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를 만나기 딱 하루 전
페넬로페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무슨 일에든 최고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바로 단짝친구 만들기.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페넬로페는 이때야말로 절친을 만들 기회라고 생각하고 자기소개 동영상을 제작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동영상은 자기소개 동영상인지 자기자랑 동영상인지 약간 헷갈리는 면이 있기도 하다.
카메라 기능을 켜고 동영상 촬영 모드로 설정한 다음, 두 팔을 쭉 뻗어 녹화 버튼을 누른 뒤 자신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조금 빠른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 나는 페넬로페 킹스턴이고, 여기는 내 방이야!”
이제 카메라의 방향을 바꿔 방 안을 찍기 시작했다. 먼저 한쪽 벽면에 완벽한 대열로 걸려 있는 상장을 쭉 보여 준 다음, 그중에서 두 개를 크게 클로즈업했다.
첫 번째는 ‘주의력이 뛰어난 학생 상’이다. 운동장에서 넘어진 1학년 여자애를 잘 돌봐 준 선행으로 받은 표창장이었다. 그날은 조지프 선생님이 운동장 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페넬로페는 선생님보다 먼저 넘어진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를 보건실로 데려다주기만 한 게 아니었다. 보건 선생님이 “너는 이만 가 봐도 된다.”고 말한 뒤에도 한참을 더 남아서 아이의 상처 부위에 붕대가 잘 감겼는지 확인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자세한 내용까지는 상장에 적히지 않았다.
(중략) 페넬로페는 이제까지 상장을 총 36개 받았다. 앨리슨 크롬웰이 페넬로페의 뒤를 쫓고 있지만, 그래 봤자 고작 21개였다.
벽에 걸린 상은 페넬로페가 받은 상 중 일부일 뿐이었다. 나머지는 자물쇠가 달린 상자에다 출생증명서처럼 정말 중요한 서류들과 함께 보관하고 있었다.
페넬로페는 이 동영상을 새로 전학 올 아이에게 보여 줄 계획이었다. 이것만큼 자기를 잘 보여 주는 건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일주일 전, 담임 선생님인 파이크 선생님이 전학생이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전학생 이름은 브리타니 오브라이언. 그 소식을 듣는 순간, 페넬로페는 자신의 삶이 달라지리라는 걸 단박에 예감했다. 모든 게 곧 완벽해질 것 같았다. (중략)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미 저마다 제일 친한 친구가 있었다. 다시 말해, 운동회나 현장 체험 학습처럼 둘씩 짝을 지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짝꿍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페넬로페만 같이 다닐 친구를 찾지 못한 채 아직까지 혼자 남겨져 있었다. 그때마다 선생님과 짝이 되어야 했다. 그건 정말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과 짝을 한다고 해도, 어쨌든 그건 혼자 남은 외톨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10~12쪽)
첫인상이 중요해!
전학생 브리타니가 첫 등교하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간 페넬로페는 자신의 우아한 이름을 두고 ‘페니’라고 줄여 부르는 ‘갑툭튀’ 남학생 오스카를 맞닥뜨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녀석에게 가시 돋친 한마디를 해 주려는 순간, 딱 두 표밖에 받지 못한 반장선거에서 한 표를 주었던 것이 오스카였음을 간신히 기억해 낸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페넬로페에게 오스카가 대뜸 농구를 하자고 제안한다. 농구 규칙을 모르는 데다 체육에는 젬병인 페넬로페는 브리타니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고민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페넬로페는 오스카 앞을 막아서며 두 손을 치켜들고 외쳤다.
“자, 덤벼!”
오스카가 말했다.
“수비 좋은데? 그렇지만, 돌파한다!”
오스카는 따라오는 페넬로페를 뒤로하고 농구공을 드리블하며 골대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너무 세게 드리블하는 바람에 공이 뺨으로 튀었다. 오스카의 뺨을 후려친 공은 곧장 페넬로페의 정강이로 튀었다. 페넬로페가 공을 놓치자,
오스카가 잡아채 슛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링까지 가 닿지 도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스르르 굴러갔다. 오스카는 공을 주워 와 다시 공격에 나섰다.
페넬로페는 머쓱해져서 멋쩍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만약 브리타니가 진작 도착해서 이 어설픈 농구 게임을 모조리 지켜 봤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워했을까?
“오스카, 좀 잘해 봐!”
페넬로페는 두 팔을 번쩍 들고 좀 더 적극적으로 수비할 태세를 갖추며 오스카에게 외쳤다.
아이들이 하나둘 등교하고 있었다. 앨리슨과 엘리자, 리타와 틸리가 보였다. 수비 자세를 취하던 페넬로페는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이쯤에서 여자애들 쪽으로 합류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저 애들이 끼워 줄까? 페넬로페는 예전에도 몇 번인가 여자애들 무리에 끼여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저희끼리 웃고 떠드느라 페넬로페가 하는 말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브리타니가 보아서
좋을 게 없잖아?
게다가 지금은 리타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은 것 같았다. 아마도 또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에 관해 종알거리고 있겠지. 페넬로페는 지난 학기에 그 그룹의 리드 보컬을 해리가 아니라 휴고라고 말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리타는 틈만나면 그걸 가지고 페넬로페를 놀려 댔다.
그때마다 페넬로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런 일이 브리타니 앞에서 벌어진다면? 차라리 죽어 버리는 편이 낫겠다. (29~31쪽)
누가누가 짜증 대마왕?
전학생 ‘밥’을 둘러싸고 여학생들이 똘똘 뭉친다. 페넬로페는 밥과 친해질 기회를 놓치는 게 두려워 오스카와 자원 봉사 활동을 하기로 했던 약속을 젖혀 두고 여자아이들을 따라 피구를 하러 간다. 그러다 저 혼자 넘어지기를 두 번, 피하라고 밀어 준 틸리의 손에 홱 떠밀리고, 공까지 맞고 말자 아침부터 받은 스트레스와 절친 만들기 프로젝트가 엉망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정이 북받쳐 화를 내고 만다. 이 일로 잔뜩 의기소침해진 페넬로페는 난생처음 결석을 할까 고민까지 하다가 힘들게 등교를 한다.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간 페넬로페는 칸막이 안쪽에 숨어 있다 아이들이 자기에 대해 대화하는 목소리를 엿듣게 된다.
페넬로페는 좌변기에 앉아 다리를 들어 올렸다. 문득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느껴졌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물고기처럼 팔딱거렸다. 리타는 곧 페넬로페가 창피해할 만한 이야기를 꺼낼 것 같았다. 전에 아이돌 그룹의 리드 보컬 해리를 휴고로 잘못 말했던 일이라든가.
잠시 후 리타가 꺼낸 이야기는 훨씬 더 심했다.
“어제 걔, 완전히 꼭지가 돌았잖아? ‘이건 유치한 시합이야. 정말로 시-시-해. 진짜 웃기지 않아?’”
리타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페넬로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두 다리를 끌어안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영원히 귓가에서 메아리칠 것 같았다.
리타가 말을 이었다.
“걔는 툭하면 열 받는다니까. 아주 짜증 대마왕이야. 언뜻 세 봐도 걔가 어제처럼 폭발했던 게 적어도 여섯 번은 될걸. 왜, 저번에는…….”
“뭘 그래? 그렇게 심하지도 않았는데.”
순간 페넬로페는 깜짝 놀랐다. 밥이 리타의 말허리를 싹둑 잘랐기 때문이다.
“난 페넬로페가 꽤 괜찮은 애 같아. 학교를 자세히 안내해 줘서 도움이 많이 됐어. 그리고 너희가 아직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내가 열 받아서 성질부리잖아? 어제 걔가 피구하다 성질냈던 거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어.”
밥의 말 중에서 ‘성질냈다’는 표현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폭발했다’고 표현해 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학교를 열심히 안내한 걸 알아주다니! 그게 어디람? 불쑥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멋대로 따라와서 저희끼리 장난치는 바람에 얼마나 힘들었던지…….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타 앞에서 당당히 페넬로페 편을 들어준 것은 더욱더 고마웠다. (중략)
밥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페넬로페는 밥의 목소리에서 미소가 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 피구 시합에서 페넬로페가 욱했던 건 10점 만점에 5점 주겠어. 난 훨씬 더 심하게 욱한 적도 있으니까. 한번은 어떤 남자애가 날 바보 취급해서 얼굴에다가 샌드위치를 확 뭉개 버린 적도 있어. 그것도 잼 샌드위치를……. 그건
최소한 7점은 받아야 해.”
아이들이 다시 한 번 깔깔거렸다. 페넬로페는 ‘욱했다’는 표현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기분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밥이 말을 이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잖아.” (82~84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