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린은 아파서 축 늘어진 지금, 화사한 아름다움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오히려 섬세하고 우아한 모습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호흡을 편하게 하기 위해 풀어헤친 드레스 매무새로, 풍성한 적갈색 머리 타래가 가슴을 뒤덮어 아스라이 가리고 있긴 하였으나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매력을 다 감추지는 못했다.
이제 또 다른 기사가 들어왔다. 젊은 기사는 먼저 들어온 기사에게 급히 무언가 전달하더니 아들린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 합류했다. 젊은 기사는 품위와 힘이 조화를 이루고 얼굴엔 생기가 넘쳤으나 오만하지 않았고 기품이 있으면서도 특유의 다정한 표정이 있었다. 지금 그 표정은 아들린을 향한 연민으로 더욱 부각되었다. 아들린은 이제 막 정신이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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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거세지는 바람이 황량한 수도원 내부를 휘몰아치며 낡은 문들이 삐걱거렸다. 그러자 아들린은 깜짝깜짝 놀랐다. 바람이 잠시 멈출 때마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이슥한 밤 우울한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환청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서 상념에 잠겨 있다가 눈길이 자기도 모르게 맞은편 벽으로 향했는데 그곳에 걸린 장식 벽걸이 천이 앞뒤로 너풀거리고 있었다. 몇 분간 계속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바람에 너풀거리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잠깐 놀란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태피스트리는 분명 한쪽이 다른 부분보다 더 심하게 펄럭이고 있었고 그 소음이 거기서 나는 바람 소리 이상의 것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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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엔 오비디우스의 장면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고 그 위로 풍성한 장식 술이 달린 실크 장식이 매달려 있었다. 소파들도 벽 장식과 어울리게 실크로 치장되어 있었다. 타소의 아르미다 장면이 그려진 천장 중앙에는 에트루리아식 장식의 은제 램프가 걸려 있었다. 그 램프에서 나온 붉은 불빛이 창문 사이에 있는 커다란 거울들에 반사되어 홀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아나크레온, 티불루스, 페트로니우스 등 흉상들이 벽감마다 놓여 있었고 에트루리아 화병에는 꽃들이 달콤한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연회실의 중앙에는 작은 테이블 위에 과일들과 얼음, 술로 다과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방 전체가 마법의 작품인 것 같았다.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 요정의 궁전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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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님, 시간을 말씀해주시지요. 방해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놓겠습니다. 아들린처럼 아름다운 여자는……”“잘 감시하시오. 그리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방에서 나가게 해서는 안 되오. 지금 어디 있소?”“방에 갇혀 있습니다.”“잘했소. 하지만 기다리기가 쉽지 않네.”“시간을 정해주시지요. 영주님, 내일 밤이……”“내일 밤이라? 내일 밤? 당신 내 말을 이해한 거요?”“예, 영주님. 원하신다면 오늘 밤이라도. 하지만 하인들을 물리시고 숲에 혼자 계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서쪽 타워에서 숲 쪽으로 난 문 아시지요? 12시경 그곳으로 오시지요. 그러면 제가 거기서 영주님을 그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럼, 영주님 오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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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올 때와 다른 길로 돌아갔다. 쑥 내민 벼랑 그늘은 어둑어둑했다. 호수가 보이는 곳까지 도달했을 때는 저녁이었다. 이제나저제나 올 것 같은 폭풍이 이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일행은 호수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알프스산에서 천둥이 으르렁거렸다. 산봉우리를 무겁게 휘감는 검은 구름들이 그 무시무시한 장엄함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라 뤼크는 서두르고 싶었지만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에서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두워지는 대기와 저 멀리 지평선을 밝히는 번갯불을 보고 클라라는 겁을 집어먹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생각해서 겁먹은 티를 내지 않았다. 쩍, 쿵! 하고 천둥이 지축을 흔드는 것 같더니 그 거대한 소리가 절벽에 닿아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키며 머리 위에서 쩍쩍 갈라졌다. 그러자 클라라가 탄 말이 그 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느닷없이 무서운 속도로 산길에서 호수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천 길 낭떠러지 절벽에서 떨어질 듯 내달리는 딸을 본 라 뤼크는 기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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