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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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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1998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07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1842225
ISBN10 8971842229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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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작가의 고향인 서울 아현동 언저리를 배경으로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짱아'가 식모인 '봉순이 언니'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삶에 눈떠가는 과정을 놀라운 기억력으로 촘촘하게 복원해낸 소설이다.60~70년대 고도 성장의 뒷골목에서 한없이 짓이겨지고 추락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을 버리지 않는 '봉순이 언니'의 삶을 반성 어린 눈길로 감싸안으며 그 속에서 끝끝내 포기할수 없는'희망'의 씨앗을 건져올리는 작가의 붓끝은 이 소설에서도 아름답게 빛을 발한다.
생각해보면 어려운 시대에 절망하기는 얼마나 쉬운가,허망해져 버리기는 또 얼마나 쉬운가.한때는 나도 허무의 뭉게구름 엷게 흩뜨리며 우아하게 도피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형벌처럼 내 마음 깊숙이 새겨진 단어 하나,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간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는 것이다. 희망은 수첩에 약속시간을 적듯이 구체적인 것이고,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구차하기까지 한것이지만,나는 그저 이 길을 걷기로 했다.
비록 너무나 짧은 엎드림으로부터 나온 상투적인 결론이라 해도,나는 이 붓을 멈추지는 않으리라. 나 자신을 믿고 나 자신에게 의지하며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하면서,고이는 내 사랑들을 활자에 담으리라.가슴이 아플까봐 서둘러 외면했던 세상의 굶주림과 폭력들과의 아이들을 이제는 오래 응시하면서.-작가후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간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희망은 수첩에 약속시간을 적듯이 구체적인 것이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구차하기까지 한 것이지만, 나는 그저 이 길을 걷기로 했다.
--- p.196
이렇게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내 어린 시절의 지도에 이미 내 인생이 그려져 있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자주 하는 실수와 내가 자주 겪는 슬픔과 내가 머뭇거리다 돌이키지 못한
정황들이, 인생은 이미 그때 내게 나침판을 표시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상징적으로 압축된 상태도 아니었고, 암호로 가득찬 것도 아닌, 그러나 나는 결코 그 암호와 상징들을 돌아보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다시금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세월은 한번 가면 그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막연히 믿었던, 그래서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같은 삶을 항아리 속에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 본문 중에서
'이걸로 사탕 사먹고...어여 들어가. 언니 혼자 가두돼.'
'조기 가겟집까지만 따라갈께...... 근데 언니.'
'응?'
'우리집 이사가두 애기 데리구 또 올 거지?'
아까부터 불안한 마음에 내가 물었다.
'이사가니?'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봉순이 언니가 되물었다. 이럴 줄 알고 내가 꺼낸 말이었다. 어머니는 봉순이 언니를 이제 고만 멀리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분명 이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81
'엄마가 집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싶었던 걸 엄마가 우리 때문에 포기했던 것도 믿어. 하지만 그게 꼭 우리들 때문이었다고는 하지 마. 엄마는 집에는 있었지만, 그래 한 번도 우리들을 우리들끼리만 잠들게 하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그렇다고 내 곁에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러므로 그 이후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언제나 부재중이었다.

--- p.45
아마도 그때 알아야 했으리라.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아주 오래도록,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막다른 골목에 몰릴 지경만 아니라면,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조차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그렇다고 이미 생각해온 것, 혹은 이랬으면 하는 것만을 원한다는 것을. 제가 그린 지도를 가지고 길을 떠났을 때, 길이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나 있다면, 아마 길을 제 지도에 그려진 대로 바꾸고 싶어하면 했지, 실제로 난 길을 따라 지도를 바꾸는 사람은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이렇게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내 어린 시절의 지도에 이미 내 인생이 그려져 있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자주 하는 실수와 내가 자주 겪는 슭픔과 내가 머뭇거리다 돌이키지 못한 정황들이, 인생은 이미 그때 내게 나침반을 표시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상징적으로 압축된 상태도 아니었고 암호로 가득 찬 것도 아닌, 그러나 나는 결코 그 암호와 상징들을 돌아보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다시금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세월은 한번 가면 그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막연히 믿었던, 그래서 돌이켜 보면 나는 언제나 같은 삶을 같은 항아리 속에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 pp.103-104
생각해보면 어려운 시대에 절망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허망해져버리기는 또 얼마나 쉬운가. 한때는 나도 허무의 뭉게구름 엷게 흩뜨리며 우아하게 도피하고도 싶었다. 절망하거나 허망한 사람은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 허망의 구름다리 위에서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사유는 현실의 벽을 자유롭게 뛰어넘어 무궁무진 피어오르고 때로는 악마적으로 그래서 유혹적으로 아름다우리라... 그래, 그것은 달콤하고 서늘한 유혹이었다. 그러나 형벌처럼 내 마음 깊숙히 새겨진 단어 하나,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간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삶에서 사소한 일이 없는 이유는, 매순간 마주치게 되는 사소한 선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총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소한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사소한 것의 방향을 트는 삶의 덩어리가 중요하다는 걸 내가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 pp.148-149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막다른 골목에 몰릴 지경만 아니라면,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조차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그렇다고 이미 생각해온 것, 혹은 이랬으면 하는 것만을 원한다는 것을.제가 그린 지도를 가지고 길을 떠났을 때, 길이 이미 다른 방향으로나 있다면, 아마 길을 제 지도에 그려진 대로 바꾸고 싶어하면 했지, 실제로 난 길을 따라 지도를 바꾸는 사람은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 p.103
봉순이 언니는 그 후에도 끊임없이 남자들과 도망을 치고 다시 혼자가 되어서 돌아왔고 그 때마다 아이를 하나씩 더 달고 왔을뿐 점점 가난뱅이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집안의 누가 죽었을때보다 더 놀라고 부끄러워하던 이모나 어머니도 점점 그에 대해 더 이상 길게 화제를 삼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원래 그런 아이였잖니. 거 뭐야. 세탁소 그 말대가리 같은 녀석이고 도망칠 때부터....게다가 갤 이용해 먹는 새경없는 머슴을 산거지.. 그렇게 제 실속도 못 차리고 그러고도 좋단다. 좋데..
두사람은 옛이야기라도 하듯 가끔 웃기도 했다. 나는 안다, 그녀가 한번 도망칠 때마다 그녀가 얼마나 목숨을 걸고 낙관적이어야 했는지를, 그녀는 친구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달라 뭔가 운명같은 것을 느꼈다니까, 가엾어서 그러고 있는게 가엾어서 내가 도와주고 싶었어, 밥도 따끈하게 퍼주고 셔츠깃도 깨끗하게 빨아주고 저녁에 돌아오면 대야에 물 데워서 발도 닦아주고 싶어. 게다가 엄마손 한번 못 느껴본 아이들이라니...
--- p.191
나는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전화를 끓기 전에 짧게 어머니를 불렀던 것은 왜 였을까. 그건 '오십이 다 된 나이에 봉순이 언니가 남자랑 도망갔다는 게 정말이에요,엄마' 라든가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 결단코 그런 말은 아니었다.
--- p.192
나는 안다. 그랬을 것이다. 낮잠에서 깨어나 누구나 고아처럼 느껴지는 그 푸르스름한 순간에 그녀는 우는 아이를 안아 주었으리라. 아이의 눈에 세상이 다시 노르스름하고 따뜻하게 느껴질 때까지. 누군가 왕사탕을 내밀면 그것을 반으로 잘라 다시 입에 넣어주며 웃었으리라. 나누어 먹어야 맛있는 거야.
--- p.191-192
나는 까맣고 반짝거리는 그 벌레가 사라져버린 신문지 바른 벽의 틈만 바라보았다. 지금은 온갖 약을 다 뿌리며 퇴치해야 할 바퀴벌레가 바로 그것이지만, 그 당시에 그 생명체들은 참으로 매혹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돈을 가져다 준다든가 하는 데는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개를 데려다 마당에서 키우고 다음해면 잡아먹는 주인집처럼 되는 것이라면 그것도 싫었다. 언젠가 내가 처음으로 만져보았던 그 누런, 털이 솜털처럼 보드랍고 눈이 말똥말똥한 강아지도 결국 잡혀먹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는 주인집 할아버지가 가끔 머리를 쓰다듬으며 건네주던 눈깔사탕도 받지 않았다. 왠지 그 사탕 속에서 개냄새가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생각했다. 복날이면 비명을 지르며 제가 살던 마당에서 죽어가던 강아지들. 어떻게, 어떻게 자신이 키운 개를 잡아먹을 수 있을까 하고, 그럴 때면 봉순이 언니가 주인집 할아버지가 주는 사탕을 대신 받아서 내 입에 넣어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입에 몰래 집어넣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하루종일 봉순이 언니에게 심술을 부리곤 했다. 봉순이 언니가 내 입에 넣어주려고 했대도 심술을 부렸겠지만 아무리 개 냄새가 나는 사탕이래도 사탕은 사탕인데 혼자만 먹는 봉순이 언니가 미웠던 것이다.
--- p.28-29
그렇다면 그것 때문이었을까, 봉순이 언니가 그날 그대로 일어서서 나를 데리고 그대로 집으로 와버렸다면 그녀의 일생은 바뀌었을까. 처음에 이 일을 회상하면서 나는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른 남자를 만났다면 언니의 삶은 아주 달라졌을 거라고.
--- p.148
그런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돌아봤을 때 놀랍게도 그녀가 날 바라보고 있었어. 설마 하는 눈빛으로...... 희미한 확신과 놀라움에 언뜻 스치는 그토록 반가움.... 나는 돌아보지 않았어. 어서 전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내려섰지. 엄마......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고, 그녀의 얼굴이 가물거려서...... 그래, 그래서야, 그거지.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30년이나 지났잖아. 그러니까....그러니까 말이야....그런데 그런데 날 더욱 뒤돌아볼 수 없게 만들었던 건, 그건 그 눈빛에서 아직도 버리지 않은 희망.....같은 게.... 희망이라니, 끔찍하게..... 그 눈빛에서..... 비바람 치던 날, 이상한 생각에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두 발을 모으고 애타게 날 바라보던 메리.
--- p.193
그런데 그런데 날 더욱 뒤돌아볼 수 없게 만들었던 건, 그건 그 눈빛에서 아직도 버리지 않은 희망... 같은게... 희망이라니, 끔찍하게... 그 눈빛에서... 비바람 치던 날, 이상한 생각에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두 발을 모으고 애타게 날 바라보던 메리.
--- p.193
그러나 그후 나는 생각을 바꾸었던 것 같다. 그래, 그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봉순이 언니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지만, 아마도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불행해졌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삶에서 사소한 일이 없는 이유는, 매 순간 마추치게 되는 사소한 선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총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소한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사소한 것의 방향을 트는 삶의 덩어리가 중요하다는 걸 내가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 pp. 148-149
그때 깨달아야 했다. 인간이 가진 무수하고 수많은 마음갈래 중에서 끝내 내게 적의만을 드러내려고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설마, 설마,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했다. 그가 그럴 것이라는걸 처음부터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그 희망의 독. 아무리 규칙을 지켜도 끝내 파울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악착스러운 진리를 내가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였다.
--- p.56
그 승강이를 들으며 아마 산다는 게, 아마도 힘겹고 슬프고, 등불 하나 없이, 춥고 깜깜한 진창길을 걸어가는 일 같다는 걸, 누구나 헨젤과 그레텔보다 험하고 처량하게 숲속을 헤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것을 나는 봉순이 언니의 울음소리를 통해 듣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으로 태어난 자들, 그 인생의 춥고 낮은 배경음을.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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