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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한강 | 창비 | 2000년 03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0 리뷰 28건 | 판매지수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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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0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7쪽 | 148*210*30mm
ISBN13 9788936436575
ISBN10 893643657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여수의 사랑』『검은 사슴』등의 작품으로 젊은 작가군에 충격을 안겨 주었던 저자 한강이 96년 봄부터 올해 봄까지 쓴 8편의 작품을 모은 책. 첫소설집처럼 이번 소설집에서도 저자는 `삶의 고단함과 희망 없음에서 유래한 슬픈 아름다움`을 시적인 문체로 잘 그려내고 있으며, 단아하고 시심(詩心)어린 문체로 우리 삶을 심도깊게 탐구하여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과 외로움을 보여준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작가의 말
2. 어느 날 그는
3. 아기 부처
4.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5. 붉은 꽃 속에서
6. 내 여자의 열매
7. 아홉 개의 이야기
8. 흰 꽃
9. 철길을 흐르는 강
10. 해설 : 황도경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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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제 어머니께 편지를 쓸수 없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두고 가신 스웨터를 입어 볼수도 없게 되었어요. 지난 겨울 여기 올라오셨다가 깜빡 잊고 두고 가신 자ㅈ색 털 스웨터 말이에요. 그이가 출장간 다음날. 아침부터 오한이 들길래 그 옷을 입어보았어요. 제때 빨아두지 않았던 덕분에 묵은 반찬냄새며 어머니 살냄새가 그대로 베어있었어요. 다른 날 같으면 빨아입었을지도 모르지만 너무 추워서 또 그 냄새를 오랫동안 맡고 싶어서 그냥 입고 잠들어버렸어요.

다음날 새벽까지 오한은 멈추지 않고 어머니 얼마나 춥고 목말랐는지 마침내 아침 햇빛이 안방 유리창에 비칠때 나는 소리를 죽여 울었답니다. 그 따뜻한 빛을 좀더 깊숙이 받아들이고 싶어서 베란다로 나가 옷을 벗었어요. 벌거벗은 살에 내리박히는 햇빛이 꼭 어머니의 살내 같아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머니만 불렀어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며칠일까. 몇주일일까. 아니면 몇달일까요. 제법 대기가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열기가 가시고 그 뒤로 조금씩 쌀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에요.

멀리 중랑천 너머 아파트의 창문들은 지금쯤 주황빛으로 밝혀져졌겠지요. 거기 사는 사람들은 나를 볼수있을까요. 간선도로에서 헤드라이트를 내쏘며 달려가는 차들은 나를 볼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어떻게 생겼을까요.
--- p.234-235
아이는 어느 날 아빠가 많이 울어서 엄마가 그를 좋아했다는 말을 떠올린다. 아이의 상처난 무릎을 빨아주며 엄마의 얼굴에 어리던 헤아릴 수 없는 근심을 떠올린다.

엄마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그것이었을까, 아이는 생각한다. 어린애처럼 들먹이는 아빠의 어깨를 올려다보면서 괜찮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던, 그 찢어지는 것 같던 마음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 마음을 계속해서 갖고 있는 것이 괴로워서 엄마는 이 마음을 버렸을까, 그래서 우리 둘을 떠나버린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동안 아빠는 아이보다도 더 무서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줄곧 무서움을 참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더욱 무서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p.174

언제부터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어?
당신 얼굴의 피를 봤을 때....그때 당신이 피 흘리고 있지 않았다면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몰라....난 당신의 피와 상처를 좋아해. - <어느날 그는> p.38
아내의 문제는 무엇일까. 어떤 괴로움이 심인성의 장애까지 불러일으킨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여자가 이렇게 나를 외롭게 해도 되는 것인지, 무슨 권리로 나를 외롭게 하는 것인지 의아해질 때마다 막막한 염오감이 오래된 먼지처럼 켜를 이루어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 p.230
스물네살의 추석 밤이었다. 달을 보려고 혼자 대문에 나갔다. 처음 직장에 다니며, 잠을 네다섯 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도둑글을 쓰던 때였다. 소원을 빌어야지. 희끗한 달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뭔가 바랄 만한 것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냥, 이 마음을 잃지 않게만. 그리고는 더 빌 것이 없었다. 순간순간 차고 깨끗한 물처럼 정수리부터 적셔오던 충일, '그것'과 바로 잇닿아 있다는 선명한 확신.이제는 글을 쓸 때 간혹, 일상 속에서는 아주 가끔 만날 뿐인 그 마음이, 그때에는 눈을 뜨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밥을 먹을 때나 걸을 때나 사람을 만날 때나, 그 마음은 그 자리에 있었다.
--- p.6
'빨리 가자.'
'왜 빨리 가?'
'감기 드니까 빨리 가야지.'
'왜 감기 들어?'
'네 옷이 얇으니까! 그걸 말이라고 자꾸 대꾸를 하니?'

빌라 앞 주차장에서 젊은 엄마가 신경질적인 어조로 아이를 재촉하고 있었다. 타닥타닥 운동화 끄는 아이의 발소리가 고스란히 울려왔다.

그때였다. 눈을 깜박이지도 않았는데 마치 암전되듯, 아니, 암전이라면 어두워지는 것일 텐데, 반대로 어둠이 꺼지고 날카로운 빛이 두 눈을 찔렀다. 마치 정수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동굴 속에서 나를 올려다보던 일그러진 얼굴이 그 빛 속에서 양각처럼 도드라졌다.
--- p. 74-75
나는 홀린 듯이 씽크대로 달려갔다. 플라스틱 대야에 넘치도록 물을 받았다. 내 잰 걸음에 맞추어 흔들리는 물을 왈칵왈칵 거실바닥에 쏟으며 베란다로 돌아왔다. 그것을 아내의 가슴에 끼얹은 순간, 그녀의 몸이 거대한 식물의 잎사귀처럼 파들거리며 살아났다. 다시 한 번 물을 받아와 아내의 머리에 끼얹었다. 춤추듯이 아내의 머리카락이 솟구쳐올라왔다. 아내의 번득이는 초록빛 몸이 내 물세례 속에서 청신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며 나는 체머리를 떨었다.
내 아내가 저만큼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
--- p.234
그이는 무척 친절해졌답니다. 커다란 화분을 구해와서 거기 나를 심어주었지요. 일요일이면 오전 내내 베란다 문턱에 걸터 앉아 잔딧물도 잡아줘요. 내가 수돗물을 싫어한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그렇게 피곤해만 하던 사람이 아침마다 물통 가득 뒷산 약수를 길어와서 내 다리에 부어준답니다. 얼마 전에는 기름진 새 흙을 한아름 사와서 갈아주었어요. 비가 내린 다음날, 오랜만에 도시의 공기가 깨끗해진 새벽녁이면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바꾸어 준답니다.
--- p.235
구두를 벗으며 나는 유난히 집안 공기가 싸늘하다고 느꼈다. 슬리퍼를 신고 몇발짝 걸어가기 전에 역한 냄새를 맡았다. 냉장고 문을 열자 호박이며 오이 따위의 찬거리들이 말라비틀어진 채 등허리부터 썩어가고 있었다. 전기밥솥 속에는 오래 전에 해놓은 밥이 반 공기쯤 말라붙어 있었다. 묵은 밥 냄새가 뜩운 김과 함께 코를 찔렀다. 설거지도 되어 있지 않았다. 세탁기 위에 놓인 플라스틱 대야에는 잿빛 비눗물에 담가놓은 세탁물들이 썩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안방에도, 화장실에도, 다용도실에도 아내는 없었다. 나는 아내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렀따.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따. 출장 떠나던 아침 내가 보다가 그대로 펼쳐놓은 조간신문과 오백 밀리리터들이 빈 우유퍅, 우유방울이 하얗게 응고된 유리컵과 아내가 뒤집어 벗어놓은 흰 양말 한짝, 빨간 가짜 가죽지갑 따윅 거실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이었다. 차소리가, 간선도로를 거센 속력으로 질주하는 엔진음들의 불쾌한 울림이 집안의 단단한 적막 위로 칼금을 긋고 있었다.

허기와 피로 때문에, 밥 떠먹을 깨끗한 숟가락 하나도 남김없이 싱크대의 개수통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식기들 때문에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먼곳에서 돌아왔는데 아무도 ㅇ벗다는 것 때문에, 긴 비행시간 동안 겼은 소소한 이들과 이역의 기차에서 본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피곤해? 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괜찮아 라고 강인하고 참을성있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외로웠다.
--- p.232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저자인 한강(韓江)씨는 우리 소설문단에서 가장 나이어린 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문학과사회』에 시가,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저자는 소설집『여수의 사랑』(1995년), 장편『검은 사슴』(1998년)을 통해 드러나듯이 `인간의 근원적인 슬픔과 외로움을 보여주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지난해에는 중편 [아기 부처]로 제25회 한국소설문학상을 받았다.

이번 소설집에는 96년 봄부터 올해 봄까지 쓴 8편의 작품이 모여 있다. 첫소설집처럼 이번 소설집에서도 저자는 `삶의 고단함과 희망 없음에서 유래한 슬픈 아름다움`(김병익)을 시적인 문체로 잘 그려내고 있다. 이번 작품집의 앞에 수록되어 있는 [어느 날 그는] [아기 부처]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등은 등장인물이 모두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해서 인간관계가 어긋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어느 날 그는]이란 작품은, 고시원에서 지내며 단조로운 일상생활만을 영위하는 퀵서비스맨이 책배달을 하다 만난 여자와 사랑하게 되면서 희망찬 앞날을 그려보지만 사소한 언쟁에서 시작하여 관계가 파탄나는 전과정을 면밀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여자의 입을 빌려 영원한 사랑의 불가능함을 이야기한다. 사랑이란 순간의 진실일 뿐으로 영원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기 부처]에서는 남편의 몸에 있는 흉터로 인해 잠자리를 같이하지 못하고 소원해지는 부부관계를 그린다. 이 소설은 다른 젊은 여자를 사랑하다 실연을 당하는 남편의 절망을 읽은 아내가 그 절망까지 따뜻하게 감싸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는 실직자 아빠와 함께 도망간 엄마를 찾아다니는 아이의 심정을 그렸다. 독이 든 빵을 자기에게 먹이려다 그만두는 아빠를 보고 삶의 슬픈 운명을 아이는 감지한다.

표제작 [내 여자의 열매]는 바닷가 빈촌에서 태어나 세상 끝으로 떠나고자 하다가, 사랑도 세상 끝까지 가는 한 방법이라고 믿으며 결국은 결혼하여 정착해 사는 여성을 그리고 있다. 그녀와 남편 사이에는 점차 사랑이 없어지고 말이 없어진다. 의사소통이 힘들어지고 먼곳으로 달아나는 꿈이 좌절되자 그녀는 베란다에 나가 점차 식물이 된다. 그리고 그녀는 베란다 천장을 뚫고 옥상 위까지 뻗어오르는 꿈을 꾼다. 이 탁월한 작품을 통해 저자는 삶의 고단함과 희망 없음에서 벗어나려는 강렬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한강 소설 [붉은 꽃 속에서]는 [아기 부처]에서 언뜻 엿보인 불교적 세계관이 많아 드러나는데 이는 삶의 고단함을 받아들이고 감싸안는 하나의 시도로 보인다.

회원리뷰 (28건) 리뷰 총점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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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아직 영글지 않았지만 이미 노숙한 것처럼 보였던... 한강, 내 여자의 열매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osinski | 2018.06.0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어느 날 그는」  “어느 날 그는 빗방울이 전선에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한꺼번에 바꾸었다. 그러니 정말 흥미있는 이야기는 그 뒤에 비로소 시작되지만, 일단 이 이야기는 그가 전선의 빗방울을 보기 전까지이다.  그의 사층방 창문 왼편에 세워진 전신주의 꼭대기로부터 그 전선은 뻗어내려온다. 소로 맞은 편 오른쪽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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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그는」
  “어느 날 그는 빗방울이 전선에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왔던 방식을 한꺼번에 바꾸었다. 그러니 정말 흥미있는 이야기는 그 뒤에 비로소 시작되지만, 일단 이 이야기는 그가 전선의 빗방울을 보기 전까지이다.
  그의 사층방 창문 왼편에 세워진 전신주의 꼭대기로부터 그 전선은 뻗어내려온다. 소로 맞은 편 오른쪽으로는 주유소가 서 있다. ‘불, 불, 불조심’이라는 점선활자들이 물고기 입처럼 적요하게 달싹거리는 주유소의 구식 전광판 뒤로 전선은 가파른 빗금을 그어내리고 있다. 덕분에 그가 창을 통하여 보는 풍경은 언제나 절반으로 비스듬하게 잘려 있다.“ (p.12) 소설의 도입부이다. 나는 이 도입부가 아주 좋다. 많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많은 것을 숨기고 있기도 하고, 반대로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지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기도 한 도입부다. 독자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그와 함께 이 도입부로 인하여 도입부와 그 이후의 전개 안에 갇히게 된다. 저도 모르게 끌려 들어가고 만다.


  「아기 부처」
  “매우 중요한 진실 하나가 계시처럼, 마치 누군가 내 귀에 속삭인 것처럼 떠올랐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의 흉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 흉터 때문에 그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의 흉터가 다만 한겹 얇은 살갗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다는 것이 내 마음의 얇은 한겹까지 벗겨내주지는 못했다.“ (p.92) 신산한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과 스스로 제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신산한 삶을 포착하는 일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저 어둑한 곳에 존재하는 것들의 정체는 알려진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강향 같은 나무냄새가 촉촉이 번져 있었다. 갈참나무들은 아직 헐벗은 나뭇가지들을 허공으로 뻗어올린 채 침묵에 잠겼지만, 저 검은 나무껍질 속에도 봄 대지의 즙이 흘러올라와 있을 것이다. 일주일쯤 더 지나면 잎눈이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 (p.125)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이는 어느 날 아빠가 많이 울어서 엄마가 그를 좋아했다는 말을 떠올린다. 아이의 상처난 무릎을 빨아주며 엄마의 얼굴에 어리던 헤아릴 수 없는 근심을 떠올린다.
  엄마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그것이었을까, 아이는 생각한다. 어린애처럼 들먹이는 아빠의 어깨를 올려다보면서 괜찮아요,라고 말해주고 싶던, 그 찢어지는 것 같던 마음이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 마음을 계속해서 갖고 있는 것이 괴로와서 엄마는 이 마음을 버렸을까, 그래서 우리 둘을 떠나버린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p.174) 엄마가 떠나고 남은 아이는 아비의 손에 이끌려 떠돈다. 어린 딸과 아비가 묶고 있는 곳은 마치 세계의 끝 같다. 허공을 밟고 다니는 것 같은 아비가 있으면 덩달아 휘청거리게 되는 어린 딸이 생긴다.


  「붉은 꽃 속에서」
  “맵싸한 감각이 그의 목구멍 안쪽에 느껴졌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겠지만, 그 스님이 눈물을 흘린 까닭을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다면 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p.191) 어린 동생의 죽음과 스님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그녀... 그 사이로 조금씩 흘러가는 여정을 조금씩 나눠 가진 가족들이 있을 것이고, ‘붉은 꽃 속에서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고 있기는 했을까 싶은 ‘불빛’도 있을 것이고...


  「내 여자의 열매」
  “이제 아내의 몸에는 한때 두 발 동물이었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포도알같이 맺혀 있던 눈동자는 다갈색 줄기 속에 차츰 파묻혀갔다. 아내는 이제 볼 수 없었다. 줄기의 끝도 까딱할 수 없었다. 그러나 베란다에 들어서면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한 느낌이 아내의 몸에서 나에게로 미미한 전류처럼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때 아내의 손과 머리카락이었던 잎사귀들이 남김없이 떨어져내리고, 입이 오그라붙었던 자리가 벌어지면서 한움큼의 열매가 쏟아져나왔을 때 그 실낱 같은 느낌은 끊어졌다.” (p.241) 피멍에서 시작된 아내의 변화, 그렇게 동물을 벗어버리고 식물을 입어버리게 되는 모든 과정은 타의라고 할 수 있을까 자의라고 할 수 있을까...


  「아홉 개의 이야기」
  “서른살이 되던 겨울, 어느 저녁 그 여자는 세면대에서 발을 씻다 말고 갑자기 손을 멈춘다. 상처는 진작 아물어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 가시덩굴이 날카롭게 그녀의 발을 찔러올 때 입술을 악물었던 그날의 햇빛, 눈이 아리도록 바다와 논배미와 비포장도로의 모래먼지 위로 차올랐던 햇빛이 그녀의 차가운 발등 깊숙이 박힌다.” (p.247) 시간과 시간 사이를 무력하게 만드는, 몸에 각인되는 어떤 아홉 개의 이야기...


  「흰 꽃」
  “그것이 어떤 여행이었든, 장기간의 여행이 끝난 뒤 식당에 둘러앉은 일행은 대체로 말이 없습니다. 여행을 시작하던 때의 크고 작은 흥분과 두려움들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지요. 그저 각자의 피로를 견디며 말없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뜨거운 밥을 후후 불며 깔깔한 혓바닥으로 반찬을 삼킵니다. 아스피린 가루를 풀어놓은 것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혓바늘 돋은 입속에 굴러다니는 밥알의 생경한 감촉을 느끼며 함께 견디는 것입니다. 마치 산다는 일이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듯이...” (pp.280~281)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아무것도 아닌 이들,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죽음마다 머리에 얹혀졌던 흰 나비 같은 리본 핀...


  「철길을 흐르는 강」
  “한기가 들어와 팔짱을 끼려 하자 외투 아래의 가슴께부터 그녀의 몸뚱이가 비어 있었다. 놀라 목덜미를 감싸쥐자 그곳도 비어 있었다. 얼굴을 만지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손이 있어야 할 자리가 투명하게 비쳐 보였다. 비어 있는 외툿자락 속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작고 꼬물꼬물한 것들이 안간힘을 다하여 기어나왔다. 모가지가 부러진 박새들이었다...” (pp.311~312) 어린 시절 내가 주머니 안으로 거둬들였던 죽은 박새, 생의 어느 한 시기에 날아올랐던 어떤 기억은 그대로 박제되어, 생의 다른 어느 순간마다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한강 / 내 여자의 열매 / 창비 / 327쪽 / 200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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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시리지만 그 곳에 머무르지 않으리라.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llow712 | 2017.07.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상처받은 약한 존재가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묵묵히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사는 듯 하지만어느 순간.. 어느 점화점에 의하여폭발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그리고 깨닫는다. 어떠한 운명, 어떠한 경험이전과는 다른 인간으로 만든다.  폭발하는 발화점이 누군가에는 사랑하지만 상처를 주었던 사람에게 상해를 가한 그 순간자신의 위선이 타인의 연민으로 바뀌는 그 순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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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약한 존재가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묵묵히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사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어느 점화점에 의하여

폭발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깨닫는다.

어떠한 운명, 어떠한 경험이

전과는 다른 인간으로 만든다.

 

폭발하는 발화점이

누군가에는 사랑하지만 상처를 주었던 사람에게 상해를 가한 그 순간

자신의 위선이 타인의 연민으로 바뀌는 그 순간

동생의 죽음으로 스님이 되려는 그 순간

나무가 됨을 받아들이고 조용히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는 그 순간

그 순간이 지나면

인생과 갈등하며 반목하며 이기려는 내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내가 된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상처들이 안쓰럽고

길을 걷고 걸어 돌아온 인생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 모두

서럽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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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매트릭스 | 2016.08.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희랍어시간"처럼 서정적이고 독창적인 묘사가 많은 책.한강작가 특유의 저런 문장들이 좋다.모든 내용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시집같이읽는 내내 서정적인 묘사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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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시간"처럼 서정적이고 독창적인 묘사가 많은 책.
한강작가 특유의 저런 문장들이 좋다.

모든 내용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시집같이
읽는 내내 서정적인 묘사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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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6건) 한줄평 총점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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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한강 작가의 책에 호기심이 생겨 구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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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 2018.02.21
구매 평점5점
해질녘에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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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 | 2018.02.19
평점4점
어떻게 이런 묘사를 생각해낼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한강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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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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