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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007이동
리뷰 총점9.4 리뷰 21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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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24g | 125*193*21mm
ISBN13 9791191816075
ISBN10 1191816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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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90년대 생에 관해 설명해놓은 책에서 보니까 우리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집단문화를 싫어하고 물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대.”
“개소리네.”
“개소리지.”
워라밸 따위 개나 줘버리고 집단문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물질이 제일 중요하다. 집도 절도 없이 쫓겨나 보니 그렇다. 마치 우리를 외계인처럼 묘사해놓은 것은 본인들 편하자고 그러는 것 같다. 지구인들이 외계인은 이렇게 생겼을 거야, 아무렴 우리와 다르게 생기고말고. 스스로 안도하는 것처럼. --- p.119

해외 브랜드를 살펴보다 보면 브랜드 네임이 곧 창업자 이름인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가브리엘 샤넬의 이름을 딴 샤넬이 있고 이브 생 로랑이 있으며, 엘리자베스 아덴, 에스티 로더, 조 말론, 헬레나 루빈스타인, 바비 브라운, 버츠비, 조르지오 아르마니, 슈에무라 등등. 하지만 한국 화장품 브랜드 이름은 대부분 외국어 합성 단어들이다. 내가 다니는 페이스페이스 브랜드의 경우도 face + space의 합성어이다. ‘얼굴이라는 작은 우주에서 시작되는 스토리텔링’을 의미한다. 그럴듯하다. 옥탑방에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하오와 소민의 옥탑방. 줄여서 하소옥. 설렁탕집 이름 같네. --- p.38

하오를 처음 본 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 산후조리원에서다. 하오와 나는 바로 옆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기억은 안 난다. 엄마의 구술 기록에 따르면 그렇다. 그 후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서 2년 후 극적으로 어린이집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또한 기억에 없다. 사진 자료에 의하면 그렇다. 한번은 대중목욕탕에서 만난 적도 있었다. 하오가 여탕에 온 것이 아니라 내가 남탕에 갔을 때다. 어쩌자고 아버진 딸을 남탕에 데려간 것인지 우리는 탕 속에서 눈이 딱 마주쳤고 어릴 때지만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후 나는 하오가 나를 남탕에서 봤다는 걸 소문이라도 내면 어떻게 하나 학창 시절 내내 걱정했지만 지금까지도 입을 다물고 있는 의리 있는 녀석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랄친구가 되었다. --- p.104

발가락에 뭔가 걸려서 보니 오렌지 계열의 아이섀도다. 이름은 ‘오픈금지판도라’. 요즘 화장품 이름은 서정적이다 못해 관념적이다. 이름만 봐서는 좀처럼 무슨 색인지 종잡을 수 없다. ‘내마음속선인장’ ‘햇살비친낙엽’ ‘사랑은모래성’ ‘카페라테우유많이’ ‘불금브라운’ 뭐 이 정도야 그렇다 치고. ‘키싱미키싱구라미’ ‘불가사의한불가사리’ ‘고백을도와줘’ ‘그녀의과거’ ‘미지의세계’ ‘시럽빼고테이크아웃’ ‘휘핑빼고샷추가’ ‘브라이덜샤워’ ‘키작은돌하르방’ ‘하트브레이커해피더스트’ ‘수줍은손깍지’ ‘레이트체크아웃’ 등은 도대체 무슨 색이냔 말이다. 화장품업계 연구원들의 문학성에 깊은 경의를 표하려 하는데 갑자기 소리가 났다. 화장실이었다. 분명 부스럭 소리를 들었다. 이 집에 누군가 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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