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절규의 증언이 기사와 영상으로,
그리고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현직 기자이기도 한 저자는 2020년 4월부터 12월까지, ‘살아남은 형제들’이라는 기획 보도를 통해 27인의 피해생존자를 비롯해 6인의 시대의 목격자를 만났다. 이들의 증언을 담은 기사와 동영상을 매주 한 편씩, 총 33편을 게재했고, 거기에 수천·수만 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엄청난 호응이 따랐다.
증언을 얻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33인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저자는 “차마 듣기 힘든” 증언 하나하나와 마주해야 했고, 다시 돌아가 증언을 원고로, 영상으로 만들기 위해 세 번 네 번 이상 다시 보아야 했다. 저자의 후기에 따르면 “피해 당사자에 비하면 하찮은 정도일 테지만 이 작업에 관여한 모든 이들에게도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할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저자를 힘들게 한 것은 “피해자들의 절규 섞인 증언이 새로 갱신되는 이슈들에 밀려 점차 힘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1년이 지나 다시금 증언을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말’의 무게에 비해 ‘눈과 귀’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반응은 잠깐이었고, 피해자들의 말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어떻게 하면 증언의 무게에 걸맞은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을까. 20만 자와 300분. 2020년 4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한 편씩 모두 33편의 방대한 기사와 동영상이 게재됐지만, 소화하지 못한 이야기가 여전히 많았다. 읽어주길, 들어주길 바라는 말들이 눈과 귀에 밟힌 채 꿈틀댔다. 이 책은 그 고민의 산물이다. 잠깐 읽히다 사라지는 기사와 달리, 적어도 책은 두고두고 읽히고 또 읽힐 테다.” - 프롤로그 중
책은 피해생존자들이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 상황(1부. 인간 청소)부터, 형제복지원 안의 일상과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2부 짐승의 삶/3부 묻힌 죽음/4부 담장 너머), 퇴소 이후 생존피해자분들의 삶(5부 곪은 상처)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르고 있다. 매우 구체적인 피해생존자의 증언은 무거운 철문에 가려져 있던 30년 전 형제복지원의 시공간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다른 증언집과 이 책의 차별점은, 피해생존자들이 겪은 공통의 경험(사건)을 중심으로 증언을 재구성하여 보여준다는 점이다. 주요 사건을 소주제로, 유사한 경험과 기억을 묶은 것인데 이러한 ‘공통 기억의 조합’은 형제복지원 사건의 전모를 밝혀줄 커다란 퍼즐 조각이 되어준다. 무엇보다 이러한 구성으로 말미암아 서로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얻은 증언이 서로의 목소리에 기대고 의지하며 더욱 힘을 갖게 되었다.
“부적응 후유증, 위태로운 생계, 자살 충동, 트라우마...
여전히 지옥에 사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나설 차례다.
1988년 형제복지원은 폐쇄됐고, 사건은 빠르게 잊혀갔다. 하지만 피해생존자들의 고통은 형제복지원에서 나온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피해생존자가 겪고 있는 트라우마의 근원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것이라 믿었던 국가 혹은 공권력으로부터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경험이 있다.
피해생존자들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시 어딘가로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피해생존자를 힘들게 한 것은 형제복지원 출신에 대한 사회의 냉대와 오해, 무관심이다. ‘5부 곪은 상처’에서는 현재까지도 피해생존자를 괴롭히고 있는 육체적?정서적 고통과 이들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를, 증언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형제복지원 쪽으로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혹시나 부산에 내려가면 또 잡혀 들어갈까 싶어서. ‘닭장차’라고 하잖아요. 그런 차만 지나가면 진짜 도망 다녔어요.“ - 피해생존자 김상수
“기초생활수급자인데 한 달에 십몇만 원, 이십만 원 가지고 생활해요. 냄비도 보면 시커멓고 뭐 아무것도 없어요. 반찬은 참치 2개…” - 피해생존자 김세근
피해생존자가 고통 속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박인근 원장은 형제복지지원재단, 느헤미야 등으로 법인 이름을 바꾸면서 사업을 이어갔다. 세신사였던 피해생존자 정수철(가명) 씨는 박인근 원장 소유였던 ‘사상온천’에서 그와 마주치기도 했고, 또 다른 생존자인 임봉근 씨는 1987년 형제복지원에서 나온 이후 박인근 원장에게 재차 불려 들어가 그의 장애인 시설에서, 또 박 원장 소유의 호주골프장에서 10년 가까이 노역에 시달리기도 했다. 제대로 끊어지지 않은 악의 굴레는 피해자들의 삶을 계속해서 옥죄었다.
2012년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의 국회 앞 1인 시위를 계기로 피해자들이 하나둘 모였고 2013년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도 한종선 씨와 함께 피해자 운동을 시작했다. 피해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은 30년 만에 다시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2020년 5월 20일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2기 활동’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피해생존자들이 하루하루 생계 문제에 허덕이고 트라우마로 인해 죽음을 생각하고 있지만, 회복을 위한 걸음의 속도는 더디기 때문이다. 저자는 직접 피해자들을 만나고 도왔던 시민사회·학계 전문가 5명의 입을 빌려, 국가의 사과와 보상 문제 등 증언의 무게에 상응하는 후속 조치를 촉구한다.
‘6부 진실을 향해’에는 “박인근 일가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 사건 기억을 위한 부산시 차원의 지원 촉구, 체계적인 사망자 발굴 계획 및 실행을 통한 살해 사실 입증”(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 공동연구원)과 “피해자들의 불안 및 심리적 트라우마 등 내상의 체계적인 관리, 꾸준한 증언의 기록과 보존을 위한 연구자 및 활동가 활동 토대 마련”(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등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언급되어 있다.
최대한 개입을 아끼고, 듣는 이를 자처했던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의지를 전한다. 형제복지원에서 주검이 된 이들의 몫까지 외쳐야 했던 피해생존자분들의 용기에 존경을 표하며, 자신을 비롯한 시민의 ‘책임과 연대’를 강조한다. 33인의 처절한 증언, 그 회한의 시간을 들여다본 이라면, 저자의 이 묵직한 외침에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우리 차례다. 무관심과 방조라는 공모[共謀]의 끈을 놓고,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는 그날까지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와 원망,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는 피해자들이 자신은 물론 사회와 화해하고 ‘형제복지원’ 다섯 글자의 무게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절규의 증언’은 우리의 화답을 기다리고 있다.” - 에필로그 중
편집후기
이 책의 구성적 특성상, 폭력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형제복지원이 얼마나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었는가를 실감하게 해준다. 원고를 읽으며, 무자비한 폭력 앞에 아연실색했고, 몸서리쳐지기도 했다. 고조되는 증언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고 가족이 형제복지원에 잡혀 오거나 애써 찾은 가족이 외면한 증언을 보고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간접적으로 전달된 감정이 이러할진대, 직접 겪은 분들의 심리상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저자는 글로 쓰인 증언의 어느 한 대목만을 보고도 이 증언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 분명하게 알아냈다. 얼마나 많은 시간, 증언을 대해왔던 것일까. 저자에 비하면 발톱만큼도 아니지만, 편집자 또한 증언을 여러 번 읽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정도 되었을까. 문득 잔인한 폭력 앞에 조금씩 무뎌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혹자는 “왜 그들은 모진 폭력에 순응하였을까?”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물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대변하고 싶다. “지속적인 폭력은 인간을 무뎌지게 한다”고. 나는 이 책의 독자분들이 힘들더라도 증언을 끝까지 응시하고, 더불어 변화하는 자신의 내면도 살펴봐 주시길 요청 드린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지 않기 위해, 폭력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