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인 아누크의 안전한 세계
책을 좋아하는 아누크는 파리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혼자 산다. 친밀한 동료나 친구는 없어 보인다. 무례하게 구는 직장 상사 때문에 울분에 찬 날이면 자신의 인형들에게 혼잣말을 건네며 마음을 달랜다. 아누크의 세계는 큰 변화도, 책임져야 할 누군가도 없이 규칙적으로 흐른다. 균형 잡힌 안전한 일상이 흔들린 건 여동생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은 뒤다. 독자는 부음 소식을 듣는 장면에서 아누크가 진짜로 혼자가 됐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 아누크도 마찬가지다. 내내 혼자라 여기며 살았지만 동생을 잃고서야 완벽하게 고립됐다는 걸 알게 된다.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표현되던 그림은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진다. 작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둡게 그려진 장면으로, 아누크는 어둠 속에서 눈을 멍하게 뜨고, 입을 헤벌리며 황망하게 앉아 있다. 곁에는 안아 주는 사람도,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도 없다. 작가는 아누크가 받은 충격과 슬픔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공감 있게 전달하며 앞으로 벌어질 일을 궁금하게 한다. 혼자인 아누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 뭉클하게 이어진 자매의 흔적
동생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에 간 아누크는 또다시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동생 조에의 유언에 따라 조카인 콜레트를 양육하게 됐다는 점이다. 조카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동생이 남편도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웠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고생했을 동생을 떠올리며 아누크는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책한다. 자매가 갈라선 내막은 자세히 다뤄지지 않지만 드러난 내용을 보면, 두 사람은 서로 미성숙한 시기에 오해하고 갈등하다 멀어졌다. 동생 조에는 그렇게 연을 끊은 언니에게 소중한 딸 콜레트를 맡긴다. 아누크만이 콜레트를 사랑으로 보살피며 키워 줄 유일한 존재라고 굳게 믿듯이.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조에는, 아누크와 콜레트 사이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다. 조에의 집에는 언니와 추억이 담긴 어린 시절 사진과 메모 들이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고, 콜레트는 이미 아누크 이모에 대해 많은 것을 들어 알고 있다. 콜레트가 아누크에게 전한 “자매는 안 보고 살아도 항상 자매”라는 조에의 말은, 아누크에게도 독자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화해할 기회를 영영 잃었지만, 애초부터 자매는 갈라질 수 없기에 화해가 필요 없는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자매 사이의 오랜 공백이 조에가 남긴 흔적으로 채워지는 장면은 뭉클함을 안긴다.
■ 서로를 ‘길들이며’ 특별해진 관계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아누크와 콜레트. 둘 중 먼저 말을 건 사람은 콜레트다. 콜레트는 어른이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나서서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어린이만의 솔직한 의사 표현으로 인생의 변화 앞에 얼어붙은 어른 아누크의 긴장을 풀어 준다. 또 아이를 잘 모르는 이모에게 자신이 필요한 것,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 알려 준다. 덕분에 아누크는 절대 할 수 없을 거라 여긴 아이와의 생활에 차츰 적응해 간다. 보통 어른과 아이의 관계에서 어른은 주고, 아이는 받는 일방적 관계가 떠오르지만 『나의 콜레트』를 보면 꼭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콜레트는 아누크가 자신을 돌보는 일이 힘들 수 있다는 걸 이해하고, 실수하거나 놓치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아누크가 콜레트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콜레트도 이모와 맞춰 살기 위해 노력한다. 둘은 밥 먹고, 대화하고, 때론 어려운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며 일상을 함께한다. 콜레트가 가장 좋아하는 책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여우와 어린 왕자처럼 서로를 길들인다. 둘이 보낸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서로에게 각별하고 편안한 존재가 되어 가는 모습은 독자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 무모한 모험에 기꺼이 뛰어들게 하는 사랑
아누크는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 어린 아누크가 동생 조에를 책임지고 돌봤듯이, 어른이 된 아누크는 이제 조카 콜레트를 돌보려 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아누크를 고심케 한다. 아이를 양육하려면 경제적 기반이 필수라, 집도 있고, 일자리도 찾기 쉬운 파리로 가야 한다. 콜레트를 파리로 데려가서 사는 건 이성적이고 안전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아누크는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 콜레트 입장에서 따져 보면, 대도시 파리보다는 지금 고향이 정서적으로 더 나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는 건 아누크에게는 무모한 모험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명료하게 바꿔 준 건 콜레트다. 아이다운 천진함으로 지금 사는 “여기를 기가 막히게 좋은 공간으로 바꾸면 안 돼요?”라고 묻는다. 아누크는 그 말에 망설임을 끝내고, 갖추어진 환경에 맞춰 사는 대신 내가 머문 자리를 좋은 환경으로 일구는 방법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 결정은 아누크의 고백대로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다. 콜레트의 행복이, 어느새 아누크의 행복이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놓일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아누크가 삼는 기준점이 ‘사랑’이 될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 동글동글한 선, 다채로운 색감이 선사하는 행복한 기분
『나의 콜레트』는 동글동글한 선에 다채로운 색채의 그림이 특징인 작품으로 첫눈에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인상을 준다. 마치 어린이의 시선에 비친 활기찬 세상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 든다. 화가 마투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알록달록한 색채로 표현하며, 슬픔 속에 갇히지 말고 즐겁고 행복한 일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