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새는 스프링처럼 하늘로 솟구치다가 초원으로 곤두박질한다. 비상이 생명의 본질이라면 곤두박질은 죽음의 본질이다. 비상하기 위해서는 곤두박질이 필요하다. 여기에 종달새의 운동성이 있다. 이처럼 순간의 동심원 속으로 뛰어들고 솟구치는 것이 음악이다. 종달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초월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본 윌리엄스는 영국의 국민주의 작곡가이다. 그의 작품 〈종달새의 비상〉은 피겨스케이터 김연아가 사용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종달새의 비상〉은 영국의 민속음계와 리듬을 바탕으로 만든 바이올린곡이다. 영국 시인 조지 메러디스의 「종달새의 비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 p.25, 「종달새의 순간, 종달새의 비상」 중에서
라벨의 〈볼레로〉는 굴촉성의 선율을 들려준다. 이 선율은 파충류처럼 육체를 칭칭 감으며 파고든다. 〈볼레로〉는 작은 북의 리듬 위에서 플루트로 주제 선율을 제시한다. 선율과 리듬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파격적이다. 플루트에서 시작한 선율은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트럼펫, 색소폰, 호른, 트롬본, 튜바 등의 금관악기와 베이스드럼, 심벌즈, 탐탐 등의 타악기가 가세하여 점차 크고 두터운 음향을 만들어낸다. 음악은 집요한 반복으로 구성된다. 자극적인 선율 위에 다양한 음색의 악기들이 만들어내는 색채감과 감각적인 리듬은 무희들의 격렬하고 선정적인 몸짓을 연상시키며 황홀한 판타지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 p.42, 「촉각적 상상력─에로티시즘」 중에서
노래는 육체에 스며들어 따뜻한 공기를 불어넣고 숨어 있던 씨앗을 발아시킨다. 대부분의 예술이 결핍과 고독, 허무 속으로 파고들어 존재의 본질을 파헤치지만 노래는 이 위기의 공간들을 채워준다. 대부분의 예술이 세계를 비틀고 재단하지만 노래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세계를 포용한다. 노래는 기본적으로 감성의 언어이며 느낌의 언어이다. 그래서 언어를 능가하는 호소력과 전달력을 지니며 존재를 껴안는다.
--- p.64, 「소월의 시, 소월의 노래」 중에서
쇼팽의 음악은 대부분 화려함 속에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비극성은 그의 음악을 장식적 기교로 이루어진 센티멘털리즘에 머물게 하지 않고 격조를 지닌 위치로 올려놓는다. 폴란드는 지정학적 위치로 오랜 세월 외침이 잦았다. 약소국의 민중이 겪는 슬픔은 한으로 스며들어 비극성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점에서 폴란드 음악에서 비애의 미는 빠질 수 없는 것이며 폴란드의 역사만큼이나 음악도 풍요로울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힘든 시절에 들었던 쇼팽이 감동적이었다. 낯선 곳에서 아이와 내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막막할 때 들었던 쇼팽이 가장 사무쳤다. 음 하나하나가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처럼 가슴으로 밀려들어왔다.
--- p.82, 「쇼팽의 음악, 쇼팽의 폴란드」 중에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교향곡 5번〉은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는 1악장의 동기가 확장?변형되면서 전 악장에 일관되게 흐른다. 〈교향곡 5번〉이 압도적인 감명을 주는 것은 이 곡이 자신의 체험과 신념의 고백이며 내면적인 투쟁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후고 라이히텐트리트의 표현처럼 그의 작품에 담긴 “진지한 표현”과 “완성을 지향하는 타협 없는 결벽성”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숭고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것은 헤겔식으로 말하면 ‘절대정신’에 도달하는 것이다. 절대정신이란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조화를 통해서 음악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주체로서의 주제적 재료의 창조이다. 음악이 베토벤에서부터 완전한 미적 자율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아도르노의 견해가 바로 여기에 기초한다.
--- p.107, 「천재의 영감, 천재의 광기」 중에서
피리는 취구로 숨을 불어넣는 악기이며 육체에 호소한다. 불어넣은 숨과 구멍의 크기, 간격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 숨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살리는 일이다. 하나의 사물을 악기로 바꾸는 것은 사물을 영생하게 하는 일이다. 입으로 숨을 불어넣는 악기라는 점에서 피리는 목소리의 연장이며 관은 성대의 연장이다. 피리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은 더 길고 더 높고 더 자유롭고 더 풍부한 음량의 소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 p.132, 「최초의 악기, 최후의 악기─피리」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마다 변혁의 현장에는 북이 있었다. 북은 지배하고 구속하며 억압하는 악기이지만, 동시에 해방시키는 악기였다. 북 외에도 징과 꽹과리 등의 타악기는 광장의 역사와 가두 투쟁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악기이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은 축제였다. 한국 대표 팀이 처음으로 4강에 올라가는 신화를 이루자 흥분한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광장과 거리로 나왔다. 응원의 열기를 달구는 한가운데에 북이 있었다.
[…] 차이콥스키는 〈1812년 서곡〉 마지막 장면에서 교회 종소리와 북, 팀파니, 심벌즈, 그리고 총소리와 대포 소리를 이용하여 승리의 기쁨과 환호를 표현했다. 무소르그스키는 〈전람회의 그림〉 중 마지막 곡 ‘키예프의 대문’에서 북과 팀파니, 심벌즈로 삐걱거리며 열리는 거대한 성문과 그곳으로 환호하며 몰려드는 인파를 장엄하게 묘사했다.
--- pp.155-156, 「심장을 두드리는 소리─북」 중에서
괴테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태생적인 결함 때문에 방황하며 이러한 결함을 채우려는 끊임없는 노력 때문에 성장한다. 뮐러와 슈베르트의 겨울 여행 또한 안정된 거주지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스스로를 추방시켜 자유를 찾고자 미지의 불확실한 세계를 추구하는 낭만적인 출발이었다.
[…] 뮐러와 슈베르트는 동시대를 살아가며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실연당하고 절망한 채 겨울 속을 떠도는 방랑자의 모습, 돈을 구걸하는 거리의 악사는 이들 자신의 초상이었다. 또한 그것은 삶의 혹한 속을 떠도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뮐러는 1824년 『겨울 여행』을 발표하고 이 시를 슈베르트가 연가곡으로 작곡한 1827년에 세상을 떠난다.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를 작곡한 다음 해인 1828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 pp.170-171, 「인생의 겨울을 방황하는 자─《겨울 나그네》」 중에서
〈마왕〉은 청각적이고 영적인 존재이다. 마왕의 소리는 아버지의 귀에 들리지 않고 아들의 귀에만 들린다. 청각적인 요소는 시각적인 요소보다 더 강력한 유혹이며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이 청각적인 존재는 부드러운 음성적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다. 마왕은 독수리처럼 아이의 주위를 맴돌며 포근한 음성으로 아이를 영원한 잠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음성은 인간으로 분화하기 전의 어슴푸레한 세계나 아련한 기억 속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출렁거리며 들려오는 노래이다. 이 세계는 오로지 청각만이 존재하는 음향의 세계이며, 어머니와 끈끈한 유대가 이어지는 평화로운 이미지의 세계이다. 아이는 두려움으로 경계하지만 저항할 수 없는 노래의 힘에 이끌린다.
--- p.199, 「유년에서 성년으로, 성장의 마법─〈마왕〉」 중에서
영상과 스토리를 공간화시키고 입체화시키는 것은 청각작용이다. 청각이 시각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의 역할을 주도하고 극대화시킨다. 소리는 울림을 통해 공간을 확장하고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저 너머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시각보다 청각이다. 영상작품에서 음악이 성공하면 작품이 한 차원 도약한다. 음악이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음악이 영상작품 전체의 이미지나 내용을 요약하면서 OST만 따로 떼어내어 음미하기도 한다. 즉물적이고 일회성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도 청각의 역할이 중요시되는 이유가 여기서 나타난다.
--- p.215, 「시각에서 청각, 오감의 시대로─인공지능 시대의 음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