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씨도 좋고, 이 장소도 좋고, 이 도로도 좋고, 이 차도 좋다. 그리고 특히 내 뒤에 앉아 있는 갈색 머리 여인이 좋다. 카바예의 목소리를 나만큼 즐기고 있는 내 여자가 좋다.’
제롬은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고 말수도 적다. 속보다 겉으로 더 그렇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고 예의라곤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줄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그
가 갑자기 차를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고 아내를 품에 안고 싶었다. 우스워 보일지 몰라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여가수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오케스트라가 그 뒤를 따랐다. 제롬은 기계적으로, 그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정신없이 백미러를 올려 아내를 쳐다보았다. 콘서트에서 자주 보던, 얼어붙은 듯 움직임이 없고 눈을 크게 뜬 그녀의 모습을 볼 줄 알았다. 그런데 백미러를 확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가 보게 된 것은 모니카와 손깍지를 끼고 있는 스타니슬라스의 길고 야윈 손이었다. 제롬은 서둘러 거울을 들어 올렸고, 음악은 웬 미친년이 꽥꽥 질러대는 알 수 없는 끔찍한 소리의 연속으로 변했다. --- p.15, 「비단 같은 눈」 중에서
“모든 게 잘되고 있어. 밀밭이나 귀리밭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뭐라는 거야?”
“머리 위에서 살랑거리는 줄기들과 함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진정해.”
“죽어가는 사람에겐 늘 진정하라고 하지. 정말 그럴 때야.”
“그래, 그럴 때지.”
마르트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남자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여자의 손을 잡고 죽어갔다. 모든 것이 좋았다. 그 여자가 아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둘이 함께하는 행복이란…… 쉽지가 않네…….”
그리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든 이제 그에게 행복 같은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 p.62, 「누워 있는 남자」 중에서
그날 아침, 자유의 몸으로 혼자 파리로 돌아올 생각을 하며 얼마나 좋았던가! 이제는 거짓말도, 지켜야 할 의무도 없을 것이다. 리옹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기다릴 의무도, 리옹에서 연인이 올지도 몰라 재미있을 저녁 모임을 갑자기 취소할 의무도, 리옹에 가야 해서 이상한 약속을 갑자기 취소할 의무도 없어질 터였다. 그렇다, 오늘 아침 그녀는 잠에서 깨면서 환희했다. 드디어 기차를 타고 아름다운 프랑스 전원을 감상할 수 있겠구나 하는 즐거움과 정정당당하고 솔직하다는 더 큰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하고 솔직함의 대상이 된 그 누군가에게 그녀를 영원히 잃게 된다는 선언을 하러 가는 즐거움이었다. 레티시아에게는 쉽게 기쁨으로 바뀔 수 있는 잔인함 같은 게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문이 잠겨 갇혀버린 탕녀는 야비한 그녀 자신에 대한 일종의 캐리커처였다. 그녀의 운명도, 그녀의 과거도, 그녀의 얼굴이 비친 흐릿한 거울이 보여주는 조각난 퍼즐 안에 꼭 맞지 않았다. 그것은 웃다가, 절망하다가 흘린 눈물이 만들어낸 퍼즐이었다. --- p.167, 「왼쪽 속눈썹」 중에서
마지막 계단을 돌아 내려오는데 갑자기 ‘삶’이 현관에 나타났다. 마르크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바깥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마르크는 이미 환자들, 위로하는 친구들, 생각에 잠긴 의사들이 가득 찬 어두운 방 안에서 떨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태양은 이미 해바라기, 커다란 후회가 되었다. 바로 그때, 마르크는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용기를 발휘했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인도로 뛰쳐나가 대로와 행인들,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귀머거리에 장님이라도 된 양 길가에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길모퉁이 카페로 향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의 주의를 끌지 않았지만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는 카페였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그 ‘영원’이 석 달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우습고, 더럽고, 하찮고, 멜로드라마 같다고 느꼈다.
--- p.200, 「길모퉁이 카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