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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주

페르소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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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04g | 120*205*11mm
ISBN13 9791190533119
ISBN10 11905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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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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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들이 거기 와 있다. 어느 날, 몇 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왜 오는지, 어떻게 오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늘 그렇게 느닷없이, 난입하듯 온다. 그렇다고 소란스러운 것도 아니다. 기물을 파손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기막힐 정도로 신중하게 벽을 통과해 온다.
그들이라니? 그들은 ‘페르소나주’들이다. 그렇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다.
--- p.9

우리 의식으로부터 생겨난 각 등장인물은 이제 새롭게, 아니 전혀 다르게 태어나길 소망한다. 언어로 태어나기를, 언어로 펼쳐지기를, 언어로 호흡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스스로 표현되기.
그렇다, 텍스트의 생을 원하는 것이다.
--- p.16

그들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그 통렬한 존재감 말고는). 말도 하지 않고, 표명도 하지 않고, 선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생이, 의미가 가능함을 암시할 뿐이다. 예상 밖의 질문을 던지는가 하면, 경악하게 한다. 너무나 밀도 있고 너무나 복잡한 우리의 실재 세계를 늘 새롭게 탐험하려면 궤도를 이탈해야 한다고, 그런 노선이 있다고 우리에게 살짝 암시할 뿐이다.
--- p.21

단어들에도 혈색을 줘야 한다. 부피를, 색깔을, 맛을, 섬유 조직 또는 성역 같은 조직을 마련해야 한다. 소리와 빛에 반사 작용을 할 수 있는 힘이 갖춰져야 한다. 등장인물들의 부름에 응답하는 소설가에게 주어지는 책임이다.
--- p.31

거꾸로, 읽기란 이미 쓰기이다. 왜냐하면 해석이란 어수선하게 분산되어 있거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함의들을 해명하고 설명함으로써 주해를 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밝혀진 의미의 위치를 옮기고, 변화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 바로 창작하는 것이다.
--- p.40

항상 인간의 살가죽 위에 쓴다. 다른 물리적 실현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항상 인간의 살가죽에 대해 쓴다. 소설에서 다른 주제란 없기 때문이다. 실존의 불확실성. 아무리 말해도 다 말해지지 않는 인간의 난해함. 지극히 어려운 사랑. 그럼에도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 사랑의 열정. 불가피한 고독. 그토록 다함 없는 사랑 끝에 생기는 냉소. 죽음 같은 허무. 이런 것들을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85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침묵의 망망대해 앞에서 종이 제방을 쌓는 행위다.
침묵, 오로지 침묵만이 결정권을 얻는다. 다량의 단어들에 분산되어 있는 의미를 굳건히 견지하는 것이 곧 침묵이기 때문이다. 결국 글을 쓸 때, 우리는 침묵을 향해 가는 것이다. 열정적으로, 은밀하게, 침묵을 열망하는 것이다. ≪침묵을 지키는 것, 바로 그것이 글을 쓰는 우리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것≫이라고 모리스 블랑쇼는 말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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