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1년 12월 03일 |
---|---|
쪽수, 무게, 크기 | 596쪽 | 738g | 140*210*30mm |
ISBN13 | 9791191922004 |
ISBN10 | 1191922006 |
출간일 | 2021년 12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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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96쪽 | 738g | 140*210*30mm |
ISBN13 | 9791191922004 |
ISBN10 | 1191922006 |
MD 한마디
허락된 삶 그 너머를 꿈꿨으나 절망에 빠진 엄마 애그니스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된 아들 셔기의 무력하고도 절절한 사랑 이야기. 시대가 낳은 가혹한 운명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의 꽃이 핀다. 2020년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부커상을 수상했다. - 소설 MD 김소정
보수주의이자 반노동조합주의였던 마거릿 대처의 정책 아래 철공소, 광업소, 조선소가 문을 닫으며 불황과 절망에 빠진 공업 도시 글래스고. 자신의 우상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빼닮은 아름답고 자존심 강한 여인 애그니스 베인은 비루한 현실이 그녀에게 건네준 것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가학적이고 이기적인 바람둥이 남편이 그녀를 떠나며 외진 탄광촌에 아이 셋과 버려진다. 애그니스는 상실감과 외로움을 잊기 위해 점차 술에 의존하며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일삼고, 그녀의 곁을 지키던 아이들도 끝내 자신의 삶을 구하기 위해 한 명씩 떠나간다. 한편 다른 소년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잘못되었다’는 낙인이 찍힌 막내 셔기는 자신이 노력하면 어머니를 술의 손아귀에서 구할 수 있으며 자신 역시 정상적인 소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데… 2020 부커상 수상, 전미도서상 최종후보, 브리티시 북어워드 올해의 책과 올해의 데뷔작. 2020년 영미 문학계를 평정한 이 데뷔작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암울한 시기였던 1980년대에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의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한 가정이 파괴되는 과정과, 그 처참함 속에서도 빛나는 어머니와 아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생생하게 그렸다. |
1992 사우스사이드 1981 사이트힐 1982 핏헤드 1989 이스트엔드 1992 사우스사이드 |
근래에 읽었던 소설 중에서 최애가 될 것 같다. 특히나 화자의 어머니인 애그니스 베인의 캐릭터는 정말 독보적이다. 퀴어소설이라는 연관어에 고민했지만 동성애적인 관계에 관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이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인 가진 인물임을 보여주는 정도에서 끝인 것 같다. 셔기가 마음보다는 알콜 중독자인 애그니스의 중독과의 싸움, 그 싸움에 이기지도 못하지만 절대 기개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녀만의 성정이 읽는 내내 흥미를 이끌었다.
“셕은 엑셀을 세게 밟았다. 도시가 변하고 있었다. 변화가 사람들의 얼굴에서 보였다. 글래스고는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고, 방황하는 도시를 셕은 택시의 창문을 통해 전부 보고 있었다. 변화는 셕의 벌이에서도 느껴졌다. 대처가 정직한 노동자들을 버렸으며 테크놀로지와 원자력과 사보험에 미래를 걸었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공업의 시대는 끝났다. 클라이드강의 조선소와 스프링번 철도건설의 형해가 부패한 공룡의 뼈대처럼 도시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을 약속받았던 공영주택 출신 젊은이들의 미래가 깡그리 사라졌다...” (p.66)
《셔기 베인》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를 배경으로 한다. 신자유주의의 팽배와 함께 허물어져가는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자들, 그 노동자들의 삶이 머무는 도시가 바로 소설 속의 글래스고이다. 그렇지만 소설이 정치경제적인 메시지에 주목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 계급에서 헛된 꿈을 꾸었던 애그니스가 바로 그 노동자 계급의 남자들과 함께 하면서 잃어버린 것을 메시지로 삼는다.
“애그니스가 달려들어 셕의 목을 움켜쥐었다. 셕은 허리 지갑을 식탁에서 들고 애그니스의 입에 혀를 강제로 밀어 넣었다. 작은 손뼈를 모조리 으스러뜨릴 것처럼 쥐고 나서야 애그니스의 손을 떼어낼 수 있었다. 애그니스는 셕을 사랑했고, 셕은 그녀를 영영 떠나기 전에 완전히 망가뜨려야 했다. 훗날에 다른 사람이 와서 사랑할 수 있게 고이 두고 가기에는 애그니스 베인이 너무 특별한 여자였다. 그 누구도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산산이 부숴버려야 했다.” (p.154)
애그니스가 첫 번째 결혼을 그만둘 때 두 자녀 캐서린과 릭이 있었다. 이후 택시 기사인 셕 베인과 결혼했고, 셔기 베인이 태어났다. 소설은 셔기 베인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하지만 셔기 베인이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애그니스와 셕은 파탄에 이른다. 애그니스는 버림받았고, 셔기 베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셔기 베인은 너무 어렸고 배다른 누이와 집을 떠난 다음까지도 애그니스의 곁에 남아야 했다.
“가끔, 자주는 아니고, 애그니스는 콜린과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이 아타까웠다. 애그니스는 인정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겠지만, 사실 두 여자는 공통점이 많았다. 한 번은 빅 제임시가 마지막 실업수당을 중고차와 아이들 비비총에 탕진했다고 진티가 말했다. 그 덕분에 콜린은 파인페어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훔쳐서 크리스마스 저녁을 차려야 했다. 애그니스와 콜린 두 여자 모두 가난의 모서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았다...” (p.225)
셔기 베인이 눈으로 보고 미루어 짐작하는 애그니스의 파탄지경은 읽어내기 힘들 정도이다. 알콜에 완전히 의존하게 된 애그니스는 정부에서 제공되는 쿠폰으로 술을 산다. 술만 마실 수 있다면 도시의 허름한 노동자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거기에 셔기 베인이 함께 있다는 사실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중에는 거기에 셔기 베인이 있다는 사실조차 그녀는 잊은 것 같다.
『“다 합쳐서 얼마예요?” 돌런 씨가 염장햄을 장바구니에 넣으려는데 애그니스가 물었다.
“5파운드 2펜스요.” 돌런 씨가 대답했다.
애그니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오, 오늘 신문도 주실 수 있을까요?”
“5파운드 27펜스요.”
“우리 셔기 줄 캐드버리 초콜릿도 하나 주세요.”
“5파운드 50펜스요.”
“또 뭐가 필요하더라.” 애그니스는 기억을 더듬는 척했다. “아, 맞다. 잊어버릴 뻔했네.” 셔기는 창피해서 신발만 내려다봤다. “스페셜 브루 열두 캔 주실 수 있을까요?”』 (p.454)
그 사이 유진이라는 또 다른 택시 기사가 애그니스의 앞에 등장한다. 애그니스는 알콜중독자 모임에 나가는 중이었고 금주 성공의 기한을 점차 늘려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결국 애그니스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술 한 잔 가볍게 하는 것으로 정상인임을 입증하라는 유진의 요구를 애그니스가 받아들이는 순간은, 소설의 많은 선택의 순간들을 모두 합친 것만큼 가슴이 아프게 다가왔다.
“장애판정서비스국은 애그니스의 화장 비용은 부담하겠지만, 월리와 리지가 묻혀 있는 가족묘에 공간이 없으므로 새로 터를 잡아 매장할 비용까지는 대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릭은 애그니스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게 막았다... 그러나 애그니스와 같은 AA 모임에 종종 나가던 옆 단지 여자를 통해 소식이 단체에 알려졌고, 곧 낯선 얼굴들이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소식이 흘러 흘러 핏헤드에까지 닿아서, 그 옛날의 악귀들이 전부 댈더위 화장장에 나타났다.” (p.572)
결국 허구이지만 소설의 많은 부분은 자전적이라고 작가 더글러스 스튜어트는 밝히고 있다. 때문에 작가가 원했건 그러지 않았건 바로 그 시대, 1980년대의 노동자 계급을 둘러싼 디테일들이 꿈틀댄다.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경제적 상실이 발생할 때 그 여파가 밀려드는 가장 밑바닥, 작가의 글이 결국 가라앉게 되는 것은 바로 그곳인 셈이다. 그리고 셔기 베인, 작가 더글러스 스튜어트는 그곳으로부터의 생존자이다.
더글러스 스튜어트 Douglas Stuart / 구원 역 / 셔기 베인 (Shuggie Bain) / 코호북스 / 593쪽 / 2021 (2020)
“살다가 바닥이 어딘지 모르게 떨어지는 때가 있지요.” 얼마 전 나를 위로하려, 친애하는 지인이 전한 글 속의 한 문장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고통과 슬픔, 외로움으로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을 맞는다. 관건은 그 추락의 깊이와 그 순간의 길이다.
<셔기 베인>은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거의 모든 추락을 보여준다, 묘사한다, 표현한다, 경험하게 해준다. (어떤 동사가 적절할지는 선택하기가 난감할 정도로 장면을 하나하나 마주 대하듯 펼쳐주는 글이었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부터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다는 듯 착각마저 들었으니까. 책을 읽어 가면서는, 책 속의 인물들과는 모든 것이 너무도 달라 완벽한 타인이라고 느꼈던 독자인 내가, 어느새 그들 속 한가운데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인간의 거의 모든 추락에 대한, 이토록 적나라하고, 대담하면서도, 세심한 묘사가 어떻게 가능할까. 무척 놀라웠다. 작가의 재능에 대한 놀라움은, 셔기가 작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존경으로 변했다. 그 시간을 오롯이 견디고, 삶을 지키고, 그 이야기를 자기 밖에 꺼내 세상에 보여준 작가의 용기와 열정에 찬사를 보낸다.
그 모든 추락을 목도하고, 온몸으로 경험하고도, 아니 감당해 냈기에 <셔기 베인>은 오히려 생에 대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까. 인생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가차 없는 추락을, 셔기는 무엇으로, 어떻게 견딜 수, 오히려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오늘의 그가 될 수 있었을까. 셔기는 <셔기 베인>에서 보여 주었듯, 오늘도 자신의 생활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전해주고 있으리라. 그 해답 중 하나가 10여 년에 걸친 <셔기 베인>의 집필과 숱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루어낸 출판이 아니었을까. 결국 관건은, 그 추락의 모양, 길이와 깊이를 뛰어넘는 삶에 대한 의지, 희망과 열정이다. 그들의 원천에 대해서라면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번역하기 까다롭고 난해했을 텍스트를 기꺼이 고르고, 정성껏 번역해 주신 구원 번역가님, 코호북스의 문학에 대한 애정과 노고에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 <셔기 베인>을 읽는 중, 코호북스에서 출판된 <뉴 그럽 스트리트>의 장면들이 여럿 중첩되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였다. 100 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둔 다른 공간, 인물들의 이야기인 이 두 작품이 겹쳐지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참 묘하고도 짜릿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