들을 무심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과 삶을 무수히 연상하면서 인생을 켜켜이 쌓아올린 날들을 무수히 만날 수 있었던 멋진 시집이었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세상의 놀라운 조화로움을 떠올려보게 한다. 물리학, 생물학, 화학, 식물학 등 조화로움에 감탄하면서 신앙적인 부분까지도 연상하면서 만나는 즐거움은 더욱 경이롭게 한다. 이 시집도 그러하다. 작가의 시선과 눈길, 사유들을 함께 거닐었던 기나긴 날들은 충족했고 축복이었다. 월든을 만나기도 하고, 인디언을 만나기도 했다. 잔인한 역사를 기록한 인물도 떠올려보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Acid(산) 작품도 매우 인상적이다. 놀랍고 섬뜩한 교활함을 의외의 순간에 우리는 마주하기도 한다. 이 작품도 그러한 순간이었다.
기적과 용기에 대해서도 작가는 언급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도 경이롭고 깊다. 무엇 하나도 가볍지 않다. 주위를 채우는 소리와 움직임까지도 작가는 긴 시간을 요한다. 그 작품들을 하나씩 따라가면서 그 공간에 머무르면서 그 풍경과 소리와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도 관심이 가는 첫 단추가 되었다.
당신이 행복해질 용기...
당신이 기도할 용기... 160
요제프 멩겔레 : 아우슈비츠에서 잔인한 생체 실험을 자행한 나치 의사로 '죽음의 천사'로 불린다. 198
독일은 다시 그 쇠 발톱을 드러내지, 영원히. 196
자카르타에서,
...
섬뜩한 입을 가진 아이가
구걸하는 걸 보았어.
먹고살기 위해 일부러 낸 상처임을
알 수 있었지.
...
교활한 표정...
그걸 한 방울의 acid처럼 지니고 다니며
기억하지,
이따금,
...
이 넝마,
...
신맛을,
위대한 원동력이 되는
모욕감과 분노... 190
삼 년 전, 십팔여 년을 함께 한 고양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 아내가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 마지막 며칠 고양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페에 물이 찼고 어떤 자세를 취해도 숨을 쉬는 것이 불편해져만 갔다. 나와 아내는 고양이의 병간호를 십팔 개월 동안 했고, 그 긴 간호가 시작될 때 참가하였던 한 고양이 모임의 참가자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 고양이는 저 때문에 쉽게 떠나지도 못하고 고생을 했어요, 지금이라면 다른 선택을 할 거예요.
마렝고 늪
구정물에서 금잔화 피어나네.
모기떼 모슬린 천같이 덮인 늪가에서
구름옷 걸친 백로 날아오르네.
안개 같은, 운모 같은 보슬비 사이로
시든 이끼 벌판 되살아나네.
나는 죽는다면, 비 오는 날
죽고 싶어―
긴 비, 느린 비, 영원히 그칠 것 같지 않은 비.
그리고 하늘이 비를 삽으로 퍼내고 퍼내는 동안 열 수 있는
작은 의식을 치르고 싶어,
그리고 그 의식에 오는 사람은 커다란 늪 가장자리를 돌듯
천천히, 생각에 잠겨서 여행하겠지.
기로에 서다, 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나의 기로, 라면 나는 선뜻 선택할 수 있다. 나는 후회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런 탓에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일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기로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누군가의 앞에 놓인 길을 대신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리 쉽게 제스처를 취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상태로 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고, 수영을 한다. 선택을 미루고, 아는 길을 아는 제스처로 오간다.
아침
소금이 원기둥 유리통에서 반짝이고 있어.
푸른 그릇에 담긴 우유. 노란 리놀륨.
고양이가 베개 위에서 검은 몸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
작은 친절의 몸짓에 곡선미로 응답하는 거지.
그러곤 우유를 핥아 그릇을 깨끗이 비워.
그러곤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해.
아무 이유 없이 가볍게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어가
풀 위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어.
나는 잠시 고양이를 지켜보며 생각해.
내가 야생의 말들로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나는 추운 부엌에 서서 고양이에게 고개를 숙여.
나는 추운 부엌에 서 있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경이로워.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천만원을 갚으라고 통보하였다. 나는 직장을 그만 둔 상태였고 (물론 아버지는 알지 못하였다), 아내의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아버지가 (목돈이 없는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의 이름으로 개설한 삼 년 만기의 적금 통장에 매월 오십 만원 가량을 이체하였다. 적금의 마지막 몇 달은 아내의 카드빚으로 감당했는데, 이후 나는 다시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당신이 할 수도 있는 몇 가지 질문들
영혼은 쇠처럼 단단할까?
아니면, 올빼미 부리 속 나방의 날개처럼
가냘프고 부서지기 쉬울까?
누가 영혼을 가졌고, 누구는 갖지 못했을까?
난 계속 주위를 둘러보지.
말코손바닥사슴의 얼굴이
예수의 얼굴처럼 슬퍼.
백조가 흰 날개를 천천히 펼쳐.
가을이면, 검은 곰은 어둠 속으로 나뭇잎들을 옮겨.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
영혼은 형상을 갖고 있을까? 빙산 같은?
벌새의 눈 같은?
뱀과 가리비처럼 폐가 하나일까?
어째서 나는 영혼을 갖는데, 제 새끼들을 사랑하는
개미핥기는 영혼을 못 갖는가?
어째서 나는 영혼을 갖는데, 낙타는 영혼을 못 갖는가?
그러고 보니, 단풍나무는 어떨까?
파란 붓꽃은 어떨까?
달빛 아래 홀로 앉아 있는 작은 돌멩이들은 어떨까?
장미, 레몬, 그리고 그 빛나는 잎들은 어떨까?
풀은 어떨까?
다른 하나의 질문은 아버지가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의 일이다. 이삿짐 정리를 위해 들렀던 내게 아버지는 어린 시절 내가 받은 상장이 잔뜩 든 상자를 내 앞에 놓고 물었다. 가져갈까? 나는 대답했다. 됐어요. 상자를 들고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집 옆 공터에는 아버지가 파놓은 구덩이가 있었고, 아버지는 다른 잡동사니들과 함께 내 어린 시절의 기록물을 태웠다. 열기로 붉어진 얼굴로 내가 아버지를 도왔다.
블랙워터 연못에서
밤새 비 내린 후 블랙워터 연못의 뒤척이던 물결이
잔잔해졌어.
나는 두 손으로 물을 뜨지. 그 물을
오랫동안 마시지. 물에서
돌과 나뭇잎, 불 맛이 나. 물은
내 몸속으로 차갑게 떨어져, 뼈들을 깨우지.
뼈들이 내 몸 깊숙한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오, 방금 일어난
그 아름다운 일은 뭐지?
두 달 전, 코로나를 앓고 난 이후 (인과 관계를 알 수는 없으나) 아버지의 영혼과 육신에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나는 한 달 보름여 동안 주중에는 점심을, 주말 중 하루는 저녁을 부모님과 함께 했다. 나는 여전히 후회하기를 싫어 하는 인간이고, 그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쉬운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렇게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독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다.
메리 올리버 Mary Oliver / 민승남 역 / 기러기 (New and Selected Poems 1) / 마음산책 / 379쪽 / 2021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