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마법 주사위는 내 거야. 이걸 보라고.”
명보는 가방에서 낡은 노트를 꺼냈다. 세월의 때가 묻어 해지고 색이 바랬다.
“우리 할아버지의 일기장이야. 마법 주사위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적혀 있지. 할아버지는 마법 주사위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 받으셨다고 했어. 우리 집 유산으로 내려왔다는 증거야. 그러니 이제 내가 물려받는 게 당연하다고.”
분명 누크도 마법 주사위가 친구 것이라고 말한 적 있었다. 마법 주사위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명보의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었다.
--- pp. 12~13
“뚜껑 닫는다. 어두워도 조금만 참거라.”
우물 안은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후 병사들의 말소리가 났다.
“어이, 장영실 별좌. 혹시 독수리 한 마리 보지 못했는가?”
“경비대장님.”
독수리 누크는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장영실’이라는 이름을 똑똑히 들었다.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바로 장영실이었던 것이다! 장영실은 신분을 극복하고 세종대왕의 신임을 얻은,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다. 이번 시간 여행의 미션 위인이 분명했다.
--- p. 31
친구 보코가 코끼리 누크를 막아섰다.
“이봐, 누크. 뼈다귀 샤크는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냐. 우린 아이템 줄자의 숨은 기능을 알 때까지 도망가야 해!”
“보코. 자네도 기억할 게야. 지난번 공격으로 자네 등에 상처 입었을 때를 말이야. 내가 그때 망치로 뼈다귀 샤크의 이빨 두 개를 부쉈지 않나. 하하. 저놈의 뼈다귀는 없앨 수도 있는 존재라고.”
“그땐 그랬지만….”
“자네나 저쪽으로 가서 빨리 줄자의 기능을 찾아보게.”
코끼리 누크는 자신감에 넘쳐 단단한 잣나무마저 사정없이 쓰러뜨렸다.
“흐허헝! 덤벼라, 뼈다귀 샤크. 그동안의 치욕을 모두 갚아 주겠다!”
--- p. 47
가슴속에서 울분이 솟았다. 우두커니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나도 돕고 싶어!’
느티나무 명보는 발버둥을 쳤다. 순간 땅에 깊숙이 박혀 있던 나무뿌리가 뽑혀 올라왔다. 다른 쪽 나무뿌리도 쭉 뽑히면서 마치 걷듯이 앞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내 친구들을 놔둬!”
느티나무 명보가 나뭇가지를 붕 휘둘렀다. 나무가 움직이자 또다시 놀란 늑대들은 꼬리를 내린 채 혼비백산해 물러났고, 대장 늑대만이 바위 위에 올라 상황을 파악했다.
“덤벼라! 늑대야!”
--- pp. 70~72
“어르신, 자동 물시계가 다 완성된 것 같았는데 왜 부순 겁니까?”
“아직 보여 주기엔 부족해. 이런 원리의 물시계는 이미 명나라에서 나왔거든. 명나라의 물시계는 종소리를 듣지 못했을 때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없단다. 난 언제 봐도 시간을 알 수 있는 물시계를 만들고 싶었어. 그것이 조선의 과학 기술을 높이는 것이고 전하의 믿음에 보답하는 것일 테니 말이야.”
장영실은 용 모양의 인형에 묻은 흙을 탁탁 털면서 말을 이었다.
“시간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농업에 매우 중요한 일이야. 하루하루가 더해지면 한 달이 되고, 그 달이 모이면 계절을 이루지. 언제 모종하고, 언제 수확하고, 언제 장마가 지고, 언제 서리가 내리는지 안다면 농민들의 삶이 더욱 윤택해질 거야. 그래서 조선에 맞는 혼천의도 개발했지.”
장영실은 개인의 승진과 영달을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조선만의 독창적인 과학 기술로 백성을 풍요롭게 하겠다는 애민의 마음에서 매진하고 있었다.
--- pp. 88~89
세종대왕은 눈앞의 자격루를 신기한 듯 둘러봤다.
“장 별좌, 이것이 정녕 자동 물시계란 말인가?”
“예, 전하. 그렇사옵니다.”
“그럼 어서 시험해 보거라.”
장영실이 눈짓으로 명보와 승록에게 신호하자 아이들은 우물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가득 퍼 왔다.
자격루는 잘 작동했다. 파수호에 있는 물이 대롱을 통해 흘렀고, 세종대왕도 신기한지 물을 따라 조금씩 시선을 이동했다. 곧 수수호에 물이 가득 차니 구슬이 굴러 종을 쳤다. 말 모양의 인형이 작은 창문으로 올라오자 세종대왕은 환호했다.
“어허, 신기하도다. 이 인형은 지금 오시(오전 11시~오후 1시)라는 걸 알려 주나 보구나.”
“보시는 대로이옵니다, 전하.”
--- p.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