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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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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008이동
리뷰 총점9.6 리뷰 28건 | 판매지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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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2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50g | 127*193*13mm
ISBN13 9791191816068
ISBN10 1191816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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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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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날개떡볶이에서 일을 하다 나왔을 철규씨는 맨발에 슬리퍼 바람이었어요. 11월은 맨발로 다닐 계절이 아닌데.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루이뷔통 가방을 안고 있었어요. 그 가방을 안은 채로 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왔어요.
“저기요, 철규씨. 다음에 얘기하자니까요.”
그는 듣지 않았고 눈동자를 어디에다 두고 온 사람처럼 텅 빈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어요. 내 방은 1층, 여섯 걸음만 가도 되는 곳이었지만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한대리님을 사랑한 거 말고, 제가 잘못한 일이 뭐가 있어요?”
달아나도 안 되고, 웃어 보여도 안 되는 그 순간이 오자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지더라고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어요.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게 잘못한 거야! 왜 니 마음대로 나를 사랑하고 말고 해? 너 돌았니? 나한테 왜 이래, 이 미친 새끼야!”
그가 언뜻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몸을 홱 돌려 뛰기 시작했는데…… 더는 안 붙잡을 줄 알았는데. --- p.58

엄마와 아버지가 영안실에 들어섰을 때 그곳엔 과장님이 있었어요. 과장님은 푸들푸들 떨고 있었어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머리통이 3분의 1이나 으깨진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다물고 있었어요. 수정아, 한수정 대리야. 이러지 마. 일어나. 아마 그런 말을 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과장님의 입술은 열리지 않았어요.
엄마의 입은 그보다 더 굳게 닫혀 있었어요. 울지 않으려고, 아니 눈물이 눈에 가득 차 내가 안 보일까 봐 눈을 더 크게, 더 크게 뜨며 엄마는 나에게 걸어왔어요. 눈을 너무 크게 홉떠 엄마는 엄마 같지 않았어요. 천천히 한 걸음씩, 이 상황이 너무 두렵고 무서워 후다닥 다가갈 수도 없다는 듯이 엄마는 느리게 걸어와 내 목을 한 팔로 감싸 안았어요. 그리고 나머지 손을 내 등에 넣은 다음 나를 일으키려 했어요.
“가자. 집에 가자, 내 새끼…… 내 강아지. 집에 가야지. 여기 너무 춥다.”
누가 엄마를 잡아 흔들기라도 하듯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마 엄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다 알아들었지만요. 나를 일으키려는 엄마를 말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는 끝내 나를 일으키지 못했어요. 엄마의 팔은…… 지푸라기 같았거든요.
--- p.64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되었을 때 나는 과장님을 쳐다보았어요. 황달이 든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과장님의 눈알이 노래졌어요. 나를 죽였는데 고작 징역 6년이라는 사실에 내가 놀랐듯 아마 과장님도 놀라서 그랬을 거예요. 흡,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지만 곧 조용해졌고, 지점장님이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육…… 녀, 언?” 했지만 누군가 지점장님의 어깨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속삭였어요.
“아무 말도 마세요. 누가 들어요. 저 새끼 출소해도 서른둘이에요. 조심하셔야 해요.”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 지점장님을 붙안은 걸 보면 강계장이었을까요. 욕설을 씹어뱉을 것 같았던 지점장님의 입술이 닫혔어요. 모두가 지점장님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재판정을 빠져나갔어요. 과장님은 노래진 눈으로 오래오래 앉아있었고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수민이와 윤지는…… 말하기 싫어요. --- p.72

“아, 여자 쪽에서도 싫다 하진 않았지. 싫었으면 맨날 떡볶이 먹으러 왔겠어? 줄도 안 섰어. 여기가 얼마나 손님이 많은데. 그 박작박작한 속에서도 줄 안 서고 그냥 들어와서 아무 데나 앉았지. 돈도 안 냈어. 김사장이 공짜로 내줬지.”
그 인터뷰는 아마도 날개떡볶이 연변 아줌마였겠죠.
“바닷가에서도 데이트 종종 하던데요? 언제지? 여튼 밤에 본 적 있어요. 백사장에서.”
그날 밤 우리를 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어요. 또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더라고요.
“그냥 김사장이랑 살지, 뭘 그리 쟀나 몰라. 엄마도 재가해서 몸 기댈 데도 없다며? 돈 많지, 성실하지, 심성 곱지. 김사장이랑 연정에서 자리 잡고 살면 좋았겠고만, 거참.”
“남자들이 원래 다 그렇잖아. 마음 줄 거 다 줬는데 그리 안 받아주니 회까닥 돈 거야. 딱해라, 딱해. 젊은 놈이. 그 늙은 엄마는 어쩌누? 이제 누가 돌봐?”
경찰들은 모든 CCTV를 살폈어요. 은행에서 나는 철규씨에게 내내 방긋방긋 웃었고 심지어 원룸 건물 앞, 망치가 든 루이뷔통 가방을 감싸 안고 나에게 바짝 붙어섰던 그날 밤에도 CCTV 속 나는 웃던걸요. 나는 온 힘을 다해 그가 원룸 건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어야 했는데. 웃다니. --- p.78

떡볶이에서는요, 골목 냄새가 나요.
골목 냄새가 뭐냐면, 담 낮은 집들이 쭉 늘어섰고 고무줄놀이도 겨우 할 만큼 좁은 골목들이 막 엉켜 있는데요, 초입에 붉은 포장을 친 떡볶이집이 있거든요. 합판을 몇 장 겹쳐 만든 긴 의자에 올라앉아 다리를 대롱거리며 백 원짜리 동전 몇 닢을 아줌마에게 건네면 비닐을 씌운 멜라민 접시에 빨간 떡볶이를 가득 담아줘요.
이쑤시개로 밀떡 하나 집어 입에 넣으면 참 달콤도 하지. 종이컵에 부어주는 어묵 국물 후후 불어 마시면 등 뒤로 저녁 바람이 스쳐요. 노을 묻은 저녁 바람 아시죠? 주홍색 바람. 원피스 등 자락으로 파고들기도 한다니까요. 박쥐가 낮게 날기도 했어요. 섀앵, 하고 빠르게 나는데 저러다 공중의 전깃줄에 걸리면 어쩌나 싶기도 했어요. 녀석들, 절대 안 걸려요.
그렇게 떡볶이를 집어 먹다 보면 엄마가 왔어요. 실은 내가 엄마 퇴근 시간을 알아서 거기서 기다린 거거든요. 엄마는 포장마차에 앉은 나를 보면 활짝 웃으면서도 눈을 흘겼어요. 저녁 먹어야 하는데 또 떡볶이를! 하는 거였죠. 겨드랑이에 낀 핸드백을 야무지게 고쳐 쥐고 엄마는 나를 반짝 안아서 의자에서 내려줬어요. 나 혼자 깡총 내려와도 되지만 그냥 엄마만 보면 아기가 되고 싶은 그런 마음, 그런 거 있잖아요.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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