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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내려온 전화

달에서 내려온 전화

부크크오리지널-00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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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30g | 128*188*21mm
ISBN13 9791137266544
ISBN10 1137266546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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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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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 오늘의 소식을 알렸다. 통화국 대리인들은 공지판을 통해 음력 15일 보름날에는 전화 신청자, 음력 27일 그믐날에는 사망 신청자 명단을 전해 받았다. 한봄은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는지 한 번 더 내용을 살핀 후에 공지판을 들어올렸다. (중략) 전화 신청자의 전화기에서 피어난 아지랑이가 통화국 대리인의 집으로 몰려왔다. 아지랑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게걸스럽게 잡아먹으며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한데 엉킨 실타래처럼 몸집을 불린 붉은 뱀이 돌진해오자 한봄은 어깨를 비틀어 피하고는 단번에 전화줄을 낚아챘다. 베테랑 기수가 말의 고삐를 조이듯이 실타래를 손뼉에 감았다. 수화기를 집어들자 전화줄이 언제 요동쳤냐는 듯이 추욱 몸을 늘어뜨렸다. --- 「통화국 대리인 한봄」 중에서

잠시 묻어둘 뿐이다. 당장 해일처럼 들이닥치는 오늘을 살기 위해, 고인을 기억 어딘가에 간직하고 뒤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문득 그대와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반갑게 맞이하면 된다. “잘 지냈어?” 하고 안부를 묻고 또다시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몰아치면 우리는 반대로 흐르는 강물에 올라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 된다. 그렇게 영영 만나는 날까지 흐르고 흘러, 그대는 생전에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열심히 떠들어보겠다고 오시덕은 생각했다. --- 「도시락 통 오시덕」 중에서

길강욱이 구두를 훌훌 벗어 던졌다. 귀신들 때문에 제 명대로 못 살겠다며 터덜터덜 힘없이 걸었다. 그는 한봄을 흘끔 쳐다보고는 “하룻밤만 신세 좀 지겄습니다.” 하고 부탁했다. 허리는 반만 수그린 채 고개를 빳빳이 든 모양새가 불량했다.거실 바닥에 눌러앉은 그를 한봄도 별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도, 길강욱도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그믐날은 심적으로 고단했고 저승차사들은 떠난 이를 기리는 데 하루를 온통 소모하곤 했다. --- 「신라 화장 길강욱」 중에서

그날의 백승석은 딱 오늘처럼 장미를 손질하고 있었다. 한봄은 처음 그를 맞닥뜨렸을 때처럼 감탄을 터뜨렸다.“오늘 얼굴, 내 취향이야.”“그럼 지금까지는 뭐였는데?”백승석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그는 꽃병에 꽂힌 꽃줄기를 올렸다 빼며 높낮이를 조절했다. 한봄은 그를 구경하며 싱크대에 엉덩이를 기댔다. 물론 걔네도 좋아했죠, 하고 답했다. 백승석이 헛웃음을 쳤다. --- 「7월의 백승석」 중에서

언젠가는 사랑이 올 줄 알았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니, 진실한 마음으로는 그보다 더 빨리 평생을 아껴줄 사람이 찾아오길 바랐다. 서른이 끝나기 전에는 오겠지, 더위가 가실 무렵이나 첫눈이 올 즈음이라도. 뭐, 첫눈이 녹더라도 상관없으니 누군가 하루아침에 나타나, 자신을 꽉 끌어안아 주기를 권은경은 바랐다. 그렇게 허망한 사계를 보내고 잔인한 봄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또다시 조급함에 속아 거짓 사랑을 사랑이라 믿은 적이 있었다.누가 그녀를 보고 사랑을 불신한다 말할 수 있을까. 다시없을 순애보가 여기 있었다. 다만 남은 일생 옆구리를 붙이고 살 상대를 학수고대하기에는 이제 지친 영혼과, 혼자 사는 것이 습관처럼 굳은 육신이 남았을 뿐. --- 「사랑을 몰라, 권은경」 중에서

“언니는 말이야, 주요비 생각이 궁금한 거야. 다른 사람 말고 네 의견. 혹시 양초 알아? 제사 지낼 때 쓰는 기다랗고 하얀 거. 그걸 사람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굵은 심지를 세워야 해. 판단이란 불꽃을 태울 굳은 심지를. 먼저 자기 자신을 정립하지 않는다면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기 십상이거든. 그래서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어. 타인의 의견을 듣는 건 그다음에 해도 충분해.” --- 「어화둥둥 주요비」 중에서

붉은 화염 속에서 염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저승의 판관, 명부의 시왕 중 5번째 지옥을 다스리는 왕이었으며 사람이 전생에 지은 선악을 심판했다. 그의 심판장에서 입을 거짓으로 놀렸다간 혀가 잘리고 두개골을 두들겨 맞았다. 염라는 악행을 벌하는 불꽃이었다. 그러니 심판대에 오르지도 않은 권은경에게 실제로 화염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으나 불이 머금은 열기만으로도 생자는 이성의 끈을 놓기에 충분했다.
--- 「마지막 접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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