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정은 잘 나가는 사람을 볼 때 어떠신가요?
나보다 못한 친구가 그럴 때는 정말 너무 힘들어요.”
그 마음 안답니다. 나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나보다 못하다는 기준은 뭘까요? 공부? 미모? 부모 배경? 학벌? 그 누구도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도 바뀌었답니다. 나보다 못하다는 건, 내가 만든 기준에, 이기적이고 자만에 가득 찬 나의 기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는 내 기준에 미달이거나, 내가 알지 못하는, 어쩌면 알면서도 인정해주기 싫은 재능, 노력들이 있다는 것을 학교 아이들을 통해 깨닫고 배운 거지요. 나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요.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에 대한 나의 기준은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랍니다. 비교해서 상처받는 대신 비교해서 내가 배우고 성장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원동력으로 삼지요. 비교가 꼭 나쁜 건 아니에요. 비교를 통해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꽃들이 각자의 색, 모양, 향기가 있듯이 사람도 그래요. 눈과 마음이 타인을 향하기 전에 먼저 그대라는 꽃의 가치를 알고 인정해주세요.
---「그래도 부러운 걸 어쩌라고」중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과학 선생답다’ 라는 말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답니다. 그리고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올해로 36년째 과학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학교 다닐 때부터 과학을 잘했을 거라는 사람들에게 나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면 적지 않게 당황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나는 학교 다니면서 과학을 잘하지도, 과학을 좋아해본 적도 없었어요. 다른 과목에 비해 성적도 낮았고 많이 어려워했고요.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쳐 꿈을 접고 국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그것도 반대. 학교에서 구분하는 문·이과에서 거의 100% 문과체질(?)의 학생이었답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과에 가게 되었고 솔직히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는 과학 교사가 되었어요. 그런 내가 너무 과학 선생답다든가, 과학적이라든가,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아주 묘하답니다.”
플루트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 때문에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남편이 그러더군요.
“나는 회사원이 꿈인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당신도 과학 선생이 꿈은 아니었다면서?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꿈을 이루지 못해서 불행하니? 아니잖아. 당신도 과학 선생으로 살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면서? 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좋아. 아이의 적성, 물론 좋지. 그것을 빨리 알아서 그쪽으로 밀어주는 것도. 하지만 너무 성급한 결론은 아이의 가능성을 한정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기회가 아닐까? 아이들이 이런저런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 당신도 과학을 전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당신은 있을 수 없었을 거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중에서
“그냥 우리 아이는 최소한, 정말 최소한 이 정도만 되었으면 하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되네요. 공부 1등 이런 거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착하고 예의바르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고, 책 좋아하고 공부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야겠죠? 악기도 한두 개는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고, 운동도 수영하고 태권도 정도는 다들 기본으로 하니까 그 정도. 자기 생각 잘 전달하고, 글도 남들만큼은 쓰고, 선생님, 전 정말 애한테 크게 욕심 없어요. 다른 사람을 도울 줄 아는 따뜻한 마음, 그리고 성격 좋고 밝고 사교적이고, 가만있어 보세요, 또 뭐가 있었는데. 아, 알뜰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공부는 어느 정도라고 했는데 그 어느 정도가 얼마쯤일까? 요즘 반에 20명 정도 되니까 한 15등 정도를 생각하고 있니? 악기 한두 개는 제대로 하길 원한다구, 그렇다면 제대로의 기준은 뭐지? 수영과 태권도는 기본이라고 했는데 그 기본의 기준은? 글은 남들만큼 썼으면 하는데, 세상에는 다 남인데 어떤 남들만큼 써야 너의 마음에 들 것 같니? 혹시 AI 시대에 로봇 아들이 한 명 있었으면 싶은 건 아닐까? 로봇 말고는 세상에 그런 아이는 없어.
그거 아니? 가장 중요한, 아이의 건강이 너의 바람에는 빠져 있어. 건강이야 당연한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가장 중요한 거야. 그 아이가 건강하게 너와 함께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너의 바람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가 자신에게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그 바람들을 이루며 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 네 삶에 대한 바람은 무엇이니? 아이를 저렇게 키우고 싶은 거 말고, 오로지 너를 위한 바람. 그것 역시 중요해.”
---「나는 크게 욕심도 없는데」중에서
“해야지, 변해야지” 라고 말을 하지만 이루지 못했다면, 정말 그 일에 관해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 스스로 명확한 결론을 짓지 못해서일 거라 생각해요. 새벽에 13층에서 불이 난 적이 있습니다. 11층에 살고 있던 나는 어땠을까요? ‘불이 조금 더 번지면 그때 대피해야지’ 라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아이의 손을 잡고 11층 계단을 뛰어내려왔어요. 운동화를 찾아 신을 겨를도 없이 현관에 있던 하이힐을 신고서. 간절하다고 하지만 정작 행동으로 하지 않는 것은, 아직 그만큼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 건데」중에서
“아저씨도 사과하세요. 아저씨는 차값이 비싸지만 저는 제 몸값이 엄청 비싸거든요. 제가 아저씨 외제차 값을 상상 못하듯 아저씨도 제 가치를 상상도 못하실 걸요. 비싼 차 긁을 뻔했다고 사과하라니 저도 비싼 내가 상처 받을 뻔했으니 사과 받아야겠어요.”
“이게 미쳤나?”
“그쵸? 미친 거 같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미치지 않고서야 뻔~~ 했다고 사과하라고 하겠어요? 미친 거지.”
“이거 순 개또라이 아냐? 마티즈 타는 주제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마티즈 타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는 어떤 차를 타느냐가 중요하지 그 차에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 개또라이와 마티즈와의 상관관계는 전혀 없다는 거.
이럴 때 내게 물어보곤 합니다.
‘이 사람이 내 인생에 몇 %를 차지하지? 0.1%도 차지하지 못하는 이 사람 때문에 내가 휘둘려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며 분노하고 힘들어할 필요가 있나?’
대답은 언제나 NO.
---「마음 운전사」중에서
똑같이 머리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인데 교사인 나의 왕관은 되고 아이들의 헤어롤은 안 된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헤어롤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게 이쁘다고 생각하나? 도대체 왜 저러고 있지? 자기 집에서나 하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들의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원하는 그 시점에 앞머리 상태가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해요” 라는 말에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그들의 생각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헤어롤에 대한 교사 샘정의 변화 과정입니다.
“누가 수업 시간에 이런 걸 하고 있어. 얼른 빼. 압수야.”
“수업 시간에는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부탁해요.”
“과학 시간에는 헤어롤 괜찮아요. 우리 반은 아침 자습 시간에도 괜찮고요. 하지만 다른 시간에는 어떨지 모르니 현명하게 잘해주기 바라요.”
이렇게 나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아이들을, 학부모님들을, 학교를, 세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정말 조금씩이지만 분명 변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 변화의 길에 함께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 생각하기에. 나의 소명인 말랑말랑학교. 내가 겁도 없이 스스로 짊어진 무게입니다.
---「마치는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