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신앙생활을 점검해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과연 진정한 복음을 깨닫고 누리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 중직을 맡거나 죽을힘을 다해 봉사
하지만,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자칫 유교적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불교식으로 자기 수양에 그치는 신앙생활이 아닌지, 열심과 열정만으로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배우고, 말씀 앞에 자신을 세우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 영적 지식이 충만할 때,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아는 만큼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말씀을 모르면 영적으로 무지하게 마련이다.
「Part 1 - 하나님 나라와 복음 / 올바른 지식에 대해」 중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보내신 아들은 ‘독자’가 아니라 ‘독생자’이시다. 그것은 하나님의 외아들이라는 의미이거나 또한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 의미를 헬라어 원
어에서 제대로 알 수 있다.
‘독생한’으로 번역한 헬라어 모노게네스는 ‘남아있는’, ‘유일한’, ‘하나의’, ‘홀로’라는 뜻을 가진 ‘모노스’와, ‘발생하게 되는 원인이 되다’, ‘되기 시작하다’, ‘완성되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기노마이’의 합성어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따라서 독생자를 국어사전적 의미로 단순히 ‘하나님의 외아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성경이 말씀하는 ‘독생자’는 ‘유일한 원인이 되는 존재’, ‘유일한 시작과 완성이 되는 자’라는 의미에서 스스로 유일한 존재이며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Part 1 -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 / ‘독생자’를 주셨으니」 중에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행복모임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하는 진정한 베데스다 연못이다. 우리 함께 하나님 나라 복음이 선포되는 행복모임으로 가자. 베데스다 연못으로 함께 가자.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이 치유되기를 갈망하고 베데스다를 바라보지만 정작 문제를 해결 받는 사람은 제일 먼저 뛰어드는 한 사람뿐이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행복모임에는 숱한 간증들이 쏟아진다. 1명만 낫게 되는 베데스다 연못에 목을 매고 그 연못만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38년 된 환자를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적의 현장이 바로 행복모임이다.
인생의 수많은 문제를 치유 받고 자유하게 하는 것은 베데스다 연못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를 만나야 문제를 해결받는다.
「Part 1 - 하나님 나라와 행복모임 / 행복모임 그리고 베데스다」 중에서
교회의 진정한 사명은 복음이 복음 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이 자신을 ‘보배를 담은 질그릇’ 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 복음 때문이다(고후 4:7). 교회는 진리의 말씀, 복음의 실체를 담은 질그릇이자, 우리 각자 역시도 복음을 담은 질그릇이다. 따라서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며, 복음으로 사람을 치료하고, 복음의 절대 능력으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해야 한다.
복음이 변질되면 교회는 제 기능을 상실한다. 제대로 된 복음, 복음의 원래 목적과 그 능력을 세상으로 흘러 보내야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다. 하지만 교회 안에 복음을 축소하고 삭제하면 누가 무슨 방법으로 세상을 살릴 것인가?
「Part 2 - Welcome, '환영’하는 전도 소그룹 행복모임 1단계 / 복음과 행복모임」 중에서
행복모임은 인간의 연약한 힘이나 짧은 지식이나 지혜, 순간적인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평범한 나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 기적이지 않는가? 아무것도 아닌 부족한 나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엄청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는가? 행복모임은 기적의 현장이다.
행복모임은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보게 한다. 미련하고 무지한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이자, 계획이다.
「Part 2 - Worship, ‘찬양’하는 전도 소그룹 행복모임 2단계 / ‘행복모임’의 가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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