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냥꾼이 있었다. 그의 이름만 대어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아주 유명한 명수였다.
어느 날 사냥꾼은 근처에 있는 산으로 사냥을 나섰다. 그런데 그날 따라 도무지 잡을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큰 동물은 물론이고 조그만 토끼나 꿩 같은 새도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그는 호숫가로 갔다. 기러기라도 잡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기러기는 보이지 않고 한 쌍의 원앙새가 정답게 놀고 있는 게 보였다. 사냥꾼은 원앙새를 쏜다는 것에 너무 망설여졌지만 빈손으로 가기에도 체면이 서질 않아서 원앙새를 향해서 활시위를 당겼다.
그 순간 원앙새 한 마리가 툭 떨어졌다. 명중을 한 것은 기뻤지만, 원앙새를 죽이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는 천천히 죽은 새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죽은 원앙새의 목이 없는 것인 아닌가?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그래도 목 없는 그 원앙새를 들고 와 아무 데나 두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어디선가 여자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그이가 없으면 살 수 없어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 사냥꾼의 눈앞에는 아름다움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당신이 쏜 그 원앙새는 저의 남편이에요. 남편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 전 급히 남편의 목을 잘라 내 품에 간직했지요. 저는 남편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몸입니다. 지금도 저는 죽은 남편의 목을 끌어안고 있어요. 부탁이 있어요. 내일 아침 연못 한구석에서 울고 있을 테니 저를 발견하면 꼭 쏘아주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너무도 간절한 그리움이 일렁이는 눈으로 젊은 여자는 사냥꾼을 쳐다 보았다. 그 눈빛에 사냥꾼은 가슴이 무너졌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저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사냥꾼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가슴은 아프지만 남편과의 사랑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사셔야죠. 제가 한 번 실수를 했는데 어떻게 두 번이나 합니까?"
젊은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다시 말했다.
"사냥꾼님! 추억은 아름답지 못할 때만 잊혀질 수 있답니다. 남편과 함께 했던 그 많은 이야기들과 웃음들은 제 가슴에 절절한 그리움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기억들은 간직하는 게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저 혼자 남겨진 세상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발, 저의 부탁을 들어주세요."
깜짝 놀라서 일어나니 꿈이었다. 사냥꾼은 마음이 스산해졌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호숫가로 나갔다. 정말 한 구석에 짝 잃은 원앙새 한 마리가 쓸쓸히 울고 있었다.
그가 다가가도 원앙은 도망가지 않고 사냥꾼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무언가에 홀린 듯 활을 당겼다. 새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냥꾼이 다가가 죽은 원앙을 들자 꿈속의 여자가 말한 대로 수컷의 목이 '툭' 떨어졌다.
너무도 쉽고 그리고 짧은 사랑이 세상엔 너무 많은데, 상대방이 단 하루도 없으면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사랑을 한 원앙새들이 너무 부러웠다. 아마도 그건 필요에 의한 사랑도, 욕구에 의한 사랑도 아닌, 진실된 마음의 사랑이었으리라.
남편의 뒤를 따라서 죽어서가 아니라, 그를 따라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 pp.141-143
칫솔이 부러진 것은 사흘 전이었다. 손가락까지 집어넣어야 어금니를 닦을 수 있는 흉악한 폼을 감수하며 부러진 칫솔로 아침저녁 이를 닦았고, 그때마다 새 칫솔을 사다 놓도록 강력하고도 정중하게 제의했지만, 아내는 이틀 동안이나 새 칫솔을 사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시장 가는 아내에게 난 칫솔을 확인시켰다.
"칫솔 사 왔어?"
"어머, 그걸 또 안 사 왔네."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내는 태연히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내일은 꼭 사다 놓을 테니, 하루만 내 걸로 닦으세요."
"어떻게 칫솔을 같이 쓰잔 말이야…."
나는 그만 아내에게 소리를 버럭 질러 버렸다.
그러나 내 속을 홀까닥 뒤집어놓은 것은 칫솔만이 아니었다. 칫솔은 안 사오면서도 아내는 떡 하니 일간지를 사 가지고 들어온 것이었다. 한 연예인이 남자친구가 있었고 조만간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가 장안의 화젯거리라지만, 그런 기사에 관심을 갖는 아내가 정말 한심해 보였다. 화가 난 나는 이 닦는 걸 포기한 채, 껌이나 하나 사서 씹지 하며 집을 나왔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칫솔을 안 사다 준 아내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차고가 달린 집들이 즐비하게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조그만 전셋방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며 웃던 아내. 임신 5개월로 맘대로 밖으로 나가지도 않으면서 온종일 집에만 있을 아내인데…. 쓸쓸하게 하루를 지내야 하는 아내와 고작 칫솔 하나 때문에 싸워야 했다니….
저녁에 나는 3억 원을 횡령 도주했던 한 남녀의 기사가 자세하게 다뤄진 주간지 한 권을 사들고 들어왔다. 약간 쑥스러웠지만 그것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미안해. 왜 우리가 칫솔 같은 걸로 싸워야 해?"
아내도 어린애 같은 미소를 띠며, "미안해?" 하며 이내 맛난 저녁상을 차려 왔다.
그런데 저녁까지 기분 좋게 있었던 아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왜 우느냐는 물음에 아내는 보고 있던 주간지 한 페이지를 내밀었다. 그것은 내가 저녁에 사준 주간지였고, 그 중 한 페이지에 '남편의 애정을 테스트해 보세요'라는 기사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칫솔을 새로 사 와야 할 때 당신의 칫솔을 주며 한번쯤 이를 닦으라고 해보십시오. 두말없이 받아 닦으면 두 분의 애정은 깊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용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애정의 위험 신호입니다.'
아내는 이 기사를 보고 눈물을 흘린 것이다.
"몰랐었는데 이제 다 알았어요. 당신은 제가 싫어진 거예요. 얼굴에 기미도 끼고, 히프도 펑퍼짐해지고…."
아내는 너무나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안아 주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아일 가져서 그래. 당신 신경이 약해져서 그래."
하며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며 난 중얼거렸다.
"그래, 그래. 이제부터는 칫솔을 하나만 가지고 살자. 하루는 당신이 먼저 닦고, 하루는 내가 먼저 닦고, 그러면 되잖아. 울긴, 그럼 되는 거지 뭐. 칫솔 값은 계속 모았다가 당신 좋아하는 놀이공원에라도 가면 더 좋은 거지 뭐…."
--- pp.168-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