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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 관한 것은 우연히만 알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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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94g | 120*182*15mm
ISBN13 9791165344702
ISBN10 11653447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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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만큼은 하지 않았다. 블라인드도 올리지 않고 화분도 확인하지 않은 채로. 몸무게 측정도 패스했다. 비타민도 안 먹었다. 이미 망쳐버린 시점에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매일 굴러가고 있는 바퀴에 작은 톱니 하나가 빠진 것만으로도 나는 작동을 멈췄다. 살짝 어긋나버린 어제의 실수로 불완전해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다시 용기를 끌어모아 세수를 하기까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불 밑에 숨어 있었다.
--- p.43~44 「공멸의 시간」 중에서

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은 모든 것이다. 집은 나의 세상이자 나의 도피처, 출발지이자 종착지, 생활이고 꿈, 이상이며 현실. 그러니까 결국 아무것에도 침범당하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서울에서 살던 원룸은 둘만 앉아도 집이 꽉 차서 화장실에 가려면 사람을 건너가야 했다. 사람은 부대낌이다. 부대끼면 멀미가 난다. 집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기 마련이고, 나는 그 냄새가 섞이지 않았으면 했다. 체취는 당혹스럽다. 너무 사적이고 너무 친밀하다.
--- p.53~54 「사적 영역의 부재」 중에서

나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약자를 완벽하게 배제하는 말이라서다. 모두가 날 때부터 건강한 것도 아니고, 건강할 수 있는 조건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예민한 신체와 정신의 상관관계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조금만 건드려도 탈이 나는 신체와 정신은 자아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 p.119 「‘몸’이라는 언어」 중에서

우리의 대화는 자주 합의점을 찾지 못해 서로가 외계인을 보듯 끝이 났어요. 언니는 그런 점들이 참신하고 좋다고 했죠. 저도 좋긴 했어요. 언니의 말을 한 오백 배쯤 곱씹느라 괴롭기는 했지만요. 개의치 않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언니와 상대가 받을 마음이 있는지 먼저 헤아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아마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 것 같아요.
--- p.162~163 「낯설고 뜨거운 당신」 중에서

그 ‘철벽’이라고 하지. 말도 몇 번 안 섞어본 사람이 들이댈까 봐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야. 저 사람이 선을 넘으면 어떡하지? 나는 침범당하는 게 너무 싫은데. 아, 분명히 선을 넘을 거야. 왜냐하면 그럴 것 같으니까. 그러면 나는 벌써 침범당한 기분이야. 아직 상대방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법도 정말 가지가지인 것 같아.
--- p.245~456 「간격이 소중한 사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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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 책의 첫 장을 읽고 작은 소름이 돋았다. 내가 바라던 고슴도치 같은 책을 찾았어! 이렇게 외친 건 나 또한 한 마리의 고슴도치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몸에 난 가시 때문에 다른 존재와의 적당한 거리를 고민한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거리 두기에는 천천히 다가가고 싶다는 희미한 사랑의 흔적이 묻어 있다. 그것은 멀어짐이 아닌 느린 포옹이다. 고슴도치들이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찾아 몸을 맞대듯, 영역을 존중하되 서운하지 않을 정도로 붙어 있는 것. 섬세한 영혼을 가진 그녀의 이야기는 잠 못 이루는 이들을 위한 묵묵한 위로가 된다. 나는 이 책을 고슴도치의 포옹이라고 말하고 싶다.
- 문보영 (문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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