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둘은 말없이 걸었다. 그렇게 한참 골목을 탐험하다가 허름한 건물 사이 끝에서 으스스한 풍경의 골동품 가게를 발견했다. 다시 승록이 손가락으로 간판을 가리켰다. “누크 골동품? 골동품은 또 뭐야?” “골동품은 그러니까, 오래된 물건을 말하는 거야.” 미래가 덧붙였다. “예를 들자면 조선 시대 도자기 같은 것….” “가 보자.” 승록은 미래의 대답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골목길 끝으로 뛰어갔다. --- p.9
“너희는 어서 도망가!” 누크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주황빛이 방 안을 온통 채우더니 사물들이 차차 휘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할아버지, 무서워요!” 아이들의 외침을 뒤로한 채, 누크는 장롱을 뒤져 검은색 손목시계와 갈색 가죽 허리띠를 급히 챙겼다. 채비를 끝낸 누크가 말했다. “얘들아! 이제 시공간을 이동할 게야. 단단히 마음먹어라!” --- p.20
이방은 주위를 쓱 둘러보곤 포졸들과 함께 나갔다. 굵은 나무살로 막힌 옥 안에는 거친 볏짚이 깔려 있었고, 겨우 작은 창 하나가 천장 가까이 나 있었다. 온통 퀴퀴한 냄새로 가득한 데다 파리가 들끓었다. 미래는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손으로 막았다. 반면 승록은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신나 보였다. “우아! 드라마 세트장에 온 것 같네. 이 나무살은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 튼튼하구나.” --- p.54
“바다는 정말 크고 깊단다. 여기서 살아가는 생물들도 정말 많지. 그런데 저 그물 하나 때문에 모두가 죽겠느냐?” 그의 말대로 주변에는 다양한 물고기 떼가 정말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르니까요. 계속 이런 식이면 백 년, 이백 년 후에는 장담할 수 없어요. 아름다운 바다 생물들을 백성에게 알려서, 그물과 밧줄을 잘 처리하도록 당부하고, 물고기도 먹을 만큼만 잡아야 바다를 보호할 수 있어요.” --- p.115
평상에 앉은 정약용이 대접의 물을 마시면서 말했다. “형님, 그래서 물고기에 대한 서책을 쓰시겠다고요?” “제목도 정했다. 흑산도를 뜻하는 ‘자산’과 물고기 족보를 나타내는 ‘어보’를 합쳐 《자산어보》, 어떠냐?” “음….” 정약용은 대답을 망설였다. “답이 늦는 것은 아우님이 쓴 《목민심서》 같은 백성들을 위하는 제목이 아니라서 그런가?” “형님처럼 뛰어난 학자가 고작 물고기를 연구한다는 것이 조금 걸릴 뿐입니다.” “난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성리학보다 실제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실학을 더 중히 여긴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