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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모트 / 레인보우 노트 - 장덕 Tribute Project [LP]

[ 45rp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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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2022년 0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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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 역사 속 선구적 천재 여성 싱어송라이터 故 장덕의 30주기를 맞아 세대를 건넌 후배 뮤지션들이 재해석한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한 장의 LP에 담다

[장덕 Tribute Project : 12 inch LP Edition]


1990년 2월 4일, 장덕이 향년 28세로 생을 접게 되었다는 소식은 당시 세간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사망 소식을 신문과 방송 뉴스를 통해 처음 접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1980년대부터 그녀의 음악을 꾸준히 듣고 좋아했기에 꽤 충격을 받았다. 음악 감상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한창 깊게 (나름의 팬 심을 갖고) 좋아했던 가수를, 그것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져서 떠나 보내야 하는 경험을 제대로 해 본 것이 아마도 그녀가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가까운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타까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녀의 요절은 단순히 그녀의 유가족과 팬들만의 슬픔으로 끝날 수 있는 범위의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는 그 순간 한 명의 훌륭한 재능을 겸비한 당대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엔터테이너를 잃은 셈이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동료 선후배 가수들은 그녀의 부고 소식에 슬픔을 감추지 못했고, 당시 한국의 음악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당시 그녀 사망 4개월만에 이선희, 전영록, 최성수, 김범룡 등 많은 동료 아티스트들과 연예인들이 참여한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되었는데, 이 앨범은 음악 팬은 물론 동료 연예인 및 관계자에게도 환영을 받아 음반 판매와 방송 횟수로 집계하는 뮤직박스 차트와 KBS 「가요 톱10」에 최상위로 랭크 되기도 할 만큼 당시 그녀에 대한 대중의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Her story of 장덕: 1961~1990

돌아보면 그녀에게 붙었던 당대의 수식어 중 하나가 바로 ‘천재 여성 싱어송라이터’였다. 그것은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대중 앞에서 선보였기 때문이다. 1961년 4월 21일생으로 예술가 부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힘겨운 유년기를 거쳐야만 했다. 오빠 장현에게 배운 기타로 외로움을 달래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스스로 곡을 쓸 역량을 갖췄고, 사춘기 시절 그녀의 어머니는 당시 카펜터스(The Carpenters)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것에 착안해 장현-장덕 남매를 듀엣 ‘드레곤 레츠’로 미8군 무대에 출연하게 했다. 이것이 듀엣 ‘현이와 덕이’의 출발이었고, 이어서 한국 방송 무대에서도 그들의 실력이 화제를 모으면서 남매는 70년대 청춘 영화의 단골 인기 배우로 픽업되며 본격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장덕의 송 라이터로서의 재능이 빛이 나게 된 시점은 자신이 중학교 2학년 때 습작해 놓은[소녀와 가로등]을 제1회 MBC 서울가요제에 출전한 가수 진미령이 노래하면서였다. 작곡자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했던 규정상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지휘대에 선 그녀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그녀는 현이와 덕이의 음반들 외에도 계속 타 가수들에게 곡을 제공하면서 성년도 되기 전에 음악적 천재성을 본격적으로 펼쳐갔다.

그러나 불우한 가정사에서 비롯된 우울증은 계속 그녀를 괴롭혔고, 결국 1980년 엄마를 만나고 작곡자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유학기간 동안 그녀는 현지에서도 연예활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짧은 연애와 결혼 생활을 거쳤으며, 내쉬빌 작곡가 협회에도 등록해 현지 컨트리 가수에게도 곡을 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다시 한국의 가족과 연예 활동이 그리워진 그녀는 1983년 귀국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컴백 곡 [날 찾지 말아요]로 가요계에 다시 얼굴을 알렸다.

1985년 오빠 장현과 다시 현이와 덕이로서 듀오 앨범을 내면서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히트시킨 장덕은 이은하의 명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1986)이 수록된 앨범의 대부분을 작곡하면서 더욱 성숙한 싱어송라이터로의 능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님 떠난 후/이 팔 청춘의 고백](1986)에서 [님 떠난 후]가 각종 가요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비로소 대중적 스타덤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 이후 [이별인줄 알았어요](1987), [얘얘](1988) 등의 준수한 히트곡들이 이어졌지만, 그녀의 생전 마지막 앨범이 된 [예정된 시간을 위해](1989)를 진행하던 시점에 오빠 장현이 설암 투병을 하게 되면서 혼자 모든 음악 관련 업무를 해결해 가면서 쌓여왔던 그녀의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갔다.

결국 1990년 2월 4일 일 오전 1~2시경 그녀는 살고 있던 마포의 아파트에서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쓰러져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와 함께 했던 룸메이트이자 그녀의 의상 디자이너의 증언에 따르면, 전날 밤 그녀가 평소보다 많은 곡을 쓰고 있었고, 다음날 하춘화의 신곡 가 녹음도 준비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항상 집을 춥게 만든 상황에서 작곡을 하는 습관을 가져서 당시 감기 기운이 있긴 했지만, 당시 언론의 보도처럼 그녀가 수면제나 약물을 과용한 적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추모 음반 발매 2개월 후, 오빠 장현 역시 병을 이기지 못하고 향년 34세로 세상을 떠났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장덕의 재능과 그 위상

돌이켜보면 장덕은 대중 앞에서 음악 활동을 처음 선보였던 시점부터 사망 전까지 꾸준히 ‘음악적 천재성’에 대한 찬사를 받아왔던 뮤지션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스스로 작곡을 할 능력을 갖추었고, 70년대 활동 초창기부터 장덕에 대해 음악계가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그녀의 작곡가로서의 능력이었다. 그녀는 앞서 언급한 [소녀와 가로등]의 사례뿐만 아니라 장현의 [더욱 큰 사랑](1978), 박경희의 [사랑이었네](1979), 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1980) 등 여러 주류 가요 뮤지션들의 가요제 출전 곡들을 제공하며 프로 작곡가로서 빠르게 인정받았다.

1979년부터 오빠의 독립 활동으로 그녀 역시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2장의 앨범을 공개했으며, 1980년대 초반에는 잠시 한국 가요계를 떠나 어머니가 있는 미국 내쉬빌로 옮겨갔지만 그 곳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음악 공부도 하면서 내쉬빌 작곡가 협회에도 등록해 현지 컨트리 가수에게도 곡을 줄 만큼 그녀의 작곡 능력은 더욱 성장했다.

이렇게 꾸준히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활발히 펼쳐왔지만, 그 능력이 완벽하게 만개해 한국 대중음악 역사 속에 각인된 것은 1983년 귀국 후의 솔로 활동일 것이다. 컴백 곡 [날 찾지 말아요]는 오랜 공백에도 대중에게 그녀의 컴백을 각인시켰고, 1984년 자매 듀오 국보자매에게 [백치미], [사랑하고 있나 봐요] 등을 제공하며 LP 한 면을 자신의 곡으로 채웠다. 1985년 다시 현이와 덕이 듀오 앨범을 통해 히트시킨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통해 대중적 인기도 어느 정도 회복한 후, 그녀는 이은하의 명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1986)이 수록된 앨범의 대부분을 작곡하면서 단순히 작곡자를 넘어 한 명의 프로듀서로서의 역량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음반 작업과 동시에 그녀의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 히트작 [님 떠난 후/이 팔 청춘의 고백]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니, 그녀의 재능은 더 크게 느껴진다. 만약 그녀가 1990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지 않고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렀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좋은 그녀의 신곡들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녀가 생전에 발표했던 노래들만으로도 이미 그녀는 가요계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겨놓았지만.......

노래, 작곡 능력 외에도 다방면에서 재능을 드러냈던 한국의 선구적 아이돌

장덕은 10대 초반 오빠 장현과 듀오 현이와덕이로 데뷔 할 때부터 이미 귀엽고 활기찬 이미지를 통해 오빠와 함께 빠르게 ‘10대 청춘 스타’의 대열에 들어섰다. 실제로 앞서 언급했던 TBC TV 의 무대로 두 사람은 한국 가요계 최연소 남매 듀엣으로 방송 데뷔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 후 두 남매는 빠르게 10대와 어른 세대의 눈도장을 박으며 당시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 여러 청춘 영화들의 캐스팅 대상이 되었다. 특히 장덕의 경우 오빠가 출연했던 ‘선생님 안녕’(1977)에서 세 장면만 출연하는 단역으로 특별 줄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그녀는 ‘내 마음 나도 몰라’(1977)에서 주연을 맡게 되었고, ‘우리들의 고교시대’(1979) 등에서도 출연하며 가수와 함께 청소년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동시에 키워갔다. 10대로서 영화 배우로도, 그리고 어떤 경우 직접 OST까지도 담당했던 그녀의 그 시절 모습을 현재 가요계의 모습과 비교해본다면, 그녀는 이미 10대 시절 멀티 활동이 가능한 ‘아이돌’의 위상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녀는 뮤지션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와중에도 여러 방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표출했다. 어머니가 있는 미국에 이민 갔던 내쉬빌에서는 한인 기독교 방송에서 ‘한국인의 샘터’라는 프로의 MC로 1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언제나 당차고 또랑또랑한 언변을 갖고 있었기에 방송 진행에도 잘 어울리는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솔로 가수로 복귀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방송 친화적인 모습으로 여러 쇼 프로그램들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갔다. 쇼 무대에서도 본인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타 선후배 아티스트들과 함께 조인트 무대를 만들어 건반 연주를 하기도 했으며, 쇼 프로그램 속에서 진행되는 간단한 꽁트나 연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한편, 1984년 10월에 개봉한 이미례 감독, 김진아, 남궁원 주연의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에서는 영화 배경음악을 직접 작곡했으며,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인 1990년 1월에 출연했던 KBS 신년 특집 극 드라마 ‘구리반지’에도 출연하여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는 훌륭한 뮤지션이었기도 했지만, 동시에 멋진 ‘멀티 엔터테이너’로도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요계 여가수의 전통적 통념을 바꾸는 데도 기여하다

지금처럼 양성평등의 의식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면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의 여성 가수들은 (물론 다른 전통적 업종에 비하면 규율에 덜 얽매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사회가 그들에게 부여한 규범에 충실해야 했던 경우가 많았다. 무대에 올라 설 때는 거의 모두 드레스나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게 당연했고, 차분하고 순종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게 방송 진출에 유리했다.
그러나 1980년대로 넘어온 후 외모에 초점을 두기보다 가창력을 중심에 놓고, 보다 활발하고 지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여성 뮤지션들에게 서서히 기회가 오기 시작했다. 그런 대표 주자들로 이선희나 정수라 같은 가수들을 떠올릴 수 있겠는데, 두 사람보다 경력 상으로 훨씬 선배였던 장덕 역시 미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한국에서도 모던하고 댄디한 느낌을 강조한 무대 패션과 이미지 연출로 트렌드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앞서 언급한 두 여가수들과 장덕을 묶어 80년대 중반에는 ‘바지 삼총사’라는 별명이 연예계에서 자주 인용되었는데, 당시 젊은 여성들에게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본으로 장덕은 선봉에 선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완선 등 후배 여가수들이 댄스 뮤직을 본격적으로 끌어오던 시점에는 그녀 역시 함께 무대를 꾸밀 안무 팀도 섭외하고, 자신도 안무 연습을 통해 댄스 팝의 유행이라는 변화에도 적응해 나갔다는 점에서 꾸준히 트렌드를 잘 맞춰가고 선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 많은 아티스트들이 장덕의 음악을 기리는 트리뷰트 커버를 해왔었지만, 이번에 기획된 [장덕 Tribute Project]는 현재 한국 인디 씬에서 날이 갈 수록 강세를 보이고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 가운데 주목 받는 두 아티스트들을 통해 그녀의 음악적 가치를 되돌아보는 일은 매우 뜻 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Side A: 새 세대가 주목하는 개성만점 싱어송라이터 모트, 그녀가 재해석한 그녀의 명곡들 - [점점 더 가까워져요], [소녀와 가로등]

장덕이 활동하던 시절에 비하면 이제 대중음악계에서 싱어송라이터 여성 뮤지션들의 활동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해졌고, 인디 씬에서도 장르 불문하고 꾸준히 재능 있는 신인들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그 중 새롭게 1020세대들에게 활발한 지지를 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모트는 어쿠스틱과 전자음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오가고 팝과 록, R&B의 경계를 허무는 세련된 멜로디와 리듬 감각, 그리고 젊음의 고민과 감성을 자극하는 친밀한 노랫말로 대중과 평단의 관심을 동시에 받아왔다. 웹 드라마 ‘에이틴’의 OST였던 [도망가지마](2018), 그녀의 음악적 재능을 본격적으로 담은 정규 1집 [사이](2018), 이후 발표된 [Room-ie](2019), [시차](2020), 최근작 [비행기모드](2020)까지 그녀의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음악 세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 그녀가 장덕의 곡들을 커버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매우 궁금했다. 흥미롭게도 아래 두 곡 모두 그녀는 존경하는 선배의 곡을 커버하지만, 그 속에서도 뮤지션으로서 모트의 음악적 지향을 고수하며 단순한 커버 버전이 아닌 모트의 곡으로 대중에게 닿기를 바라는 의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Track 1: 점점 더 가까워져요

그녀의 1988년 솔로 작 [얘얘-골든 앨범 vol.2]에 수록된 [점점 더 가까워져요]는 대중에게는 조금 낯선 곡이긴 하지만 그녀의 숨은 명곡이라고 할 수 있는 발라드 트랙이다. 편안하고 로맨틱한 장조 팝 발라드 트랙인 이 곡은 해당 앨범에서 타이틀 트랙으로 방송 등에서 홍보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가사가 담고 있는 사랑에 설레는 여성의 감정 표현, 그리고 이은하의 앨범에서 이미 선보였던 세련된 편곡과 가벼운 신시사이저-건반 활용은 이미 30년이 더 지난 시점인 지금 들어도 그리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정감 있게 다가온다. 이번 모트의 커버 버전에서는 80년대식 팝 발라드였던 원곡이 그녀의 재해석을 통해 보다 밴드 포맷의 포크 록/모던 록 트랙으로 변모했다. 특히 중반부에 마치 관악기 음색의 솔로 연주 파트와 90년대 브릿팝 트랙을 듣는 것 같은 클라이맥스의 기타 연주가 매력 있게 다가온다. 모트의 그간의 트랙들과 비교하더라도 꽤 록적인 필이 담긴 트랙이라 그녀 음악의 팔레트가 점점 넓어짐을 확인하게 된다.

Track 2: 소녀와 가로등

지금 세대에게는 낯설 수도 있겠지만 197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세대에게는 [님 떠난 후]보다 더 친숙했던 그녀의 작품은 [소녀와 가로등]이었다. 앞에서 서술한 대로, 이 곡은 진미령이 가요제에 이 곡을 받아 출전해서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인 곡이다. 발표 당시인 1977년 안양예고에 입학한 장덕은 가수 송창식의 권유로 당시 신인가수였던 진미령에게 자신이 습작해 놓은 이 곡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곡 자체는 그녀가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완성해 놓았던 곡으로,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이 흩어져 살 때 엄마 집에 잠시 머물러 있던 그녀가 당시 창 밖의 가로등을 바라보며 느낀 순간적인 감정을 가사로 옮긴 노래였다고 한다. 이 곡은 당시 가요제에서 수상 곡 리스트에 들지는 못했지만, 당시 이 무대를 봤던 이들에게는 노래를 부르는 진미령보다 작곡가로서 (당시 가요제 규정에 따라서) 함께 무대에 나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했던 그 모습이 더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고 전한다. 결국 이 곡은 화제를 모으며 가요제 이후 진미령의 버전, 그리고 작곡자인 그녀가 부른 버전이 모두 대중에게 사랑 받으며 두 사람의 대표 곡으로 각인되었다.

이번 모트의 커버는 원곡의 멜로디의 애상적인 정서를 그대로 계승하지만 그 뒤에 깔리는 비트와 리듬은 7080시대가 아닌 21세기의 것으로 맞추는데 지향을 둔다. 피아노와 베이스 터치의 재지하고 변칙적인 음의 전개, 곡의 애상을 블루지하게 끌어올리는 기타 솔로 위에서 모트는 자신의 목소리로 장덕이 그 시대에 느꼈던 외로움과 슬픔을 지금 세대의 감정으로 세련되게 치환해낸다. 뒤에 깔리는 LP잡음의 빈티지함과 새 시대의 비트와의 ‘소리의 얽힘’도 원곡과 이 커버의 시대적 간극을 자연스럽게 무지개 다리처럼 연결한다.

Side B: 밝고 건강한 시티 팝 사운드를 펼치는 듀오 레인보우 노트를 통해 세련되게 재 탄생된 장덕의 대표 히트곡들 - [님 떠난 후], [얘얘]

장덕의 노래들을 다시 재조명해 2020년대의 젊은 감성에 부합하게 커버할 그룹은 바로 2019년 [1호선]으로 데뷔한 후 [샛별], [광안리], [소행성] 등 지금까지 꾸준히 '시티 팝 리바이벌'의 지향점을 갖고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이어가고 있는 여성 듀오 레인보우 노트다. 그녀들을 통해 장덕의 80년대 대표 히트곡들 - [님 떠난 후], [얘얘] - 가 이번 기획에서 커버되었다.

Track 1: 님 떠난 후

사실 앨범 [님 떠난 후/이 팔 청춘의 고백](1986)은 그녀의 커리어에서도 꽤 과감한 결과물이었다. 나미의 대표적 히트곡 [빙글빙글](1984)을 통해 1980년대식 신스 팝/뉴 웨이브에 한국적 멜로디를 담은 댄스 팝의 새 물결을 이끌었던 김명곤이 전곡의 편곡을 맡았고, 몇몇 업 템포의 곡들에선 당시 서구 뉴 웨이브나 1980년대 미국 주류 R&B 시장의 신스 훵크(Synth-Funk)트랙들(이 장르의 사운드는 1980년대 JPOP씬과 비교하자면 현재 '시티 팝'으로 분류되는 음악들과도 일맥 상통한다)에서 들을 법한 펑키하고 세련된 베이스 그루브가 넘실거렸던 음반이었다. 그 앨범의 매력의 총체가 집약된 곡이 바로 앨범의 타이틀 곡 [님 떠난 후]였다. 튀지 않는 미디움 템포의 펑키함이 곡의 그루브를 탄탄히 끌고 가는 가운데 후렴에서의 그녀의 보컬과 가사의 임팩트가 완벽한 클라이맥스를 조성하는 트랙이었다. 아직도 원곡을 청취해보지 않은 젊은 세대라면 반드시 원곡을 먼저 청취해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커버 버전의 인트로 연주를 듣는 순간부터 두 사람이 원작자와 원곡에 대한 이해를 충실히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룹이 지향하는 시티 팝 분위기를 가득 품은 이사라의 신시사이저 연주와 리듬 편곡이 원곡보다 세련되게 들리지만, 역시 이 사운드도 '1980년대'라는 감성과 애초에 맞닿아 있기에 두 아티스트간의 정서적 교감이 자연스레 시대를 이어가는 효과를 낳는다. 한편, 보컬 안슬희의 가창은 원곡의 가사와 가창이 전했던 슬픔의 감정 표현을 잘 계승하면서도 보다 현 시대의 청춘들의 감성에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방향으로 완성되었다.

Track 2: 얘얘

1988년 9월에 발매 된 [얘얘-골든 앨범 vol.2]는 그녀의 커리어에선 살짝 변화가 모색된 작품이다. 그간 장덕의 솔로 작들이 자작곡들로만 이뤄진 것에 반해, 이 앨범에서는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받거나 공동 작업한 곡이 4곡이나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그녀와 가수 김범룡이 서로의 앨범에 곡을 제공하기로 한 이벤트 계획에 의거해 그녀가 [빈 가슴]이란 곡을 제공해 준 댓가로 받게 된 곡인 [내 말 좀 들어요]였고, 나머지 세 곡은 우리에게 [연안부두]로 유명한 그룹 김 트리오의 리더 김파가 곡을 쓰고 그녀가 작사한 타이틀곡 [얘얘], [서울의 밤거리], 그리고 [나의 꿈 이야기]였다.

이미 그녀는 과거에 김 트리오 2집의 ‘사랑은 영원히’의 가사를 쓰면서 김파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고, 위 3곡은 그녀가 김파의 집에 가서 본 악보들을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하다가 맘에 들어서 이 곡들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특히 타이틀 곡으로 사용된 [얘얘]는 기존 장덕의 작법과는 분명 다른 1950~60년대 미국의 고전 로큰롤 리듬과 드럼 비트의 정서가 곡에 흐르고 있고, 가사 역시 매우 밝은 정서가 담긴 트랙이다. 항상 자신이 만든 곡 위주로 노래했던 그녀에겐 색다른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숙한 표현력으로 리듬을 타는 그녀의 보컬 능력은 이 곡에서도 빛이 난다. 서구 틴 팝(Teen Pop)적인 정서도 담긴 곡이기에 그녀의 사후에도 여러 여가수들이 이 곡을 무대에서 커버한 음원과 영상을 만날 수 있었다.

레인보우 노트는 이 곡 역시 자신들의 음악적 정체성에 기반하여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이번 커버 버전에서는 마치 두 사람이 애초에 만들어 낸 곡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상큼한 신스 팝 프로그래밍, 그리고 원곡의 편곡에 담겼던 섬세한 배경 멜로디 라인까지도 자세하게 연주에 녹여낸 노력이 빛난다. 그리고 경쾌한 리듬감을 더하기 위해 80년대식 뉴 잭 스윙 타입의 펑키 리듬도 잘 믹스해냈다. 원곡보다는 BPM은 좀 더 빨라졌지만, 그래서 새로운 젊은 세대의 심장 박동과는 더 잘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안슬희의 시원한 보컬도 원곡의 매력을 현대에 맞게 잘 해석해내고 있다.

먼저 진행된 온라인 음원 발매로는 총 3회에 걸쳐서 진행된 '장덕 Tribute Project'는 장덕에 대한 기억을 갖고 그녀를 추억하는 세대, 그리고 아직 그녀에 대해 잘 몰랐던 젊은 세대 모두에게 그녀의 음악의 매력과 가치를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12인치 LP라는 독특한 포맷으로 이 아름다운 4곡의 노래들이 아날로그 재생방식으로 다시 음악 팬들과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반가운 일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이 음원들을 통해 앞으로도 더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음악이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수 있고, 장덕의 음악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뤄질 수 있길 기대한다.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Locomotion] Editor)


[Credit]

A-1. 점점 더 가까워져요
작사 / 장덕
작곡 / 장덕
편곡 / yiry-on
Vocal / 모트
Chorus / 모트
Guitar, Synth, Drum / yiry-on
Bass / 이규영
Recording / Ruby Records Studio
Mixing / 김보종 @mixby
Mastering / 전훈 @Sonic Korea

A-2. 소녀와 가로등
작사 / 장덕
작곡 / 장덕
편곡 / 류호성
Vocal / 모트
All instruments / 류호성
Mixing & Mastering / 류호성, @ ArC Union

B-1 님 떠난 후
작사 / 장덕
작곡 / 장덕
편곡 / hatzlando
Vocal / 안슬희
Chorus / 안슬희
Piano / 이사라
Synthesizer / hatzlando
E. Guitar / 조현우
Bass / hatzlando
Drums / hatzlando
Recording / 김보종 @mixby
Mixing & Mastering / 김보종 @mixby

B-2 얘얘
원곡 / 장덕
편곡 / 조영준 김태훈 서성권
Vocal / 안슬희
Guitar 김태훈
Bass 김태훈
Synthesizer 김태훈 조영준
Drum 서성권
Recording / OZ Studio
Mixing / 김보종 @mixby
Mastering / 전훈 @Sonic Korea

Photo Edited / 오석근
Video / yoB
A&R / 김재면, 최유정
Supervisor / 이규영
Assistant / 김소천
Music Label / Ruby Records
LP 구매시 참고 사항 안내드립니다.
※ 재킷/구성품/포장 상태
1) 명백한 재생 불량 외에 경미한 재킷 주름, 모서리 눌림, 갈라짐 등은 반품/교환 대상이 아님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2) 속지(이너 슬러브)는 디스크와의 접촉으로 인해 갈라질 수도 있는데, 이는 반품/교환 대상이 아닙니다.
3) 디스크 라벨은 공정상 매끄럽게 부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4) 본품에 문제가 없는 겉포장 비닐의 손상은 교환/반품 대상이 아닙니다.

※ 재생 불량
1) 톤암 혹은 무게 조절 기능이 없는 턴테이블을 사용하시는 경우, (주로 올인원 형태 모델) 다이내믹 사운드의 편차가 큰 트랙을 재생할 때 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 가벼운 톤암 무게가 원인입니다.
기기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재생 불량 현상에 대해서는 반품/교환이 불가하니 톤암 조절이 가능한 기기에서 재생하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2) 디스크는 정전기와 먼지로 인해 재생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전용 제품으로 이를 제거하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3) 바늘에 먼지가 쌓이는 경우에도 재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디스크 이상
1) 디스크 표면이 울렁거리거나 휘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생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만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합니다.
2) 재생 음역의 왜곡을 최소화 하고 반복 재생시에도 최대한 일관되게 유지되도록 디스크 센터 홀 구경이 작게 제작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턴테이블 스핀들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전용 제품 등을 이용하여 센터 홀을 조정하시면 해결됩니다.
3) 간혹 디스크에 미세한 잔 흠집이 남아있거나 마감이 깨끗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재생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만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합니다.

※ 컬러 디스크
아래에 해당하는 경우는 불량이 아니므로 반품 및 교환은 불가하오니, 구매시 참고를 부탁드립니다.

1) 컬러 디스크는 웹 이미지와 실제 색상이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2) 컬러 디스크의 특성상 제작 공정시 앨범마다 색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컬러 디스크는 제작 과정에서 다른 색상 염료가 섞여 얼룩과 번짐, 반점 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교환/반품 안내
1) 명백한 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 요청 시에는 불량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 및 동영상과 재생기기 모델명을 첨부하여 고객센터에 문의 바랍니다.
2) LP는 잦은 배송 과정에서 재킷에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재판매가 어려우므로 오구매, 변심으로 인한 반품은 어렵습니다. 신중한 구매를 부탁드립니다.

디스크 디스크 보이기/감추기

Disc
  • A1 점점 더 가까워져요 (모트)

  • A2 소녀와 가로등 (모트)

  • B1 님 떠난 후 (레인보우 노트)

  • B2 얘얘 (레인보우 노트)

아티스트 소개 (2명)

한줄평 (1건) 한줄평 총점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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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 얼굴만보고 기쁜맘에 자세한 내용 체크없이 주문한LP. 후회합니다 오리지널인줄...가수
4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4
b********9 |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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