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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너의 심장이 멈출 거라 말했다

어느 날, 너의 심장이 멈출 거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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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500g | 134*200*21mm
ISBN13 9791165344337
ISBN10 116534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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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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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우리 두 사람은 창밖을 향해 나란히 서서 그 해괴망측한 춤을 추었다. 내가 “자 봐봐.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시범을 보이자 그녀의 웃음소리가 병실 가득 메아리쳤다. 이 춤은 반한 여자 앞에서 출 만한 춤이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아까 본 피범벅 동영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다면, 그녀의 두려움과 공포를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내 골반과 멋짐을 포기할 의사가 있었다.
공연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그녀의 감탄이 터졌다.
“와, 너 잘 춘다. 진짜 인버뤄-브뤠이트 같아.”
일단 웃었다. 마이클 잭슨이나 엘비스 프레슬리 정도의 칭찬으로 들었다. 인버뤄브뤠이트가 ‘무척추동물’이라는 영어 단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어쨌든 이 춤은 그런 의미였다. ‘매우 큰 충격’을 ‘더 큰 충격’으로 잊어버리게 만들려는 시도.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더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내일의 공포를 다른 식으로 잊는 방법을 확실히는 모른다. 다만 내일은 우리의 끝이 아니며 우리의 끝은 그녀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만 생각할 뿐이다.
“그럼, 작별 인사를 해볼까?”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흘러내린 앞머리를 귀 뒤로 깔끔하게 넘기고 내 앞에 섰다. 나는 손을 뻗어 빙긋 웃는 그녀의 턱에 말라붙어 있는 귤껍질을 떼어주었다.
벌써 일주일째 매일같이 작별 인사를 해왔다.
“그동안 즐거웠어. 고마워. 안녕.”
오늘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는 작별 인사였지만 인사를 끝내고 나면 언제나 할 말이 더 남아 있는 것처럼 한참이나 뜸을 들였다.
듣고 싶지만 듣지 못할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급하거나 안달 날 것도 없었다. 그녀가 말을 아끼는 이유는 아마 우리에게 내일이 남아 있는 까닭이며 슬픔은 그보다 더 깊고 비밀스러운 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힘내.’라든가 ‘잘 될 거야.’라든가 ‘응원할게.’ 같은 말은 지금 내 기분을 조금도 전달할 수 없었다. 물에 빠진 각설탕처럼 내일이면 단물만 남긴 채 사라질 것만 같아서 나는 매일 그녀의 흔적을 같은 방식으로 잡아두었다. 정수리에 손바닥을 올리는 방식.
냄새는 음악처럼 순간을 기억한다. 그녀가 나의 시도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정수리에 올렸던 손바닥을 코에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밀려들어 온 체향(體香)은 아스라이 멀어지는 그녀를 내 앞에 데려다 놓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제3조 임금. 계약과 동시에 계약금 3억 원을 지불하며, 10일 기준으로 300만 원씩 추가 지급….”
계약서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계약금 3억? 이 여자가 진짜 정신이 나갔나.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 심취한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그녀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살며시 속눈썹을 들어 올리고 “왜? 돈이 적어?” 하고 물었다. 나는 뭐라고 대꾸하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300만 원을 껌값 취급한다면 이쪽에서도 그렇게 여길 작정이다.
구겨진 계약서를 들고 마저 읽어 내려갔다.
“제4조 근로 범위. 갑의 남자 친구 역할로서 연인 관계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함께한다. 단, 갑이 허락하지 않은 스킨십을 할 경우 계약 위반으로 처리….”
또다시 읽는 걸 멈추고 앞에 앉은 여자를 빤히 보았다. 이 부분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너 뭔가 잘 모르나 본데. 연인 관계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일이란 오직 스킨십밖에 없어. 스킨십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일은 연인 관계가 아니어도 할 수 있거든? 이거 계약 내용이 엉망진창인 거 알아?”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할 거야, 말 거야?”

그 후로도 계약서는 온통 진흙탕이었다. 곳곳에 발이 빠져 매끄럽게 읽어나갈 부분이 거의 없었다. 근로 시간이 24시간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부분에서 다섯 번째로 읽는 것을 멈췄을 때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을사조약 이래 가장 불합리한 계약이었다. 휴일도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갑의 재량에 따른다는 부분까지 읽고 없다는 의미로 해석을 마쳤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마음 같아서는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찢어버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일단 사인하면 계약금 3억 원, 열흘에 300만 원이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본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비위 맞추기 까다로워 보이긴 해도 나는 전문가니까. 눈 딱 감고 100일만 버텨보기로 마음먹었다.
“오케이, 콜!”
여자는 손때 하나 묻지 않은 명품 백에서 몽블랑 펜을 꺼냈다. 계약에 동의하면 사인하라는 말에 계약서 마지막 장을 마저 훑었다. “계약에 대한 일체 내용은 비밀을 유지한다. 을이 계약 내용을 위반하거나, 일방적 해지를 원할 경우 계약금을 세 배로 반환한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끝이 아니었다. 제일 마지막에 인쇄된 글자가 아닌 손 글씨로 적힌 문장이 눈에 띄었다.
‘을이 갑에게 마음을 뺏기는 경우 계약은 해지되고, 계약금은 100% 반환한다.’
흠칫 놀랐다. 야무진 글씨체를 보니 직접 쓴 것 같았다. 마지막 조항을 보고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망설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계약서에 주저 없이 사인했다. 계약서를 받아 든 여자는 그제야 내 이름을 확인했다.
--- 「1. 첫 만남」 중에서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안에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물었다.
“진짜 제주도 가는 거 아니지?”
“가고 있잖아, 지금.”
“넌 무슨 제주도를 택시 타고 안국역 외치듯이 가냐? 겨우 손바닥만 한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편의점에 껌 사러 가듯이 간다고?”
“방어회만 먹고 올 건데, 뭐. 해외도 아니고.”
“그러니까 내 말은 그 방어회, 저기 보이지? 저 횟집에도 파는데 굳이 제주도까지 가서 먹을 필요가 있냐는 말이야. 아까 그 물고기가 바로 저 물고기야.”
리무진은 횟집 앞을 유유히 지나쳤다. 그녀는 손으로 우아하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넌 모르는구나? 음식은 음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분위기가 더 중요한 거야. 예를 들어 와인을 마신다고 생각해 봐. 지하 주차장에서 종이컵에 마시는 거랑 야경이 끝내주는 스카이라운지에서 크리스털 잔에 마시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하니? 난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게 아니야. 굳이 방어회가 아니어도 먹을 거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오늘 내가 먹고 싶은 건 ‘제주 바다가 보이는 횟집의 방어회’야. 알겠니? 이제 잔소리 말고 따라오도록.”
‘지하 주차장에서 어떤 미친놈이 와인을 마셔? 비유가 너무 제멋대로인 거 아닌가?’
체념한 나는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어제부터 빠르게 내려놓는 연습 중이다. 어차피 ‘갑’이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 떠들어 봤자 입만 아프다.
‘을’은 그녀의 캐시미어 머플러, 펜디 선글라스, 샤넬 코트와 함께 제주행 비행기에 짐짝처럼 실렸다. 복도 건너, 주디라고 불리는 임은미 실장과 같이 앉아 있는 그녀를 보았다. 깔깔거리며 떠드는 모습은 영락없이 소녀 같다.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금 이륙하는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추락한다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죽을 수 있겠지만 다가올 죽음에 두려워하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볼 땐 아무도 없었다.
어딜 가도 개인 비서가 동행하니 단둘이 있을 일은 없겠다 싶은 생각에 안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럴 거면 애초에 내가 왜 필요한 건가 싶기도 하고. 돈 받은 만큼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래야 100일 뒤에 떳떳하게 3억 원을 쓸 수 있을 테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임 실장님, 잠시 자리 좀 바꿔주세요.”
임 실장은 기꺼이 나와 자리를 바꾸어 주었다. 옆자리에 앉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는 그녀에게 적당히 핑계를 댔다.
“300만 원짜리 운동화도 이렇게 팽개쳐 놓진 않아. 내 몸값이 얼만데. 3억짜리 남친 제대로 활용 안 할 거면 지금이라도 물리든가. 돈 돌려줄게.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네 말도 맞는 것 같아서. 너나 나나, 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 비행기가 추락해서 우리 둘이 동시에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좀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드네.”
역시 아무 말이나 했다. 그녀는 내 말에 야무지게 반박했다.
“비행기 추락? 죽는 방법치고는 나쁘지 않지만 신은 그런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하지 않아. 일단 오늘은 방어회를 먹을 예정이니까.”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를 단박에 꺾어버리는 그녀의 말에 어쩐지 약이 올랐다.
“네가 신을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그 양반이 하는 일은 대체로 맥락 없이 전개되는 경우가 더 많아.”
“신과 친한 척하는 거야?”
“전혀.”
“비극이 어째서 비극인 줄 알아? 주인공이 죽어서 비극인 게 아니라 죽는 방법이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에 비극인 거야.”
“아름답게 죽는 방법도 있냐?”
“원한을 품은 타인의 칼에 찔려 죽는 일은 대체로 비극이지. 아프잖아.”
“총으로 자살하는 건?”
“그것도 비극이지. 아프고 끔찍하니까.”
“그럼 어떻게 죽어야 비극이 아닌 건데?”
“고통 없는 죽음이 아름다운 죽음이야. 참을 수 있는 고통을 포함해서.”
연인 사이라 하기에 우리의 대화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죽는 게 가장 ‘아름다운’ 혹은 ‘확실한’ 죽음 방법인가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얘기를 마치 본인의 전 남친 얘기인 양 떠들어 댔고 나는 그걸 구경했다.
그녀가 나에게 “그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아련한 표정으로 묻길래 나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물었다.
“가시에 찔려 죽으려면 가시가 30센티미터 이상의 거대 가시거나 아니면 최소 500번 이상 찔려야 되지 않냐? 겁나 아팠겠다. 운도 더럽게 없네.”
아무 말 없이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이게 바로 비극이었다. 때마침 스튜어디스가 지나갔다. 곤란한 타이밍에 기다렸다는 듯 물을 가져다준 스튜어디스에게 이 물이 제주 삼다수냐는 실없는 농담을 건넸고 수줍게 웃는 스튜어디스와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천만다행으로 릴켄지 랄켄지 뭔지 모를 남자의 죽음은 잊혔다.
짧은 비행시간 동안 우리의 대화 속엔 다양한 죽음의 방법들이 등장했지만 역시나 ‘아프지 않게’ 혹은 ‘한 방에’ 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 의미로 병들어 죽는 것보다는 사고로 죽는 게 차라리 나을 거라는 쪽에 동의했고, 갑작스러운 핵폭발이라든가 예기치 못한 운석 충돌이 가장 좋은 죽음이라고 합의를 보았다. 아무래도 혼자 죽는 건 외롭고 무서우니까 다 같이 죽자는 데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맞은 것이다.
--- 「4. 녹여 먹어요」 중에서

파를 다듬다 말고 아예 몸을 돌리고 서서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동안 인간적 관계를 맺는데 많은 시간이나 노력을 쏟을 필요가 없었던 나는 타인에 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들에게 맞추지 않아도, 내 멋대로 말하고 행동해도, 가끔은 어떤 말이나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오히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내가 관심을 갖고 연구해야 할 대상은 IPTV 서비스, 침대의 안락함, 배달 음식의 범위, 수돗물의 안정성 등이지 여자에 대한 이해는 아니었다. 물론 여자와의 관계는 생계의 원천이라 비즈니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지만 그녀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했다. 나쁜 여자는 나를 귀찮게 했고 착한 여자는 나를 질리게 했다. 나에게 여자는 보편적이면서도 일반화가 가능한 존재였다.
그러나 은제이에 대해 알고 싶은 범위는 내가 모르는 20년의 과거, 작은 습관, 사소한 버릇 등을 뛰어넘어 그 이상이었다. 지나치게 관심이 생겨버렸다.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의 출처와 역사, ‘어을티메이를리’를 발음할 때 혀와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 그녀가 지금껏 만나온 모든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새삼스럽게 계약서 마지막 글귀가 떠올랐다.
‘갑에게 마음을 뺏기는 경우 계약금 100% 반환.’
정신 차리자 전세계. 96일 뒤에 떳떳하게 그 돈을 쓰려면 지금 역할에만 충실하자.
손으로 뺨을 착착 두드린 뒤 다시 몸을 돌려 파 껍질을 마저 깠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도시락에 퍼 담고 반찬과 국을 담았다.
나는 도시락과 수저, 작은 생수 한 병을 종이 가방에 담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넌 죽기 전에 이런 노동을 왜 해보고 싶었던 거야?”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노동? 도시락 만들어서 배달하는 게 노동이야?”
“노동 아니면 뭔데?”
“당연히 사랑이지.”
사랑이라고 대답한 그녀는 매우 충격적이라는 표정으로 나에게 되물었다.
“너 설마… 오늘 하루 종일 노동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넌? 하루 종일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궁금했던 건 단순히 ‘죽기 전에 도시락을 왜 싸보고 싶었는가?’ 하는 거였다. 그러나 방향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그녀는 도시락을 싼 게 아니었다. ‘사랑’을 했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도록 흥분해서 말했다.
“난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했어. 내 마음을 도시락 하나하나에 담아내며 너무 감동받아서 눈물이 날 뻔했다고!”
“인생을 너무 감성적으로 사는 것 같다? 무슨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희한한 논리를 갖고 사네.”
“너야말로 이상해. 우리가 전달하는 건 밥이 아니야. 사랑이야!”
눈썹에 잔뜩 힘을 주고 “사랑이야!” 하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 심각하게 구겨지고 귀여워졌다. 이제는 그녀가 도시락을 싼 이유보다 이 대화의 끝이 궁금해졌다.
“웃지 마. 사람은 밥만으로는 살 수 없어. 고독한 사람들에게는 관심과 사랑을 나눠주는 게 밥보다 더 중요해. 내 도시락을 받은 분들은 분명 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사랑이 밥보다 중요하면, 밥 안 먹고도 살 수 있겠네. 그럼 밥은 왜 했냐? 빈 도시락에 ‘사랑만 담았어요.’ 하고 건네주지.”
그녀를 놀리는 것도 재미있고, 콩 주머니 주고받듯 하는 대화도 재미있었다. 웃음을 참으며 건성으로 말하는 내 태도에 결국 그녀의 언성이 높아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애가 왜 그렇게 삐딱하니?”
“나 원래 삐딱한 놈이야. 알지도 못하는 노인네들 밥해 먹이려고 몇백만 원어치씩 장 봐본 적 없는 나는 사랑이 뭔지 몰라서 삐딱하다. 됐냐?”
대화를 이런 식으로 전개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마지막에 살짝 본심이 드러났다.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서 겨우 도시락 만들기밖에 하지 않았다는 데에서 오는 서운함이 애매한 방향으로 꼬였다. 남자 친구 역할 하라면서 3억 원이나 입금해 놓고 겨우 뿌리채소 다듬는 데 하루를 쓰게 하다니 인력 낭비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나 잘났다 하고 버티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 「6. 사랑의 도시락 배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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