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이 역사상 가장 만족스런 구매로 기록될 중고 수첩 거래”(뉴욕 타임스).
우연히 손에 넣은 수첩에 적힌 놀라운 이름들.
샤걀, 콕토, 라캉, 자코메티, 엘뤼아르, 브르통, 브라사이, 아라공, 발튀스..... 누구일까? 이 모두를 알던 사람은? 그리고 이 모두에게 잊혀진 사람은?
저널리스트 브리지트 벤케문이 2년간의 추적을 통해 밝혀낸 수첩의 비밀.
이야기는 저자 브리지트 벤케문의 남편이 아끼던 에르메스 다이어리를 잃어버린 데서 시작한다. 더이상은 생산되지 않는 이 다이어리와 가장 비슷한 제품은 이베이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배송된 다이어리의 안주머니에는 주소록 수첩이 끼워져 있다. 갈피마다 적힌 놀라운 이름들. 콕토, 샤갈, 엘뤼아르, 라캉, 아라공, 자코메티, 브르통, 발튀스, 브라크....... 초현실주의 시대부터 20세기 중반을 주름잡던 전설적 예술가들과 연락하며 지내던 수첩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이 수첩이 탐사 보도로 훈련된 벤케문에게 온 것은 놀라운 행운이었다. 저자는 탐정이 되어 수첩의 주인을 찾아나선다. 오래지 않아 벤케문은 이 수첩이 저 유명한 피카소의 〈우는 여인〉의 모델이자 연인으로 알려진 도라 마르의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수첩에 적힌 이름들과 관련된 보존 자료와 서적, 관련기사와 인터넷 자료 등을 뒤지고, 생존 인물들은 직접 찾아다니며 증언을 수집한다. 그렇게 벤케문은 그동안 피카소의 뮤즈로만 알려졌던 도라 마르라는 여성 예술가의 특별하고도 놀라운 삶을 재구성해낸다.
도라 마르의 예술과 생애를 퍼즐처럼 혹은 입체파의 작품처럼 그려낸 독특한 형식의 이 책은, 수첩 속 단서를 추적해가는 구성 때문에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처럼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20세기 현대예술의 중심이었던 파리를 배경으로,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등장했다 오래도록 침묵했던 도라 마르의 다면적 초상이 부조된다.
피카소의 〈우는 여인〉으로만 남기를 거부한 삶
도라 마르, 본명은 앙리에트 테오도라 마르코비치. 1907년 파리에서 태어나 크로아티아 출신의 건축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르헨티나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파리로 돌아왔고, 사진 작가로 활동하면서 도라 마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에 이미 패션과 광고 사진으로 이름난 작가였고, 스물 일곱에는 혼자 영국과 스페인 등을 돌아다니며 빈곤, 실업, 기형 등으로 고통받는 주변부 인물들을 담은 르포 사진들을 찍었다. 이후 초현실주의 예술의 한가운데에서 전위적이고 독창적인 사진을 찍어 큰 명성을 얻는다. 초현실주의자들과 어울리던 젊은 사진작가 도라 마르는 1935년 카페 되 마고에서 피카소를 만나고, 이 년 뒤 〈게르니카〉를 그리는 육 주 동안의 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피카소의 '공식적인 연인'이 된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모델로 한 피카소의 그림 〈우는 여인〉이 너무도 유명해짐에 따라 도라 마르는 '우는 여인'으로 알려지게 된다.
도라는 사부아가 아파트의 거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며칠 동안, 때로는 더 오래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난 사막에 있어야 해요.” 그녀는 한 친구에게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신비의 아우라가 나를 둘러싸게 만들 거예요. 사람들이 내가 해놓은 것을 보고 싶게 해야죠. 모두 나를 피카소의 연인으로 기억할 뿐 화가로 받아들이질 않잖아요.” 도라는 스스로를 다시 만들어내야 함을, 사람들의 뇌리에서 '우는 여인'을 지워야 함을,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야 함을 알고 있다. _034쪽
그 자신 사진예술의 태동기에 초현실주의 사진가로 이름을 날렸던 도라 마르인 만큼 당시 파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가, 컬렉터, 비평가 들 모두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피카소와 결별하고 난 뒤 도라 마르는 예술계의 중심으로부터 급격히 멀어진다. 정신적으로도 무너지기 시작한 도라 마르의 수첩에 이제 예술가 대신 20세기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바로 자크 라캉이다. 도라 마르는 자크 라캉에게 주기적으로 정신분석을 받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적 공허는 채워지지 않았고 그 자리는 비틀린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열정으로 채워진다. 피카소의 권유에 따라 사진을 버리고 회화로 전향한 도라 마르의 그림은 예술계에서 이렇다할 평가를 받지 못했고, 그녀는 사부아가의 아파트에 칩거한 채 서서히 자신을 알던 이들과 인연을 끊는다. 피카소의 장례식에도, 자신의 전시회 기념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과는 오직 전화로만 소통한다. 그렇게 홀로 긴 세월 칩거 생활을 하던 도라 마르는 1997년 90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그러나 도라 마르의 작품들은 21세기 들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19년 런던의 테이트모던과 파리의 퐁피두센터가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 피카소에 가려져 있던 도라 마르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재발견한다.
한 존재의 여러 얼굴,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제일 처음 만난 도라 마르는 야심 있고 좌파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자유롭고 빛나는, 그러나 성마른 성격의 젊은 사진작가다.
두번째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여인, 독자적인 삶을 완전히 포기하고 심지어 종속되어버린, 복종을 즐기며 사랑받지 못하면 고통스러워하는 여인이다.
세번째는 착란을 일으키다가 결국 광기에 빠진 여인이다.
네번째는 정신분석과 종교와 그림의 힘으로 다시 일어선, 내가 가진 1951년의 수첩의 주인이다.
다섯번째는 서서히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예술과 침묵과 명상 속에 칩거한 여인이다.
그리고 여섯번째, 사람을 피하고 오로지 전화통화로만 세상과 연결된 늙은 도라다. _335쪽
피카소라는 너무도 강렬한 천재의 광채에 가려진, 자신의 삶과 예술보다 훨씬 유명한 그림 〈우는 여인〉 속에 갇혀버린 한 여성에 대한 연민으로, 벤케문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도라 마르의 어두운 면조차 껴안고자 노력한다. 수첩 속 인물들의 관계와 행적을 추적하는 지난한 작업과 도라라는 인물의 모호함과 복잡성 때문에 수차례 좌절을 겪지만 결국 벤케문은 1951년의 수첩을 지도로 삼아 예술사적 격동의 한복판에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했던 한 여성 예술가의 초상을 완성해낸다.
한국어판에서는 예술가로서의 도라 마르의 진면목을 국내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프랑스판 원서와 영어판에 들어있지 않은 도라 마르의 작품들을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해 컬러로 수록했다. 아울러 도라 마르의 연표도 만들어 책 말미에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용감하고 깊이 있는 탐사 프로젝트... 수십 년간 한 큐비스트의 제한된 해석에 갇혀 있었던 여성을 제대로 대하고 있는 책._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20세기 파리와 아방가르드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탐구. 현대미술과 초현실주의 애호가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 _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맛깔스럽게 신랄하고 대단히 흥미로우며 섹시하고 지적인 책. _ 릿허브LitHub
예술사와 미스터리의 만남. 이보다 더 짜릿할 수 있을까? _ 아트뉴스ARTnews
아름답게 쓰여진 매혹적인 책 _ 파리 마치Paris Match_
대단히 감동적인 한 예술가의 초상 _ 엘르Elle (France)
회고록과 전기와 역사의 흥미진진한 조합 _ 아폴로Apol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