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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 제님 식물 에세이

리뷰 총점9.3 리뷰 6건 | 판매지수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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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에세이 top2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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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94g | 128*188*17mm
ISBN13 9791186963494
ISBN10 1186963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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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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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이와 그림책으로 더없이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즈음부터 나는 내내 불행하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는 생각 속에서 온통 불행했다. 육아를 핑계로 잠깐 미뤄두었던 나의 꿈은 어찌해볼 도리 없이 멀리 달아나 있었고, 동시에 엄습하듯 찾아온 공허와 불안은 얄팍한 자존감마저 추락시켰다. 하루하루 열심히 성실하게 살면 지나온 시간만큼 가정 경제도 나아져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인생이라는 게 수학 공식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 것도 하필 그즈음이었다. 게다가 중년의 나이에 와 있었다.
---
별것도 아닌 일에 불행하던 시절이었다. 별것도 아닌 무수한 일이 왕따의 이유가 되는 것처럼, 불행의 이유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 습관처럼 몸에 붙은 읽고 쓰는 삶과 느린 산책, 식물 돌봄이 시든 마음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남들 보기에는 한들한들 여유로운 삶으로 보였으리라. 이런 한들한들한 삶 사이에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최하위 비정규직 단기 아르바이트도 했다. 인생이라는 게 수학 공식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건만, 도리없이 또 부지런히 성실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막연히 장밋빛 행복을 기대했던 성실함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지고 올라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삶에 대한 단단한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
어느새 나는 마흔의 터널을 지나 나이 오십에 이르러 삶을 가꾸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마음의 손바닥을 불행에서 행복 쪽으로 뒤집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나이 오십에 삶을 가꾼다는 것은 쓸모없이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에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못하는 침묵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일이다. 다정한 관찰자가 되어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포개는 일이다. 깊고 따뜻하고 가능한 한 작은 이야기를 기어이 글로 남기는 일이며,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다.
---
삶의 재미라곤 없을 것 같은 오십이라는 나이에도 이토록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마흔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서 맞이한 한 줄기 햇살 같은 맛이라 해야 할까? 그러니 살아남는 것을 가장 큰 성공으로 충실한 매일을 살다 보면 환한 오십에 기어이 당도하게 되리라는 한 조각 진실이 흔들리는 마흔들 마음에 가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사적인 이야기가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므로.
--- 「머리말」 중에서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와 함께 걸었는데 낮에도 걷고 밤에도 걸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줄곧 혼자 걸었다. 속절없이 내가 작아지는 날이나 우울의 그림자가 저만치서 기척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오솔길로 숨어들었다. 어떤 일이든, 누구에게든 아무도 모르게 저 혼자 마음이 베이거나 마음이 심하게 부서지는 날에도, 고백하기 창피할 만큼 작은 일에 화가 나는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그 오솔길 위에 있었다. 대부분은 걷는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었는데, 그때는 나가기 전에 시 한 편이나 글 한 줄, 또는 그림책 한 권을 읽고 나갔다. 방금 전에 읽은 문학은 오솔길의 다정하고도 너른 품 안에서 좀 더 선명한 이미지로 펼쳐지거나 사유가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그 시를, 그 문장을, 그 그림책을 흡족하게 느끼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어쩌다 한 번 해보고는 좋아서 습관이 되었다.
---
작아지고 작아지고 또 작아지던 무참한 시간들, 스스로 독방에 갇혀 홀로 지낸 고독의 시간들, 글을 쓰는 것도 힘들지만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들, 온통 모호함투성이에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의 시간들. 그 모든 시간들을 따뜻하게 품어준 오솔길 덕분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은 사십 대를 무사히 통과해온 것 같다.
--- 「속 깊은 친구, 나만의 오솔길」 중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감사의 마음이 쌓인다. 자연이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서, 시간을 내어 눈길을 주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연이라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자연에 대해 각별히 놀라워할 줄 아는 눈을 가진 나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오늘도 자연에 깃든 하늘, 바람, 나무, 풀, 새들, 고양이와 눈 맞춤 하느라 느릿느릿 걷는다. 느린 걷기는 내가 시간을 가장 우아하게 잃어버리는 방법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얼마든지 잃어버려도 좋다.
--- 「시간을 가장 우아하게 잃어버리는 방법」 중에서

10여 년의 세월 동안 정을 나눈 오죽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흙 속의 뿌리는 살아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물을 주면 언젠가는 새로운 죽순이 나올 거라 믿었다. 그러고는 예전과 변함없이 아침저녁으로 살피며 물을 주었다. 이미 삭정이가 된 대나무는 쓰러지지 않도록 잘 세워두었다.
---
이미 죽은 화분에 3년이 꽉 차도록 물을 주던 어느 봄날 아침, 나는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겨우 지탱하고 있는, 다 쓰러져가는 대나무 삭정이를 뽑았다. 3년 전의 그날의 마음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오죽의 죽음을 그제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순간 애도(哀悼)란 단어가 떠올랐다. 3년이란 시간은 애도의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마음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떠나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풍장하듯 애끓는 슬픔이 시나브로 시간에 흩날려진 것이다. 내 마음이 흡족하게 충분히 슬퍼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
애도를 끝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란 건 없다는 걸. 상실의 슬픔을 앓는 자가 마음껏 충분히 슬퍼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걸. 함부로 그만 울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더군다나 그쯤이면 됐지 않느냐는 말은 더더욱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걸. 충분히 마음껏 울 수 있도록 옆에 가만히 있어 줘야 한다는 걸. 울던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닦으며 스스로 일어서서 걸어 나올 때까지 가만히 지켜봐 줘야 한다는 걸.우아하고 기품 있는 나의 까만 대나무가 알려주고 떠났다.
--- 「죽은 화분에 3년 동안 물을 주다」 중에서

다시 신문으로 돌아와 칼럼을 읽기 시작한다. 쓴 커피를 홀짝이며 한 문장 한 문장 맛있게 읽는다. 달콤한 시간이다. 너무 아름답거나 머리가 명징해지거나 가슴을 후비는 문장이나 단어를 만나면 스크랩했다가 나중에 메모하고, 머리와 가슴에 담아 하루종일 틈틈이 생각한다. 아침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기를 돌리면서, 산책을 하면서. 마음이 이제 됐다며 놓아줄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가슴에 담은 오늘의 문장과 단어가 되는 것이다.
--- 「아침을 여는 방식」 중에서

그날 이후 ‘사려 깊은’이란 단어가 마음속에 들어와 똬리를 틀고 앉아 나가질 않았다.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읊조려 보곤 했는데, 이런 단어가 내 마음속에 살고 있다는 게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는 ‘사려 깊은’이란 말을 마음속에 기르고 있었고, 그러다 보면 그 말처럼 조금은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동네 빵집의 사려 깊은 북큐레이션」 중에서

그러니까 이 찔레꽃은 친정아버지의 잔잔한 정이 가득한 마음 씀씀이로 우리 집에 오게 된 거다. 새소리만이 가득한 산기슭에서 도시의 열악한 베란다로. 그날부터 나는 베란다에서 찔레꽃 한 송이 피우는 행복을 꿈꾸었다. 한 송이만으로도 베란다에 찔레꽃 향기 가득하겠지. 그런데 십 년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꽃 한 송이 보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죽지 않고 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고, 여전히 나는 찔레꽃 한 송이 피우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무성한 초록 이파리들 사이에 하얀 찔레꽃 한 송이를 상상으로 즐기는 것도 꽤 괜찮다.
--- 「비켜나 있음의 쓸모」 중에서

언니의 사려 깊은 위로와 애도의 선물, 따뜻한 이야기를 품은 작은 나무, 마오리 소포라. 이제 막 돋아난 새싹처럼 자그마한 이파리가 무척이나 귀엽다. 특이하게 지그재그로 오밀조밀 자라나는 줄기는 소포라가 선(線)을 즐기는 나무라는 걸 확실하게 각인하는데, 그 지점이 바로 소포라에 유혹되는 결정적인 이유다. 소포라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버지가 과실나무 외에 유일하게 좋아하셨던 배롱나무를 닮은 듯도 하다.
---
그러고 두 달쯤 지났을까. 노랑을 품은 연둣빛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히야! 이제 됐어. 드디어 생기를 찾았구나. 내 몸에 싱싱한 세포 하나가 생긴 것만 같았다. 내 간절한 마음에 반응해준 소포라, 그저 고마웠다. 아니지. 오히려 소포라가 나에게 고마워하지 않을까? 적절한 때를 넘겨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지 않도록 예민하게 알아차린 내 마음결에 대해서 말이야. 식물이나 사람이나 회복하기 적절한 때를 예민하게 알아차려야 하는 법이니까. 이 엄동설한에 연둣빛 새순을 바라보는 일에 하염없이 시간을 쓰고 있다. 더불어 내 마음도 서서히 회복되어 가고 있다.
--- 「애도의 선물로 찾아온 인연」 중에서

백합나무 때문에 그렇게 가슴앓이하는 사이 참으로 우습게도 아주 가까이에서 발견했다. 발견한 것이 아니라 10년 동안 스쳐 지나간 나무를 그제야 알아본 것이다. 도서관 가는 익숙한 길목에 한옥마을의 중앙고등학교 교정에서 보았던 그 특이한 열매를 매달고 멋스럽게 서 있었다. 바람에 떨어진 가지 하나 주워 집에 들이니 겨우내, 그리고 봄을 지나 여름까지 마루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 「나의 비밀 나무」 중에서

실내로 들여온 백화등은 온도와 습도가 적절한 화장실에 있다가 가끔은 안방 창가에 있다가 햇볕이 좋은 날에는 베란다에 잠깐 두기도 한다. 화장실에 있을 때는 시시때때로 보슬보슬 봄비처럼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곤 한다. 하릴없이 백화등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바라보는 때도 허다하다.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이자 마음이 기뻐하는 시간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을 좀 더 길게 늘여보기로 한다.
--- 「시든 마음 기댈 곳은」 중에서

흔한 듯 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을 기울여야 눈에 들어오는, 그래서 마음에 미세하나마 파문을 일으켜 가슴에 서정이 깃들게 하는 꽃이어야 한다. 그런 것들은 대체 어떤 꽃들인가? 그것 또한 직관이 하는 일이다.
--- 「지금은 진분홍 시간이에요」 중에서

생애 처음 몸으로 하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 오래전부터 마음을 단련시켜왔기에 감정은 그런대로 담담했다. 그런데 양 볼을 타고 눈물이 또르르 굴러내렸다. 감정이 거세된 싱거운 눈물이었으니 이내 멈추었다. 감정의 지지를 받지 못하니 뜨겁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눈물이었다. 일당 알바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니 몸이 잘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먼 곳의 푸름과 생애 첫 일당 알바의 조우라니, 어찌나 극적인지 아름답기까지 했다.
--- 「어찌나 극적인지 아름답기까지 했다」 중에서

일당 알바를 시작하기 전 일이다. 20여 년 만에 초등학교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 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노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의심 없이 말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뭐. 궁금할 게 뭐 있니?” 물류창고에 서 있는 지금, 나는 확신에 차서 말했던 그 말을 주워 담고 싶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이런 나의 생각은 어떻게 나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을까? 도대체 어떻게 나의 생각이 되었을까? 나는 이제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사람 사는 거 똑같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은 크게 잘못되었다. 여기서 하게 된 가장 큰 깨우침이 아닐까 싶다.
--- 「사람 사는 거 다 같다고?」 중에서

허정허정 집에 오니 큼직한 택배 상자가 문 앞에 놓여 있다. 친정엄마가 보내셨다. 봄을 타느라 밥을 못 먹는 딸을 위해 해마다 봄이면 엄마는 이것저것 싸 보낸다. 머위나물 무침, 미역, 소고기, 깨소금, 파김치, 깐 마늘, 다듬은 쪽파, 어린쑥과 보리싹, 어린 머위순, 파래김, 다시용 멸치와 다시마. 어제오늘 다 쏟아낸 줄 알았는데,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깨를 들썩이며 마음껏 엉엉 울어버렸다. 수분 한 방울까지 쥐어짜내 실컷 울고 나니 기진맥진이다. 아무리 슬퍼도 위장에게는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했던가. 찬밥에 엄마가 보내준 머위나물 무침을 넣고 쓱쓱 비벼 저녁을 먹었다. 겨우내 땅과 대기의 기운을 빨아들인 머위의 봄기운과 쌉싸름한 맛이 기운을 돋게 했다.
---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중에서

이곳에서 만난 사람 대부분은 쉰 살 전후의 나이들이다. 게다가 대부분 여자들이다.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 50은 극한 직업이 아니면 갈 곳이 없음을 의미한다는 걸 이제야 실감한다. 대학에서 무슨 전공을 했든, 전직이 무엇이든, 바로 어제까지 했던 본업이 무엇이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이 쉰에 삶의 현장으로 내몰린다면 투명 인간으로 취급받는 최하위 비정규직 일일 확률이 높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모두 여자들이고 아줌마들이며 엄마들이다.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는 그녀들이 참으로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삶의 현장으로 내몰린 나이 쉰 안팎의 엄마들을 누가 이해해 줄까?
--- 「어쩌다 우린 이곳에서 만나게 됐을까」 중에서

어찌나 아름다운지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꽃의 찬란함만큼이나 나무가 외로워 보였달까? 사람으로 치면 중년 즈음의 세월을 살았을 벚나무, 거친 옹이들로 얼룩진 수피가 어찌나 울퉁불퉁한지, 손에 만져지는 감촉이 우리 할머니들의 신산한 삶을 닮은 듯했다. 그럼에도 거친 수피에 초록 잎 하나 내밀고 꽃도 한 송이 피워냈다. 어쩌자고 혼자 이곳에 심어졌다니? 괜스레 나무를 심었을 누군가의 손길을 나무라며 나무를 한 번 안아주고 돌아왔다. 꽃을 환하게 피운 날에만 서글퍼 보이는 이상한 벚나무 한 그루. 그날 이후 가슴 속에 외로운 벚나무 한 그루가 슬쩍 스며들었다.
---
눈물이 스스로 멈출 때까지 기다려주니 말간 마음이 되어 벚나무에게 희미하게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나오니 어느새 벚꽃이 노을빛을 막 걸치고 있었다. ‘고맙다, 벚나무야. 네가 있어 외롭지 않게 울 수 있었어. 외롭지 않게가 다 뭐니? 벚나무 앞에서 울어본 사람이 있을까? 함께 울어 줄 나무를 가진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 「내 울음을 기억하는 나무를 가졌는가?」 중에서

나는 많이 좌절했고 그로 인해 조금 더 많이 우울했다. 게다가 마음속에는 항상 불안이 세 들어 있었다. 총체적인 모호함과 불확실함이 데려온 불안이었다. 마음이 좌절과 우울과 불안에 잠식되어 도무지 작은 시도조차 힘겨워질 때, 나는 모항으로 떠났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떠날 힘이 있어 다행이었고, 떠날 곳이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 「모항은 가보았니?」 중에서

풀이 무성한 오소리네 꽃밭을 빙 둘러서서 꽃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의 은빛 머릿결 위로 여름날의 석양빛이 막 내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 완벽한 시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꼭 있어야 할 것만 있는, 최소한의 것만으로 이미 넘치게 충만한 공간 안에 내가 있었다. 그림책 속의 한 장면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내가 있다는 걸 놓치지 않으려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 또한 꼬옥 붙들어 맸다. 오소리 부부 덕분에 나 또한 그림 속의 풍경을 살아보는 시간이었다. 먼 훗날, 아니 당장 내일이라도 분명 그리워할 시간이 벌써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 「오소리네 집 꽃밭에 다녀왔다」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공간, 거기서도 내 시선이 가장 쉽게 닿는 곳에 이 녀석을 두고 하염없이 바라보고 바라보았다. 마오리 코로키아는 우리 집에서 어떤 사람, 어떤 식물, 어떤 사물보다도 내 따뜻한 눈길을 가장 많이 받았다. 도대체 마오리 코로키아의 어떤 매력이 나를 사로잡은 걸까? 우선 목대는 칠흙 같은 깜깜한 밤처럼 검은빛이고 이제 막 새로 돋아난 줄기는 바다낚시로 잡아 올린 싱싱한 갈치의 은빛인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검은 빛으로 변해간다. 이파리는 모양도 크기도 감 씨 안에 숨겨진 아주 작은 새순을 닮았다. 어렸을 때 감을 먹고 난 후 감 씨앗을 쪼개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안에 꼭 티스푼 모양의 새순이 잠들어 있다. 그렇게 티스푼처럼 생긴 자그마한 이파리는 앞면은 초록빛인데 뒷면은 은빛이었다. 뒤에 은빛을 숨겨두고 바람이 불 때마다 파샤샤 파샤샤 펄럭이며 멀리서 바라볼 때에 은빛 뒷모습을 살포시 보여주는 은사시나무의 이파리를 똑 닮았다. 아,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 자작나무, 미루나무, 은사시나무, 올리브나무, 유칼립투스의 느낌을 모두 품고 있었다. 그해 겨우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자리에 앉아 고요하고 먼 곳의 말을 품은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면 눈 안에 들어오는 마오리 코로키아와 사랑에 빠졌다. 깜깜한 밤의 검은빛에 드리운 그늘도 보이고, 바람이라곤 없는데 파샤샤 파샤샤 이파리가 팔랑이는 소리도 들릴 듯 말 듯, 그때마다 은근슬쩍 은빛이 보일 듯 말 듯. 매일매일 이름을 외우기 위해 읊조려 봤지만 나이 탓인지 실패를 거듭하고, 마침내 거의 이름을 완벽하게 알아갈 무렵 마오리 코로키아는 영원히 떠나가고 말았다.
--- 「마음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은빛의 선물」 중에서

그런데 지금 레오가 아름다운 나의 초원을 납작한 풀방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이 시들 때마다 넘실대는 초록과 평온을 내어주던 나만의 초원을 망가뜨린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엄청나게 화가 날 일인데, 화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별로 속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한 조각 풀밭 위에 낮잠을 즐기는 레오가 있어 더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초원이 완성되었다. 어쩐지 꼭 있어야 할 곳에 레오가 있는 것이 마땅하기까지 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
야생성이 강한 벵갈 고양이라 다소 까칠한 레오와 까칠함이라면 결코 지지 않는 내가 만나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합리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다. 고양이라는 존재 자체가 빚어내는 마법이라고밖에는. 일상에서 가장 아끼는 것들을 레오 때문에 기꺼이 포기하는 까칠한 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 「레오라면 아끼고 아끼는 식물도 기꺼이」 중에서

엄마의 말수가 적어지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딸은 무슨 일 있냐고 묻지 않는다. 뜬금없이 다가와 그저 두 팔로 안아주곤 사라진다. 평소보다 자주. 딸이 엄마를 위로하는 방식이다. 썩 마음에 든다. 풀꽃다발과 그저 두 팔로 안아주기. 최소의 방법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구해낼 수 있는 것이다. 위로란 그런 것이다. 마음을 내 쪽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두어야 가능한 다정하고도 깊은 위로다.
--- 「에필로그」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1부 반백년의 고독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지금”

마음의 손바닥을 행복 쪽으로 뒤집어 뒤늦게 알아차린 인생의 뒤뜰을 걷고 있다. 뒤뜰 안에는 온통 쓸모없는 작은 것들이 수런거리고 있다. 아늑한 그곳을 걷다 나오면 나는 다정한 얼굴빛으로 물들어 있곤 한다. 유일한 지금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비밀을 알아버렸다.

2부 식물의 위안 “초록에 물드는 우연한 마음”

재능이라곤 없는 나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자연에 대해 놀라워할 줄 아는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는 것.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기적 같은 선물이 가끔 찾아온다. 뜻하지 않는 곳에서 만나는 함박꽃나무처럼. 그것이 특별한 재능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조금 더 많이 행복해졌다.

3부 비정규의 시간 “뜨겁고 고요한 어떤 것의 중력”

마흔이 넘어 겨우 찾아낸 내가 좋아하는 일, 읽고 쓰는 삶을 지켜내기 위해 사이사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애 최초의 살인적인 육체노동 속에서 투명 인간으로 살아본 그 시간은 삶을 옥죄는 헛것을 지우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속에 겸손이란 단어를 소중히 기르게 해 주었다.

4부 독서의 여백 “아무도 모르는 오후의 문장”

여러 겹의 포장을 걷어낸 담백한 오십이 되어 읽는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다. 시인 놀이를 하고 그림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문장의 사치를 마음껏 즐기다 보면 책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리하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기대를 품은 읽는 삶 말이다.

5부 인연의 무게 “외로움이 나란한 우리의 시간”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며 외로움을 공기처럼 먹고살지만, 사실은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특히 외롭거나 슬픔을 감춘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는 재주가 있고, 그런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소리 없이 아궁이처럼 따뜻함을 전하는 사람으로 곁에 나란히 앉아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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