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4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276쪽 | 140*210*20mm |
ISBN13 | 9791190545280 |
ISBN10 | 1190545284 |
발행일 | 2022년 04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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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6쪽 | 140*210*20mm |
ISBN13 | 9791190545280 |
ISBN10 | 1190545284 |
이 책을 읽을 당시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어서였을까? ‘감귤’이라는 단어와 ‘주황색’ 표지에 꽂힌 나는 자연스럽게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니, 막상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감귤’마켓이 내가 생각한 그 ‘감귤’이 아닌 중고거래로 널리 알려진 ‘당*’마켓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아니, 그냥 ‘당*’마켓이라고 하면 안되었던걸까? 아니면 나만 '감귤'이라는 이름에 속은?걸까??)
선록은 어느 밤 수상한 냉동탑차 한 대를 만난다. 짐칸에 억지로 태운 누군가가 있을 것만 같은, 마치 범죄의 한 장면처럼 어두운 밤길을 달리던 그 차에는 정말 무고한 피해자가 있었던 것일까? 이 찜찜함을 그냥 지나쳐도 되는 걸까?
집에 돌아와서도 그 차의 손자국과 흔들림이 선록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분명히 짐칸에는 누군가 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선록만의 상상뿐이었고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p.22
선록의 아랫동서인 완수는 감귤 마켓을 통해 거래를 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 남자가 수상쩍다. 아니 애당초 다섯 집 살림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다섯집 모두 헷갈리지 않을만큼 그는 기억력이 좋은걸까, 아니면 헤르미온느가 맥고나걸 교수에게서 받은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라도 가지고 있는걸까?) 어찌보면 나와는 상관없는 그들의 일일텐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이것은 오지랖인가?
완수가 다시 한번 놀란 건 그를 만난 게 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여자와 함께였다는 점이다. 그는 이제 완수에게 자랑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집과 여자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완수는 그의 다섯 집 살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는 그의 사생활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p.62
과수원을 운영하는, 선록과 완수의 장인(아니 왜 이름이 없으신건가요?)은 인접한 밭의 상황이, 그곳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왠지 의심스럽다. 과수원으로 바람이 불때면 이상한 냄새가 실려 오는 것도 같다. 그냥 지나치자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딱히 그게 뭔지 모르겠다.
날이 맑아 달빛이 유난히 밝은 하늘은 멀리 있어도 서로의 표정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중략)..잠시 후 그는 씨익 웃고는 어둠 속으로 뛰어 돌아갔다. 밭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그는 아주 빠르게 사라졌고, 여전히 장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81
비슷한 시기에 뭔가 심상치 않고 찜찜한 일들을 마주하게 된 그들은 하소연 할 곳 없었던 자신만의 걱정을 서로에게 털어놓으며 아직은 그 실체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해결해보기로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그놈들이 아주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근데 이걸 경찰에 신고해도 될지 몰라서 말이야.”
“좀 애매하긴 할 것 같긴 해요. 무작정 신고를 하자니 다 추측이나 심증일 뿐이고요. 증거가 없거든요..(중략)..그런데 또 막상 그냥 넘어가자니 너무 찝찝하거든요. 혹시라도 이게 진짜 무슨 큰 사건이면, 그냥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내가 뭔가 막 죄를 지은 것 같기도 하고요..(중략)..괜히 나섰다가 우리 가족들에게 해코지라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요.”
“아니 형님은 어떻게 장인어른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요 ”
“박 서방 말하는데, 나는 박 서방이 내 속에 들어와서 말하는 줄 알았어.” pp.88-89
신기했다. 세 명에게 비슷한 시기에 범상치 않은 사건들이 발생했고, 서로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 제일 중요한 것은 모두가 찜찜한 일들을 겪고 있다 보니, 상대방들의 상황들에 훨씬 더 몰입하기가 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일들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주는 존재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있었다. p.92
우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두려움과 공포가 실은 아무것도 아님을 각자 확인해보고 싶었고, 만약 이것이 진짜 무서운 사건의 시작이라면 어떻게든 우리 가족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어설픈 수사가 시작되었다. p.93
주인공 선록이 제목의 '셜록'이겠구나, 생각했다가 이내 그들 모두가 '셜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세명의 남자가 도원결의라도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결연하게 다짐하는 장면을 읽었을 때만 해도 가벼운 일상 추리물이라 여겼다. 책의 마지막에 가서는 조금은 엉뚱하지만 왠지 기분 좋은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그런데 웬걸, 이 책은 내 예상을 빗겨 가기 시작하더니 예상치 못했던 결말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심지어 저자가 심어놓은 ‘감동’ 키워드는 내게 기괴한 느낌마저 주어서(만약 저자가 ‘기괴’함을 주려고 한 것이었다면 내게는 그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 처음 내 눈길을 끌었던 밝은 주황색의 표지가 짙은 고동색으로 변색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물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정리되고 저마다의 길 앞에서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훈훈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전의 상황들을 단순히 감동(또는 가족을 위한 희생)으로 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하다(물론 나와 다르게 가족애를 느끼며 감동을 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 역시 개인의 취향이니 뭐라 말하기 애매한 지점이기는 하지만).
다만, 밝은 주황색의 표지와 상큼한 느낌을 주는 ‘감귤’이라는 제목에 꽂혀 책을 구매한 내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전개가 아닐수 없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
혹시 자신들의 무관심이나 두려움 때문에 큰 사건이 발생된다면, 그 후 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었다. p.92
그들은 살면서 처음으로 큰 사건이 없었던 자신들의 삶에 감사함을 느꼈다. p.92
장인은 그 외국인 노동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기분이 이상해졌다. 원래 자신의 성향이 정이 좀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그냥 이놈 저놈, 아니면 그 외국인 노동자라고 부르던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니 갑자기 그가 자신의 인생에 훅 들어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p.193
“이걸 우리가 밝혀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그 나름대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지금은 우리가 궁금한 것뿐이잖아. 우리가 좀 참으면, 우리가 좀 잊어주면 그들은 그대로 또 살아가는 방법을 찾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pp.221-222
그런 생각을 할수록 선록은 자신의 평범했던 일상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록은 그들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으로 자신의 삶에 안심하고 싶지도 않았고. p.270
나는 아직 한번도 사용을 안해봤지만, 사용하던 물건들을 저렴하게 파는 중고마켓이 유행이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마켓인줄 알았는데, 감귤마켓이 마로 그런 직거래 장터인 것이다. 사실 박희종 작가님 지난번 책 < 타운하우스 > 재밌게 읽었었는데, 물건을 사러 가는 완수가 가는 장소에 있는 타운하우스가 유명가수 현수막이 걸렸다는 이야기에 < 타운하우스 >가 생각나서 흥미있었다. 가끔 작가님들이 자신의 다른 작품을 살짝 언급하시는 것을 만나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선록은 지난번 우연스레 봤던 냉동탑차가 마음에 걸린다. 탑차에 났던 손자국이라든가.. 감귤마켓에서 아이 동화책을 받으러 간 장소에서 그 탑차를 다시 만났다. 물건을 팔던 상대에게 탑차의 주인을 묻자, 의외로 "왜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자꾸만 무언가 개운하지 않아 동서인 완수에게 물어보려한다. 완수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감귤마켓에서 만난 판매자가 좀 수상하다. 마침 선록이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해서 완수도 이 일을 말하는데, 이상하게 한 사람에게 귀결되는 모습이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실 현실에서 이런 일을 만난다면 꽤 위험할 것만 같다. 선록의 가족들의 행동은 충분히 스토커라 할수 있지 않을까. 의심을 받고 있는 민철이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꼼작없이 스토킹으로 몰리는 것 아닐까. 하지만 선록의 가족들의 조직적인 조사과정도 꽤 흥미로워서 한 순간도 눈을 뗄수 없게 한다. 뭔가 무서운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는데, 결과에 도달함을 볼수록 참 안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전문 형사가 아닌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라 이런 결론이 참 맘에 든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때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라는 말이 다시 선록과 완수를 만날수 있기를 기대해 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