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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것

두고 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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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14g | 133*200*15mm
ISBN13 9788954680219
ISBN10 895468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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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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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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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신은 수연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N시에 살 때처럼 침대에 누워 어깨를 안고 서로의 뺨을 붙였다 떼었다. 문득 천장에 매달아놓은 드림캐처가 보였다. 승신은 더이상 호연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또 남편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더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는 건 그냥 저 드림캐처의 동그란 고리 같은 것이라고 하고 내버려두기로 했다.
수연은 닭똥 냄새 지독하던 양계장 사택에서 그랬던 것처럼 승신의 팔베개 안에서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혹시 지진이 나서 집이 무너지면 어쩌지. 그렇게 되면 날 꼭 찾으러 와. --- p.35~36, 「어른의 맛」 중에서

파라솔 아래에서 술을 마시던 애들이 몸을 밀치며 싸우고 있었다. 한 손으로 상대의 어깨를 밀고 소리를 지르고 팔을 뻗어올렸다. 삶은 저애들을 더 비관적으로 만들 거야. 승신은 애들이 살면 살수록 더 비관적으로 변할 거란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삶이 사람들을 더 비관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p.36, 「어른의 맛」 중에서

승신은 잘 아는 길을 걷는 것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앞을 향해 계속 걸어나갔다. (…)
그리고 갑자기 흙 한줌을 집어 입에 넣었다. 순식간에 입속의 수분을 모두 다 빨아들이는 흙의 맛은 승신이 언젠가 마카오에서 먹었던 비스킷의 맛을 떠올리게 했다.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먹는, 마치 황사를 삼키는 것 같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아 어른의 맛이라고 했던 그 아몬드 비스킷의 맛이었다. --- p.37, 「어른의 맛」 중에서

소희는 가끔 억울했다. 그러다가도 은수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달라졌다. 내 딸은 감독이다. 내 딸은 중요한 일을 한다. 내가 저애를 낳았다. 은수는 전보다 흰 머리칼이 늘었고 팔자주름도 짙어졌다. 담배를 피우는 탓에 피부는 엉망이었고, 가릴 수 없이 튀어나온 뱃살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은수는 뭐라고 말해도 부족한, 소희에게는 세상에 단 하나 있는 그 무엇이었다. --- p.72~73, 「버려진 지대에서」 중에서

엄마보다 내가 먼저 죽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나 죽는 걸 지켜봐주면 안 무서울 것 같아. 은수는 가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고 E선배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이사하던 날 엄마를 찍은 영상의 일부를 첨부 파일로 보냈다. 답장은 밤 아홉시쯤 도착했다. 이런저런 말 끝에, 전과 달리 네 영상이 차분하고 따뜻해졌다고 적혀 있었다. 별것도 아닌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은수는 피식 웃었다. 상처 난 얼굴이 땅기고 아팠다. --- p.89~90, 「버려진 지대에서」 중에서

스모그만 걷힌다면, 오늘밤만 무사히 지난다면 아무 문제 없다고 중얼거리며 지영은 바로 눈앞도 보이지 않는 다리 위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이 모든 것이 다 보인다는 듯, 지영의 몸을 툭 치고 다리 위를 가로질렀다. 순간 개의 혀가 지영의 손을 핥고 지나갔다. 지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녀의 모습은 스모그에 지워져버렸다.
--- p.162, 「스모그를 뚫고」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책을 받자마자 밤새도록 읽었다. 문장들이 송곳처럼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나는 이 책 안의 인물들을 잘 알고 있다. 낯선 곳에서 혹은 익숙한 곳에서 내가 만났고 내가 사랑했고 내가 외면했던 사람들이자 나 자신이었다. 그들의 심장에 머리에 자궁에 팔다리에 나 있는 검고 깊은 구멍들은 심연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입안의 모래알 같은 그 씁쓸하고 서걱거리는 구멍들을 음미하다 해가 떠올랐다. 문득 나는 내 가슴에도 작은 구멍이 나 있음을 눈치챘다. 오랫동안 덮어놓고 잊어버렸던 그 구멍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 김도영 ([82년생 김지영] 영화감독)
세상 곳곳의 흥망성쇠를 초조함 없이 바라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꼼짝없이 이를 터전 삼아 살아가야 하니까. 하지만 강영숙은 낙관과 긍정, 비관과 체념 그 어떤 단어로도 잘 잡히지 않는 독특한―그냥 여기에 똑바로 서서 그 무엇도 외면하지 않은 채 끝까지 살아가겠다는―태도로 이를 해내고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세상 속 인간이란, 일출 속 윈드 스콜피온(「라플린」) 같은 게 아닐까. 작가는 루푸스를 앓고 있어 절대적으로 햇빛을 피해야만 하는 인물에게 태양이 작열하는 라플린의 가이드를 맡겨두었다. 그는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하지만 살아서 미래의 계획을 세운다. 다음 가이드 때는 틀림없이 일출을 보여주겠다고. 윈드 스콜피온의 또다른 이름은 태양으로부터 도망친 자라는 뜻을 가진 솔리푸개Solifugae. 결국 누구도 도망가지 않았다.
- 황예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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