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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78g | 128*188*9mm
ISBN13 9791191861068
ISBN10 119186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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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프 부인이 공부방에 들어서면서 문을 하도 세게 닫는 바람에 샹들리에 유리 장식들이 일제히 흔들리며 맑고 가벼운 방울 소리를 냈다.
--- 본문 속에서

가끔씩 죽이고 싶을 정도로, 칼로 얼굴을 그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혹은 발을 구르며 ‘아유, 정말 짜증 나!’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앙투아네트는 어른들이 미웠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어려서부터 부모를 무서워했다. 앙투아네트가 더 어렸을 때는, 엄마가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 꼭 껴안으며 쓰다듬어준 적도 꽤 있었다. 하지만 앙투아네트는 그때 일을 까맣게 잊었다. 대신 그녀의 머리 위로 날아드는 화난 목소리의 파편들을 내면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 p.11

앙투아네트가 이 땅에서 자기 몫의 행복을 누린다고 해서 엄마에게 해가 될 게 뭐가 있는가? 오! 세상에, 한 번만, 딱 한 번만, 진짜 젊은 아가씨처럼 예쁜 드레스를 입고 남자의 품에 안겨 춤을 춰봤으면. 그녀는 절망에 빠진 사람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장전된 권총의 방아쇠를 가슴에 대고 당기듯 눈을 질끈 감으며 다시 물었다. “딱 십오 분만, 안 돼요, 엄마?”
--- p.28

아무도, 세상 누구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못 보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감히 그녀를 키운다고, 그녀를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그 모든 천박하고 무식한 졸부들은 그녀가 자기들보다 천 배나 더 똑똑하고 재치 넘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 저녁 내내 그녀는 그들을 얼마나 비웃었는지! 그래도 그들은 당연히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녀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울거나 웃어도 그들은 아무것도 보려 하지 않았다. 열네 살 어린 아이, 어린 여자아이, 그것은 그들에게 개처럼 무시해도 되는 하찮은 어떤 것이었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녀를 억지로 재우고, 벌주고, 욕하는 것일까? ‘아! 저 사람들, 모조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 p.31

언젠가는 자기 몫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멀었다.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그때까지는 굴욕적이고 답답한 생활과 레슨, 엄격한 규율을 소리나 빽빽 질러대는 엄마….
--- p.33

‘더러운 이기주의자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은 건 바로 나야. 나, 나라고! 난 젊잖아. 저들은 내 몫을 훔치고 있어. 지상에서 내가 누릴 몫의 행복을 훔치고 있다고. 아! 기적이 일어나서 내가 그 무도회에 참가할 수 있다면! 그래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눈부신 여자가 되어 모두를 발아래 거느릴 수 있다면!’
--- p.34

삶은 온통 어긋나 있었다.
--- p.54

“엄마라는 그 여자, 나한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지. 난 겁 안 나, 난 상관없어!” (…) “그러면 죽어버릴 거야. 난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난 미리 복수를 했을 뿐이야….”
--- p.58

눈물이 흘러 분으로 범벅이 된 엄마의 얼굴을, 일그러지고 벌겋고 주름이 진 데다, 어린애 같으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가엾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앙투아네트는 엄마가 불쌍하지 않았다. 경멸에 찬 무관심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 p.72

바로 그 순간,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찰나의 순간, 한 사람은 올라갔고, 또 한 사람은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그렇게 ‘삶의 길 위에서’ 엇갈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 p.74

그는 (로즈 씨는) 삶을 미리 계산하고, 재보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우연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늘 쉽지 않다는 건 그도 인정했지만, 나름대로 집요하게 불운을 피해 다녔다.
--- p.90

그는 이성적으로 깊이 생각하려 했으며, 논리적이고 신중하게 행동해왔다. 그런데 이성과 신중함이 그 힘을, 예전의 효력을 점점 잃어갔다.
--- p.99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버리고 온 것에 관한 생각은 점점 줄어들었다. 모든 걸 잃었다하더라도 어쩌겠는가! 아직 목숨은 남아 있었다. 그는 목숨만은 구할 생각이었다. 이런 순간이면 미래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빨리 쪼그라든다.
--- p.103

살아 있는 소년과 죽은 여자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의 젊음이 로즈 씨의 내면에 일깨워놓은 감정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p.112

“삶이 끔찍한 거지. 너희는 삶에서 동떨어져 있어. 너희가 옳아. 삶은 여자를 아프게 하고, 망가뜨리고, 더럽히고, 상처 입게 해. 여자에겐 사랑 외에는 삶이 없다고 말하는 건 남자들이야. 그런데 혼자 사는 너희는 행복하잖니? 날 봐. 나도 이제 너희처럼 혼자야.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해서 찾은 고독이 아니라, 굴욕적이고 쓰디쓴 나쁜 고독이야. 버림받고 배신당해 얻은 고독이지. 난 직업도 없어. 가슴을 채우고 정신을 달래줄 게 아무것도 없어. 자식? 그건 날 계속 후회하게 하는 살아 있는 기억이야. 너희는, 너희는 행복하잖아.”
--- p.125~126

삶이란 게 참 묘해! 우리 각자에게 어떤 순간이 찾아오고, 어떤 일이 일어나서 우리의 운명을 이런저런 방향으로 틀어놓았다는 생각을 너희도 가끔 하니?
--- p.128

엄마가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랑은 떠나갔다. 마개를 열어놓은 향수병에서 향기가 날아가듯, 사랑은 그녀의 가슴에서 달아났다.
--- p.139

아! 내 가엾은 마르셀…, 뭘 원하니? 그게 바로 삶이야. 날것 그대로의 삶은 그런 거야.
--- p.139

언니는 이 모든 걸 우리한테는 절대 얘기하지 말았어야 했어!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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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욕망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연민하기는 어렵다. 연민은 그 욕망의 못남, 혹은 찌질함이 내 것이기도 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아주 쉽게 회피의 언어로 욕망을 비난할 때, 이렌 네미롭스키는 직설의 언어로 욕망을 연민한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가식과 허세로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엄마이거나 이웃이거나 혹은 그 자신인, 이들에 대한 비아냥이면서 동시에 그들에 대한 안쓰러움이기도 하다. 세상도 삶도 믿지 않는 자가 쓴, 그리하여 세상도 삶도 이해하게 하는 역설이 네 편의 소설에 담겨 있다.
-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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