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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 인생의 파도를 대하는 마흔의 유연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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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50g | 135*195*14mm
ISBN13 9791191462074
ISBN10 119146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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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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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태양을 떠오르게 하려면 옛날을 그리워하거나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에 어렴풋한 불안을 느낄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확실히 즐길 줄 아는 담력이 필요하다.
--- p.23

예상 밖의 일도 있었다. 햇볕에 탄다는 것은 몸의 가장 바깥쪽 피부가 일시적으로 그을리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40세를 넘기고 나서의 그것은 전혀 달랐다. 말하자면 몸 안쪽에 숨어 있던 기미 예비군이 하나하나 태양 광선에 맞아 깨어나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빨갛게 타기 전에 어깨와 가슴 근처가 얼룩얼룩해졌다. 중년에게 태양은 기미를 깨우는 자명종일 뿐이다.
--- p.40

10대 때, 우리는 ‘이 시간은 영원히 계속될 거야’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시간은 어디부터라고 할 것도 없이 멋대로 밀려와 눈앞을 무한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마치 커다란 강처럼 멈춰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영원히 내게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가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함께하려면 시간을 짜내야 한다는 것 또한 안다. 하지만 만나면 그때 그 시절과 다름없는 충만함이 약속되어 있다. 누군가 먼저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는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기술로 작은 행복을 더해갈 것이다. 여자 친구는 유일하게 원금 손실이 없는 재산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 p.71

뿌리는 성실하지만 살아가는 태도는 약간 불성실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자기계발 의지는 갖춰져 있지 못하다. 서툴다기보다 귀차니즘이라 합리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둔하지 않다. 그래서 일시적인 정의감으로 타인을 판단하거나 치켜세우지 않는다. 그렇다. 그런 거 귀찮을 따름이다. 어설픔으로 인한 작은 상처들을 치유하는 40도 전후의 온수 같은 모임인 셈이다. 여기에서는 호전적인 내 교감신경이 스윽 꺼진다. 부교감신경씨, 어서 오세요. 여기는 ‘어설픈 여자들의 모임’이랍니다.
--- p.85

“이것을 맨눈으로 볼 수 없게 된다면 이 일은 끝이야.” 그렇게 웃는 선배 아나운서에게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돋보기안경을 쓴 여자 아나운서의 등장이야말로 여자 아나운서의 승리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젊음과 서투름으로 상징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돋보기를 쓴 모습이 충분히 이야기해줄 것이다.
--- p.142

이유도 없이 비참함으로 불쾌할 때는, 어른이라도 깜짝 놀라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어른은 깜짝 놀라는 정도로는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리니 불쾌해지는 수밖에 없다. 어른이라도 아이의 흔적은 남아 있다. 누군가가 안심시켜주거나 등을 두드려주기를 바라는 때가 있는 법이다.
--- p.202

착실히 노후에 대비해온 사람은 “젊을 때 좀 더 막 살 걸” 하고 후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계획 없이 살지 말고, 잘 준비해둘걸” 하고 한탄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보나 증언은 참고 정도로 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자기를 믿는 편이 확실하다. 어떻게 하면 자기를 믿을 수 있게 될까 생각해보면, 무엇을 선택하든 그럭저럭 괜찮을 거라고 자기에게 증명해가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하며 나아가는 중에 내가 틀릴 것은 확실하다. 지금도 아주 잘못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틀려도 괜찮다. 거기서부터 회복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고 자신을 설득해보는 건 어떨까. 오늘까지 무사히 살아왔으니 당신은 괜찮은 것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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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매력은 화려한 수사학이 아니라 항상 노동하고 늘 사랑하며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해가는 여성의 삶 그 자체에서 우러나온다. 일에 치여 지낸 요즘의 나는 잠깐 십 분만 원고를 훑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한달음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읽다가 깔깔 웃기도 하고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며, 나는 저자의 말처럼 ‘원금손실이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 최고의 투자’는 바로 ‘멋진 여자사람친구’를 사귀는 것임을 깨닫는다. 늘어나는 주름과 흰머리와 더불어 더욱 오래, 더욱 깊이 사랑할 우정의 대상을 찾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노후대책이 아닐까. 일과 사랑과 휴식의 균형을 찾아 행복해지는 삶,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뛰어남과 특별함을 향해 자신을 던지다가 너무 지쳐버렸다. 오늘도 ‘나는 재능이 없어’, ‘내 인생은 왜 이토록 술술 풀리지 않는 것일까’라는 고민으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이라면, 이 책이 전해주는 속 깊고 따스한 지혜와 위로를 선물로 드리고 싶다.
- 정여울 (작가, 『마지막 왈츠』, 『끝까지 쓰는 용기』 저자)
40대 여자, 분류상 ‘아줌마’로 사는 게 솔직히 괜찮다고 말해도 누군가(아마도 젊은이)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겁을 먹었다. 세상은 나이가 들어가는 여자를 겁줄 무기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상당히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상당히 괜찮다’는 말 아래 복잡한 여러 가지가 흐르고 있는데 제인 수는 그걸 솜씨 좋게 건져 올려서 가볍게 탁 들어 슬쩍 내밀었다가 다시 착 넣어둔다. 절묘한 동아시아 여자 어른의 기술이다. 좌우지간 우리 괜찮다니까? 나는 제인 수와 마음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 오지은 (작가, 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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