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시즘을 사물화하여 그것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만든 것은 과학'이라고 못박는 바타이유는 에로티시즘의 가장 근본적 성질이며 결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내적 체험'에 완전히 근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떠한 과학적 연구 방법도 불신한다. 그는 연구자들이 '성행위를 마치 사물처럼 통계'화했다고 <킨제이 보고서>를 공박하며 집단에서 무의식의 법칙을 찾으려 했던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적 방법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 p. 73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작품은 부럽지 않으나, 그 돈은 탐난다. 내게 그 돈이 있다면, 더 이상 거짓말을 쓰지 않을 수 있을 텐데..나는 밀리언 셀러를 터뜨린 작가들이 계속해서 글쓰기에 매진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거의 불가사이한 것이다. 만약 내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먼저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왜냐하면 소설이란 또 소설쓰기란 구제할 수 없는 악의 세계는 아니더라도, 범죄의 냄새가 나니까), 두 손에 로숀을 바른다.그리고 대현 파라솔 밑의 비치 의자에 드러누워 얼음 재운 콜라를 홀짝 거리며 못다 읽은 여러 전집을 읽을 텐데.
--- p.192
도시적 삶과 기계문명이 워낙 많은 모순으로 우리 삶을 피폐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농경적 공동체의식이나 자연세계의 모성원리가 강력히 요청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강력한 청원이 자칫, 인간 자신이 고향처럼 느끼고 있는 그 순환고리가 동시에 우리를 구속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게 해서는 안된다. 한 여성 신학자의 혜안을 빌 것 같으면 공동체라는 고리가 깨어지고, 깃들어 살던 모태가 개방 될 때 미래와 역사가 시작된다.
--- p.266
내 독서 경험에 의하자면 환경오염 문제를 다룬 국내 초유의 소설인 이것은, 이 소설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보다는, 경택과 해윤이라는 이상스런 주인공 때문에 흥미를 끈다. 보통 이런 유의 소설은, 공해와 오염으로마을과 바다를 위협하는 공단이 들어서고 순박한 주민들이 차츰 근대화와 자본의 허구를 깨닫는다는 식으로 전개되어 가게 마련인데 그 전개는 누가 선봉에 서서 주민들의 의식화를 담당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줄거리와 의미가 달라진다.
--- p. 37
나는 나의 읽기와 쓰기가 어떤 검열도 의식하지 않고 어떤 권위에도 연계되지 않는 혼자만의 쾌락이 되길 원했고,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독자나 저자 누구에게도 아무런 암묵적 힘을 행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 p.머리말