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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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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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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 예정일 미정
쪽수, 무게, 크기 391쪽 | 448g | 148*210*30mm
ISBN13 9788958660941
ISBN10 895866094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느닷없는 소음 때문에 K는 잠에서 깼다. 강제로 깨어난 불쾌감 때문에 K는 어리둥절하였다. 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서 K는 자신을 깨운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자명종 소리였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릉─
자명종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울부짖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릉─
K는 투덜거리며 머리맡 탁자 위에 놓인 자명종의 버튼을 눌렀다.
비명 소리는 멎었다.
K는 아직 잠에서 덜 깬 상태였다. 자명종의 버튼을 눌러 끈 K는 필름을 영사기에 걸어 스크린에 투영하는 영사기사처럼 끊긴 잠의 필름을 의식적인 접착제로 강제로 이어 붙인 후 다시 잠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순간 K는 의식이 명료해졌다.
자명종이 울렸다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K는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떠 시계의 숫자판을 쳐다보았다.
정각 7시였다.
7시라면.---pp.17~18

“이 핸드폰을 어디서 발견했습니까. 술에 취해 어젯밤의 일이 기억나지 않아서요.”
“극장입니다.”
‘을’이 대답하였다.
“어젯밤에는 휴일 전날이라 시간이 있어서 늦은 식사를 하고 심야극장을 갔었지요. 영화를 보는 도중 앞좌석 포켓 속에서 핸드폰을 발견했습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주인이 찾으러 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끝나고 나서도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 극장 측에 맡겨 두고 올까 하다가 내가 보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극장이라면 어느 극장을 말하는 건가요.”
“바로 이 건물 3층에 있지요. 가만 있자.”
‘을’은 주섬주섬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아, 여기 있군. 어젯밤에 보았던 영화의 입장권입니다.”
“내게 주시겠습니까.”
“가지려면 가지세요. 내겐 소용없는 물건이니까.”---p.101

오늘 아침 일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K는 수많은 낯익은 인물과 낯익은 존재와 만나고 헤어졌다. 낯이 익은 자명종 소리와 낯익은 침대, 낯익은 K의 방, 낯익은 아내와 낯익은 딸, 낯익은 강아지, 낯익은 처제의 얼굴과 낯익은 장모의 모습. 그와 반대로 낯선 벌거숭이의 몸, 낯선 성냥갑, 낯선 게이바와 낯선 결혼식, 낯선 장인의 등장과 휴대폰을 주운 낯선 ‘을’과의 만남, 낯선 여인의 넓적다리와 낯선 〈눈먼 자들의 도시〉의 영화 내용, 낯선 C열 45번,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내의 얼굴과 닮은 동영상 속 낯선 여인의 얼굴.
K는 자신이 온종일 겪은 낯익은 사물과의 익숙함과 낯선 사물과의 이질감 사이에서 방황을 하고 갈팡질팡하는 인식이 자신을 불안케 하는 근본적인 원인임을 깨달았다. 어젯밤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pp.121∼122

H는 K의 친구가 아니다. H는 친구 역할을 하고 있는 대리인일 뿐이다. 대리모代理母가 불임 부부의 부탁을 받고 낯선 남자의 정액을 자신의 자궁 속에 흘려 넣은 후 아이를 낳고 보상을 받는 것처럼 K가 만나는 모든 인물들은 대리모처럼 고용된 사람들이다. 그 사생아는 출생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열 달 동안 품은 대리모의 존재 역시 모를 것이다. 실제 엄마가 아닌 대리모를 고용한 사람을 엄마라고 부를 것이다.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아이라 할지라도 자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열매가 아니고 차가운 금전적 거래의 산물이다. 자식은 어미와 아비를 가졌으나 실은 고아인 것이다.
K는 고아이며, 독자獨子다. K는 사생아다. 창조주보다 더 교활한 이 거대한 무대의 연출자는 K를 지켜보며, 훔쳐보며, 낄낄거리고, 웃고, 박수를 친다. 대리 아내와 대리 딸, 대리 강아지, 대리 H, 대리 ‘을’, 대리 장인은 그 연출자에게 고용되었으며, 이 연극에 출연하기 전부터 철저한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순은 존재한다. 진실처럼 보이는 진리가 진리가 아니고 궤변이듯, 이 가상의 연극 무대 위에서 실수로 놓친 모순들이 조금씩 조금씩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pp.123∼124

“내가 내 안에 들어 있는 여성성을 발견한 것은 40대 중반 이후였네. 어느 날 낯선 골목을 지나다가 빨랫줄에 걸린 여자의 속옷을 보고 그것을 훔쳤지. 그리고 한번 입어보았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 일찍이 그리스의 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말하였다네. 태초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이며 여자인 세 가지 성性이 있었다고. 남자는 해이며, 여자는 땅, 남자이며 여자는 달이었지. 남자이자 여자인 제3의 인간은 점점 교만해져서 제우스의 눈에 거슬릴 정도가 되었어. 그러자 제우스는 제3의 인간을 둘로 갈라놓았고 그렇게 둘로 떨어진 인간은 서로 반쪽을 찾아 방황하게 되었네. 남자이자 여자인 제3의 인물이야 말로 인간의 원형이며, 미래에 있어서도 가장 진화된 호모루덴스라고 할 수 있지. 남자이자 여자인 제3의 인간이 늘어난다면 성범죄나 성차별, 사회적 부조리 등은 ?동적으로 해결될 걸세. 그리고 가정은 보다 자유롭고 일종의 성의 해방구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해하지는 말게. 나는 양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는 더더욱 아니네. 어디까지나 여장에서만 성적인 흥분을 느끼고 여장을 할 때만 변신하는 것뿐이야. 이것은 오로지 심리적 안정 때문이지. 우리를 동성애자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견딜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낀다네. 나는 얼마든지 남편이 아내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고, 여자가 남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성은 얼마든지 공산共産화할 수 있으며, 가정은 소유욕이나 질투심이 없는 지상의 낙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네.”---pp.206∼207

JS는 K의 발에 입을 대었다. JS는 익사 직전의 사람을 물 밖으로 끌어내 인공호흡을 하는 구조대원처럼 보였다. JS는 더러운 K의 발목을 자신의 입으로 빨기 시작하였다.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처럼 K의 발목에 흡착된 입의 에너지는 강력하였다. K는 당황하였다. 즉각적이고 저돌적인 JS의 접문接吻에 당황한 K는 몸을 빼기 위해서 주춤거렸다. 이러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JS가 억압하듯 말하였다.
“독소를 빼내지 않으면 광견병에 걸릴지도 몰라. 그대로 있어.”
그러한 행위가 K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최대의 배려이며 아직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는 ‘ 지난번의 그 미안함 ’을 상쇄할 수 있는 보상 행위인 듯 JS는 헌신적인 자세로 K의 상처 부위를 빨았다. JS의 입술은 공격해야 할 상처 부위에 밀착되었다. 혀는 그 상처 부위를 집요하게 핥고 있었다. 그 행위에 열중하고 있어서 JS의 엉덩이가 K의 휴대폰에 저장된 포르노의 영상처럼 클로즈업되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누이의 포즈가 마치 펠라치오의 오랄섹스 체위처럼 보였다.---p.235

생명의 나무.
세일러문으로 변신한 소녀가 지키려는 지구를 살리는 유일한 생명의 나무.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창조신이 만든 선악과가 아닐까.
성경에는 창조신이 자신이 만든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돌보게 한 후,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마라,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가 아담에게 열매를 따줌으로써 원죄原罪가 생겨났으며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고, 파라다이스에서 추방당한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창조신의 말대로 인간은 먼지로 돌아가게 된다. 생명의 나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 살리려는 지구 위에서 죽어가는 생명의 나무. 그것은 창조신이 만든 그 생명의 나무가 아닐까.
“생명의 나무를 살리는 세일러문의 노래를 불러드릴깜.”
세일러문은 마법의 봉으로 K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하였다. K가 그래 달라고 응낙도 하지 않았는데, 세일러문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p.266

“우연은 어차피 있는 법이니까.”
레인저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자, 다시 가위, 바위, 보.”
K2는 이번에도 가위를 냈다. 레인저 역시 가위였다. 레인저가 악몽에서 깨어나려는 듯 신음 소리를 냈다.
“속도를 올리기로 하지. 가위, 바위, 보.”
K2는 주먹을 냈다. 레인저도 주먹이었다.
“삼세번은 있을 수 있어. 젠장 할, 닥치는 대로 해보자고. 자, 시작해 이 새끼야. 가위, 바위, 보.”
K2는 가위를 냈다. 레인저도 가위를 냈다. 다시 보를 냈다. 레인저도 보를 냈다. 생각할 겨를도 없는 무차별의 내기였다. K2가 주먹을 내면 레인저도 주먹을 냈다. 어김도 없고, 착오도 없었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는 내기였다. 어차피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이었으므로.
파이가 소수점 아래 어느 자리에서도 끝나지 않고 3.14159265358979…… 무한하게 계속되는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무한급수이자 초월수다. 최근에 슈퍼컴퓨터를 4백 시간 가동시켜 파이의 값을 1조 2천 4백억 자리까지 계산해도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두 사람은 가르려야 가를 수 없는 이위일체二位一體인 것이다. 그제야 레인저는 가위바위보로는 K2에게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손바닥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pp.332∼333

“나쁜 새끼, 더러운 새끼, 너 같은 놈은 맞아 죽어도 싸. 잘못했지, 잘못했지, 잘못했지, 이 새끼야. 대답을 해. 잘못했지, 잘못했지.”
아내의 몸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잘못했지, 라는 말은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라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아내의 교성임을 K는 느꼈다. K 또한 한낮부터 끓어오르던 용암이 드디어 분출할 만한 엷은 지층을 발견한 것처럼 그곳을 향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잘못했지, 잘못했지. 아아, 잘못했지.”
“잘. 못. 했. 어.”
K의 몸에 들어 있던 긴장된 총탄이 마침내 방아쇠에 의해 발사되었다. K의 아내 역시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일부러 줄을 끊어버린 겿처럼 알 수 없는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물물교환은 성공리에 끝났으며 K와 레인저의 아내 혹은 아파트의 아내는 동시에 부부로서 확인 도장을 찍고, 성공리에 부부로서 재계약을 마친 후,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난 낮에 P교수 아니, 올렝카가 말하였던 잃어버린 K의 반쪽과 아내의 반쪽이 서로 합쳐져 하나의 원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인은 남자의 갈비뼈로 환원되어 시원의 진흙인간으로 돌아갔다.
(354∼355페이지)
어두운 터널 속에서 지하철의 전조등 불빛이 탈옥수를 향해 집중된 교도소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뿜어져 나왔다. K는 이제 재빨리 대피하지 못하면 지하철에 깔려 죽을 것임을 간파하였다.
“안 돼. 제발 빨리.”
“하얀 장미의 기사님.”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 말하였다.
“절 버리고 가세요. 어서요.”
K는 세일러문의 손을 놓고 탈출할 수 없었다. K는 시뮬레이션 연극의 엔드 마크가 다가올 때임을 깨달았다.
K는 더욱더 강하게 세일러문의 손을 쥐었다.
기진하여 더 이상 체력이 없던 손에 갑자기 강한 힘이 더해졌다.
K는 자신의 손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 찰나의 순간, K의 손에 누군가의 손이 합체되었다. K는 그 손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K1, 바로 레인저의 손이었다. 레인저는 K2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두 사람은 마침내 하나의 ‘ 나’ 로 합체하였다.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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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에서 길을 잃은 한 남자의 영원한 사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몰두했던 역사·종교소설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최인호’라는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현대소설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백제와 가야, 조선을 넘나들던 작가의 상상력은 다시 현대로 돌아와, 뒤틀리고 붕괴된 일상 속에 내몰린 주인공 K의 ‘영원한 사흘’이 상징하는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인 혼돈의 시공간을 창조해냈다. 작가는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실재(實在)에 배신을 당한 K가 또 다른 실재를 찾아 방황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현대인이 맺은 수많은 ‘관계의 고리’의 부조리함을 묘파한다.

최인호,
시들지 않는 문학의 숲으로 다시 출발점에 서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암이 내게 선물한 단거리 주법의 처녀작이다.
하느님께서 남은 인생을 더 허락해주신다면 나는 1987년 가톨릭에 귀의한 이후의 ‘제2기의 문학’에서 ‘제3기의 문학’으로,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시 출발하려 한다. 남에게 읽히기 위한 문학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한, 나중에는 단 하나의 독자인 나마저도 사라져버리는 본지풍광(本地風光)과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창세기를 향해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할 것임을 나는 굳게 믿는다. _「작가의 말」에서


■■□ 때때로 삶은 잠시 머물다 가라 한다
; 최인호의 투병과 문학적 회귀


2010년 새해 벽두에 우리 문학계는 한 가지 우울한 소식을 접했다. 2006년 장편역사소설 『제4의 제국』 이후 소식이 뜸했던 소설가 최인호가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워낙 왕성한 필력을 자랑해온 그였기에 4년 여의 침묵으로 그동안 갖가지 소문이 무성하던 중에 날아든 이 소식은, 1975년부터 34년 6개월 동안 이어져온 연재소설 『가족』의 연재를 중단한다는 갑작스러운 그의 선언과 함께 사태의 심각성을 부추겼다.

최인호의 투병은 우리 문학계로서도 큰 손실이었지만, 한 작가의 문학적 완성에 있어서도 엄청난 좌절과 고통을 안겼다. 1985년 『잃어버린 왕국』을 시작으로 역사와 종교를 다룬 장편소설에 치중해왔던 그가 『제4의 제국』 이후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과 단편으로 복귀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중에 찾아온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1963년,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8세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한 최인호는 대학 재학시절부터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한 이래 근대와 현대, 농업과 공업의 시대적·사회적 경계에서 표류하는 도시인들의 왜곡된 삶을 도시적 감성이 담긴 필체로 그려낸 대한민국 현대소설의 대표적인 기수였다. 하지만 1985년 『잃어버린 왕국』 이후, 2006년 『제4의 제국』까지 최인호 문학의 절대적인 비중은 역사와 종교를 다루는 장편ㆍ대하소설이 차지해왔다. 그러나 그렇게 20년 넘게 대하소설에 천착하는 동안에도 현대소설이라는 본령을 잊지 않았던 듯, 작가는 2002년에 출간된 중단편전집의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이번 기회에 과거에 쓴 중단편을 새삼스럽게 읽어보는 동안 나는 문득 작가로서의 남은 인생을 또다시 숨 한 번 쉬지 않고 단숨에 백 미터를 달려가는 치열한 스프린터로 살아가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대하소설 집필을 마라톤의 주법에 비유했던 작가는 초기에 보여주었던 팽팽한 긴장감이 담긴 현대소설과 단편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2005년 『유림』을 출간하면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다시는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덜컥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와 그의 육신과 문학적 이상을 가로막고 말았다.
이후 최인호는 잠행에 들어갔다. 극히 가까운 지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의 근황을 알 길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듯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지만, 그의 실질적인 창작 여정은 거기에서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투병 중에도 숨 고르기를 잊지 않았다. 아니, 그의 병이 그를 다시 현대소설로 복귀하게 만들었다. 2006년 『제4의 제국』 이후 5년 만에 새롭게 펴낸 신작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의 「작가의 말」에서 밝히듯, 그는 일상이 탈 없이 흘러갔다면 요원한 일이었을 그 ‘숨 고르기’가 오히려 병으로 인해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암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최인호를 위해 쓴, 최인호 최초의 전작 현대소설
; 신작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갖는 의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1. 현대소설로의 복귀
첫 번째 의미는 이 작품이 작가가 자신의 본령으로 여겼던 현대소설로 회귀하는 신호탄이라는 사실이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초기 중단편을 중심으로 전개했던 현대소설과 역사, 종교를 다룬 장편ㆍ대하소설을 지나 소설가 최인호의 ‘제3기의 문학시대’가 열리는 시발점이 되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장편의 분량과 형식을 취하면서도 간결한 구조와 압축된 문제의식으로 인해 단숨에 읽히는 ‘단편의 콘텐츠’를 취하고 있다.

2. 최인호 문학 최초의 전작 장편소설
두 번째 의미는 작가 자신이 이 소설 「작가의 말」에 밝힌 것을 직접 읽는 것으로 선명하게 와 닿을 것이다.

문단에 데뷔한 이래 50년 동안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수십 편의 장편소설과 대하소설을 집필하였다. 그 모든 소설은 외부의 청탁에 의해 쓴 신문이나 잡지의 연재소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누군가의 청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독자를 의식해서 쓴 작품이 아니라 나 혼자만의 독자를 위해 쓴 수제품인 것이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특히 최인호와 같은 인기 작가의 작품은 발표할 지면이 미리 확보된 상태에서 집필에 들어간다. 그러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병과 싸우며 잠행했던 시기에 뇌우와 같은 순발력으로 두 달 만에 써낸 최인호 문학 최초의 비연재작이자 신작인 전작장편소설이다.

■■□ 유실된 기억 속의 진실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모험과 추적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줄거리


토요일 아침, 시계의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K는 휴일 아침에 왜 자신이 알람을 맞추어놓았는지 의문을 갖는다. 어딘지 모르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상의 흐름을 느끼던 K는 지난밤의 발기 불능, 평소와는 다른 아내의 태도, 지금까지 써온 스킨의 브랜드가 달라진 것 등을 확인하면서 ‘조작’의 기미를 눈치챈다. 타인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낯설기만 한 미세한 변화에서 익숙한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삶에 엄격한 평소의 K답지 않게 간밤 정신과 전문의인 친구와 가진 술자리에서의 기억이 어느 시점부터 끊긴 것과 휴대폰을 분실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면서 혼란은 가중된다.

처제의 결혼식이 있는 그날, K는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지난밤 술자리에서 끊겨버린 기억과 자신의 행적을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K는 계속해서 역할을 바꾸며 등장하는 같은 얼굴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시공간적으로 전혀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지난밤 자신의 행적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발을 딛고 선 현실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가족을 만나보라는 정신과 전문의 친구의 조언을 따라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누이를 찾은 K는, 누이와 자신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특히 몇 년 전 자신이 누이에게 돈을 부탁하면서 보냈다는 편지의 필적은 분명 자신의 것임에도 K에게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K는 조작과 속임수의 실체가, 사실은 뒤틀리고 어긋난 일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이 모든 의혹을 풀기 위해서 그는 몇 년 전 누이에게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던 ‘나’를 만나러 가는데…….

■■□ 뒤틀리고 붕괴된 현실의 틈새에서 발견한 진실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조금 깊이 들여다보기


이 작품은 특이한 구조와 그로테스크한 작중인물의 설정, 환상주의와 사실주의를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만큼이나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때문에 빠르게 읽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1. ‘역할’로 점철된 현대인의 우울한 초상을 그리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의사 친구와 가깝게 지내며 번듯한 직업을 가진 사회인으로서,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을 견디지 못하는 제도적 인간으로서, 그리고 주일마다 미사에 반드시 참석하는 견실한 신앙인으로서 K는 생의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상이 조작되고 현실에 균열이 생기며, 그로 인해 환상과 실재의 공간을 오가면서 K는 사실 조작된 것은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주변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리고 급기야 처음에는 자신의 행세를 했을 것이라 믿었던 또 다른 ‘K’에게 순순히 ‘참 자아’의 자리를 내주고 만다. 자신이 쌓아온 견고한 삶이 생의 진짜 모습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생은 때때로 허물어지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 자신이 만든 견고한 삶은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기에 ‘진짜 삶’은 없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K는 자신의 배역과 역할에 충실한 동안 정작 자신의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습을 상징한다. 도덕적이고 합법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다는 것은 인간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 제도에 순응함으로써 갖게 된 스스로의 착각일 뿐이다. 그 단단할 것 같은 일상에 금이 가면서 K는 자신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그는 자신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된 또 다른 삶을 목격하는 것이다.

2. 일상과의 이별을 통해 본래의 자신을 회복하다
이 책의 발문을 쓴 소설가 김연수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 독법의 열쇠를, 작가가 1972년에 발표한 단편 「타인의 방」에서 찾고 있다. 김연수는 「타인의 방」을 두고 쓴 문학평론가 남진우의 “그는 타자가 기획한 무대에 등장한 어릿광대이며 속임수에 빠진 가련한 희생자에 불과하다”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K가 처한 상황 역시 왜곡되고 뒤틀리면서 일상의 공간이 비일상의 공간, 연극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일상의 틈을 통해서다. K가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순간은 지진의 균열이 일어날 때와 일치한다. 디디고 선 땅이 물렁해지는 이 의심의 순간은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심을 통해 만나게 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건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사실이리라. (…) 현실은 언제든 그처럼 붕괴될 수 있다는 점, 그게 바로 진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거대한 별사(別辭)인 동시에 어떤 붕괴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
_「발문」, 김연수(소설가)

그리고 이 작품 후반부에서 K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지난 이틀 동안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인사를 한다. 이 ‘거대한 작별의 장면’을 두고 김연수는 현실이 붕괴된 뒤 K 자신과 함께 사라질 현실의 꼭두각시들과 작별하는 의식이라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과 작별한 뒤에야 우리는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힌다.

3. 현실의 균열 속에서 진실과 구원의 희망을 발견하다
이 책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작가가 성경 「탈출기」의 내용을 장치해놓은 것 역시 이 작품을 해석하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모세에게 이르는 “나는 곧 나다”라는 말은 이 작품의 끄트머리에서 K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K1’과 합체되는 장면과 연결되고 있다. K는 주말 이틀 동안의 카오스와 붕괴를 겪은 뒤 맞는 월요일 아침에 자신이 맡아온 배역의 캐릭터를 완전히 변화시키면서 ‘온전한 나’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것은 구체적인 세상과 현실과 일상에 오염되기 전, 창조주의 계획으로만 존재하던 ‘나’의 신성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수없이 많은 ‘나’들이 만든 세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나’를 구원하는 희망의 전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보든,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최근 작가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논해야 할 화학적 반응의 결과물이다. 소설 속 주인공 K는 사흘 동안에 일어난 비현실적인 사건을 통해 변신한다. 세상의 잣대로는 비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K의 결말은, 결말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작가 역시 어떤 이별을 통해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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