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는 그 미술을 만들어낸 이들의 역사와 문화, 즉 세계가 깃들어 있습니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우리는 서양 중심으로 세상을 봐왔지만 그 역시 여러 관점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물론 알던 대로, 익숙한 대로 세상을 본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닫힌 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가치는 충분하죠. 알에서 깨어나야 더 넓은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요. 동양미술, 더 나아가 동양을 이해한다는 건 우리를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야 우리가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저는 무엇보다 이번 여정이 우리 곁을 바라보는 창이 됐으면 합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세계는 이전의 세계보다 훨씬 다채로울 거라고 약속드릴게요.
--- p.42, 1부 1장 「평범한 것이 위대하다」 중에서
오래된 유물의 진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소와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바로 상상력이지요. 아무도 빗살무늬토기를 모를 때 땅을 파다가 우연히 빗살무늬토기를 발견했다고 해봐요. 어떨 것 같은가요? (…) 누군가는 보자마자 위대한 발견이라고 알아차릴 수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러지 못합니다. 난생처음 보는 거니까 대수롭지 않게 ‘누가 깨진 화분을 묻어놨네?’ 하고 지나쳐버리겠죠. 그럼 대단한 발견을 했대도 소용이 없어요. ‘혹시 엄청 옛날에 쓰던 거 아닐까?’ 하고 질문할 수 있어야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p.83~84, 2부 1장 「고정관념을 뒤집은 선인더스」 중에서
보는 것만으로, 촉각이 느껴지도록 하는 건 조각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 인도 조각은 유독 건드려보고 싶어질 정도로 살의 느낌을 잘 표현합니다. 그 때문에 박물관에 가면 ‘만지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저절로 손이 가죠.
--- p.165, 2부 3장 「이상적인 신체를 빚어내다」 중에서
혹시 절에서 ‘성불하십시오’라 인사하는 걸 들은 적이 있나요? 될 성(成) 자에 부처 불(佛) 자를 써서 부처가 되라는 뜻이에요. 성불하라는 인사를 절에 온 누구에게나 합니다. (…) 결국 깨달음을 통해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평등사상이지요. 그게 불교가 기존 전통을 품으면서까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 가장 중요한 메시지였을 테고요. 그 강력한 메시지는 인도 사람들의 마음에 서서히 불을 지폈죠.
--- p.212, 3부 1장 「인도 땅을 휩쓴 새 바람」 중에서
이때가 기원전 3세기입니다. 그림을 그리려 해도 재료가 마땅치 않았을 시기예요. 인도의 회화는 700여 년은 더 지나야 나옵니다. 나중에 석굴 사원을 조성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나죠. (…) 그 이유에서 인도 사람들은 조각을 만들 때 더 끈질기게 관찰하고 공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대체할 표현 매체의 발달이 늦었던 게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보기 드문 사실적인 육체 표현을 발전시켰던 걸지도 모르지요.
--- p.256, 3부 2장 「해는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진다」 중에서
돌이켜 보면 인도에서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이야기가 우리 곁에 올 수 있었던 건 다 조각 덕분이었습니다. 이 모든 게 스투파에 끼워 넣을 돌에 이야기를 새기면서 시작됐으니까요. 조각으로 인해 석가모니의 생애, 불교의 ‘법’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흑백필름이 컬러필름으로 바뀌듯 생생하게 살아났을 겁니다. 그 힘이 중국,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까지 전해지며 또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게 했지요. 우리가 아는 불교는 이런 과정을 거친 결과물입니다. 결국 돌 위에 살아남은 이야기들이 오늘날의 아시아를 하나로 묶어준 셈입니다.
--- p.390, 3부 4장 「이야기는 돌에 담겨 생생해지고」 중에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근처 절만 가도 불상을 볼 수 있는 건 쿠샨 제국이 불교를 널리 퍼뜨렸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한 번쯤 가서 봐야 한다는 경주 석굴암 본존불이 만들어진 것도 그 덕분이 아닌가 하고요. 부처를 부처답게 하는 시각적인 상징과 그리스 로마부터 서아시아, 중앙아시아까지 불상에 영향을 준 수많은 문화는 쿠샨 제국에서 새롭게 융합돼 우리나라로 전달됐어요. 우리는 그 결과물을 이 땅에서 보고 있는 셈이지요.
--- p.494, 4부 2장 「500년의 금기가 깨지다」 중에서
우리 강의의 끝에서 각자가 맞이하게 될 동양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랬듯 동양미술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그 계기가 무엇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오는 게 사랑이니까요. 누가 강요한다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열심히 준비한 이 여정 동안 각자의 시선으로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 p.498, 4부 2장 「500년의 금기가 깨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